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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퀄라이저-5화 (5/141)

<-- 2. 새로운 이름 -->

"저도 자세한 내막은 모릅니다만. 그곳에 마계 입구가 열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몰살되었...? 괜찮으세요?"

하이스톨은 프레이가 눈물을 흘리자 놀라 물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하이스톨은 알 길이 없었다.

프레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뇨, 계속 설명해주세요."

프레이는 되도록 눈물을 감추려 애썼다.

모두 죽었다. 자신이 알고 있었던 마을 모두가.

"네... 그래서 황명에 따라 그곳은 격리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다행히 마인이나 마물이 더 밖으로 뛰쳐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마침 그 마을에 있던 떠오르는 태양 길드가 막아냈다고 하더군요."

"떠오르는 태양..."

"네, 리반 님을 아시나요? 하긴 유저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니."

하이스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리반, 훌륭하신 분이죠. 신을 섬기는 성기사이기도 하시고, 가는 길마다 정의를 실천하시는. 아, 얘기가 다른 곳으로 새었군요. 아무튼 지금 그 마을은 갈 수 없습니다. 게다가 베긴네르는 테크론 대륙 최하단입니다. 가려면 3달은 족히 걸릴 거예요. 들어가려고 해도 웬만큼 명성을 쌓거나 실력을 증명한 유저가 아니라면... 프레이 씨?"

하이스톨은 떠들어 대던 입을 다물었다.

프레이의 얼굴에 떠오른 분노는 충분히 그를 겁에 질리게 하였다. 눈빛만으로 사람 하나를 씹어먹을 기세였다. 다만 그 시선이 자신을 향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

프레이는 리반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아버지에게 검을 꽂는 그 모습을.

분명 마계 입구가 열린 것도 그와 관련이 있을 터.

“프레이 씨?”

“아, 네.”

“제 수업을 수료한 분들께 드리는 게 있습니다.”

하이스톨은 품을 뒤졌다. 그의 품에서 볼품없는 배지가 하나 나왔다.

“아, 감사합니다.”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하이스톨이 건네주는 배지를 받았다. 일단 지금으로써는 유저의 몸에 익숙해지는 게 우선이었으니.

프레이는 하이스톨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발을 옮겼다. 하이스톨은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고 말했다.

"아, 여행을 떠나시려면 광장 건너편에 공고 게시판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보세요!"

프레이가 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는 무엇이 그를 그렇게 분노하게 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유저들이 도착하자 프레이에 대한 생각은 흩어져버렸다.

* * *

프레이는 광장 구석으로 이동했다. 섣부른 행동이 남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석에 놓여있는 벤치에 앉아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인벤토리, 마법 주머니. 유저들은 대단한 물건을 아무 대가 없이 얻었어.'

프레이는 주머니를 열었다. 어둠뿐인 공간에 방금 받은 배지를 집어넣었다. 어둠 속으로 떨어지던 배지가 허공에 멈추었다.

프레이는 배지를 다시 꺼냈다.

'배지가 참 단순하게 생겼네.'

동그란 배경에 책 모양이 그려진 간단한 배지였다. 멍하니 배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배지 위로 글씨가 스멀스멀 피어났다.

프레이는 놀랐지만, 천천히 글씨를 읽어 내려갔다.

[하이스톨의 기초역사 수료 배지.]

[하이스톨의 역사학 수업을 듣고 3가지 질문에 답하면 얻을 수 있는 배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나라는 없다!’, 자국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당신에게 사람들은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것입니다.]

'이건…. 배지에 대한 설명인가?'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신기한 능력이었지만, 꼭 필요한지는 의문이었다.

물건의 용도를 꼭 설명해줘야 안다는 말인가.

프레이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프레이는 일단 배지를 주머니에 달아 놓기로 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새로 시작한 유저에게 제공되는 도움말을 정독하는 것이었다.

‘스테이터스, 아이템... 유저들이 하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프레이는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며 유저들만이 쓰던 언어를 이해했다. 기존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말이었다.

물론 NPC였던 프레이가 전부 이해하는 건 무리지만 대충 어떤 개념으로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부터 나는 유저야. 핸슨 주니어라는 사실은 철저하게 숨기고, 리반에게 접근한다. 내가 더스틴 마을의 생존자라는 걸 알게 되면 나를 경계할 게 분명하다...’

하이스톨은 더스틴 마을에 생존자가 없다고 말했다. 리반 역시 그 사실에 안심하고 있을 터, 자신의 악행이 드러나는 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능력으로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해...’

