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3화 (3/141)

<-- 1. 핸슨 주니어 -->

마을로 뛰었다.

숨이 차올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오늘따라 마을이 더 멀게 느껴졌다.

멀리서 짐승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몰랐다.

그때였다.

케이라가 아들에게 소리쳤다.

"저기, 저기 유저가 있구나!"

케이라가 가리킨 방향에는 3명의 유저가 빠른 속도로 길을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3명이면 그 괴물들을 상대하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핸슨 주니어는 희망을 품었다. 케이라도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그래서 그녀는 그중 한 명을 붙들었다.

"도와주세요! 저희 남편이 지금…."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 아줌마가 무슨 소리야?"

"야, 빨리. 빨리! 이러다 템 떨구면 X되는 거야!"

"지금 퀘스트 할 시간이 어디 있냐!? 빨리 거절해! 지역만 벗어나면…."

마지막에 말하던 유저가 피를 토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말을 잊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 역시 이해가 안 가는 듯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날카로운 창이 그의 몸을 꿰뚫고, 피를 머금고 있었다. 창의 주인은 기쁜 듯이 웃고 있었다.

웃음의 주인은 눈과 코가 있어야 할 자리는 누군가 뭉갠 것처럼 살덩이뿐이었고 오로지 입만 존재하는 괴물이었다.

"마…. 마인…."

“미친…. 마계 주민이잖아…?”

남은 2명의 유저는 뒷걸음질 쳤다. 창에 찔린 유저의 몸이 축 늘어졌다.

마인이라 불린 괴물은 웃음을 거뒀다.

흥미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대로 창을 휘두르자 유저의 시체가 반 토막이 났다.

현실감 없는 광경에 모두 말을 잃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유저들이었다.

"야, 뛰어!"

그들은 공포에 질렸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기적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이기적으로 변하는 건 모든 동물의 속성이었다.

그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먼저 희생시킨 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

핸슨 주니어는 어떻게 반응할 시간도 없었다.

케이라가 마인 쪽으로 쓰러졌다. 케이라는 아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케이라는 아들이 걱정되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텐데, 저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의 마음을 모두 전할 수는 없었다.

핸슨 주니어는 쓰러지는 케이라의 입 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도망쳐….'

"엄…."

핸슨 주니어는 말을 잇지 못했다. 붉은 핏방울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이 사그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귓가에 유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이다, 미끼로 딱이었어."

"미친, 야 죽은 걔는 어떡하냐?"

"페널티 받고 내일 살아나겠지. 뭐 어쩌겠냐. 일단 뛰어."

핸슨 주니어는 그 자리에서 절규했다.

마인은 웃지 않았다.

너무나 시시했다. 이 미천한 것들은 자신을 즐겁게 해주지 않았다.

겁에 질려 꽁무니나 빼는 버러지들이었다.

길가에 놓여있는 돌멩이처럼, 거추장스러운 건 치워야 했다.

간단히 창을 휘둘렀다. 길가에 돌멩이를 걷어차듯이.

허나, 눈앞에 인간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보이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이 인간이 겪고 있는 절망을, 이 인간이 느끼고 있는 분노를!

아쉽게도 이 인간의 능력은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흥미는 얼마 가지 못했다.

또 다른 버러지를 처리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였다.

알 수 없는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자신도 가늠할 수 없는 존재였다.

흥미가 동했다. 웃음이 나왔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무언가였다. 인간계로 나오길 잘했다.

마계보다 더 재미있는 게 있을 줄 알았다.

그것이 멈췄다.

일단 여기 버러지부터 처리하고 상대하기로 했다. 그래서 창을 높이 들었다. 아니, 들겠다고 생각했다.

창이 느껴지지 않았다.

팔이 들리지 않았다. 팔이 없어졌다.

마인은 놀랐다.

아무런 고통 없이 자신의 팔을 날리다니?

마인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제야 재미있는 상대를 만났다는 기쁨에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상대는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몸의 중심이 기울어졌다. 다리가 날아가서 넘어졌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마인은 너무나 즐거웠다.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런 상대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곧 신체 어느 부분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인의 웃는 얼굴도 모두 어둠에 먹혔다.

"음, 잘 찾아온 건가."

마인을 모두 집어삼킨 어둠이 한 곳으로 뭉쳤다. 사람 머리만 한 크기의 어둠은 핸슨 주니어의 주위를 맴돌았다.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들리고 있었다.

