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20화 (20/141)

<-- 5. 전사의 증명 -->

프레이는 갑자기 변한 오크들의 태도에 당황했다.

“네놈...! 우리를 속였구나!”

“잡아라!”

오크들의 기세가 흉흉해졌다. 당황하는 프레이를 하츠람이 뒤에서 붙잡았다.

“말하라! 인간의 군대를 이끌고 온 목적이 뭐지?!”

“아니, 잠깐...”

프레이는 당황해서 도망치려 했지만 하츠람이 그를 붙잡았다.

“이놈을 단칼에 처형하리라!”

“잠깐!”

쿠스람이었다. 그는 프레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인간을 데려와라.”

* * *

“여긴가?”

“예. 맞습니다.”

게일의 질문에 게리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프레이, 이 자식...  어쩌자고 그런 짓을...”

“그가 살아있을까요?”

“아무리 유저라고 해도, 너무 무모한 일이야. 게다가 베긴네르가 아닌가. 시작의 마을에 나타나는 유저들의 수준은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그래도... 프레이는 오크 병사 하나를 처치했으니까요.”

게리슨은 그래도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게일은 최악의 상황을 생각했다.

“적어도 하나라도 처리했다면 다행이지... 아무튼 이제 전투를 준비할 시간이야.”

게일은 씁쓸하게 말을 내뱉으며 뒤로 돌았다.

숲속에는 베긴네르를 지키는 모든 병사들이 모여있었다.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몸을 바짝 낮추고 숨어 있었다.

“흠... 모두, 들리는가.”

“예.”

크게 소리를 낼 수가 없었기에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대답했다.

전투에 앞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건 지휘관의 일, 게일은 되도록 당당하게 보일 수 있도록 가슴을 폈다.

프레이가 훔쳐간 갑옷 외의 여벌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의 갑옷에는 제국의 후예를 상징하는, 검을 든 기사의 문장이 박혀 있었다.

“우리는 결전을 앞두고 있다.”

게일이 입을 열자 모두 숨을 죽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의 적은 저 간악한 오크들이다. 이전, 늑대 사냥 때 보았을 것이다. 그들의 육체는 단단하고 느껴지는 풍채에 압도당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크를 직접 본 병사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병사들은 각자 무서운 오크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기억해라! 그들은 살아 돌아왔다. 저 괴물들은 불멸이 아니다. 무기에 베이면 피를 흘리고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게일은 점점 목소리를 고조시켰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의 어조는 격양되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떠올려라!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가! 네가 물러서면 저 괴물들이 그들을 유린할 것이다. 가족이 없다고? 그렇다면 옆을 보아라!”

그 말에 몇몇 병사들이 옆을 보았다.

“네가 지켜야할 전우가 바로 옆에 있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를 기억하라!”

“기억하라!”

게리슨이 운을 맞추자, 병사들의 눈에 결연함이 감돌았다.

“기억하라!”

낮은 외침이지만, 그 울림은 가볍지 않았다. 병사들은 가슴속에서 벅차오르는 무언가를 느꼈다.

“전원,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차창- 창-

병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빼 들었다.

장검과 방패를 든 병사들은 전방에, 그 뒤에는 창병이 자리를 잡았다. 궁수들은 활 시위를 점검하며 투지를 다졌다.

“그대들과 싸워서 영광이다.”

게일은 나지막이 말을 내뱉었다. 사망자가 나오는 건 피할 수 없다.

“전원, 대열을 유지하라!”

척척-

병사들이 도열했다. 게일은 등을 돌렸다.

“전군, 전진!”

게일은 앞장서서 걸었다.

지휘관은 보통 후방에 선다. 지휘관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보호받는 게 상식이었다.

전략에 따라 병사들을 운용해야 하고, 전장을 보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니까.

지금은 달랐다.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병력의 규모가 너무 초라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략이라고 마땅히 할만한 게 없다.

그저 훈련받은 대로 움직이는 게 정상, 오히려 지휘관이 선봉에 나서는 게 병사들의 사기진작에도 도움이 된다. 게일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척- 척- 척- 척-

병사들이 발맞추어 걸어나갔다. 발소리를 맞추는 건 적들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소리의 세기가 클수록 적은 병사들의 숫자가 많다고 착각하게 될 테니까.

“게일 님.”

“음, 나도 봤다.”

게리슨은 게일의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이번 전투의 부관이었으니까.

그들의 눈에 오크 하나가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 * *

“네놈, 관습을 이용하여 우리의 숫자를 줄일 셈이었는가!”

쿠스람의 호통에 프레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건 오해입니다!”

“오해라고?! 그럼 저 인간 군대는 너와 상관이 없다는 뜻인가!?”

“그건... 컥...!”

쿠스람은 프레이의 멱살을 붙잡고 움직이며 말했다.

“모두 전투 준비를 하라!”

“예!”

“잠...깐...”

오크들이 무기와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프레이는 도통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인간과 오크의 전쟁을 막으러 왔는데,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쿠스람은 프레이를 쓰레기처럼 내팽개쳤다.