일단 유저가 된 이상 그들처럼 강해지는 게 첫 목표였다. 리반에게 복수를 하고 더스틴 마을을 뒤덮는 마물들을 처리하고 마을을 복구한다.

프레이는 자신의 평화로운 일상을 돌려받기를 원했다. 비록 부모님은 그 자리에 없을지라도.

‘더스틴 마을로 돌아가려면 먼저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프레이는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였다. 가지고 있는 옷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이대로 나갔다가는 분명 얼마 가지 못하고 사망할 것이다.

이제 더는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는 프레이였지만, 유저가 죽으면 인근 마을에서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써는 베긴네르를 벗어날 수 없을 터.

프레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장비를 갖춘다. 수도로 가서 실력을 증명하고 우조스로 들어간다. 부모님의 시신을 거두고, 그 씹어먹을 리반을….’

프레이는 생각을 멈추었다.

5년, 5년이면 부모님의 유해가 멀쩡하리란 보장이 없었다.

주먹이 떨렸다. 떠올릴수록 분노는 커졌다.

지금은 아무 힘도 없지만 언젠가 리반의 피를 직접 거두리라.

리반은 죽지 않는 유저이니 몇 번이고 다시 고통을 주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그것은 차후의 일이었다.

당장은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에서 벗어나야 했다. 광장의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그는 게시판을 향했다.

공고 게시판 앞에는 많은 유저들로 북적거렸다.

게시판은 크게 2가지로 나뉘어있었다.

황제의 칙령이나 영주의 명령 등 모든 주민에게 적용되는 사항을 공지하는 공통 게시판과 마을 사람들의 의뢰가 적혀있는 의뢰 게시판이었다.

의뢰 게시판 앞에는 유저들이 일렬로 줄을 서 있었다.

인원이 한정된 의뢰도 있었기에 무분별하게 유저들이 달려들면 서로 다툼이 일어나서 생긴 불문율이었다.

프레이는 한 줄로 서 있는 유저들을 지나쳐 공통 게시판으로 다가갔다.

먼저 이 마을의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공통 게시판 앞은 비교적 유저가 적어 공고를 살펴보기 어렵지 않았다.

[장비 보급 안내. 경비본부 건물에서 기초수련 후 일괄 지급.]

[유저 간 대결은 마을 내에서 금지. 다툼이 생겼을 경우 마을 밖에서 해결하시오.]

[구걸 행위 금지. 마을의 품격 유지를 위해 구걸 행위를 금지하오. 일하시오! 의뢰 게시판은 오른쪽이오.]

여러 잡다한 공지가 붙어있었지만, 프레이에게 필요한 건 무기였다.

프레이는 바로 경비본부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활은 그가 어릴 때부터 잡아 왔던 무기였다.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런데 정작 경비본부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프레이는 게시판 뒤쪽에 서 있는 경비병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시오. 오, 그 배지는?"

퉁명스럽게 대답하던 경비병은 프레이의 인벤토리에 달린 배지를 보고 반색했다.

프레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 하리스톨 씨에게 받은 배지입니다."

"오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유저를 만났군. 하리스톨 선생의 수업은 참으로 유익하지. 그래 무슨 일이오?"

"공고를 보니, 경비 본부에서 활을 받을 수 있어서요. 경비 본부는 어디에 있나요?"

경비병은 잠시 프레이를 쳐다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프레이는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그의 웃음이 비웃음이 아님을 알아차리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흠흠, 미안하오. 안경을 머리에 올려놓고 자기 안경을 찾는 하이스톨 선생이 생각나서 말이오. 꼭, 그 꼴이구먼. 경비본부는 바로 여기요. 저기 큰 문이 보이오?"

경비병은 손가락으로 뒤편에 큰 문을 가리켰다. 프레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더스틴 마을의 자경단 본부와 달리 3층 높이의 건물이 경비본부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프레이는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고 문으로 다가갔다.

문 양옆에 서 있는 경비병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유저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리라.

문이 큰 만큼 무거워 프레이는 팔에 힘을 주어 문을 열어야 했다. 육중하게 생긴 문이 밀리며 약간의 소음을 냈다.

문을 연 1층 로비에는 중앙에 안내를 맡은 경비병이 업무를 보고 있었고, 그 뒤로 양옆으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프레이는 먼저 안내를 맡은 경비병에게 다가갔다.

경비병은 슬쩍 눈을 들어 프레이를 쳐다보고 다시 책상에 코를 박고 말했다.

