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6 Joker U Manhwa Festival =========================================================================
아이펜TV는 엄청난 이슈였다.
PD팟은 엄밀히 따지면 좋은 플랫폼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인지도가 큰 편도 아니고, 후원이 빵빵 터지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대단한 시스템이 존재하지도, 밀어주는 무언가가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챌린저 유는 PD팟을 고집해왔다. 그건 그저 소신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게 챌린저 유는 특이하게 다른 개인방송을 하는 방송인들과 교류를 하는 편이 아니었고, 그저 게임을 할 뿐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방송 초기의 그는 좀 달랐다는 것 같지만, 지금의 그는 누군가의 후원금에 호응을 하지도 않으며 그저 키고 싶을 때 방송을 켜서 게임을 플레이할 뿐인 사람이었다. 그저 처음 방송을 시작한 곳이 PD팟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냥 계속 그곳에서 방송을 할 뿐이라는 이미지였다.
그런 챌린저 유가 아이펜TV로 이적한 것은 가벼이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인터넷 방송계에 있어서 챌린저 유가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한 수준. 톱배우들 뺨을 왕복으로 때려도 이상하지 않을 준수한 외모가 밝혀지면서는 더더욱 그렇다. 만명은커녕 몇 천명 만으로도 흔히 말하는 ‘대기업’ 취급을 받는 PD팟에서 그는 경우에 따라 10만의 시청자를 달성하기도 하는 인물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 …해서 아이펜TV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
챌린저 유가 신호탄으로써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각 플랫폼의 방송인들이 아이펜TV로 일시에 이적을 시작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상오의 방송이 있고나서 3일 정도의 시간이 지난 시점에 이미 아이펜TV에는 방송을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챌린저 유는 방송리스트의 최상단, 정확히는 1등 자리를 방송을 키고 있는 동안은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지만, 그 아래의 순위쟁탈전은 치열하기 짝이 없었다.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무명 방송인들도 굉장히 많았지만, 개중에는 각 플랫폼을 대표한다는 사람들도 더러 자리하고 있었다.
이상오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물론 그는 PD팟에서 인기가 있는편은 아니었으나, 예전에 있었던 플랫폼에서는 최상위권에 위치해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조커 유와 함께 합방을 진행하고난 이후부터 엄청난 상승세를 거듭하게 되어 챌린저 유 바로 밑자리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정책의 변화가 있었다.
아이펜에서 개인방송 등의 각 매체를 통해 다른 누군가와 영상을 공유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이제까지는 그저 묵인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의지를 표명해버린 그들은 추가적으로 한 가지의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아이펜TV에서의 방영은 가능하다는 것.
그것을 접하게 되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이펜TV로 몰려들었다.
흔히 ‘대기방’이라고 불리는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전부가 이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커 유의 소설에서부터 영상에 이르기까지, 아이펜에서 서비스하는 모든 창작물의 연재를 기다리거나 혹은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수다방을 운영하던 사람들이 찜찜함을 없애고 합법적으로 방송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떠나온 것이다.
많은 시청자들 역시 그들을 따라 아이펜TV로 몰려들었고, 그렇게 시청자들이 많아지자 기존에 있던 다양한 분야의 개인방송 역시 부가적인 효과를 누리게 되었다. 대기방을 나서던 사람들이 우연히 보이는 다른 방에 호기심을 가지고 들어가기만 해도 시청자 수의 증가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와같은 얽히고설키는 과정에서 폭발적인 상승세를 이끌어나가던 아이펜TV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바로 아르핀 2부다.
아르핀 2부 역시 아이펜TV에서는 방송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구입을 통해 아이디로 로그인만하면 볼 수 있다는 것은 한 계정으로 작품을 돌려보는게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커 유는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같은 시스템을 바꾸려고 들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것을 통해 누군가가 방송을 한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아이펜TV는 아르핀 2부가 시작되기 직전인 10월 31일에는 타 방송 플랫폼들을 모두 밀어내고 1위의 자리를 거머쥐게 되었다. 단순히 한국만으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나라들에 동시 서비스를 진행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나라를 카테고리로 분류해두었고, 종합 순위 같은것도 확인이 가능했다. 조커 유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아이펜을 통해서 한국의 문화에 큰 흥미를 느낀 많은 세계인들이 몰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기다 추가적으로 아이펜TV와 동시에 오픈하게 된 JUMF의 홈페이지 역시 대흥행을 이루었다. 돈을 내야만 하지만, 내기만 한다면 평생 계속해서 볼 수 있는 만화 사이트가 오픈했고, 거기서는 JUMF에서 판매한 모든 단편작품들을 다루고, 연재가 확정된 작품들은 추가적인 연재본까지 읽어볼 수 있는 웹툰 사이트였다. 단편으로 끝나기는 아쉽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이 지속적인 연재를 이어나가고, 점프에서 책을 구입했던 사람들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결제를 한다. 물론, 만화를 보는 화면까지 아이펜TV에서 방송할 수는 없었다.
