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15화 (15/141)

<-- 4. 오크 습격 -->

경비대장 게일과 촌장이 눈을 끔뻑거렸다. 게리슨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자네가?”

침묵을 깬 건 게일이었다.

“예.”

짧은 대답, 그 안에 들어있는 확신.

촌장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자네가 할 수 있다는 건가?”

“성공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프레이가 자신 있는 이유? 당연히 그의 이퀄라이저 특성 때문이었다.

‘그 갈롭과 말롭이라는 놈들을 다섯이나...’

일반인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하나를 상대하는 데 대부분의 체력이 소모될 터.

그러나 자신은 달랐다.

‘매번 다른 상대를 만나면... 스테이터스가 회복된다.’

스테이터스에는 체력이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지쳐도 새로운 상대를 만나면 그 상대의 스테이터스를 얻게 된다. 즉, 지친 체력도 다시금 회복되는 법.

‘전사의 증명을 할 수 있는 건 이 마을에 나밖에 없을 거야.’

“그건 안될 말이야.”

“게일 님?”

게일이 고개를 저었다. 게리슨이 놀라서 되묻자 게일은 엄한 눈빛으로 게리슨을 노려보았다.

“프레이라고 했나? 게리슨에게 이야기는 들었네. 오크 병사를 상대했다면서.”

“예, 그렇습니다.”

“그 뒤에는?”

“그 뒤는...”

프레이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말롭에게 당할 뻔했던 걸 게리슨을 비롯한 다른 경비병들이 구해줬으니까.

“단둘을 상대하는 데 애를 먹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겠지?”

“허나, 그건...!”

“그만. 이 일은 내가 맡겠네.”

게일의 선언에 다른 이들도 놀란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게일 님이 직접 말입니까?”

“허나...”

“저를 믿지 못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게일은 겉보기에도 건장한 체격이었다. 오크를 옆에 세워도 꿀리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문제는 그의 나이였다.

이제 약 중년에 접어든 그의 체력은 오크와 비교하기에는 무리였다. 하물며 오크 다섯이라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놓고 믿을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게일은 그들의 불안함을 눈치챘다.

“내 나이가 걱정이오? 세월의 풍파 때문이오? 허, 그 세월만큼이나 축적된 경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조금 자존심이 상한 모습이었다. 촌장은 말없이 알튼을 바라보았다. 알튼은 다시 게리슨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 둘은 게일의 솜씨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만약에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때는 자네에게 맡기겠네. 게리슨.”

“예!?”

“자네가 다음 경비대장이라 이 말이야.”

게일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레이는 그를 말리기 위해 일어났다.

“하지만 게일 님!”

“앉게. 아무리 급하다고 한들 자네 같은 청년에게 무거운 짐을 맡기고 싶지 않아.”

게일이 힘을 주니 프레이는 속절없이 의자에 다시 엉덩이를 붙여야 했다. 지금의 스테이터스는 온전히 프레이, 자신의 것이니까.

‘강하다...!’

외견보다 강했다. 그저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게 결정된 걸로 알겠습니다. 게리슨은 내일 저녁 전까지 내 장비를 준비해주게.”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회의는 게일의 퇴장과 함께 끝났다.

* * *

“하아...”

속절없이 밀렸다. 모두가 회의실을 떠날 때까지, 프레이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이퀄라이저 특성에 기대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다시금 느끼는 무력함, 스스로를 단련해야 했다.

프레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계단을 내려왔다.

탁- 탁- 탁-

‘응?’

2층에 다다른 그는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 프레이는 슬쩍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어라?’

그 남자였다. 게리슨에게 개인 교습을 받던, 오크에 맞서기로 했던 유일한 유저.

그가 땀을 흘리며 훈련용 검을 연신 허수아비를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시선이 느껴졌던 걸까? 그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 안녕하세요.”

그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검을 내렸다.

“제가 방해됐나요.”

프레이는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숨어야 하나 싶었지만, 숨을 이유가 없었다.

“아뇨, 아뇨. 전혀요.”

“이 시간까지 뭘... 아니, 왜 수련을 하고 계세요?”

뭘 하냐는 질문을 바꾸었다. 뭘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아... 제가 아무래도 스킬 숙련도가 낮아서요. 벼락치기라고 할까요.”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인 남자. 그는 곧 표정을 바꿨다.

