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19화 (19/141)

<-- 5. 전사의 증명 -->

바루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족장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바루쉬, 내가 너를 모르겠는가. 방패를 잃은 이상 너는 진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바루쉬가 반박하려 하자 쿠스람이 손을 들어 막았다.

“안다. 전투를 중단하는 것이 너의 명예에 큰 누가 된다는 걸. 그러나 더 이상 부족원을 잃을 수는 없다.”

프레이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검을 내렸다.

“지금은 명예보다 부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바루쉬, 너처럼 유능한 자를 잃을 수 없다.”

“쿠스람 족장님...”

“너의 명예가 아닌, 나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일이라 생각하거라. 인간, 불만 있나?”

쿠스람의 시선이 돌아왔다. 프레이는 수많은 시선이 집중되자 조금 당황했다.

“아,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걸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전투가 중단되었다는 사실에 모두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인간, 이름이 뭐라고 했지?”

“프레이.”

“프레이, 본래 전사의 증명은 오크 부족 간의 관습이다. 인간인 자네가 살아남은 건 이례적인 일이야.”

‘오크 부족 간에... 그래서 그렇게 힘들었군.’

이퀄라이저 특성이 아니었다면 이미 두 번째 전투 시작부터 끝났으리라. 보통 사람이 버틸 수 없는 시험인가 싶었더니 역시 오크가 치루는 시험이었다.

“이쯤에서 멈추면 무사히 돌려보내 주겠다. 어떤가?”

“뭐라고요?”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 그러나 다음, 오크 병사 2명과 오크 전사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여기서 관둔다면 무사히 돌려보내 주겠다는 말이다.”

“쿠스람 족장님?!”

“인간을 그냥 돌려보낸다니요!?”

오크들이 반발했다. 쿠스람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조용!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무사히 보내준다고?’

마을을 습격하지 않겠다는 걸까?

주변 오크들의 반응으로 봐서는 아닌 것 같았다. 프레이는 잠깐 고민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기어코 시험을 계속하겠다는 건가?”

“부탁할 게 있으니까요.”

쿠스람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리고 이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좋다. 허나 이쪽에서도 더 추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법... 하츠람!”

“예!”

쿠스람의 양옆에 도열했던 오크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다른 오크 병사와 달리 견장이 달린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믿겠다.”

“예!”

하츠람이 오크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마지막 시험을 치르겠다.”

프레이는 주섬주섬 무기를 챙겼다.

바루쉬를 비롯한 오크들은 프레이의 것이 아닌 물건은 모두 치웠다. 바루쉬의 때처럼 프레이가 무기를 주워 사용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후우...’

하츠람은 다른 오크들보다 체격이 더 컸다. 그는 양손으로 대검을 쥐고 이리저리 휘두르며 몸을 풀었다.

쉬잉- 쉬잉-

대검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프레이는 마른 침을 삼켰다.

‘어디...’

프레이는 검을 쥐고 상대를 향해 겨누었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오크 전사 ‘하츠람’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전사... 병사보다 한 단계 높은 등급인가.’

프레이는 긴장한 표정으로 하츠람을 노려보았다.

판금갑옷이 마치 입지도 않은 것처럼 가뿐했다. 그만큼 근력이 강하다는 말, 게다가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강하고 빠르다.’

이리저리 몸을 풀어본 프레이는 자신이 강해진 만큼 경계하기로 했다. 하츠람은 대검을 잡고 입을 열었다.

“족장님의 뜻대로.”

프레이의 키만큼 큰 대검이었다. 그런 육중한 대검을 하츠람은 마치 식칼처럼 휘둘렀다.

쉬이잉-

물론 대검을 쓰는 만큼 동작이 컸기에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접근할 수가 없다.’

대검이 크다 보니 사정거리도 길었다. 프레이의 검이 닿기도 전에 다시금 공격이 날아들었다.

‘품 안으로 파고드는 게 어렵군. 하지만 오히려... 잘 됐어.’

프레이는 검을 집어넣고 더 거리를 벌렸다.

“으음?”

하츠람이 눈살을 찌푸렸다. 프레이는 인벤토리에서 활과 화살통을 꺼냈다.

‘원거리를 원한다면...!’

빠르게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초록 조준점이 나타남과 동시에 시위를 놓았다.

쏴아악- 캉-

빠르게 날아간 화살은 하츠람의 대검에 맞아 바닥에 떨어졌다.

“활도 쓸 줄 아는가?”

‘제길... 조준하기가 힘들다...’

