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오크 습격 -->
알튼과 프레이, 서로가 놀란 눈으로 마주 보았다.
“프레이?”
“아... 안녕하세요.”
“자네가 여기는 어떻게... 아니... 봤나?”
알튼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잠깐의 침묵.
프레이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의 고개도 따라 움직였다.
“일단... 들어오게.”
알튼은 그 외에 다른 사람이 없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프레이를 안으로 이끌었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알튼이 조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부터 봤나.”
“아... 에밀리가 같이 가자고 말할 때부터요.”
알튼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잡화점 안을 서성이던 그는 프레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비밀... 지켜줄 수 있겠나?”
“예? 아... 네.”
“다 이 늙은이의 욕심일세...”
알튼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녀만은... 에밀리만은 어떻게든 살려 보내고 싶었어.”
“그러면...”
“그래, 난 전사의 증명이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 않네.”
알튼은 프레이의 눈을 피했다. 그가 말한 방법이었지만, 성공확률이 희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게일은 뛰어난 기사야. 그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전사의 증명을 통과할 정도는 아닐 게야.”
“그런...”
“두려웠네. 손녀가 죽는 꼴을 보고 있을 할아비가 어디에 있겠나?”
프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튼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기적이라는 건 알아. 그래도... 텔레포트 스크롤은 하나뿐이었어. 모두를 구할 수는 없었네.”
“이해합니다...”
알튼은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기적인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화제를 전환하려는 듯 프레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게 해준다니 고맙네... 그런데 이 밤중에 자네가 여기는 무슨 일인가?”
“아, 잠이 좀 안와서... 혹시 도움이 되는 게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하긴... 내일 오크 놈들이 쳐들어온다는 데 편하게 자기도 힘들겠지. 잠깐 기다려 보게.”
알튼은 안으로 들어가 몇 번 뒤적이더니 곧 접혀있는 종이를 들고 왔다.
“수면초 가루야. 이거 하나면 푹 잘 수 있을 걸세.”
“아, 감사합니다. 값은...”
“돈은 무슨, 내일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냥 가져가게.”
“그래도...”
“그럼 입막음 비용이라고 생각하게. 이만 가보게... 나도 생각난 김에 하나 타서 먹고 자야겠어.”
알튼은 지친 표정으로 프레이를 내보냈다. 그는 꾸벅 인사를 남기고 수면초 가루를 챙겼다.
* * *
다음날.
프레이는 눈을 뜨자마자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장이 할린은 바쁘게 무기를 손질 중이었다.
“아, 자네 왔나. 조금 기다려주게. 경비병들 무기 손질이 좀 밀려서 말이야.”
“완성은 됐나요?”
“물론. 이것만 끝내고 가져다주겠네.”
할린은 손질한 검을 다시 확인하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끙끙대며 무기를 쏟았다.
“자, 여기 부탁했던 단검 2개.”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이었다. 프레이는 이리저리 둘러보고 단검집에 넣었다.
“그리고 검은 3개가 나왔어. 도끼나 창으로 만들기에는 좀 애매해서 말이야.”
“아... 두 개만 주시고 나머지 하나는 경비대에게 주세요.”
“응? 아... 그러지.”
할린도 기억하고 있었다. 같이 싸우기로 한 유저가 있다면 주겠다는 말, 결국 프레이 외에 자원한 유저는 한 명뿐이라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바이런인가?”
“예?”
“그 유저말이야.”
“아... 네.”
“역시, 그 친구는 남아줄 줄 알았어.”
할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검을 건네주었다.
“바이런에게 전해주게. 정말 고맙다고. 무기 손질 때문에 직접 갈 수가 없으니.”
“예, 보게 되면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래, 고맙네.”
프레이는 고개를 숙이고 떠나려다가 다시 몸을 돌려 물었다.
“아, 혹시 게일 님 장비도 손질하셨나요?”
“응? 아아, 물론. 가장 먼저 했지.”
“네. 수고하십시오.”
프레이는 곧장 무기를 챙겨 경비본부로 향했다.
“바이런.”
그의 예상대로 바이런은 여전히 수련 중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바이런이 고개를 돌렸다.
“아, 프레이 씨.”
“이거 받으세요.”
