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2화 (2/141)

<-- 1. 핸슨 주니어 -->

마을 주민들이 모두가 잠들었을 무렵, 아직 등불이 꺼지지 않은 곳은 단 한 곳이었다.

마을 내 유일한 여관인 '잠 못 드는 밤'.

모든 여관이 그렇듯, 밤중에도 찾아드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여관은 24시간 운영을 해야 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듯, 여관은 최근 몰려든 유저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평소 파리만 날리던 여관방은 이미 전부 매진이었다.

그나마 여관방을 잡지 못한 유저들은 밖에서 노숙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렇다고 손님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노숙하는 유저라도 식사는 여관 내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저들이 밖에서 자든, 안에서 자든, 식당에서 뭘 시켜먹든, 여관 당직을 맡은 직원은 단 한 가지만 생각했다.

'자고 싶다. 좀 자라 이것들아.'

야간 당직을 위해 오후 내내 자고 왔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동물.

새벽 시간대가 되니 졸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유저들은 잠이라는 것도 없는지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음식을 주문시켰다. 그러니 도저히 쪽잠이라도 잘 시간이 나지 않았다.

'하…. 정육점 아저씨는 훈제를 뭐 그리 많이 만드신 거야….'

여관 직원은 창고에 쌓여있는 훈제고기를 보며 업무 정신이 투철한 정육점 주인을 원망했다.

창고에 산처럼 쌓인 훈제고기는 여관 주인의 요청으로 매일매일 새로 들어왔고 창고는 쥐새끼들이 고기를 훔쳐 먹어도 전혀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어이, 이것 보쇼. 여기 NPC 어디 갔어?"

직원은 자신을 찾는 소리에 얼른 계산대로 돌아갔다. 수척한 얼굴이었지만 서비스 정신은 오히려 힘들 때 빛이 나는 법.

화사한 자본주의 미소가 직원의 얼굴에 떠올랐다.

"필요하신 것이 있습니까?"

"여기 식사로 되는 거 뭐가 있나?"

이 새벽에 식사를 찾는 경우 없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기에 이미 대응 방법을 주인으로부터 전달받은 직원이었다.

"새벽에는 요리가 운영되지 않습니다. 대신 훈제고기를 종류별로 갖추었으니, 메뉴에서 골라주시면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메뉴판을 꺼내 보인 직원은 빨리 이 인간이 메뉴를 고르고 사라져 주기를 원했다.

창고 정리를 핑계로 잠깐이라도 잠을 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인간은 대화가 통하는 부류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지금 훈제고기나 먹으라 이거야?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훈제 고기를 얼마나 처먹었는지 알아? 앙?"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식당 내부가 조용해졌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첫째로, 그의 인상이 그 자신의 성질을 대변하듯 매우 험악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둘째로, 그가 가진 장비에는 붉은 태양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는 그의 소속을 말해주는 것으로 현재 1위 길드의 길드원을 건드릴 만큼 간이 큰 사람이 없었다.

물론, 이 예의 없는 인간은 길드에서도 말단 위치에 있었다. 실력이 없는 탓에 여관에서 술을 먹다가 괜히 NPC에게 꼬장을 부리는 중이었다.

곧 식당은 다시 소란스러움을 되찾았다. 곤란한 건 오직 직원뿐이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지금 당장은 요리가 없으니, 방에서 푹 쉬시고 내일 오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그렇게 해결될 인간이었으면 이런 무리한 요구도 하지 않았으리라.

그는 막무가내로 직원에게 성을 내기 시작했다.

"직원이라면서 요리 하나 못하는 게 말이 돼? 그럼 밖에 걸린 ‘요리가 맛있는 여관’은 왜 써놓은 거야?"

물론 여기 요리가 맛있긴 하다. 하지만 그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건 새벽이 아니라는 점일 뿐.

그걸 써놓지 않으면 모르는 게 비상식적인 일이었지만. 직원은 참을성 있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요리는 당장 불가능하다고 말씀을…."

"야! 지금 내가 말귀 하나 못 알아먹는다는 거야, 뭐야!?"

