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17화 (17/141)

<-- 5. 전사의 증명 -->

프레이는 당황했다.

‘뭐, 뭐야...?’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닐까. 프레이는 재차 소리쳤다.

“전사의 증명을 요청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오크의 귀에 닿지도 않은 것 같았다.

“형제여, 주위에 다른 인간이 없는지 주의하라!”

4명의 오크가 다가오니 그 중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프레이는 이를 악물고 검을 들었다.

‘알튼,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알튼이 옆에 있다면 당장에라도 묻고 싶었지만, 그 자리에 온 건 오직 그뿐이었다.

‘알튼이 잘못 알고 있던 걸까? 아니, 차라리 다행이야.’

게일이 왔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리라. 적어도 죽는 게 자신이라 다행이었다.

‘잠깐, 벌써 질 생각이라니...! 정신 차리자!’

프레이는 마른 침을 삼키고 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갈롭이 방패를 박살 내는 걸 봤다. 방패보다는 검을 양손으로 쥐어서 막는 게 나았다.

“형제여! 다른 인간은 보이지 않는다!”

“건방진 인간! 네놈은 나 붉은 바위 부족의 자르쉬가 상대해 주겠다!”

다른 오크가 소리치자 가장 앞에 선 자르쉬가 갑옷을 두드리며 도끼를 잡았다.

프레이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나, 베긴네르의 프레이가 전사의 증명을 요청한다!”

자르쉬의 말을 비슷하게나마 따라 해보았다. 혹시 말하는 방법이 잘못된 건 아니었을까.

그러나 소용은 없었다. 자르쉬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미친 게로군! 인간,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오크 병사 ‘자르쉬’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아, 가벼워졌다.’

온몸을 짓누르던 판금갑옷이 가벼워졌다. 그뿐이랴, 양손으로 잡은 검은 마치 단검을 쥐었을 때와 같았다.

‘후우... 그만큼 저놈의 힘이 대단하다는 거겠지.’

오크들이 프레이의 사방을 포위했다.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훑은 프레이를 보고 자르쉬가 소리쳤다.

“네 상대는 나다! 내 형제는 네가 겁쟁이처럼 도망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음... 그래도 비겁하게 다 같이 덤비지는 않겠다는 건가.’

그래도 경계를 풀 수는 없었다. 순순히 믿어줄 정도로 프레이는 순진하지 않았다.

“죽어라!”

자르쉬가 달려들며 도끼를 사선으로 휘둘렀다. 프레이는 자세를 낮추고 검을 올렸다.

카캉-

“아니...!?”

자르쉬는 프레이를 단숨에 짓누를 셈으로 힘을 쏟았다. 그런데 이 작은 인간이 그의 공격을 거뜬히 막았다.

'놀랍지? 나도 놀라워!'

프레이는 이를 악물고 자르쉬의 도끼를 튕겨냈다. 자르쉬는 인간이 공격을 막아낸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밀쳐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고작 인간이...!’

형제들이 지켜보고 있는 자리였다. 자르쉬는 밀릴 수 없었다.

“요행에 불과하다!”

“크악...!”

온통 도끼에 집중하고 있던 프레이는 갑자기 날아든 자르쉬의 발길질에 대처하지 못했다. 옆구리를 가격하자 프레이의 몸이 한 바퀴 돌며 바닥에 처박혔다.

판금갑옷이 움푹 들어갔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머리 위로 도끼날이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흡...!”

프레이는 곧장 몸을 그대로 굴렸다.

“지렁이 같은 놈!”

약이 올랐는지 자르쉬가 도끼를 뽑아 들고 프레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런...!’

막 일어나려던 프레이는 한 손으로는 검면을, 다른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들어 올렸다.

카캉-

쇳소리와 함께 검면으로 도끼날을 막아냈다. 자르쉬는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운이 좋구나!”

“멈춰라!”

재차 도끼를 내려치려던 자르쉬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프레이와 거리를 벌렸다.

“쿠스람 족장님.”

돌아본 자르쉬의 시선에 붉은 바위 부족장 쿠스람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주술사까지.

“다르옴 님까지 여기에는 무슨 일로...”

프레이는 자르쉬의 공격이 멈추자 힘겹게 자세를 고쳤다.

“자르쉬, 왜 허락도 없이 인간을 공격한 거지?”

