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이퀄라이저 -->
달리고 또 달렸다.
큰 나무가 옆으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가족들은 모두 흩어졌다. 무사한지 찾아보고 싶었지만, 흩어지는 게 더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았다.
갑작스러운 습격이었다. 모두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생존본능은 이해보다 행동을 요구했다.
숲속을 빠르게 헤쳐 갔다. 이곳 지리는 훤히 알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든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얼마간 달린 후, 습격자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가 돼서야 주위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까?
다른 가족들도 분명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였다. 예민한 청각에 뭔가가 잡혔다.
발소리를 죽이고 있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소리. 오히려 발소리를 죽이는 게 수상했다.
붉은 눈이 주위를 살폈다.
그 습격자일까?
귀가 파르르 떨렸다.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주의를 경계하며 목숨을 연명했던 토끼였지만,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까지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화살촉은 토끼의 눈만큼이나 붉은 피를 머금었다. 곧 화살이 날아온 방향에서 땀범벅이 된 사내가 나타났다.
익히 알고 있는 그 얼굴, 프레이였다.
프레이의 허리춤에는 토끼 3마리가 추욱 늘어진 채 엮어져 있었다.
도망친 줄 알았던 가족은 모두 잡혔던 것이었다. 오히려 잘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겨져서 쓸쓸하지는 않을 테니.
'이쪽에는 산짐승들이 꽤 많네.’
프레이는 만족스러웠다. 화살촉을 빼내 토끼의 멱을 따고 피를 빼냈다.
푸르른 초목은 떨어지는 피를 머금었다. 프레이는 화살촉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인벤토리에 닦아내었다.
신기하게도 인벤토리는 어떤 오염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졌다. 아주 편리한 마법 주머니였다.
'그나저나 4마리째 되니까 거추장스러운데. 혹시?'
프레이는 인벤토리를 열어 잡은 토끼를 넣어보았다. 토끼는 문제없이 인벤토리 안으로 들어갔다.
프레이는 미소를 지으며 나머지 토끼를 다 넣었다.
움직임을 방해하는 게 없어져서 한결 나아진 기분이었지만, 무게는 그대로였다.
'마법이라고 만능은 아니군.'
프레이는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알튼이 그려준 그림을 꺼냈다.
맥주 풀의 모습과 채집 장소를 약도로 그려줬는데, 문제는 약도였다. 표시해준 장소가 너무 넓었던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채집하기에 앞서 사냥에 몰두했던 터라 맥주 풀은 보지도 못했다.
'일단 내가 이쯤이니까...'
프레이는 초입에서부터 달려온 방향을 손가락으로 따라가 보았다. 일단 맥주 풀 채집 장소는 그리 멀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초입에 세워져 있던 팻말. 분명 이렇게 쓰여 있었다.
[맹수 주의! - 곰/늑대 출몰]
아직 맹수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제 초입에서부터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만큼 맹수를 만날 확률이 높아졌다.
프레이는 사냥꾼이지만 맹수를 사냥한 적은 없었다.
더스틴 마을 쪽에 출몰하는 맹수도 거의 없었거니와 맹수를 사냥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었다.
맹수를 사냥해서 얻을 수 있는 가죽이나 발톱 등은 충분히 고가에 거래되지만, 더스틴 마을에서는 수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핸슨은 돈에 욕심이 있던 것도 아니라서 위험을 감수하고 사냥에 나서지도 않았다.
'빨리 찾고 나가야겠어. 토끼 4마리면 1실버는 받을 수 있을 거야.'
프레이는 주위를 경계하며 숲을 걸었다.
얼마간 걸었을 즈음, 누군가 인위적으로 나무만 제거한 것처럼 보이는 장소가 나타났다.
누군가 나무를 베어냈을지도 모른다.
프레이에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맥주 풀이 그곳에서 자라고 있다는 게 중요할 뿐.
그는 나무에 기대어 주위를 살폈다. 적막한 가운데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날아다니는 곤충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프레이는 맥주 풀에 다가갔다. 신기하게도 풀에서 맥주 향이 났다.