“프레이 씨죠?”

“네? 아, 예... 제 이름을 어떻게...”

“프레이 씨야 유명하죠. NPC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던데.”

NPC, 유저들이 아닌 사람들을 부르는 유저들의 말이었다. 프레이는 익숙지 않은 단어를 곱씹어보며 대답했다.

“NPC세요?”

“네? 아, 아뇨. 하긴, NPC랑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중얼거리다가 눈을 크게 뜨며 말을 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 바이런이라고 합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프레이는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축축함과 더불어 손바닥이 까졌는지 오돌토돌한 느낌이 전해졌다. 바이런은 황급히 손을 빼며 바지에 손을 쓱쓱 문질렀다.

“아, 이거. 땀이...!”

“아뇨, 괜찮습니다.”

“잠깐 쉬어야겠네요.”

바이런은 풀썩 걸터앉았다. 프레이는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여관으로 돌아가 잠을 청할까?

“프레이 씨는 왜 남으신 거예요?”

“예?”

선택지가 사라졌다. 바이런이 말을 먼저 꺼냈다. 대화가 시작됐다.

프레이는 슬쩍 그의 옆에 앉았다. 무시하고 떠날 정도로 예의가 없지는 않았으니까.

“다른 유저들은 모두 도망갔잖아요.”

“아...”

“리스폰 불가 지점 되자마자 꽁무니를 빼다니, 조금 너무하지 않나요?”

“리스폰 불가요?”

리스폰, 유저들은 부활을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네. 모르셨어요? 어제였나? 베긴네르 일대가 전쟁지역이 됐으니까요.”

전쟁지역. 프레이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전쟁지역으로 결정된 곳에서는 유저가 되살아날 수 없다.

‘정말... 오크들과 싸우게 되는 거네.’

새삼 실감이 났다. 프레이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면, 바이런 님은 왜 남으신 거예요?”

“어...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

바이런은 허를 찔렀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뭐, 상관없죠. 제가 대답하면 프레이 씨도 대답해주는 거죠?”

“아... 네. 그러죠.”

활발한 사람이었다. 당장 내일 오크가 습격해온다는 데 걱정이 하나 없다니.

‘유저라서 그런가...’

프레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상관없다는 듯 바이런은 양팔을 뒤로 펴서 몸을 지탱하며 천장을 쳐다보았다.

“제 스타일이 좀 남다르긴 해요.”

“스타일이요?”

“네, 플레이 스타일이요. 다른 사람들은 광렙이다, 득템이다. 바쁘게 사는데, 저는 좀 달라요. 하긴 T.O.Y는 레벨이 없지만, 개념은 비슷하죠. 게임을 저처럼 하는 사람은 많이 못 봤어요.”

게임, T.O.Y, 모두 유저가 이 세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프레이는 도움말의 문맥을 통해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다.

“뭐가 다른 데요?”

“음, 저는 약간 도망치듯이 이곳에 왔거든요. 현실에서는 미친 듯이 일에 치여서 살고,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살고.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현실, 유저들이 살아가는 또 하나의 세계. 프레이는 그곳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에 그저 그러려니 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는 제게는 도피처이자 안식처에요. 다른 사람들은 누구보다 강해지려고, 누구보다 좋은 아이템을 얻으려고, 명성을 얻고, 존경을 받으려 하죠. 저는 아니에요. 새로운 인생을 살려고 여기에 왔으니까요. 그런 경쟁만 가득한 세상에서 벗어나려고.”

“그렇군요.”

“그쵸? 그쵸? 이해가 가죠?”

프레이는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바이런은 미소를 지었다.

바이런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소리였다.

프레이, 그가 아직 핸슨 주니어였을 때에도 이곳의 삶은 치열했다. 사냥을 못 하면 간신히 이웃이 나누어준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겨울에는 동면 때문에 사냥감이 더 줄어서 아버지는 장작을 패다 팔아야 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해야 하는 게 삶이었다.

‘아...’

아버지를 떠올리니 다시금 눈물이 흘렀다. 바이런이 봤을까 그는 빠르게 눈물을 훔쳐냈다.

‘도망이라고... 사치스러운 말이네.’

