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14화 (14/141)

<-- 4. 오크 습격 -->

프레이의 시선은 목소리를 낸 남자에게 돌아갔다.

그의 행색은 프레이와 비슷했다. 그러나 곧 프레이는 실망했다.

‘무기가 깨끗하다...’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장검은 흠집 하나 없이 깨끗했다. 이제 막 베긴네르에 왔거나, 전투 경험이 거의 없는 유저이리라.

‘저런 사람이 오크를 만나면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아.’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 있다가는 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그는 발을 옮겼다.

프레이가 도착한 곳은 대장간. 이전에 단검 구매 당시 얼굴을 붉혔지만, 용건이 있다면 여기로 와야 했다.

‘후우... 무겁군.’

프레이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대장간 앞에 섰다.

“어서 오십쇼. 아, 자넨가.”

대장장이는 프레이의 얼굴을 확인하고 몸을 앞으로 기댔다.

“마음이 바뀌었나? 돈을 가져온 게야?”

“아뇨. 오늘은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예. 재료가 있다면 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하셨죠?”

“음... 그랬었지.”

대장장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프레이는 인벤토리를 열어 힘겹게 들고 온 물건들을 꺼냈다.

“아니... 이건... 이게 대체 뭔가?”

“재료입니다.”

프레이가 꺼낸 건 오크 병사들의 무기였다. 게리슨이 보상과 더불어 준 물건들이었다.

‘10실버... 꽤 큰돈이지. 하지만 단검을 사기엔 부족해.’

게리슨이 준 10실버를 합한다 하더라도 단검을 살 돈이 되지 않는다. 물론 비싼 값 주고 곰팡이 핀 단검을 살 마음도 없었다.

“이게 재료라고?”

“제 눈에는 철로 보이는 데, 안 그렇습니까?”

“아니... 그건 그렇지만...”

“이걸로 무기를 얼마나 만들 수 있습니까?”

“어... 그건 어떤 무기냐에 따라 다르지.”

“단검은요?”

대장장이는 검과 도끼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돌려보던 그는 곧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쳤다.

“이걸 전부 다시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관리를 잘 했어도 재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따로 있네.”

“그래서 어느 정도입니까?”

“저번에 보여준 단검 기억하나?”

“예.”

“그 정도 크기로 10개 정도...”

“단검 2개 만들어 주십시오.”

“음... 오랜만에 작업이니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몰라. 나머지 철은 어쩌려고?”

“일단 나머지로 각종 무기를 만들어주십시오. 창이나 검이나 도끼로요. 오크와 맞서려는 유저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주려 합니다.”

“알겠네. 적어도 이틀 후까지 만들도록 하지. 값은 받지 않겠어. 나 역시 베긴네르에 사는 사람이니.”

프레이의 말에 대장장이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프레이가 단순히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마을을 위해서 재료를 제공했는데, 마을 사람인 자신이 그 값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대장장이는 곧바로 무기를 챙겨 들고 작업을 시작했다.

‘단검 연습을 해둬야겠군.’

프레이는 볼일을 마치고 다시 경비본부로 향했다. 짐을 덜어내니 몸이 한결 편해졌다.

* * *

프레이는 단검 던지기를 연습하기로 했다. 단검을 던지는 건 활을 쏘는 것과는 달랐다.

‘단검은 날아가면서 포물선을 그린다. 던지는 방식에 따라서 돌면서 나가기도 하고 곧장 나가기도 하는군... 연습이 많이 필요하겠어.’

프레이는 시간이 지나도 자리에서 비키지 않았다. 단검술을 익히는 유저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아니, 유저들 자체가 많지가 않군.’

공고를 봤기 때문일까. 어쩌면 게시판 앞에서 들었던 말대로 베긴네르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있던 유저들도 곧바로 무기를 받고 떠났다.

“프레이.”

“아, 네.”

단검술 교관이 부르자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교관은 그를 지켜보며 말했다.

“자네처럼 노력하는 유저도 드물 거야. 마침 사람들이 나갔으니 개인 교습을 해주지.”

“감사합니다.”

“단검을 써보니 어떤가?”

교관은 웃으며 단검을 쥐었다. 프레이는 단검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했다.

“확실히 가볍습니다. 그만큼 빠른 공격이 가능합니다.”

“그렇지. 보통 단검을 쓰는 사람은 양손에 하나씩 쓰네. 물론 방패를 쓴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아무래도 힘보다는 속력으로 승부를 하는지라. 방패는 거추장스러워.”

확실히 그럴 것 같았다. 교관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만큼 방어에 취약하네. 이 작은 단검으로 공격을 막으려면 이 날 부분을 정확히 상대의 무기에 맞춰야 하지. 그만큼 집중력이 필요해.”

교관은 단검의 날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타 다른 무기들과 달리 날 부분이 적은 만큼 방어가 어려웠다.

“하지만 정확히 막을 수만 있다면...!”

교관은 공격을 막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빠르게 가상으로 떠올린 상대의 목을 그었다.

“무기가 짧은 만큼 상대보다 빠르게 반응할 수 있지. 문제는 집중력이야. 상대의 틈을 놓치지 않는 것.”

“아... 좋은 걸 배웠습니다.”

프레이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단검을 던지는 건 최후의 수단이야. 여분을 가지고 다닌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만큼 상대가 예측하기 힘들어서 효과가 좋아. 설마 자기 무기를 버린다고 생각이나 하겠는가?”

“아... 하하...”

갈롭과의 싸움에서 검을 내던진 프레이는 가슴이 찔리는 말이었다. 그렇게 버리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자, 이론은 끝. 실전으로 가세.”

“네? 아! 부탁드립니다.”

