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13화 (13/141)

<-- 4. 오크 습격 -->

프레이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도망칠까?’

순간 들은 생각이었다. 만약 저 오크가 자신을 쫓아온다면, 적어도 부상자들은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너무 늦었다. 말롭의 검이 닿는 위치까지 왔다.

쏴아악-

마지막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말롭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공포에 미치기라도 한 건가?”

“아니, 미치지 않았다.”

말롭은 하늘 위로 쏘아진 화살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프레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죽어라!”

말롭이 검을 높이 들었다. 형제를 죽인 원수의 사지를 절단하고, 눈앞에서 동료들이 죽는 꼴을 보게 할 속셈이었다.

푹- 푸푹-

“커억...!?”

“다시 발사! 서둘러라!”

말롭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등에 박힌 화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무 틈 사이로 뛰어오는 인간들의 무리까지.

“네놈...!”

말롭은 다시 고개를 돌려 프레이를 노려보았다. 그가 하늘로 쏜 화살은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신호였던 셈이었다.

“크아아아!”

눈앞에 원수라도 갚고 가겠다는 일념으로 말롭은 검을 휘둘렀다. 프레이는 이를 악물고 뒤로 몸을 날렸다. 비록 모습은 추할지라도 사는 게 중요했으니.

애꿎은 말롭의 검은 흙바닥을 박았다.

쏴아악- 쏴악-

다시금 화살이 날아와 몸에 박혀 들었다. 느껴지는 고통, 그러나 그보다 원수를 갚지 못했다는 억울함이 더 컸다.

“크아아악!”

말롭의 포효가 숲 안에 울려 퍼졌다. 병사들이 달려와 창으로 무릎을 꿇은 말롭의 몸을 꿰뚫었다.

“오크라니...!”

“형제여...!”

말롭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갈롭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게리슨은 놀라면서도 빠르게 검을 들어 말롭의 목을 날렸다.

“후아...”

프레이는 말롭이 죽자 원래대로 돌아온 스테이터스의 여파를 느꼈다. 온몸이 욱신거리며 꼼짝도 하기 힘들었다.

‘체력이 너무 낮은 걸 거야...’

오크의 체력에서 다시 평범한 인간의 체력으로 돌아왔으니 느껴지는 피로감. 게리슨은 빠르게 부상자를 업었다.

“프레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게리슨 님...”

“아아, 미안하군. 일단 마을로 어서 돌아가세. 오크가 어째서...”

게리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 역시 크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일단 부상을 입은 사람들부터...”

“그래, 조금만 기다리게.”

게리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하들에게 지시하러 자리를 비켰다. 부상자를 긴급 후송하고 죽은 경비병의 시신을 수습했다.

“저긴... 늑대 굴인가. 몇 사람은 안을 확인해보도록! 주위 경계를 늦추지 마라! 다른 오크들이 있을지 모른다!”

프레이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유저라서인가...?’

극심하게 느껴졌던 피로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옅어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일 때쯤 되어서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에 새끼들이 있습니다!”

“늑대 새끼 말인가?”

“예!”

“음... 씨를 말리게. 나중에 후환이 될지도 몰라.”

게리슨의 명령에 부하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늑대 굴로 들어갔다.

프레이는 쓰러진 오크의 시신을 향해 다가갔다.

‘루팅이라고 했던가...’

유저들은 적에게서 아이템을 확보한다. 그는 먼저 말롭이 쓰던 검을 들었다.

육중함이 손으로 전해졌다.

‘이건... 평소 내 힘으로는 쓸 수가 없겠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갑옷 역시 마찬가지. 무게가 보통이 아니었다.

‘평소 내 스테이터스도 단련을 해야겠네...’

단순히 이퀄라이저 특성에 기댈 게 아니었다. 프레이는 본래 자신의 힘을 키워야 할 이유를 느꼈다.

말롭의 검이 무거우니 갈롭의 도끼는 말할 것도 없었다. 프레이가 다시금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음?’

말롭의 품 안에 접혀있는 쪽지. 프레이는 쪽지를 펼쳤다.

‘이건...?!’

그는 곧바로 쪽지를 들고 게리슨을 찾았다.

“프레이? 벌써 움직여도 되는가?”

“게리슨 님, 이걸...!”

게리슨은 프레이가 내민 쪽지를 받아 읽어 내려갔다.

[공격 시기는 보름달이 뜨는 밤.

마을을 점령하고 깃발을 드높여라.

생존자는 남기지 않는다.]

긴 내용도 아니었기에 읽는 건 금방이었다. 게리슨의 눈동자가 떨렸다.

