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이퀄라이저 -->
에밀리는 유저가 아니었다.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프레이는 자신을 쫓는 늑대에게 겨누었던 시위를 돌렸다. 에밀리를 쫓는 늑대가 에밀리를 덮치려는 순간이었다.
"흡!"
짧게 숨을 들이켠 그가 시위를 놓았다.
화살을 맞은 늑대가 튕겨 나가며 바닥을 굴렀다. 달리던 에밀리가 멈춰 서서 돌아봤다.
"프레이 씨!"
"가요!“
“하, 하지만!”
“어서!”
머뭇거리던 에밀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프레이는 일어서려 했지만 강렬한 고통이 다리에서 느껴졌다.
"으아악!"
늑대가 다리를 물어뜯었다. 종아리를 물고 이리저리 고개를 흔든다.
다른 늑대도 다가오고 있었다.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다가오는 늑대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물이 나왔다.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생살이 찢기는 고통이라니, 차라리 기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프레이는 기절하지 않았다. 고통은 그의 정신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크아악! 후우, 후우.”
프레이는 누운 상태로 화살을 빼내 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곧바로 시위를 놓았다. 늑대의 머리에 화살이 꽂히며 나자빠졌다. 그사이 다른 늑대가 지척에 다가왔다.
"제기랄..."
화살을 뺐지만 쏠 시간이 없었다. 낮게 그르릉거리는 울음소리와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프레이가 마지막으로 본 건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뜯기에 충분히 날카로운 늑대의 송곳니였다.
뜯긴 목덜미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경험이었다.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갔다.
* * *
“흐억!”
프레이의 허리가 튕기듯 일어났다.
반사적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확인했다. 다행히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프레이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늑대에게 물렸던 다리 쪽으로 향했다. 목덜미와 마찬가지로 다리도 말끔하게 치유된 상태였다.
‘부활한 건가?’
프레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더원이 유저로 만들어준다고 했을 때 의심이 전혀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활한 프레이는 확신했다.
이제 유저와 같은 조건이다. 자신은 불멸을 얻게 된 것이었다.
그런 만족감도 잠시, 프레이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사망하셨습니다. 1일이 경과하였습니다.]
[사망 시 페널티에 대해 안내해 드립니다.]
[사망 누적 횟수와 동일한 일수만큼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누적 1회 사망 시 1일간 접속 불가, 10회 사망 시 10일간 접속 불가이며 최대 30일까지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30회 이상 누적될 경우 접속 불가 일수는 30일로 고정됩니다.]
‘접속? 유저들이 돌아오는 걸 접속이라고 하나? 아니, 그것보다 하루가 지났다고?’
불멸의 대가는 녹록지 않았다. 죽은 횟수만큼의 시간이 흘러가 버린다. 횟수가 적다면 상관없지만 사망횟수가 누적될수록 세계는 빠르게 흘러간다.
30회 이상일 경우 한번 죽기만 하면 거의 한 달의 시간이 흐르게 되는 것. 실질적인 손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을 빼앗긴다는 건 예상외로 타격이 크다.
그 시간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진다는 의미, 유저의 입장에서 보면 큰 타격이었다.
프레이는 정신을 차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새로 온 유저들이 방방 뛰어다니고 있었다.
자신이 처음 눈을 뜬 곳임을 알아챈 프레이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하루를 낭비하다니...! 아니, 그래도 에밀리 씨의 목숨을 지켰으니 그 정도면 싸게 먹힌 건가.’
“오, 프레이 씨. 이런, 당하셨군요.”
누군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 돌아보니 하이스톨이 프레이를 보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반가워서 인사를 한 거지만 한번 본 유저를 다시 여기서 본다는 건 그가 죽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아하하... 그렇게 됐네요.”
프레이는 적당히 인사하고 빠져나가려 했다.
이미 시간을 낭비한 이상 더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하이스톨 말고도 프레이를 잡는 사람은 또 있었다.
“프레이 씨!”
누군가 프레이를 뒤에서 껴안았다. 부드러운 감촉에 깜짝 놀란 프레이가 몸을 떼며 돌아보자 에밀리가 눈물범벅인 얼굴로 프레이를 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몸은 괜찮으세요? 경비병 아저씨들 데리고 다시 나왔는데 프레이 씨 몸이 연기처럼 변하면서...”
에밀리가 쏟아내는 말과 울음에 프레이는 당황했다. 주변의 이목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울고 있는 여자와 난처해 하는 남자, 소문나기 딱 좋은 풍경이었다.