"이거, 망가진 건 아니겠지?"

핸슨 주니어는 말을 잃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뭐라 반응할지 몰랐다. 그리고 두려웠다.

이건 죽음이구나.

죽음이 자신을 맴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자신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봐? 이름이 뭐지?"

핸슨 주니어는 벌떡 일어났다.

죽음이 자신을 삼키기 전에 어머니를 미끼로 쓴 가증스러운 놈들에게 복수해야 했다.

핸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예상외의 행동에 어둠은 당황했다.

이런 반응은 계획에 없었다. 핸슨 주니어는 빠르게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어둠 속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아, 이건 예상 못 한 상황이군."

핸슨 주니어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아까 그 유저들은 불을 뿜는 개와 싸우고 있었다. 핸슨 주니어는 풀숲에 숨어 놈들 중 한 놈을 조준했다.

직접 어머니를 밀쳤던 놈이었다. 어머니의 원수, 조금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어머니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합당한 복수를 해야 했다. 그놈에게 활을 겨냥했지만,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도저히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있나 싶어 가까운 나무를 조준하고 빠르게 쏘았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저 원수를 겨냥하면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는 것이냐."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혼이 나갈 것만 같았다. 핸슨 주니어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어둠이 자신을 따라왔다. 도망쳐야 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두 번은 안 당하지."

어둠이 두 다리를 감싸고 있었다. 아직 다리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다리는 핸슨 주니어의 통제를 벗어났다.

핸슨 주니어는 설움이 복받쳤다. 이렇게 복수도 하지 못하고 죽게 될 줄이야.

억울함에 눈물이 흘렀다.

그때였다.

불 뿜는 개와 유저 사이에 누군가 껴들었다. 핸슨 주니어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도끼 한 자루를 들고 몬스터와 맞서는 건 다름 아닌 핸슨이었다.

핸슨 주니어는 아버지를 불렀다. 하지만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버지!"

"그만, 이제 가야 할 때다. 전송 준비."

3대 1은 흉악한 몬스터라도 버거웠는지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불 뿜는 개가 크게 숨을 들이켰을 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개의 뒷덜미를 꿰뚫었다. 개의 입안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몬스터가 쓰러지고 그 뒤편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리반.

분명 그런 이름이었다.

핸슨 주니어는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은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피로 물들어 있었다.

자신의 피는 아닌 것 같았지만. 가증스러운 유저 둘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그를 지나치려 했다.

리반은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두 개의 목이 분리되었다. 주인을 잃은 몸뚱이는 천천히 쓰러졌다.

이해가 가지 않는 광경이었다. 속으로 통쾌함이 느껴졌다.

비록 자신의 손으로 복수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죽었다. 그러나 이내 그 통쾌함은 공포로 변했다.

그가 아버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핸슨 주니어는 소리쳤다. 하지만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그가 아버지와 뭔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피로 물들어 있는 리반의 검이 들렸다. 핸슨 주니어는 미칠 지경이었다.

무력함.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활을 아무리 당겨도 놓을 수 없었다.

리반의 검이 아버지의 몸을 꿰뚫었다. 힘없이, 핸슨의 몸이 쓰러졌다.

리반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전송 완료."

어둠 속의 목소리가 말을 마치자마자 어둠이 핸슨 주니어를 덮쳤다. 어둠이 사라지자 핸슨 주니어의 몸도 사라졌다.

마치 그곳에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 * *

아무것도 없었다.

빛은 물론이고, 자신을 지지해줄 지반,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느껴지지 않는 그곳.

공허.

핸슨 주니어가 도착한 곳은 그런 곳이었다.

핸슨 주니어는 자신의 몸을 찾으려 애썼지만, 찾을 수 있는 신체가 없으니, 이내 포기해 버렸다.

오로지 남은 건 자신의 생각뿐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의외로 침착하군.」

자신의 생각에 끼어드는 목소리에 핸슨 주니어는 놀랐다.

목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궁금했지만, 공허에서는 방향조차 무의미했다.

들려오는 목소리를 찾고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저, 당신이 죽음입니까?’

핸슨 주니어는 생각을 통해 물었다. 어차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관이 없었으니 생각밖에 하지 못했지만.

죽음이 임박한 사람에게는 죽음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다고 들었다. 죽음은 이 세상 규칙에서 벗어난 유저들의 시신을 회수하는 일을 했다.