하츠람의 스테이터스 탓일까. 조준점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하츠람은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활을 사용한다면 거리를 좁혀야 했으니.

“그런 솜씨로는 털끝도 닿지 않는다!”

“제길...!”

무작정 시위를 놓았지만 번번이 막혔다. 화살 낭비만 심해질 뿐.

프레이는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대검을 피하며 다시 검을 들었다.

‘정면승부다!’

다시금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대검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카캉-

“오호...”

프레이가 꿀리지 않자 하츠람이 미소를 지었다. 족장의 호위병이 될 정도로 뛰어난 전사인 하츠람, 그와 맞설 수 있는 오크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작은 인간이 그의 공격을 받아 내다니?

역시 자르쉬와 바루쉬를 이긴 건 운이 아니었다. 하츠람은 전사로서 끓어오르는 호승심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것도 받아보아라!”

하츠람의 대검이 쇄도했다. 프레이는 연신 검을 휘두르며 막아냈지만 뒤로 밀려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경험 부족.

프레이는 하츠람에게 꿀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자신을 압도하는 대검 때문에 나아갈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숱한 전투를 경험한 베테랑이었다면 맞받아치며 앞으로 나갔으리라.

그러나 프레이는 아직 미숙했다. 자신만큼 큰 대검이 눈앞에서 휘둘러진다.

그 사이를 파고들고 앞으로 나간다? 자살이 목적이라면 모를까, 웬만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쿠스람은 연신 밀리는 프레이의 모습을 보고 끝을 직감했다.

‘역시 인간은 인간...’

“쿠스람 족장, 저 인간이 데르옴과 타리옴도 처리한 것이오?”

자르쉬의 시신을 인도한 다르옴이 돌아와 물었다. 그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프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오. 내가 바로 하츠람을 불렀소.”

“음...”

다르옴은 쿠스람이 관습의 순서를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불쾌한 기색이었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다르옴, 저 인간의 정체가 무엇이라 생각하오?”

“유저라는 인간이 아니겠소? 마법은 느껴지지 않소.”

쿠스람의 질문에 다르옴이 대답했다.

보통 인간이라도 오크의 힘을 낼 수 있다. 마법의 도움을 빌린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다르옴은 부족의 주술사를 맡은 몸.

프레이에게서 마법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저 프레이가 지닌 순수한 힘이라는 말.

마법이 아니라면 유저밖에 없었다. 한계를 모르는 인간들.

“그렇군... 그런데 왜 유저가 옛 관습을 꺼낸 것인지...”

“전사의 증명을 통과하고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허나, 다르옴... 알다시피 우리 부족의 상황이 그리 좋은 건 아니잖소.”

쿠스람은 씁쓸하게 말했다. 다르옴도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답은 저 인간만이 알고 있겠지...”

프레이는 이리저리 뒹굴며 겨우 거리를 벌렸다.

‘강하다... 정말 강해...’

온몸은 진땀이 흘렀고 얼굴은 흙먼지로 뒤덮여 거지꼴이 되었다. 연거푸 하츠람의 공격을 받아낸 손목은 연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반면 하츠람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는 온종일 대검을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보여줄 건 다 보여줬나?”

“제길...”

프레이는 이를 악물었다. 아무런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만큼 큰 격차였고 그의 마음 밑바닥에는 절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2번째 죽음이었다. 그 말은 곧 죽으면 이틀 뒤에 되살아난다는 뜻이었다.

이틀 뒤에도 베긴네르가 멀쩡히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베긴네르가 아닌 다른 곳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그가 알던 이들을 다시는 못 보리라.

‘적어도...’

이길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면, 되도록 이 오크들에게 피해를 줄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프레이의 눈이 움직였다. 하츠람이 아닌 부족장의 자리에 앉은 쿠스람에게.

‘족장을 기습한다면...’

프레이의 품에는 단검 두 개가 있다. 활은 소용없다는 건 하츠람과 싸우며 알았으니 제외했다.

‘족장을 공격하면 그래도 승산이 높아지지 않을까.’

병사들을 지휘할 족장이 부상을 입었다면? 그만큼 베긴네르 사람들에게 유리할 것이다.

‘그래... 적어도 헛되게 죽을 수는 없어.’

프레이는 타이밍을 가늠했다.

‘더 가까이 가야 한다...!’

죽음을 각오한 이상 성공해야 했다. 프레이는 검을 고쳐 쥐고 하츠람에게 달려들었다.

“오, 눈빛이 보기 좋아졌군.”