화가 날수록 취기가 올랐다. 결국 그 유저는 자신의 힘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지금 마음만 먹으면 저 산도 날려 버릴 수 있어? 알아!?"

쾅-!

그가 거칠게 양손으로 카운터를 내리쳤을 때였다.

깜짝 놀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모이자 직원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다시는 야간에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쾅-! 콰콰쾅-!

폭발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은 주정뱅이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주정뱅이는 얼빵한 얼굴로 돌아봤다.

"어? 이거, 나 아닌데?"

주정뱅이가 그런 멍청한 소리를 내뱉는 와중이었다. 누군가 황급히 소리쳤다.

"저…. 저거…!"

점점 더 커지는 굉음에도 노숙하는 유저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깨어있던 유저는 밖을 보았다.

산이 무너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시 주정뱅이를 쳐다보았다. 주정뱅이도 술이 깨는 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무너지는 산을 번갈아 봤다.

"아니, 나 아니라니까?"

다행히 산사태 수준은 아니었다.

무너진다는 표현보다는 벗긴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벗겨진 산등성이 표면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소용돌이는 점점 커졌고 소용돌이 외부에서는 스파크가 일어났다. 소용돌이의 색이 점점 붉어졌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집집마다 등불이 켜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줄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겨난 소용돌이를 쳐다만 보고 있을 때, 산 쪽에서 사람들이 내려왔다.

"떠오르는 태양이잖아?"

누군가 내려오는 그들을 알아보았다. 붉게 물든 그들의 갑옷은 어둠 속에서도 더 붉게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깨달았다. 그들의 갑옷을 붉게 물들인 건 단순히 염료가 아닌 그들의 피라는 걸.

가장 먼저 도착한 길드원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모두…. 모두 도망쳐요…."

그의 뒤로 상처를 입은 유저들이 하나 둘씩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소리쳤다.

"도망쳐! 도망치라고!"

하지만 영문을 모르는 유저들과 마을 주민들은 그들의 절규를 지켜만 볼 뿐이었다. 하지만 곧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소용돌이로부터 뭔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뭐야 저거?"

소란 통에 일어난 정육점 주인은 잠을 방해받아 짜증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곤충처럼 갑각을 뒤집어쓰고 날개가 달린 뭔가가 마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뭔가’의 수는 점점 더 불어났다.

정육점 주인의 표정은 짜증에서 점점 공포로 변해갔다.

정육점 주인을 향해 날아온 그것은 단숨에 정육점 주인의 목을 베었다.

정육점 주인의 머리가 힘없이 땅을 굴렀다. 하지만 이미 사방은 살육과 비명으로 가득 차 그 누구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 * *

"아버지!?"

핸슨 주니어는 서둘러 1층으로 내려왔다. 이미 마을은 아비규환이 되어 있었다. 핸슨은 찬장을 쓰러트려 문을 막고 있었다.

"엄마를 데리고 지하로 가거라!"

밖에서는 사람들의 비명과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핸슨 주니어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 이쪽으로!"

핸슨 주니어는 문을 열고 손짓했다.

어머니가 빠져나갈 무렵, 창문이 깨지는 소리와 붉게 빛나는 개의 머리가 들어왔다.

핸슨 주니어가 알고 있던 개와는 달랐다.

개는 누군가의 뜯겨진 팔을 물고 있었고, 열려 있는 입 사이에는 뜨거운 불꽃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

핸슨은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의자를 잡았다. 창문이 와장창 소리와 함께 무너지며 그 괴물이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헨슨 주니어는 의자를 집어 던져 개의 머리를 맞추고 빠져나오는 어머니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바로 방문을 닫았다.

거실 역시 안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들아!"

핸슨은 아들에게 활을 던졌다.

핸슨 주니어는 활을 낚아채고 거실에 걸려있던 화살통을 매었다.

왼쪽 창문이 깨지며 거대 곤충이 날아들었다.

곤충의 팔다리는 낫처럼 날카로웠으며, 껍질은 손질된 갑옷처럼 윤이 났다.