“아니, 이게 뭐예요?”
“선물입니다.”
바이런은 그가 내민 검을 보며 휘둥그레졌다.
“할린 씨가 고맙다고 전해달래요.”
“아... 할린 씨가...”
약간 의미가 이상하게 섞였다. 할린이 고마움의 표시로 무기를 건네준 것처럼 들렸다.
프레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누가 주느냐가 뭐 중요하겠어.’
“저는 그럼.”
“어디 가세요?”
프레이는 가볍게 인사를 마치자, 바이런이 물었다.
“아... 준비할 게 좀 있어서요.”
“네. 그럼 저녁에 봐요.”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게리슨은 경비본부 뒤편 마구간에서 게일을 기다렸다.
‘전사의 증명... 과연...’
게일이 전사의 증명을 통과하면 상관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게리슨은 최악을 생각해야 했다.
그가 떠나면 자신이 이곳의 경비대장이 될 테니까.
‘배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한 곳에 몰아두는 편이 좋을까? 아냐... 오크 놈들이 마을을 포위해 올지도 모른다.’
그는 연신 서성거리며 보름달이 떴을 때를 생각했다.
‘아니... 숫자는 적으니 밀집해서 올지도 모른다. 일단 북쪽 입구에 병력을 집결하고 건물 위에 병사 몇 명을 올려서 망을 보는 게 좋겠어.’
게리슨은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져 왔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무기를 줘야 하나? 아니면 대피시켜야 하나?’
일단 피신시키는 쪽이 낫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동시키는 게 나았다. 그러나 아직 자신이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
‘출발하기 전에 물어보는 게 낫겠지.’
물어보고 하는 편이 맞다. 적어도 게일이 있을 때 그의 경험을 빌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막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절그럭- 절그럭-
판금갑옷이 부딪치는 소리에 게리슨은 곧바로 돌아서서 말을 대령했다.
“오, 오셨습니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게일.
푸르릉- 푸릉-
말이 투레질을 했다. 게리슨은 게일을 도와 말에 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저, 게일 님.”
게일이 고개를 돌렸다.
“마을 사람들을 미리 대피시켜두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같이 싸우도록 합니까?”
게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게일 님?”
찰싹- 푸르릉-
게일은 말을 출발시켰다. 게리슨은 당황했지만 멀어져 가는 게일을 붙잡을 수 없었다.
“스스로 정하라는 건가...”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멀어져 가는 게일의 뒷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 그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음...? 근데 게일 님 체격이 원래 저 정도였나?’
멀어서일까. 게일의 체격이 평소보다 왜소해 보였다.
게일이 멀어질수록 게리슨의 표정은 기묘하게 변했다.
‘아니, 설마, 아니겠지.’
그는 다급하게 건물로 들어갔다. 경례를 붙이는 병사들을 제치고 그는 빠르게 계단을 올렸다.
‘설마, 설마...’
게일의 사무실.
게리슨은 마른 침을 삼키고 문을 열었다. 어차피 와야 할 곳이었다.
게일이 없는 이상 그가 경비대장이니, 이곳이 그가 있어야 할 방이었으니까.
끼이익-
문이 열리며 안쪽의 풍경이 보였다.
“이런...!”
게리슨은 황급하게 움직였다. 책상 위에 쓰러진 게일의 모습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드르릉- 푸우-
‘자고 있어?’
코 고는 소리에 게일은 빠르게 눈을 돌렸다. 그가 할린에게서 받아온 장비가 없다.
‘이런... 프레이!’
그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말을 탄 기사가 북문을 벗어나 산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프레이...”
* * *
[초급 승마를 익혔습니다.]
[초급 승마 Lv1 (0%)]
다그닥- 다그닥-
말은 판금갑옷의 무게 때문인지 빠르게 달리지 못했다.
‘후우... 확실히 무겁네.’
땀이 차는 투구를 벗어 인벤토리에 넣자, 프레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쫓아오지는 않겠지.’
수면초 가루를 이용해 게일을 재웠다. 그리고 곧바로 장비를 착용했다.
프레이와 게일의 체격 차이는 상당하다. 하지만, 프레이는 현재 유저인 상황.
어떤 아이템이라도 크기가 자동으로 조정된다.