하츠람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검을 잡았다. 대검과 검이 부딪치며 쇳소리를 내었다. 프레이는 되도록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기세가 좋아졌어! 망설임이 없어졌군!”

하츠람은 순수한 기쁨을 표출했다. 연신 대검을 휘두르던 그의 눈에 프레이가 품속에 손을 넣는 게 보였다.

하츠람도 프레이를 주시했기에 단검을 이용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조금 실망인데.”

단검이 드러나자 하츠람은 슬쩍 거리를 벌려 날아올 단검에 대비했다. 프레이는 빠르게 단검을 던졌다.

“힘이라도 빠진...”

단검이 자신의 머리 위를 넘어가자 실망한 듯 대답했다. 그러나 곧 단검의 목적지를 깨닫고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족장님!”

‘이런...!’

프레이는 낭패라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뭐지?”

쿠스람은 단검을 잡고 일어섰다. 그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

날아오는 단검을 잡았다. 프레이는 그 사실에 놀랐지만 곧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손이 미끄러졌군요.”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쿠스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겁한 인간놈!”

“감히 족장님을 노려!?”

“그러고도 전사의 증명을 요청하는가!”

주변의 오크들이 하나같이 분노를 터트렸다. 그동안 족장 때문에 억눌렀던 분노였다.

자르쉬가 사망한 이후로 오크들은 호시탐탐 프레이의 처벌을 기다렸다.

“네놈...! 감히...! 곱게 죽지는 못하리라!”

맞수를 만났다는 사실에 기뻐했던 하츠람이 노성을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하츠람! 하츠람!”

“자르쉬의 복수를!”

흥분한 오크들이 소리쳤다. 그럼에도 프레이는 쿠스람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조금... 조금만 더...!’

“네놈의 사지를 절단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주마!”

쉬이잉-

하츠람의 대검이 횡으로 그어졌다.

‘지금이다!’

프레이는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러 대검을 받아쳤다.

하츠람은 비웃음을 지었다. 고작 검으로 막는다 한들 조금이나마 목숨을 연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형제들이 뒤이어 그를 처리할 것이다.

‘뭣...?’

하츠람은 전해지는 강력한 충격에 눈을 크게 떴다. 충격은 계속 이어졌다.

“크윽...!”

결국 힘을 이기지 못했다. 손아귀가 찢어지며 대검이 날아가 떨어졌다.

“하츠...”

연신 이름을 외치던 오크들이 말하는 법을 잊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쿠스람도 놀란 눈으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숨을 몰아쉬며 프레이는 무릎을 꿇은 하츠람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죽여야 합니까?”

“네놈...!”

“방금 건 손이 미끄러졌다니까요? 이렇게 이길 수 있는데 제가 왜 당신을 공격합니까?”

프레이는 황급하게 말을 붙였다. 쿠스람은 그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주변의 오크들이 흉흉한 기세로 무기를 들었다.

프레이는 다급하게 말을 내뱉었다.

“고작 이렇게 끝입니까? 당신들이 그러고도 전사라고 할 수 있습니까!”

“모두 멈춰라!”

쿠스람이 소리쳤다. 그는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다른 오크들을 물렸다.

‘후... 다행이다.’

프레이는 물러나는 오크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단숨에 하츠람의 대검을 날릴 수 있던 이유. 그건 쿠스람이 프레이에게 분노를 터트렸을 때였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붉은 바위 부족 족장 ‘쿠스람’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메시지와 함께 느껴지는 강력한 힘. 쿠스람의 힘은 하츠람의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프레이는 그래서 기다렸다.

하츠람이 다가오기를, 스테이터스를 유지한 상황에서 그의 공격을 맞받아치기 위해.

다시 하츠람을 적대하면 스테이터스는 하츠람의 것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프레이는 일격에 모든 걸 걸었다.

‘성공해서 다행이야...’

쿠스람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다르옴을 돌아보았다. 다르옴은 천천히 앞으로 나와 말했다.

“프레이, 인간의 자손이여. 그대는 전사의 증명을 통과했다. 이에 우리 붉은 바위 부족은 그대의 청을 하나 들어주겠다. 그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프레이가 막 입을 떼려 할 때였다.

“족장님! 인간 군대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곧 그 시선은 다시 프레이에게 돌아갔다.

“어?”

프레이는 모여든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3%)]

[초급 검술 Lv7 (15%)]

[초급 단검술 Lv3 (32%)]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1 (12%)]

[초급 승마 Lv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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