프레이는 곤란한 표정으로 일단 에밀리의 손을 잡았다.
“아, 저 괜찮아요. 일단 다른 곳에 가서 얘기해요.”
“어헝, 죄송해요. 제가 또 곤란하게 해드린 건가요.”
에밀리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생긴 건 드세게 생긴 아가씨가 울음을 터트리니 프레이도 당황스러웠다.
프레이는 일단 소매로 에밀리의 눈물을 훔쳐냈다. 에밀리는 흠칫 놀랐지만, 막지는 않았다.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프레이는 그녀를 잡고 잡화점으로 향했다.
“아, 저.”
“가서 얘기해요.”
에밀리는 얼굴을 붉혔지만,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프레이가 이끄는 방향으로 따를 뿐이었다.
‘골치 아픈 아가씨네.’
에밀리가 들었다면 서운할 이야기였지만 프레이로서는 골치가 아팠다. 일단 알튼 씨에게 에밀리를 맡기고 맥주 풀을 건네줘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잡화점 문을 열자마자 프레이는 알튼과 눈이 마주쳤다. 알튼은 들고 있던 시험관을 내려놓고 프레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 이거 우리 손녀를 왜 살려줬나 했더니...”
“네?”
알튼의 시선이 프레이와 에밀리가 맞잡은 손으로 향하자 프레이는 그 시선을 깨닫고 얼른 손을 뺐다.
“아, 아뇨 이건...”
“아무튼 고맙네. 자네 덕분에 우리 손녀가 살아 있는 거지.”
변명하려는 프레이의 말문이 막혔다. 알튼이 진지한 표정으로 프레이를 따뜻하게 쳐다보았기 때문이었다.
프레이는 그런 알튼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아뇨,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저는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에밀리 씨는 그럴 수 없으니까요.”
프레이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처음으로 유저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알튼은 그런 프레이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답례로 준비한 게 있네. 잠시만 기다려보게.”
“네? 아니 저...”
프레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알튼은 순식간에 물건을 챙겨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맥주 2병과 반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건 부탁한 맥주일세. 손녀가 가져온 맥주 풀로 만든 거야. 그리고 이 반지는 원래 체력이 약한 손녀에게 주려던 건데, 자네에게 주고 싶다고 하더군.”
“아니, 괜찮습니다. 사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닌데...”
프레이는 손사래를 쳤다. 자신은 정말 순수하게 그녀를 구한 것인데 이런 보상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알튼도 강경했다.
“그럼 내가 생명의 은인에게 이런 보답도 못 해주는 좀팽이라는 건가? 섭섭하게 하지 말고 어서 받게.”
“그래요, 프레이님! 꼭 받아주세요. 원래 주인인 저도 원하는 일인데요?”
어느새 에밀리는 프레이에게 님자를 붙이고 있었지만, 알튼도 프레이도 눈치채지 못했다.
에밀리는 반지를 받아 직접 프레이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그 모습을 본 알튼의 표정이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아, 아니. 제가 껴도.”
“아뇨! 제가 껴드릴게요. 확실히 끼는 모습을 봐야겠어요.”
당황한 프레이의 말을 잘라먹고 반지를 밀어 넣었다. 다행히 반지는 프레이의 손가락에 딱 맞았다.
에밀리는 얼굴을 붉혔지만 프레이는 반지에 집중하느라 그런 에밀리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활력의 반지]
[반지에 담긴 기운이 착용자의 활력을 북돋아 줍니다. 착용자는 쉽게 지치지 않습니다. 기운이 모두 소모될 경우 효과가 사라집니다. 기운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차오릅니다.]
“반지를 끼고 있으면 쉽게 지치지 않을 게야. 이 아이가 체력이 좀 부족해서 만들어 준 건데, 꼭 자네에게 주고 싶다고 하더군.”
알튼은 ‘자네’를 강조했다. 하지만 프레이는 온몸에 느껴지는 청량감에 듣지 못했다. 확실히 기운을 북돋아 준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에밀리 씨도 감사해요.”
뜻밖에 얻은 반지에 기분이 좋아진 프레이는 활짝 웃었다. 그렇게 웃는 건 오랜만이었다.
맥주도 얻었으니, 더 이상 할 일은 없었다.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음음, 그러지.”
알튼이 수염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리는 아쉬운 눈치였다.
“아, 벌써 가시게요?”
“네, 어제, 아니 그제 일이겠군요. 제 부족함을 깨달았습니다. 다음에 또 뵙죠.”