판금갑옷의 특성 상 투구 안쪽의 얼굴이 어떤지 알기 힘들다.
‘투구는 쓰지 않는 게 낫겠다.’
그만큼 시야확보에도 방해가 되었다. 프레이는 투구는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게리슨 님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을 때는 좀 놀랐어.’
목소리를 내면 금방 들킬 거라 생각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게리슨이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은 프레이도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냥 무시하고 말을 출발시켰는데, 다행히 넘어갈 수 있었다.
산 초입에 다다르자 프레이는 말에서 내렸다.
“수고했다. 얼른 돌아가.”
말 궁둥이를 툭 하고 치자 해방된 말이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후... 무겁다... 기사들은 정말 대단하구나...’
판금갑옷이 짓누르는 무게가 상당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땀이 흘렀다.
‘오크와 싸울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렇다고 판금갑옷을 버리기에는 아까웠다. 전사의 증명은 오크와 싸우는 것, 오크의 스테이터스라면 이런 판금갑옷은 일반 가죽갑옷과 다를 바 없을 터였다.
‘조금만 힘내자.’
프레이는 이를 악물고 걷고 또 걸었다. 방향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자 나무들 사이로 오크 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좋아... 일단 마음을 가다듬고...’
프레이는 주변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다. 물론 전투가 벌어지면 체력이 회복되겠지만, 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골골거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모름지기 전사의 증명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갑옷 입고 산을 탔다고 헉헉대는 놈이 나타나서 자기가 전사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해보라.
오크가 아닌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 어이가 없는 일일 터. 적어도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땀이 식을 때 즈음, 프레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가자.’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두드리며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었다.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갈롭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난 죽지 않아.’
죽지 않는다. 그는 유저였고 불멸자였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죽어 가는 걸 보는 게 더 두려운 일이었다.
그는 걸음마다 베긴네르의 마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바이런의 몫까지.’
* * *
경계를 서고 있던 오크 병사들은 멀찍이서 걸어오는 인영에 바짝 긴장했다.
“뭐지?”
“오크가 아니다. 인간이야.”
“고작 1명?”
허나 그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인간들은 약삭빠른 놈들이었다. 다른 곳에 병력을 숨겨뒀을지 몰랐다.
“어서 족장님께 전해, 내가 여기를 지키겠다.”
“알았다.”
오크 병사 하나가 빠르게 족장의 막사로 향했다.
그 사이 인간은 진지 앞까지 다다랐다.
“인간! 멈춰라!”
오크 병사는 비교적 어린 인간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그러나 인간 중에 유저라는 놈들도 있었기에 오히려 경계심은 커졌다.
“이곳을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저벅저벅-
오크 병사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다른 형제들이 도착했다.
“바루쉬, 무슨 일이냐?”
“저건 인간이 아닌가?”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루쉬에게 말을 건 형제, 자르쉬는 도끼를 들며 이빨을 드러냈다.
“추격자가 분명하다! 어서 처리해야 해!”
“잠깐, 형제여! 족장님의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
“명령?! 그 사이 인간 놈들이 군대를 이끌고 이곳까지 올 것이다!”
바루쉬의 팔을 거칠게 쳐낸 자르쉬가 앞으로 나섰다.
고작해야 인간 하나, 그러나 갈롭과 말롭 형제가 숲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그 뒤로 부족 전체가 예민해진 상황. 오크 병사 3명이 자르쉬의 뒤를 따랐다.
“이런...!”
바루쉬는 이를 악물고 그 뒤를 따랐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형제를 지켜야 했으니까.
저 인간도 그들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인간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처음은 놀람, 다음은 공포. 그러나 공포는 짧았다.
그 인간은 힘껏 숨을 들이켜더니 소리쳤다.
“나, 프레이가 전사의 증명을 요청한다!”
‘전사의 증명이라고?’
바루쉬는 눈을 돌렸다.
혹시 형제가 알까? 아닌 것 같았다.
자르쉬는 형제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무슨 헛소리냐! 형제여! 저 인간을 사로잡아라!”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1%)]
[초급 검술 Lv6 (63%)]
[초급 단검술 Lv3 (21%)]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1 (19%)]
[초급 승마 Lv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