'그냥 뽑으면 되나?'
프레이의 손이 맥주 풀에 다가갔을 때였다. 풀을 붙잡자 손 오른쪽에 긴 막대가 생겨났다.
'이건 또 뭐야?'
프레이가 놀라 손을 떼자 막대가 사라졌다. 다시 손을 잡으니 막대가 생겨났다. 프레이는 유저가 받은 축복이겠거니 생각했다.
'풀 뽑는 것도 알려주는 건가? 이쯤 되면 신이 유저를 병신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의심되는군.'
프레이는 지금까지 유저를 선망해 왔다.
그 강력한 능력과 몬스터를 사냥하는 솜씨는 산골 청년의 마음에 호감을 일으키는 데 충분했다.
하지만 그 실상은 달랐다. 유저들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도움을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 이런 힘이 없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능력이 뒤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프레이는 풀을 잡아당겼다. 막대가 치솟음과 동시에 풀이 뜯겨 나갔다. 딱 봐도 못쓰게 될 것처럼 보였다.
'이런... 저 막대가 넘어가지 않도록 힘 조절을 해야 하나 보군.'
프레이는 뜯겨나간 풀때기를 바닥에 흩뿌리고 다른 맥주 풀을 찾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천천히 힘을 주었다.
막대가 솟았다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니 맥주 풀이 온전한 상태로 뽑혔다.
[약초 채집을 익혔습니다.]
[약초 채집 Lv1 (0%)]
'어렵지 않네.'
그렇게 3개째 뽑을 때 즈음, 프레이는 활을 빼 들고 시위를 당겼다.
뭔가 기척이 느껴졌다. 맹수일지도 모른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생각과 동시에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꺅!?"
사람 소리였다. 다행히 화살은 나무에 박혔다.
나무 뒤에서 누군가 화살과 프레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놀랐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프레이는 사과하기 위해 달려갔다. 설마 이 산속에 사람이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괜찮으세요?"
"아, 네. 솜씨가 대단하시네요."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프레이는 쓰러져있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긴 흑발의 머리가 흐트러져 있었다.
그녀가 머리를 정리하고 프레이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프레이는 기억이 났다.
알튼의 가게에서 뛰쳐나온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의 첫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던 프레이는 잔뜩 긴장했다.
알튼에게 소리치던 모습이 아직 선명했다.
"사람 잡을 솜씨네요. 그쪽이 프레이 씨죠?"
"아, 네. 제 이름은 어떻게?"
그녀는 입고 있는 로브의 먼지를 털어내었다. 귀엽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눈매가 매우 당돌한 여자였다.
그 당돌한 눈매는 프레이를 향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프레이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할아버지한테 들었어요. 아, 정말 너무 부려먹으신다니까."
'할아버지? 알튼 씨의 손녀였던 건가?'
프레이는 그녀에게서 거리를 좀 벌렸다.
할아버지에게 영감탱이 운운하는 걸 보면 보통 성격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런 프레이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 했는지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에밀리에요. 그래도 잘 찾아오셨네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저를 보내셨거든요. 약도를 못 읽은 게 아니신가 하고..."
프레이는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작은 손이었다.
프레이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아직 여성과 신체 접촉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프레이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오, 맥주 풀. 처음 뽑아보신 거 아니에요? 되게 깔끔하게 하셨네. 하긴 유저니까 그럴 수도."
에밀리는 프레이 손에 쥐어진 맥주 풀을 보며 감탄했다. 그리고는 무릎을 굽히고 다른 맥주 풀을 채집하기 시작했다.
"얼른 하고 가요. 해가 지면 늑대나 곰이 나올 수도 있어요."
"네? 아. 네!"
프레이는 서둘러서 맥주 풀을 뽑기 시작했다. 에밀리에게 폐를 끼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없이 맥주 풀 뽑기가 한창일 때였다.
프레이는 수상한 기척을 느꼈다.
"에밀리 씨?"
"네?"
"제 뒤로 오세요."