"무기 수련은 2층이고, 뒤 계단을 이용해주세요. 올라가시면 수련장이 있습니다. 그쪽에서 받으시면 돼요."

프레이가 묻기도 전에 나온 대답에 프레이는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감사를 표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역시 공무원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면, 반복적인 업무가 공무원을 만드는 걸지도 몰랐다.

경비병의 말대로 2층에서 바로 수련장이 보였다.

무기 별로 수련장이 나뉘어 있었다. 한손검과 방패, 창, 미늘창, 도끼, 양손검, 단검 등 근접무기류가 모여 있는 곳이 가장 먼저 보였다.

‘여기는 정말 사람이 많군.’

프레이는 근접무기 수련장을 지나쳤다. 그다음은 원거리 무기였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견본으로 무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활과 석궁은 익히 봐왔던 것이지만 증기 권총과 증기 소총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증기 권총과 증기 소총은 수령할 수 없습니다.]

견본으로 제시된 유리장 밑에 쓰인 글귀였다.

‘하긴, 귀족들이나 쓰는 무기를 줄 리가 없지.’

아버지는 증기기관을 이용하는 물건은 값이 비싸서 웬만한 사람들은 사용하기 어렵다고 알려주었다.

프레이는 처음 목표였던 활 쪽으로 다가갔다. 먼저 온 유저들이 벽 쪽에 세워진 과녁에 활을 쏘고 있었다.

쏴아악- 쏴악-

여기저기 화살 날아가는 소리가 수련장을 메웠다. 프레이는 책임자로 보이는 경비병에게 다가갔다.

"오, 활을 배우러 온 유저신가?"

"아, 네."

'활을 배울 필요는 없지만….'

프레이는 활만 받아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른 유저들을 보아하니 뭔가 통과의례가 있는 것 같았다.

"됐다!"

그런 생각을 입증하듯, 한 유저가 기쁨에 소리쳤다. 그가 이용하고 있던 과녁 정중앙에 화살이 꽂혀있었다.

근처에 있던 경비병이 다가가서 확인한 후 두 팔로 크게 원을 그렸다. 곧 그는 활을 하나 받고 수련장을 벗어났다.

“와…. 에임 맞추기 진짜 힘들지 않나?”

바로 옆에 있던 유저가 푸념을 했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답을 원한 것도 아니었

는지 그는 다시 활쏘기에 열중했다.

"뭐, 보면 알겠지만, 과녁 정중앙을 맞추면 통과요. 예전에는 그냥 줬는데, 어떤 유저들이 무기를 받고 다시 되파는 경우가 생겨서 말이오. 요즘 무기 보급도 영 시원찮고 해서, 어느 정도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만 지급되는 것으로 바뀌었소. 아, 그리고 지급되는 무기는 한 종류뿐이오. 잘 선택하시오."

어디를 가나 되팔이가 문제였다.

왜 주어진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바로 되팔아서 이 지경을 만든단 말인가?

다행스럽게도 프레이는 다른 선택지를 고민하지 않았다.

"이미 결정을 끝마쳤습니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무기를 바꾸고 싶다면 다시 찾아오시오. 무기를 반납하면 다른 무기를 받을 수 있으니. 단, 무기는 받은 상태 그대로 돌려줘야 하오."

그는 말을 끝마치고 프레이에게 활과 화살을 하나 주었다.

프레이는 멀뚱히 그를 쳐다봤다. 화살이 고작 하나라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경비병은 설명을 덧붙였다.

"요즘 무기 보급상황이 시원치 않다니까. 화살 하나를 쏘고, 다시 뽑아서 쓰고 그러시오. 좀 불편하겠지만, 어쩔 수 없소. 억울하면 잘 쏘면 되지. 시험을 통과하면 화살 20개가 들어있는 화살통을 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자격이 있는 자에게는 아끼지 않으니."

다시 보니, 다른 유저들도 화살을 쏘고 과녁에 가서 화살을 뽑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프레이는 화살을 살펴보았다. 자신이 쓰던 화살과 비슷해서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늘 하던 대로 하면 될 거야.'

프레이는 빈 과녁 앞에 가서 섰다.

바닥에는 누군가 일부러 만든 흠집이 나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기준선인 것 같았다.

프레이는 활을 들었다. 시위를 당기니 눈앞에 초록 점이 생겼다.

'뭐야?'

프레이는 자신의 눈에 뭐가 껴있는 줄 알고 눈을 비볐다. 초록 점은 없어졌다.

다시 시위를 당겼다. 아까의 초록 점이 다시 보였다.

'이게 뭐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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