“쿠스람 족장님. 저 인간은 무장을 하고...”

“부족을 지키려는 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허나, 고작 인간 하나에게 4명의 오크라니. 부끄럽지 않느냐?”

쿠스람의 말에 자르쉬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명예를 저버린 일이 아닙니다. 저 인간은 제가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허나, 주변에 네 형제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저 작은 인간에게는 부담이 될 것이다.”

자르쉬는 대답하지 않았다. 쿠스람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루쉬, 저 인간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이 너라고 들었다.”

쿠스람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프레이는 왠지 소외되는 기분이었지만, 섣불리 나설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해야 했다. 옆구리에 느껴지는 격통이 잠잠해질 때까지라도.

“예, 그렇습니다.”

“저 인간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아는가?”

“잘은 모르겠으나, 전사의 증명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바루쉬의 말에 반응한 건 쿠스람이 아니라 주술사 다르옴이었다.

“전사의 증명...!”

“다르옴, 뭔가 아는 게 있는가?”

다르옴은 지팡이를 짚고 프레이에게 다가갔다. 지팡이가 절그럭 소리를 내며 가까워졌다.

“다르옴 님! 위험합니다!”

“잠깐, 자르쉬. 놔두어라.”

자르쉬가 다르옴의 앞을 막아서려 하자 쿠스람이 그를 막았다. 다르옴은 프레이와 몇 걸음 떨어지지 않는 자리에 멈췄다.

프레이가 마음만 먹는다면 곧바로 돌진해 다르옴의 목을 벨 수 있는 거리. 그러나 다르옴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프레이 역시 그를 해칠 마음이 없었다.

‘주술사의 스테이터스로는... 힘들다.’

오크인 만큼 기본적인 근력이 받쳐주겠지만, 판금갑옷을 입고 활발히 움직일 수준은 아니었다. 전투에 돌입하는 순간 다른 오크들의 공격에 당하리라.

“전사의 증명이라고?”

“그렇다... 나, 베긴네르의 프레이가 전사의 증명을 요청한다.”

“신기하구나. 오크도 아닌 인간이 어찌 우리의 옛 관습을 기억하고 있는가?”

다르옴은 천천히 프레이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덕분에 프레이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야 했다.

“그것까지 설명해야 전사의 증명을 요청할 수 있나?”

“그건 아니지. 허나 그건 대부분의 오크도 잊은, 오래된 관습. 의문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나마 이 다르옴이라는 오크는 말이 좀 통하는 것 같았다. 다짜고짜 무기를 들이밀지 않는 걸 보면. 프레이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전사의 증명을 통과하지 못하면... 대답해주겠다.”

“오호... 배짱이 대단하구나.”

프레이의 주위를 한 바퀴 돈 다르옴은 다시 쿠스람에게 돌아갔다. 쿠스람은 다르옴을 보며 말했다.

“전사의 증명... 할아버지께 들은 기억이 있소.”

“쿠스람 족장, 결정은 족장의 몫이오.”

“음...”

쿠스람은 프레이를 마주 보았다. 그렇게 잠시 눈을 마주한 쿠스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옛 관습을 돌이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족장님!? 허나, 인간에게 발각된 이상 서둘러야 함이...”

“다른 인간은 보지 못했다. 자르쉬, 정 그렇다면 네가 선봉에 나서 빨리 끝내면 되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쿠스람과 다르옴은 앞장서서 오크 진지로 돌아갔다. 자르쉬는 프레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따라와라! 도망치려 하면 그 자리에서 처형할 것이다!”

“후...”

프레이는 날이 선 자르쉬의 말에 짧게 숨을 내쉬고 그를 따라 걸었다. 오크들은 프레이를 포위한 그대로 진지로 들어갔다.

* * *

‘전투를 준비 중인 건가...’

프레이는 힐끗힐끗 진지 내부를 돌아보았다. 이전에 정찰했을 때와 달리 다른 막사 대부분을 철거한 모양이었다.

‘마을 근처에 전초기지를 세우려고 하는 건가?’

진지 안으로 들어온 인간이 신기한지 어린 오크들이 부모의 곁에 서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포로가 된 느낌이군.’

사실 포로나 다름없는 신시이긴 했다. 저 쿠스람이라는 족장이 마음을 바꾸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오크가 그를 공격할 테니까.