"왜...“
그르릉-
그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배가 고픈 걸까, 아니면 사냥감을 찾아서 기쁜 걸까.
늑대는 이빨을 드러냈고 그 사이에서는 묽은 침이 흘러 나왔다.
'한 마리면 상대할 만하다.'
프레이는 바로 시위를 당겼다. 고민은 금물이었다. 화살은 빠르게 날아갔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늑대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뭐야, 이건 또?’
눈앞에 나타난 반투명한 글귀에 프레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눈앞에 늑대가 나타났는데 이건 또 뭐란 말인가.
거리가 있었던 탓일까, 늑대는 급하게 몸을 날려 화살을 피했다. 하지만 방금 공격의 위력을 깨달은 듯 섣불리 접근하지는 않았다.
그 사이 에밀리는 프레이의 뒤에 숨었다. 그녀는 당황과 공포가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해도 안 졌는데!?"
"평소보다 배가 고픈 모양이죠."
늑대가 털을 곤두세웠다. 그리고는 울음소리를 길게 내질렀다. 숲속에서 울음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동료를 부르는 걸지도 몰랐다. 그 사실을 입증하듯 숲속에서 늑대가 3마리 더 나타났다.
'4마리라니, 이건 도망쳐야 해.‘
자신이 상대할 수준이 아니었다. 한 마리라면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만, 일단 단순한 수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가.
"에밀리 씨? 뛸 수 있겠어요?"
"네? 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같이 싸운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럼, 마을 쪽으로 뛰세요. 제가 신호를 주면."
"무슨 신호..."
에밀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늑대 두 마리가 접근해 왔다. 프레이는 빠르게 화살을 시위에 걸고 소리쳤다.
“가요! 지금!”
프레이는 시위를 당기다가 당황했다.
평소보다 손쉽게 시위가 당겨졌다.
‘시위가 느슨해졌나?!’
시위를 점검할 틈은 없었다. 프레이는 일단 덤벼드는 늑대를 향해 시위를 놓았다.
쏴악-
파공성과 함께 시위를 떠난 화살이 늑대의 허벅지에 박혔다.
키잉-
허벅지에 상처를 입은 늑대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다른 늑대들이 침을 흘리며 앞으로 나왔다.
“뛰어요!”
일단 도망쳐야 했다. 프레이가 발을 내디뎠을 때였다.
‘뭣...!?’
마치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에밀리를 추월한 프레이는 다시 멈춰 섰다.
에밀리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뛰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멈추지 마세요!”
“네, 네!”
프레이가 소리치자 에밀리가 숨을 헐떡이며 그를 지나쳐 달렸다.
프레이는 활시위를 다시 당겼다. 아직 늑대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위가 느슨해진 게 아니야!’
시위를 당기는 힘이 강해진 것이었다. 그 증거로 시위는 탄력을 잃지 않았다는 듯 팽팽하게 떨리고 있었다.
늑대 3마리가 한꺼번에 협동해왔다. 문제는 화살은 하나라는 점이었다.
‘이런!’
시위를 떠난 화살이 정면의 늑대의 미간에 꽂혔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지만 나머지 2마리가 문제였다.
한 마리는 프레이를 향해, 다른 한 마리는 에밀리를 쫓았다.
프레이는 몸을 굴려 피하며 화살을 빼 들었다. 달콤한 육즙이 느껴지지 않자 화가 났는지 늑대가 이빨을 드러냈다..
크릉- 크르릉-
“꺄아악!”
프레이는 힐끗 눈을 돌려 에밀리 쪽을 바라보았다.
‘이런!’
자신과 다르게 그녀는 늑대만큼 빠르지 않았다. 팽팽하게 매겨진 시위, 그러나 시위에 걸려있는 화살은 하나뿐이었다.
‘어쩌지!?’
당장에라도 에밀리가 늑대에게 잡힐 것만 같았다. 그의 주위를 맴돌던 늑대는 빈틈을 포착한 듯 프레이에게 달려들었다.
‘어쩔 수 없어!’
프레이는 이를 악물고 시위를 놓았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3%)]
[약초 채집 Lv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