유저들의 시체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결국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죽음뿐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나를 확실하게 정의하기는 좀 어렵지.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공허에 빛이 비쳤다.

핸슨 주니어는 누군가 자신의 눈에 직접 빛을 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빛은 눈을 감는다 해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지금은 눈이라는 게 없기도 했지만.

빛이 사그라지며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신은 하얀 돌바닥 위에 서 있었다. 육체가 돌아왔다.

아주 좁은 공간이라 움직일 만한 곳은 없었다. 핸슨 주니어는 가만히 서서 자신의 손과 발을 돌려보았다.

입고 있던 옷은 사라지고 조촐한 차림이었다. 비록 여기 오기 전의 행색이 호화로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끝내자.”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보니 장발의 남자가 공중에 떠 있었다. 핸슨 주니어는 그를 바라보고 흠칫 몸을 떨었다.

그가 일단 실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전라였다는 점과 그의 드러난 피부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이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적어도 인간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뭐야, 그 반응은? 다른 인간은 꽤 좋아하던데?”

그는 핸슨 주니어의 반응에 의외라는 듯 보였다.

그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저 인간이 왜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네는 남자였지. 그러면...”

그의 모습이 어둠에 휩싸였다. 곧 어둠이 사라지며 그가 있던 자리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

조금 전의 남자와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남자라면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지고, 밖으로 나오지 않아야 할 부분이 두드러졌다.

핸슨 주니어는 그 모습에 기겁했지만, 기괴함보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아, 저. 옷…. 옷 좀!”

“음?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

본의 아니게 아름다운 굴곡을 과시하며 그녀는 핸슨 주니어에게 다가갔다.

핸슨 주니어는 자신의 좁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다행히도 핸슨 주니어의 발이 닿는 곳에 바닥이 생겨났기에 그가 추락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래서야 대화가 안 되겠군.”

그녀는 눈을 가리고 있는 핸슨 주니어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순간 어둠에 사라졌던 그녀가 다시 나오자 그녀는 핸슨 주니어와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눈 떠라, 시간 낭비는 이제 그만.”

핸슨 주니어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다행히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정한 핸슨 주니어는 뒤늦게나마 예의를 차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죽음이시여, 어찌하여 저를 데려오셨습니까? 저는 유저가 아닙니다.”

사라지는 건 오직 유저뿐이었다.

핸슨 주니어는 유저가 사라지면 도착하는 곳이 지금 이곳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왜 자신을 이곳에 데려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죽음이 아니라니까. 내 이름은 더원. 네가 믿고 있는 신보다 높은 존재라고 해두지.”

“신보다 높은 존재?”

핸슨 주니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래, 내가 바로 유저에게 힘을 주는 시스템의 관리자... 아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더원은 고개를 저었다. 핸슨 주니어의 표정은 갓난아기보다 멍청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NPC가 이해할 수준의 대화가 아니었다.

“하, 하오면 그... 더원 님께서는 저를 어찌하여...”

“변수가 필요하다.”

“변수...? 저, 저는 미천한 사냥꾼의 자식인지라 변수라는 말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더원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세계는 균형이 필요하다.”

“균형이라 하시면...?”

“상반되는 것들의 존재라고 하면 이해가 가는가? 선이 있다면 악이 있고, 악이 있다면 선이 있어야 한다. 높은 것과 낮은 것,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 다양한 비유가 가능하겠지.”

“저, 저 같은 사냥꾼의 자식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음...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세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핸슨 주니어는 계속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더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유저라는 존재, 이들의 패악질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건...”

“불멸은 곧 힘이다. 애초에 이 세계가 그들을 위해 존재하기는 하였으나, 정도가 있는 법이지.”

더원은 머리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유저를 누가 견제하는가? 나를 만든 설계자는 같은 유저가 그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었지만... 아쉽게도 그 역할을 맡는 유저는 많지 않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하여, 나는 너와 같은 후보를 찾았다. 설계자의 명령을 위해, 유저와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이쪽 세계의 존재가 필요하다.”

핸슨 주니어는 그저 머리를 조아리며 말을 들었다.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었다. 그저 막연히 유저들의 행패만 머리에 떠올랐을 뿐.

그가 머리를 든 건 더원이 본론을 이야기했을 때였다.

“너에게 유저와 같은 힘을 주겠다.”

“제가 유저와 같은 힘을?”

“그래. 그리고 너를 다시 되살려 보내줄 것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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