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전사의 증명 -->
자르쉬는 다가오는 프레이를 향해 도끼를 옆으로 휘둘렀다.
“죽어라!”
프레이는 죽을 생각이 없었다.
허리를 향해 날아오는 도끼를 피해 그는 앞으로 굴렀다. 평소의 프레이라면 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오크의 힘을 가진 이상 판금갑옷을 입었음에도 움직임이 자유로웠다.
‘여기다!’
아찔하게 몸 위를 스쳐 지나가는 도끼. 오크가 사용하는 도끼는 그 크기 때문에 밀접한 적에게 쓰기 불편하다.
프레이는 곧바로 일어서며 검을 올려치려 했다.
그러나 자르쉬도 숙련된 병사.
보통 적이 공격을 피하면 공격을 멈추고 방어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자르쉬는 달랐다.
도끼를 휘두르는 힘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려 프레이의 팔을 걷어찼다.
“크악!”
프레이의 검은 허공을 갈랐다. 간신히 검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프레이는 옆으로 나뒹굴었다.
“크흠...!”
자르쉬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지탱하는 다리는 이미 프레이에게 한차례 베인 상황,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울컥 쏟아졌다.
프레이는 곧바로 공격을 받을세라 방어 자세를 취하며 일어섰다.
‘쉽지 않아...’
쉬울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직접 부딪쳐보니 더 힘들었다.
그나마 첫 공격에 다리를 베어뒀기에 망정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르쉬의 연이은 공격에 이미 목이 달아났으리라.
욱신거리는 팔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자르쉬도 다시 일어섰다.
“인간 주제에 그런 힘을... 역시 너는 살려둘 수 없다.”
“살려줄 생각도 없었잖아요.”
프레이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하자 자르쉬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검과 도끼가 부딪치며 공방이 이어졌다. 서로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자르쉬! 자르쉬!”
설마 호각을 겨룰 줄은 몰랐는지 구경하던 오크는 자르쉬의 이름을 외치며 응원했다. 다르옴은 족장 쿠스람을 보며 말했다.
“전사의 증명 덕분에 부족의 결속을 다질 수 있구려. 쿠스람 족장, 좋은 선택이었소.”
쿠스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자르쉬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인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공방은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은 프레이의 편이었다.
자르쉬의 안색은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처음 입었던 허벅지의 상처가 너무 깊었던 것. 과다 출혈로 점점 그가 밀리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프레이는 숨을 몰아쉬며 상황을 주시했다. 자르쉬 역시 시간을 끌수록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번에 끝낸다!’
자르쉬는 도끼를 굳게 움켜쥐고 달려들었다. 프레이는 바짝 긴장하며 검을 잡았다.
‘어디냐...!’
이전과 달리 기세가 달랐다. 프레이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프레이는 달려드는 자르쉬의 도끼에 집중했다. 이번만 막아내면 이길 것 같았다.
자르쉬가 양손으로 들고 있던 도끼를 마지막에 한 손으로 바꾸어 휘둘렀다. 프레이는 도끼를 막아냈다. 힘이 부족해진 만큼 도끼는 손쉽게 튕겨 나갔다.
‘뭣...!?’
그러나 자르쉬가 노리는 건 따로 있었다. 다른 방향에서 주먹이 날아들었다. 프레이는 급하게 검을 돌렸다.
“크윽... 잡았다!”
자르쉬가 웃으며 이빨을 드러냈다. 팔뚝에 박힌 검은 빠지지 않았다.
‘설마 이걸...!?’
이걸 노린 걸까. 프레이는 아차 싶었다. 다시금 튕겨 나간 도끼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제길!’
망설이면 죽는다.
프레이는 검을 놓고 자르쉬의 품으로 들어갔다.
“끄륵...!”
“하아... 하아...”
상황을 지켜보던 쿠스람이 눈을 감았다.
피 끓는 소리와 함께 자르쉬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쿠웅-
자르쉬의 턱밑에는 단검 하나가 박혀 있었다.
“형제여!”
바루쉬가 나와 자르쉬를 살폈다.
“혀...끄럭...현제...”
목을 꿰뚫린 자르쉬의 입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바루쉬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형제여! 말을 멈추게! 모두, 모두 도와주시오!”