* * *

“후아... 프레이,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겠나...”

교관은 지쳤다는 듯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프레이는 그제야 전투자세를 풀었다.

“아...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자네 정말 체력이 대단하군. 나도 수련 꽤나 했다고 자부하는 몸인데...”

프레이는 말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교관님의 스테이터스니까요.’

속으로 대답한 프레이는 한참을 단검 연습에 매진했다.

“또 연습인가... 대단하네. 나는 먼저 가보겠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경비병들에게도 휴식은 필요한 법.

‘음?’

프레이는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유저들이 모두 빠져나갔음을 떠올렸다.

‘신입 유저 제한이라고 했던가.’

새로 유저들이 오지 않는다는 말. 프레이는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경비본부의 무기가 분출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

“핫! 핫! 핫!”

‘음?’

프레이는 짧게 들려오는 기합 소리에 눈을 돌렸다.

“좀 더 빠르게!”

게리슨의 목소리였다.

“알겠습니다!”

프레이는 슬쩍 머리를 내밀었다.

‘저 남자는?’

어디선가 본 뒷모습. 짧은 갈색 머리에 약간 작은 체격. 공고 게시판에서 오크 습격을 막는데 지원한 남자였다.

“아니지! 조금 더 허리에 힘을 줘야 하네!”

“알겠습니다!”

기합을 넣는 것 치고 폼이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프레이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도움이 안 되는 건 똑같다.’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 프레이는 다시금 단검 던지기를 연습했다.

* * *

해가 저물고 별들이 떠오르는, 달이 태양을 흉내 내며 빛을 비추는 시간.

경비본부 최상층의 회의실의 분위기는 휘황찬란한 달빛과는 다르게 매우 무거웠다.

“몇 명입니까...?”

“지원한 유저는 한 명...입니다.”

게리슨이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게일과 촌장, 그리고 알튼은 암울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한 명이라고?’

한 명이라도 있는 것에 놀라야 할까, 아니면 화를 내야 할까.

“이래서야...”

“보름달이 뜨기까지 앞으로 이틀...”

모두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저 달이 보름달이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의 마음과 달리 달은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이미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결사항전 뿐입니다.”

게일이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옆에 있던 촌장이 흠칫 놀랐다가 헛기침을 했다.

“흠흠, 확실히 그렇지만... 그것보다는 목숨을 부지하는 방법을...”

“그건 무슨 소립니까?”

“경비대장님, 저 오크들과 상대해서 이길 자신이 있습니까?”

“으음...”

“확신이 없습니다. 저는 촌장으로서 마을 사람들의 안위를 생각해야 합니다. 때로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촌장의 말에 게리슨과 게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렇다면 지금 마을을 버리고 떠나자는 말씀입니까?”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가다니, 그런 수치스러운...!”

게일은 엄연한 기사다. 적을 앞에 두고 도망이라니, 그건 기사의 명예에 먹칠하는 일. 그로서는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촌장은 실리파였다. 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명예를 위해 죽는 것보다는 다른 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게 나았다.

“공성전을 하면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공성전이라니... 베긴네르에 성이 어디 있습니까?”

게리슨의 말에 촌장은 고개를 저었다. 마을 외곽에 세워진 울타리는 오크들이 세운 나무 벽보다 쉽게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차라리 기습하는 건 어떻습니까? 우리가 오는 걸 전혀 모를 겁니다!”

게일이 제안을 바꾸었다.

‘기습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듣고 있던 프레이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히려 공격을 앞당길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지요.”

알튼이 게일의 제안을 반대했다. 알튼은 마을의 최고령자로서 이 자리에 참석했기에 다른 이들도 모두 그를 존중했다.

“무슨 묘안이라도 있으십니까 어르신?”

“오크에 대해 설명한 옛 서적들을 좀 뒤적여 봤소.”

‘잡화점에 별 물건이 다 있네.’

알튼의 잡화점을 떠올린 프레이는 곧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오크들은 호전적인 족속입니다. 결투를 좋아하는 놈들이오. 그만큼 흉폭하고 말보다는 힘이 앞서는 놈들이지만...”

“그래서 더 위험한 것 아니겠습니까...”

촌장이 씁쓸하게 대답했다. 말이 통하면 평화로운 방법이라도 생각해보겠지만, 그 괴물들과 이야기가 통할 리 없다는 게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그들은 뛰어난 전사를 존중합니다. 오크들의 옛 관습 중에 ‘전사의 증명’이라는 것이 있소.”

“전사의 증명?”

게일이 앞으로 몸을 숙이며 되물었다. 알튼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었다.

“그렇소. 자신이 전사임을 증명하는 일이지. 오크의 군락에 가서 전사의 증명을 요청해서 그 시험을 통과하면 어엿한 전사로 인정받는 것이오.”

“지금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중요한 건 이것이오. 전사의 증명을 통과하여 인정받은 자는 그 군락에 한 가지 청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지.”

“그 말은...”

“그렇소. 마을 사람 중 대표로 한 명이 나서서 전사의 증명을 요청하고, 그들의 침략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오.”

알튼의 말에 게일과 촌장은 서로 돌아보았다.

“그런데 할아버지. 그 전사의 증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아, 그것이... 군락에서 나온 오크 다섯을 상대해야 한다더구나.”

“오크 다섯!? 한 명이 말입니까?”

게리슨이 놀라서 물었다. 알튼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만큼 어려운 방법이지만...”

알튼은 슬쩍 눈을 돌렸다. 게일과 촌장, 그리고 게리슨이 시선을 따라갔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프레이는 알튼이 자신을 염두에 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1%)]

[초급 검술 Lv6 (42%)]

[초급 단검술 Lv3 (21%)]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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