오크들은 진지 내 가장 큰 막사 앞에서 멈추었다. 프레이도 덩달아 멈춰 섰다.

“전사의 증명에 대해 얼마나 알지?”

다르옴이 프레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크 다섯을 혼자서 상대하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다르옴은 오크들 사이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것 같았다. 프레이는 그에게 정중히 대답했다.

“음... 제대로 알고 있군. 쿠스람 족장, 관습에 참가할 오크를 부르십시오.”

다르옴의 말에 쿠스람은 잠시 모여있는 오크들을 훑었다. 그리고 이내 결정한 듯 이름을 불렀다.

“자르쉬, 바루쉬, 데르옴, 타라옴, 하츠람 순으로 하지.”

“알겠소. 호명된 오크는 앞으로 나오라!”

다르옴이 칼칼한 목소리로 외쳤다. 자르쉬는 미리 준비한 듯 앞으로 나왔다. 그 외 4명의 오크가 쿠스람의 앞에 섰다.

“첫 시합은 자르쉬, 다음은 바루쉬다. 이 둘을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나... 만약 통과한다면 데르옴과 타라옴이 동시에 상대한다.”

‘뭐? 동시에?’

프레이는 놀란 눈으로 다르옴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2명을 상대하는 과정도 있단 말인가?

“저 인간이 마지막까지 도달하면 우리 붉은 바위 부족의 명예로운 전사 하츠람을 상대할 것이오. 모두, 시험에 방해되지 않도록 물러서시오!”

다르옴이 소리치자 몰려든 오크들이 거리를 벌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인간이 나를 넘어설 수는 없소!”

“자르쉬! 자르쉬!”

자르쉬가 도끼를 들며 소리쳤다. 주변에 있던 오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자르쉬의 이름을 외쳤다.

프레이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괜찮아. 시험마다 스테이터스가 바뀐다. 눈앞의 상대에만 집중하자.’

“어느 한 상대가 의식을 잃거나, 죽음. 혹은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지금부터 전사의 증명을 시작하겠다!”

쿠스람이 일어나 시험의 시작을 알렸다.

쿵- 쿵- 쿵-

오크들이 발을 구르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자르쉬는 모여든 오크들을 훑어보고 다시 시선을 프레이에게 돌렸다.

“이번에야말로 너의 피를 대지에 흩뿌리리라!”

“조금 전에도 못했는데 지금이라고 다를까요?”

“건방진 인간... 너의 혀부터 뽑아서 씹어 삼키리!”

반말보다 존댓말로 비꼬는 게 더 효과가 좋으리라.

프레이는 일부러 자르쉬를 자극했다. 오크는 흥분할수록 움직임이 커졌으니까.

‘오크의 스테이터스를 얻었다고 오크처럼 싸우란 법은 없어!’

자르쉬가 콧김을 내뿜으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프레이는 한 손으로 검을 붙잡고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받아라!’

쉬익-

품속에서 나온 날카로운 단검이 허공을 가르며 자르쉬에게 날아갔다.

“이런 비겁한...!”

달려오던 자르쉬는 예상치 못한 단검에 황급히 도끼를 앞으로 들었다.

카캉-

프레이가 노린 건 단검이 자르쉬를 공격하는 게 아니었다. 기껏해야 단검을 오크의 몸에 박았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그가 노린 건 바로 지금 자르쉬가 보여준 행동.

‘지금이다!’

도끼를 들어 올려 단검을 막으며 시야를 가리는 그때였다. 프레이는 곧바로 자르쉬의 허벅지를 검으로 그었다.

“크윽...!”

낮은 신음과 함께 자르쉬가 거리를 벌렸다. 붉은 피가 초록 피부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런 잔꾀를...!”

‘허벅지가 너무 두꺼워... 완벽하게 베지 못했다.’

프레이는 빠르게 피를 털어내고 2차 공격을 대비했다. 단검 기습에 또 당하지는 않으리라.

“자르쉬! 계속할 수 있소!?”

“물론입니다!”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자르쉬는 프레이를 향해 다가왔다. 이전보다 조심스러운 움직임.

‘그래도... 승산은 나에게 있다!’

프레이는 자르쉬를 향해 달려들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1%)]

[초급 검술 Lv6 (69%)]

[초급 단검술 Lv3 (23%)]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1 (19%)]

[초급 승마 Lv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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