거대 곤충이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핸슨을 노렸다. 핸슨 주니어는 빠르게 화살을 뽑아 시위를 당겼다.

빠르게 날아간 화살이 거대 곤충의 팔을 내쳤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핸슨의 머리는 온전히 유지될 수 있었다.

핸슨은 그사이 몸을 굴려 핸슨 주니어에게 다가왔다.

"지하실로!"

문은 얼마 못 버틸 것 같았고, 이미 거실에는 거대 곤충 한 마리가, 방에서는 연신 뜨거운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빌어먹을 개새끼가 방에 불을 지른 것 같았다. 어머니는 이미 지하실로 피신했다. 핸슨과 주니어는 지하실로 내려가 문을 닫았다.

"이게 무슨 일이죠?!"

핸슨 주니어는 아버지에게 물어봤지만, 핸슨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무튼 일단 도망쳐야 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케이라, 당신은?"

"괜찮아요. 당신은요?"

케이라, 핸슨의 아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핸슨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었다. 집안의 열기가 지하까지 전해져 올 정도였다.

"일단 뒷문으로 빠져나가요. 여기 있다가는 죽을지도 몰라요!"

핸슨 주니어는 지하실로 연결된 뒷문으로 향했다. 핸슨은 케이라의 손을 붙잡고 핸슨 주니어의 뒤를 따랐다.

문을 나서기 전 핸슨은 문 옆에 걸려있는 도끼를 집었다. 핸슨 주니어는 뒷문을 살짝 열고 주위를 살폈다.

유저들이 괴물들과 맞서고 있었다. 다행히 주변에는 남은 괴물이 없는 것 같았다.

"괜찮은 것 같아요. 서둘러요!"

핸슨 주니어가 뒷문을 열었다.

마을은 이미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몰려드는 괴물과 전사들이 불꽃을 튀기며 싸우고 있었고,

마법사들의 마법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미 자경단원들은 명을 달리한 지 오래였다.

핸슨 주니어는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살던 세계가 모두 사라지고 있었다.

늘 고기를 사던 정육점도, 활발했던 광장도, 사람들로 북적이던 여관도, 가끔 활을 가르치던 자경단 본부도 모두 불타고 있었다.

"조심해!"

그래서일까, 잠시 정신을 놓친 사이 하늘에서 날아오는 거대 곤충을 눈치 채지 못했다.

시끄러운 날갯소리가 가까이 들려올 즈음에야 고개를 들어 곤충을 바라보았다.

곤충의 아가리는 팔에 달린 날만큼 날카로웠고 그 아가리가 얼굴을 덮쳐오고 있었다.

하지만 핸슨이 더 빨랐다. 핸슨은 몸을 날려 아들을 넘어트렸다.

목표를 놓친 곤충은 그대로 땅에 박혔다. 핸슨은 일어나 도끼를 꺼냈다.

"아들아! 엄마를 데리고 마을로 가! 아직 유저들이 있으니 너희를 지켜줄 거다!"

거대 곤충은 화가 난 듯 사나운 소리를 냈다. 얼굴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고 날개를 파르르 떨었다.

당장에라도 핸슨의 목을 가져갈 기세였다.

케이라는 핸슨의 옆을 지나치며 아들의 손을 잡았다.

"어서 가자! 어서!"

케이라는 직감했다. 핸슨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시간을 끌겠다는 사실을.

지금 아들을 이해시킬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야 했다.

"아버지는요? 아버지? 아버지!"

핸슨 주니어는 어머니의 손에 거칠게 저항하려 했지만, 어머니가 울고 있는 얼굴을 보았다.

그제야 이해했다.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목숨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서…. 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울음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아들을 불안하게 만들면 안 된다.

케이라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핸슨은 아들을 보며 웃었다.

"엄마를 부탁하마."

핸슨은 도끼를 고쳐 잡고 곤충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집안에서는 불꽃과 함께 조금 전의 불 뿜는 개가 튀어나왔다.

케이라는 서둘러 아들의 옷자락을 당겼다.

핸슨 주니어는 울음이 나왔다.

아버지를 돕고 싶었다. 아버지를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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