“현제... 조심...”
자르쉬의 마지막 숨결이 바루쉬에게 닿았다. 그는 믿기지 않는 듯 형제의 주검을 내려보았다.
“모두, 자리로 돌아가라!”
“족장님!”
프레이는 그제야 주변에 흥분한 오크들이 무기를 꺼냈다는 걸 알았다. 쿠스람은 그들에게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르쉬의 명예를 더럽힐 셈인가! 그는 정당한 대결에서 패배했다!”
“허나...”
“물러나라!”
오크들은 서슬 퍼런 시선을 남기며 물러섰다. 바루쉬는 자르쉬의 몸에 박힌 무기를 빼내 프레이에게 던졌다.
“형제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자르쉬의 시신을 넘겨주고 일어섰다.
‘나도...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죄인이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프레이는 떨어진 무기를 다시 잡고 재정비를 했다.
바르쉬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다르옴에게 말했다.
“제 차례입니다.”
“음... 시작하게.”
바루쉬는 몸을 돌렸다. 얼굴에는 마치 문신처럼, 바루쉬는 형제의 피를 얼굴에 발랐다.
“자르쉬의 몫을 받아가겠다.”
“후우... 후우...”
프레이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오크 병사 ‘바루쉬’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음...!’
갑옷이 무거워졌다. 아무래도 자르쉬보다는 힘이 약한 모양이었다.
‘뭔가 머리가 맑아진 느낌인데...’
바루쉬는 검과 방패를 들었다. 나무로 만든 원형 방패였다.
‘방패... 까다롭군.’
단검을 이용한 기습은 다시 통하지 않을 터, 프레이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다행히 체력은 회복되었다.
“피는 피로 씻어내겠다!”
“바루쉬! 바루쉬!”
쿵- 쿵- 쿵-
주변의 오크들이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팽팽해진 공기,
프레이는 온몸이 짜릿짜릿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유저들이 이래서 싸우는 건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지금 자신은 유저니까.
근육이 팽창하고 감각이 예민해진다. 피와 땀이 섞인 냄새가 느껴진다.
마음 속에서 고양감과 흥분이 차오른다. 몸 속에서 피가 질주한다.
“와라!”
프레이가 고함을 내질렀다.
주변의 오크들에게 지지 않겠다고 선언하듯, 살아서 돌아가겠다고 자신에게 다짐하듯.
바루쉬는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크아아아!”
바루쉬는 자르쉬보다 움직임이 날렵했다. 스테이터스는 물론 한손검의 특성 때문이었다.
프레이는 연거푸 검을 막아내며 뒷걸음질을 쳤다.
‘냉정한 공격이다...!’
프레이는 감탄했다. 게리슨과 비교해 꿀리지 않을 움직임이었다.
단순히 오크는 무식하고 힘만 센 종족으로 생각했지만, 바루쉬는 달랐다.
한 손으로 방패를 몸에 붙여 위험을 줄이면서도 검을 빠르게 움직여 적을 제압한다. 게다가 자르쉬의 전투를 봐서인지 비교적 노출이 된 다리 부분을 경계하는 게 느껴졌다.
‘제길...!’
몇 번인가 틈을 노려 공격을 내질렀지만 바루쉬의 방패에 번번이 막혔다. 이어지는 공격을 피하려면 물러서야 했다.
“이번에 끝나겠군요.”
다르옴의 말에 쿠스람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자르쉬는?”
“조상님들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다르옴은 덤덤하게 말했지만 눈가에는 물기가 어렸다. 쿠스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을 이끌고 장례를 치르시오. 그리고... 이번 시합에서도 저 인간이 이기려 한다면... 막아야겠소.”
“족장, 그러나 그건 바루쉬의 명예에...”
“안일한 생각이었소. 더는 부족원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 없소. 내 판단에 따라 중지시킬 것이오.”
“쿠스람 족장...”
다르옴은 말을 잇지 않고 돌아섰다.
* * *
“하아... 하아...”
프레이는 숨을 몰아쉬었다. 반면 바루쉬는 냉철하게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고작 이게 전부인가?”
프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더 빨리 지친다...’
자르쉬 때와는 다르게 시간에 쫓기는 건 프레이 쪽이었다.