프레이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하고 잡화점을 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경비본부.
평소대로 1층의 안내를 맡은 경비병은 묵묵히 안내했다.
“무기 수련은 2층입니다. 뒤 계단을 이용...”
“저기요.”
“네?”
그제야 경비병이 고개를 들었다. 프레이는 될 수 있는 대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기 수련을 또 할 수 있나요?”
“아, 받은 무기를 변경하시는 건가요. 어떤 무기를...”
“아뇨, 그게 아니라 수련만 해도 될까요?”
“어... 그건 직접 올라가서 물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프레이는 감사를 표하고 계단을 올랐다.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근접무기 수련장.
참을성 있게 줄을 서서 기다린 프레이에게 차례가 돌아왔다.
“음? 자네는 활을 받지 않았나? 무기 변경인가?”
수련 교관인 게리슨이 그를 보고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아닙니다. 그저 검술을 수련해보고 싶어서 기다렸습니다.”
“수련만 하러 왔다?”
게리슨은 허허롭게 웃었다. 이런 유저는 또 처음이었다. 뒤 순서를 기다리던 유저들은 무슨 일인가 기웃거리고 있었다.
계속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노릇, 게리슨은 고갯짓으로 부하에게 훈련용 장검과 나무방패를 건네주라고 말했다.
“수련이 목적이라니 조금 세게 나가야겠군.”
“잘 부탁드립니다.”
훈련용이라서 그런지 장검의 날은 매우 무뎌져 있었다. 오히려 둔기에 가까울 정도였다.
방패는 사용한 지 오래되었는지 벌레가 파먹은 것처럼 구멍이 나 있었다.
“합격조건은 어렵지 않아. 그 검으로 내 갑옷 어디든 치면 되네.”
게리슨은 가볍게 말했지만 프레이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이쪽이야말로.”
게리슨이 검면이 앞으로 향하도록 쥐고 얼굴 높이로 들었다. 프레이 역시 눈치껏 따라 했다. 게리슨의 눈빛이 묘해졌다.
“예의를 아는 친구군.”
수련이라고 하지만 이것 역시 결투, 게리슨은 결투의 예를 보여주는 유저를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유저들은 그 순간을 이용해 게리슨을 공격하려 하기도 할 정도였으니.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경비단장 ‘게리슨’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어!’
들고 있던 훈련용 장검과 방패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움직임 자체는 무거워졌다.
게리슨은 겉보기에도 육체파 전사, 그의 스테이터스는 대부분 힘에 치중되어 있었다.
“먼저 들어오게.”
게리슨이 여유롭게 서서 프레이의 공격을 기다렸다. 검을 휘둘러 본 적이 없는 프레이는 마른침을 삼키고 게리슨에게 달려갔다.
프레이의 검이 대각선으로 그어지는 순간 게리슨이 가볍게 그의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 곧바로 게리슨이 손잡이로 프레이의 어깨를 타격했다.
“방금 한 번 죽었네.”
“큭...!”
“보기와는 다르게 힘이 좋군. 휘두르는 속도가 빨라. 하지만 자세가 아주 엉망이야.”
“하앗!”
프레이는 기합을 넣으며 검을 찔러 들어갔다. 그의 검 끝이 게리슨의 가슴팍에 닿으려는 순간, 게리슨이 검을 올려쳤다.
저릿한 감각과 함께 프레이가 들고 있던 검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두 번째 죽음이군. 하지만 이번에는 좋았어.”
게리슨의 검이 프레이의 목젖 앞까지 닿았다. 프레이는 무력함에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기다려서 말이야. 자네만 좋다면 다음에 다시 오게.”
게리슨은 여유롭게 검을 거두어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프레이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하고 뒤로 물러났다.
옆줄에서 기다리던 유저가 그를 위로해주었다.
“괜찮아요. 저 NPC가 원래 빡세기로 유명해서 줄이 별로 없는 거예요.”
“네?”
“다음에는 이 줄에서 하세요. 시간이 좀 걸리긴 하는데, 이쪽은 조금 널널하게 봐주는 편이라서요.”
“아... 그렇다면 더욱 여기에 서야겠네요.”
“네?”
대답해준 유저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지만 프레이는 그저 웃으며 그를 지나쳤다. 그리고 다시 줄을 섰다.
‘이퀄라이저... 대충 감이 잡힌다.’
프레이는 머릿속으로 게리슨과의 대련을 떠올리며 기다렸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3%)]
[초급 검술 Lv1 (23%)]
[약초 채집 Lv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