“이건... 오크들의 일지인가!?”

“게리슨 님?”

“무, 무슨 일인가!”

게리슨이 화들짝 놀랐다. 피를 머금은 검을 들고 온 경비병이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새끼들도 모두 처리했습니다.”

“아, 아아... 그런가... 그럼 일단 돌아가세.”

“예, 알겠습니다!”

게리슨은 목소리를 낮춰 프레이에게 말했다.

“이건... 일단 마을에 돌아가서 상의해보세.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알겠습니다. 그 전에...”

“음?”

“분명 오크의 근거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 위치를 파악하는 게 우선일 것입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무슨 수로?”

“제가 찾아내겠습니다.”

“자네가?”

게리슨이 놀란 눈으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프레이는 자신이 있었다.

만약 유저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일, 바로 스킬의 활용이었다.

‘오크의 발자국을 추적하면 될 일이다.’

“그런... 알겠네. 내 이 일에 대해 톡톡히 사례하겠네.”

게리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발적으로 위험한 일을 도맡아준다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에 합당한 보상을 준비해야 할 터, 게리슨은 도리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럼 베긴네르에서 뵙겠습니다.”

“조심하게.”

게리슨은 병사들을 꾸려서 마을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프레이는 오크들이 나타난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 * *

‘여기인가.’

프레이는 푸르스름한 오크의 발자국을 거슬러왔다. 길도 험해서 웬만한 사람은 발도 안 디딜 곳이었다.

나무를 베어 세워 만든 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프레이는 옆으로 돌아 경사진 언덕을 올라 안을 살폈다.

‘천막이 허술하다. 임시로 세워둔 건가?’

나무 벽은 그래도 튼튼하게 만들은 것 같지만 내부는 엉성하기 그지없다. 듬성듬성 세워진 천막의 숫자로 보아 오크의 숫자 자체는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위치는 파악했어, 얼른 돌아가야겠다.’

보이는 오크의 수는 대략 20명에서 30명 사이. 허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크 병사 하나는 인간 병사 여럿에 필적하니까.

프레이는 직접 상대해봤기에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저 오크들을 상대하려면 100명은 넘는 인원이 필요할 것이다.

프레이는 마을로 향해 돌아가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했다.

‘베긴네르는 시작의 마을, 유저들의 도움은 크게 기대하기 힘들겠지만...’

갓 시작한 유저들이 오크를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나마 유저들은 무기훈련을 받고 곧장 다른 마을로 떠나는 게 다반사였다.

그래도 불멸자인 유저들의 힘을 빌린다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으리라.

‘경비병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유저와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을 거야.’

* * *

“아, 프레이! 무사히 돌아왔군!”

게리슨은 프레이의 귀환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를 껴안았다. 흙투성이인 그의 몸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프레이 역시 고마움을 표했다.

“예, 걱정해주신 덕분입니다.”

“그래, 아무튼 자네만 기다리고 있었네.”

“저를요?”

“물론이지. 일단 들어오게.”

경비본부 최상층, 게리슨은 프레이를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베긴네르는 작은 마을이라 영주가 직접 다스리는 곳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모인 건 마을 촌장과 경비대장, 그리고 알튼이었다.

“아니, 알튼 할아버지.”

“프레이! 몸은 괜찮느냐?”

알튼이 원탁에서 일어나 프레이의 몸을 살폈다.

“아, 네. 다행히 이상은 없습니다.”

“오... 다행이구나.”

“자자, 일단 모두 도착한 것 같으니 어서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마을 촌장의 말에 알튼도 헛기침을 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게리슨은 프레이에게 자리를 안내해주고 상황을 설명했다.

“하여... 보름달이 뜨는 밤, 오크들이 베긴네르를 습격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크라니...”

경비대장 게일이 침통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마을 촌장은 아직 감이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유저들의 힘을 빌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일단 프레이의 말을 들어봅시다. 숫자가 얼마나 된다고?”

“자세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최대 30명은 되어 보였습니다.”

“으음...”

게일의 안색이 더욱 안 좋아졌다. 그는 잠깐 생각을 정리했다가 입을 열었다.

“현재 경비대 병력을 모두 합치면 80명 정도... 허나 이 정도로 그 오크들을 막는 건 어렵습니다.”

“그러니 유저들의 힘을 빌리면...”

촌장의 말에 게리슨이 반박했다.

“아직 훈련도 마치지 못한 유저들이 대부분입니다. 또한 오크를 상대할 만큼의 보수를 지급할 수 있습니까?”

“음... 그건...”