힘이 부족해진 탓일까, 판금갑옷이 갈수록 부담이 되었다.
게다가 바루쉬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프레이의 몸에 자잘한 상처를 남겼다.
이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프레이가 패배할 확률이 증가하리라.
‘저 방패... 방패가 문제다...’
바루쉬가 사용하는 방패, 검과 검으로만 승부한다면 모를까 방패를 지닌 상대와 지구전은 어려웠다.
하지만 그의 검으로는 방패를 부술 수 없다.
“포기한 건가? 그렇다면 이쪽에서 가주마!”
프레이가 나서질 않자 움직인 건 바루쉬 쪽이었다. 방패를 앞세우고 달려오는 바루쉬, 방패 뒤에 냉철한 눈이 프레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크윽...!”
프레이는 날아오는 검을 되받아 치고 벌려진 틈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턱-
검 끝은 방패에 가로막혀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금 날아오는 바루쉬의 검.
‘제길!’
프레이는 검을 틀어 올려 공격을 막아냈다. 그렇게 되면 다시금 바루쉬의 방패가 날아든다.
방어와 공격 모두 활용하는 모습. 프레이는 다시금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도망칠 셈이지!?”
바루쉬는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당당하게 전사로서 맞서라!”
“방패 뒤에 숨어서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
프레이가 비꼬듯이 대답했지만 바루쉬는 흔들리지 않았다.
“네놈처럼 도망치지는 않는다!”
바루쉬가 버럭 성을 냈다. 그와 동시에 프레이를 향해 다가온다.
한 걸음 한 걸음 압박해온다.
‘젠장... 어쩔 수 없어!’
프레이는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던졌다.
“그런 얕은수에 당하지 않는다!”
단검은 방패에 박혔다. 프레이는 슬쩍 눈을 돌렸다.
‘조금만 더!’
남은 단검도 다시 던졌다. 바루쉬는 가볍게 방패로 막아냈다.
“네놈의 피로 내 형제의 명예를 회복하리라!”
“바루쉬! 바루쉬!”
주변의 오크들도 바루쉬를 응원한다. 누구도 바루쉬가 질 거라 의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약 7걸음도 남지 않았다. 프레이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가 노리는 건 단 하나.
프레이는 마른 침을 삼키며 검을 들었다.
“받아라!”
외침소리와 함께 검을 내던졌다. 설마 검까지 던질 거라 생각지 못한 바루쉬는 날아오는 검을 방패로 후려쳤다.
“무슨 수를...!”
바루쉬는 몸을 다시 돌렸다. 그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흐아아아!”
프레이가 도끼를 들고 있다. 자르쉬가 사용하던 도끼를.
검으로는 방패를 파괴할 수 없다. 하지만 프레이는 알고 있었다.
갈롭이 사용하던 도끼, 그리고 무참히 파괴된 자신의 방패.
도끼를 이용하면 바루쉬가 사용하는 방패도 파괴할 수 있으리라.
프레이는 전력을 다해 몸을 같이 돌리며 도끼를 휘둘렀다.
오크의 몸으로는 프레이처럼 굴러서 피할 수도 없었다. 프레이의 체격은 오크보다 작았으니까.
프레이가 휘두르는 도끼는 바루쉬의 골반 밑부분을 향해 날아들었다. 설령 몸을 굴려도 등이 잘려나가리라.
“크읍!”
바루쉬는 급하게 방패와 검을 동시에 들어 막았다.
콰지직-
도끼날과 방패가 부딪치는 순간, 방패의 나무 부분이 조각나며 떨어졌다.
프레이는 그대로 손을 놓았다. 그리고 몸을 던져 떨어뜨렸던 검을 잡았다.
‘지금이다!’
무릎을 꿇은 바루쉬가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프레이는 빠르게 검을 찔러 넣으려 했다.
“그만!”
진지를 가득 메우는 고함소리에 프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섰다. 소리의 발원지를 돌아보니 쿠스람이 서 있었다.
“족장님...?”
바루쉬는 놀란 눈으로 쿠스람을 바라보았다. 쿠스람은 바루쉬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에도 인간의 승리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1%)]
[초급 검술 Lv7 (8%)]
[초급 단검술 Lv3 (28%)]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1 (12%)]
[초급 승마 Lv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