“눈이 있다면 직접 봐라!”

“쿨럭, 쿨럭... 하아...”

숨통이 트이며 기침을 내뱉은 프레이는 나무벽 밖으로 보이는 병사들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사람들이 왜?’

프레이로서는 설마 사람들이 자신을 구할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갑작스럽게 도착한 게일과 게리슨의 부대를 보니 당황할 수밖에.

“잠깐... 뭔가 오해가 있습니다.”

“아직도 더 할 말이 있는가?”

스릉-

쿠스람이 날카로운 검을 들고 프레이에게 겨누었다.

곧 죽어도 오해는 풀어야 했다. 프레이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제가 부탁드릴 것이 바로 그겁니다.”

“뭐라?”

“마을 침략을 멈춰달라는 부탁을 드리려 했습니다!”

혹여나 검으로 찔릴까, 프레이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허튼소리! 우리가 왜 마을을 침략한단 말이냐!”

“예?”

프레이는 황급하게 품을 뒤졌다. 갈롭 형제를 해치우고 얻은 쪽지는 아직 그에게 있었으니까.

“네놈! 똑같은 수에 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쿠스람은 프레이를 놔두지 않았다. 프레이가 단검을 찾는다고 착각한 것.

쿠스람은 프레이를 들어 올려 검을 치켜들었다.

“프레이!”

“전군! 속력을 낸다!”

“와아아아아!”

나무 벽 위로 들린 프레이의 모습을 본 게리슨이 놀라서 소리치자, 게일이 뛰어가며 명령을 내린다.

병사들이 공포를 이겨내고자 고함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한다.

“인간 놈들이 쳐들어온다!”

“붉은 바위 부족의 자랑스러운 전사들이여! 적들의 피를 대지에 뿌려라!”

“침입자에게 죽음을!”

오크들 역시 흥분하며 소리쳤다.

“제국의 후예에 영광을!”

“우리가 싸우는 이유를 기억하라!”

“기억하라!”

오크의 울음에 게일도 질세라 외친다. 병사들도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 복창한다.

일촉즉발의 상황.

진지의 입구를 앞두고 병사와 오크들이 양쪽에서 달려온다.

두두두- 두두-

양쪽의 발소리가 마치 대지가 신음하는 것 같았다.

“잠깐!”

“멈춰라!”

양측은 놀라서 서둘러 발을 멈춘다.

“억!”

“뭐야!?”

앞쪽의 사람들과 부딪쳐 여기저기서 신음이 들려왔다.

“프레이?”

“족장님!?”

프레이는 인간 쪽으로, 쿠스람은 오크 쪽을 바라보며 그들을 멈춰 세웠다.

“프레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족장님, 비키십시오!”

쿠스람은 슬쩍 프레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전투는 무의미하다.”

“모두,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프레이가 소리치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다.

“프레이, 도대체...”

“게일 님, 게리슨 님. 모두 오해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오해라고?”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쿠스람이 막 프레이의 목에 칼을 꽂으려는 순간, 프레이는 가까스로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당신들이 침략한다는 증거입니다.”

“이건... 갈롭 형제가 갖고 왔던...”

“예, 침략을 멈춰주세요! 그게 제 요청입니다!”

프레이는 양쪽을 돌아봤다. 분위기가 팽팽해지며 긴장이 고조되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었다. 프레이는 이 오크 족장이 현명하게 판단을 내리길 바랐다.

“이건... 이건... 우리가 인간에게서 빼앗은 종이다.”

“뭐라고요?”

“마을을 빼앗긴 건 우리 쪽이다! 인간들의 침략을 받은 건 우리 부족이야!”

쿠스람은 어느새 프레이를 놔주었다. 그와 동시에 프레이와 쿠스람은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

둘 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런... 그렇게 된 건가!’

프레이와 쿠스람은 곧바로 전투를 중지시켰다.

프레이의 말을 들은 게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무슨 소린가! 우리는 오크의 마을을 빼앗은 적이 없네!”

“예, 우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랬겠죠.”

“우리가 살고 있던 지역은 붉은 바위 산이다. 이곳의 동쪽에 있지.”

쿠스람이 설명했지만 게일과 게리슨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붉은 바위 산? 그런 곳이 있던가?”

“오크들의 지명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 종이는 인간의 명령서입니다.”

프레이는 침략 명령이 쓰여있던 명령서를 꺼냈다.

“이들은 침략이 아니라 이주 준비를 하고 있던 겁니다. 인간 군대에 쫓겨서 말이죠.”

“하, 하지만 자네도 알지 않은가! 오크의 습격이 먼저였네!”

게리슨이 말했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갈롭과 말롭은 늑대를 기르는 임무를 맡았다. 너희 인간들이 늑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는가!”

쿠스람은 적반하장이라는 듯 역정을 냈다. 그의 기세에 뒤에 있던 오크들이 다시 무기를 들었다.