바이런은 다행히 천장에 시선을 고정해서 프레이를 보고 있지 않았다.

“다른 게임들도 많지만 T.O.Y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요. 다른 게임과 달리 매우 현실적이니까. 하아... 다른 게임은 현질이다 뭐다 해서 시작부터 차이가 나기도 하고, 물건 시세가 급변해서 경제가 금방 무너지더라고요. 그냥 살려고 해도 살 수가 없었어요.”

‘현질? 그게 뭐지?’

프레이는 곰곰이 도움말을 떠올렸다. 현질이라는 단어는 그의 기억 속에 없었다.

“T.O.Y는 현질도 금지하고, 플레이할 수 있는 인원도 한정하고. 이 세계를 보전하려는 개발진들의 노력이 돋보여요. 뭐 조금 오래되긴 했어도 제 안식처로서는 손색이 없으니까요.”

프레이는 이야기가 길어지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남은 거랑 무슨 상관이신가요?”

“아아, 말이 좀 길어졌네요. 그만큼 저는 이곳에 애착이 있어요. 오크를 막지 못하면 여기가 사라지는 거 잖아요?”

사라진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프레이의 눈이 약간 날카롭게 변했다.

“잡화점의 알튼, 그 딸 에밀리, 대장장이 할린, 여관 주인 메리스... 많은 사람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겠죠.”

‘이름을 다 알아...?’

프레이는 눈을 껌뻑였다. 자신조차 모르는 이름도 있었다. 그 대장장이 이름이 할린이던가?

바이런은 진심으로 씁쓸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그는 표정을 바꾸며 홱 고개를 돌렸다.

“적어도 노력은 해야죠. 모두와 같이 지낼 수 있도록.”

“아... 네.”

프레이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래도 뭐, 정작 실력이 문제죠.”

“같이... 연습할까요?”

“네?”

“저런 허수아비보다는 대련이 더 효과가 좋을 겁니다.”

게리슨과 대련을 통해 얼마나 큰 효과를 보았는가. 프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바이런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다른 유저와 다르다. 프레이는 일어서서 훈련용 검을 가지고 왔다.

“어때요?”

“아... 그러죠. 근데 아직 프레이 씨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저를 이기시면 알려드릴게요.”

바이런은 검을 들면서 치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말이 달라지시네요.”

“세상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으니까요.”

프레이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부러 지은 게 아니라 저절로 나온, 오랜만의 웃음이었다.

“제가 어떻게 이겨요?”

“맞춰서 상대해 드릴게요.”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미심쩍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바이런은 검을 들었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유저 ‘바이런’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확실히... 약하네.’

훈련용 검이 묵직해졌다. 정말 수련을 안 했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 * *

‘후우... 지친다 지쳐.’

프레이는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발을 옮겼다. 거리는 마치 버려진 도시처럼 고요했다. 밤중에도 북적거리던 마을의 모습이 마치 꿈만 같았다.

짧게 한숨을 내쉰 그는 곧바로 알튼의 잡화점으로 향했다.

‘음?’

잡화점 창문으로 푸른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아직 일어나 계신가?’

안 그래도 깨울 참이었는데 잘된 일이었다. 프레이는 슬쩍 창문으로 안을 바라보았다.

‘에밀리?’

에밀리가 서 있는 바닥이 은은한 푸른색으로 빛났다. 기하학적인 도형 위에 선 에밀리는 눈물을 흘리며 알튼을 안았다.

‘뭔가 분위기가... 들어갈 분위기가 아닌데...’

“그럼... 잘 가거라.”

“할아버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나까지 갈 수는 없다. 얼른 가거라.”

알튼은 스크롤을 찢었다. 에밀리가 고개를 돌렸다. 공교롭게도 그 방향은 프레이가 훔쳐보던 창문 쪽이었다.

“아...!”

에밀리가 입을 벌렸다. 곧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프레이는 눈을 끔뻑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뒤늦게 몸을 숨겼지만 에밀리와 확실히 눈이 마주쳤다. 프레이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려 애썼다.

“누구야!?”

알튼은 뒤늦게 인기척을 느끼고 문을 벌컥 열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1%)]

[초급 검술 Lv6 (63%)]

[초급 단검술 Lv3 (21%)]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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