“보수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아, 프레이, 유저를 폄하하는 말은 아니네.”

유저들은 보수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게리슨을 비롯한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약속한 보수는... 일단 회의가 끝나면 지급하겠네.”

게리슨은 목소리를 낮추고 프레이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프레이는 잠자코 있었다.

“보름달이 뜨는 밤이라면... 앞으로 사흘 후입니다. 일단 공고를 내보고 다시 이야기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알튼의 말이었다. 경비대장 게일 역시 동감이라는 듯 맞장구를 쳤다.

“그렇습니다. 일단 인원을 확정해야 그에 맞추어서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 알겠습니다. 촌장의 이름으로 공고를 걸겠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군요. 기한은 내일까지.”

프레이는 손을 들었다.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근처 도시에 구원을 요청할 수는 없나요?”

“시간이 부족하네. 가까운 도시에 가는 데만 이틀이야. 가자마자 구원군을 요청한다 한들 돌아오면 이미 오크들이 점령한 뒤겠지. 그리고 곧바로 구원군이 올 가능성도 적네.”

게일이 손을 저었다. 그러다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그렇군...! 그래서 보급이 한동안 오지 않았던 게야.”

“보급이요?”

“천막이 허술하다고 하지 않았나? 오크들이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게야. 그 전에 분명 베긴네르로 오고 있었을 거야. 행상인들이 오크를 보고 꽁무니를 내뺀 게지.”

“아니... 그럼 그 행상인들은 돌아가서 왜 이야기를 안 한답니까!?”

프레이가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대답은 알튼에게서 나왔다.

“원체 상인이라는 작자들은 이윤을 가장 중요시하지. 곧장 방향을 돌려 다른 마을로 향했을 거네.”

“뭐라고요?”

“오크처럼 흉포한 괴물보다 무서운 게 사람 마음이야.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내 예상이 틀렸든 맞았든, 우릴 도울 사람은 없는 것 같으이.”

알튼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회의가 끝났다.

* * *

다음날.

프레이는 경비본부 앞에 몰려든 사람들 틈에 섰다.

[공고 – 오크의 습격에 맞설 용기 있는 자!]

[보름달이 뜨는 밤, 오크들이 우리 베긴네르를 습격하려 합니다!

이에 우리 마을을 지켜줄 용기 있는 유저들을 모집하오!

베긴네르 경비대 전원이 목숨을 걸고 마을을 지킬 것이오!시작의 마을로 불리는 만큼, 유저 여러분을 지지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오!

보상은 섭섭지 않게 해주겠소!]

유저들은 새로 붙인 공고를 보고 술렁거렸다.

“오크? 오크라니?”

“야, 여기 오크면 무지 센데...”

“얼마나 센데?”

“야, 다른 게임은 오크가 잡몹인데 여기는 완전 달라. 리얼리티가 다르다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는 형이 오크 마을 레이드 하는 거 스트리밍했거든. 직접 봤는데 박력이 장난 아니더라고. 진짜 한 손만으로도 병사들이 막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더라.”

“미친... 그런 놈들이 시작의 마을을 왜 쳐들어와?”

“시작의 마을이 한둘이냐. 이제 신규 유저 진입 제한하나 보다.”

두런거리는 말소리. 프레이는 대부분의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분위기로 봐서는 유저의 도움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다른 유저들도 그들의 말을 들은 듯 크게 불안해했다.

“야... 여기 있다가 개죽음당하는 거 아냐?”

“빨리 훈련받고 떠야겠다. 아니면 하루 정도는 접속하지 말던가.”

“그사이에 여기 점령되면 어떡해?”

“괜찮아. 어차피 시작 지점은 다른 데로 지정될걸?”

“아, 그런가?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베긴네르는 좀 후미진 곳에 있긴 해서.”

프레이는 입을 다물었다. 예상은 했지만 직접 듣자니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방관자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유저들은 계속 혀를 놀렸다.

“야, 솔직히 여기서 얼마나 지낸다고... 기껏해야 하루 아니냐?”

“하긴 이런 마을에서 오크 막았다고 얻을 게 뭐 있어? 보상도 허접하겠지. 죽어서 페널티 늘리는 게 손해지.”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언제냐. 이틀 남았네? 빨리 떠야겠네.”

프레이는 이를 악물었다. 역시 유저들에게 기대는 건 소용이 없다.

‘그렇게 당하고도 믿은 내가 병신이지...’

프레이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이거 신청 어디서 해요?”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1%)]

[초급 검술 Lv6 (42%)]

[초급 단검술 Lv5 (21%)]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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