“진정하세요! 그건 양쪽의 잘못입니다. 우리는 늑대들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었어요. 게다가 양쪽에서 사상자가 모두 나온 일입니다.”

프레이가 서둘러 중재했다. 쿠스람은 이빨을 드러내며 불만을 표출했지만 프레이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후... 우리가 싸울 이유는 없습니다. 애초에 오크 쪽은 마을을 침략할 마음도 없었고, 저희는 마을을 지키려 했을 뿐이니까요.”

서로 피를 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전쟁지역으로 선포된 건 뭐야? 오크가 침략하지 않는다면 왜 그런 일이...”

프레이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돌아보았다. 병사들 사이에 서 있었던 바이런이었다.

“전쟁지역이 된 시기가 언제였죠?”

“어... 그러니까 이틀 전인가?”

바이런이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게일 님과 게리슨 님도 아실 겁니다. 우리가 오크와 싸우기로 했던 날이죠.”

“그렇다면... 우리 때문에 베긴네르가 전쟁지역이 됐다는 말인가?”

게일이 놀라서 물었다. 오크가 아니라 전쟁을 결정한 건 자신들이었다.

“예, 상황이 그래서 오해가 심해진 겁니다. 그리고, 이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죠?”

“맞다. 인간들이 뒤쫓아 올지 모르니까. 많은 오크가 사망했다. 갈롭 형제가 늑대를 기른 것도 더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였지.”

진지의 천막이 허술한 것도, 늑대를 기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그저 더 안전한 곳을 찾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 그렇다면 보급이 늦어진 것도?”

게리슨이 깨달았다는 듯 말을 뱉었다. 프레이는 쿠스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혹시 이곳으로 오는 길에 행상인들을 봤습니까?”

“행상인? 짐을 실어 나르는 인간들 말인가?”

“음... 네, 그렇죠.”

정확히 그 뜻은 아니지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쿠스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모습을 보고 도망치는 인간들은 봤다.”

‘과연... 그렇게 된 거군.’

행상인들이 베긴네르로 오면서 오크 무리를 봤다면?

그 길을 쉽사리 이용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다른 곳에 갈 터.

그래서 베긴네르의 보급이 지연된 것이었다.

“우리가 싸울 이유는 없습니다. 피를 흘릴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무기를 거두세요!”

“하지만... 저 오크들을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게일은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의 말에 쿠스람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정녕 피를 보기를 원한다면, 피할 생각은 없다.”

그 말에 오크 병사들은 이빨을 드러내며 인간들을 노려보았다.

프레이는 다급하게 손을 들었다.

“잠깐! 제 요청을 잊으셨습니까?”

“크흠...”

쿠스람은 마땅치 않다는 듯 프레이를 바라보았지만 곧 돌아서서 부족원들에게 말했다.

“여기, 인간은 전사의 증명을 통과했다. 그 보답으로 인간을 침략하지 않기를 요청했다.”

“뭐?!”

“프레이, 성공한 건가!?”

게일이 놀라서 물었다.

설마 이 청년이 전사의 증명을 통과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자신조차 죽음을 불사할 각오로 자원한 일이었다.

“예, 그러니... 무기를 거두십시오.”

“음...”

“우와... 프레이 님. 대단하시네요.”

짝짝-

바이런은 박수를 치다가 자신만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황급히 손을 내렸다.

“좋다. 인간의 요청에 따라 우리 붉은 바위 부족은 마을을 침략하지 않는다.”

쿠스람이 공공연하게 선언하자 게일과 게리슨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사들을 향해 움직였다.

“잠깐.”

쿠스람이 프레이의 어깨를 잡았다.

게일을 비롯한 사람들은 다시금 긴장했다. 그러나 그들이 우려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르옴.”

“준비했소.”

지팡이를 짚으며 오크들 사이로 걸어 나온 다르옴은 프레이에게 토템을 건넸다.

오크의 얼굴을 조각한 토템이었다.

‘이건...?’

프레이는 건네받은 토템을 유심히 바라보자, 곧 메시지가 나타났다.

[붉은 바위 부족 전사의 토템]

[붉은 바위 부족 ‘전사의 증명’ 시험을 통과하면 얻을 수 있는 토템. 전사의 능력을 입증한 자는 오크로부터 존경을 얻습니다. 붉은 바위 부족을 인정하는 자라면, 이 토템을 가진 당신도 인정할 것입니다. 확률적으로 부정적인 상태 이상을 막아줍니다.]

‘하이스톨 씨가 준 배지랑 비슷하군.’

부가적인 효과가 있긴 했지만 프레이는 알지 못했다. 부정적인 상태 이상이라는 말이 생소했으니까. 그저 하이스톨의 역사학 배지와 비슷한 개념이겠거니 생각할 따름이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볼일은 끝났다. 각자의 길을 걷되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라지.”

쿠스람의 말에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집으로 돌아갑시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3%)]

[초급 검술 Lv7 (15%)]

[초급 단검술 Lv3 (32%)]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1 (12%)]

[초급 승마 Lv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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