이렇듯 한꺼번에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사람들이 결국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르핀 2부였다. 1부가 끝난지 몇 개월이 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에서 어쩌면 2부까지도 미리 만들어두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세상은 조커 유의 행보가 이어질 때마다 이리 뒤집어지고, 저리 뒤집어졌다.
“크크크….”
정작 그 사단을 내고있는 당사자인 조커 유, 지혁은 소파에서 뒹굴면서 만화를 보기 바빴지만.
볼 게 너무 많았다. JUMF 공식 사이트가 출범하자마자 연재를 시작한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지혁은 그것들을 읽으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만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그에게 있어 이보다 기분좋은 일은 없었다.
오죽하면 최근에는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는 이유가 자신이 직접 보기 위해서라는 자조섞인 생각마저 했었을까.
지혁은 늘 배가 고팠다. 왜 이렇게 볼 게 없냐는 생각을 늘상 해왔다. 기준점이 높아서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지혁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사람은 누구나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통상적으로 인기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개인이 이건 재미없다고 여긴다면 거기서 끝이다. 아무리 지표가 이 작품은 명작, 대작이라고 말한다고 하더라도 인식이 그렇게 박혀버린다면 감상을 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새로운 작품을 찾아가는 것이 정상인 셈.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그냥 떠나지 않고 덮어놓고 비난을 찍 싸버린다지만 지혁은 그냥 미련없이 작품을 등지고 다른 것을 찾아 떠난다.
재미있는 작품을 보고 싶고,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을 찾아 헤맸다. 물론 세상엔 그런 것이 참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지혁은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의 취향인 작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연재를 시작한 것은 그에게 있어서 행복한 고민이었다. 무엇을 보아야할까? 같은.
지혁은 만드는 것도 좋아하지만, 누군가의 창작물을 감상하는 것도 그만큼 좋아한다.
와삭!
감자칩을 먹으면서 핸드폰으로 만화를 보고있던 지혁은 갑자기 온 전화에 멈칫했다.
- 한예리
“…….”
왜 전화를 했을까? 지혁은 핸드폰에 떠있는 이름을 빤히 쳐다보면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의례적인 안부인사에 의례적인 어조로 답했다. 들려오는 대답이 없이 침묵이 이어지자, 지혁은 잠깐 고민했다. 방금의 인사가 산뜻한 목소리였던 것으로 보아서는 아닐 것 같기는 한데….
“…혹시 무슨 일 있나요?”
- 아니요. 아무 일도 없어요.
그냥 뜬금없이 전화할 사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지혁은 뭔가 볼일이 있어서 전화를 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였다. 물론 한예리와의 사이가 엄청 가볍다고는 할 수 없으나, 지혁 역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그녀를 가르치는 것으로 이전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보상을 했다. 물론 그런 보상같은 느낌으로 대해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마땅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지혁은 그녀가 좀 껄끄러웠다. 최근들어서 다소 편하게 대해주고 있는 리플라워와는 다르게 한예리와는 사소한 안부문자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 저… 혹시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역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네. 제가 가겠습니다. 지금 어디십니까?”
- 저 선생님 집 근처인데, 지금 자택에 계시나요?
지혁은 순간적으로 몸을 멈추고서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네… 그렇긴 한데…. 저희집이 괜찮으실까요?”
- 네? 저번에 보니까 굉장히 넓…. 아, 혹시 집에 누가 있나요?
“아뇨. 그건 아닌데….”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톱아이돌이자 여배우인 한예리가 외간남자의 집을 들낙거리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혁의 의문은 온당했다.
- 그럼 괜찮은 거죠? 지금 바로 가도 될까요?
“예… 그러시죠 그럼.”
통화가 끊기고, 지혁은 멍했다. 그는 슬쩍 주위를 돌아보았다. 다 먹은 감자칩의 비닐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그는 서둘러 움직여서 작업실을 치웠다. 사실 그가 오늘 놀면서 해놓은 것을 빼면 깨끗한 편이었다. 매일같이 가정부 아주머니가 청소를 해주시니까.
여자가 온다고?
지혁은 당황해서 서둘러 욕실로 가서 외모를 점검했다. 샤워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머리는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었다.
딩동-
그가 열심히 머리를 매만지는 사이 밸이 울렸다.
나가보니, 모자에 선글라스 등 확실한 변장을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머리칼을 찰랑이며 90도 인사를 하는 그녀를 보던 지혁은 일단 그녀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여기까지는 무슨일로….”
“아, 저 게임을 좀 배우고 싶어가지고요. 보니까 선생님이 챌린저 유라는 이름으로 유명하시고, 게임도 굉장히 잘하신다는 것 같은데….”
게임?
지혁은 반색했다.
지혁이 만화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바로 게임이다. 더군다나 그는 너무 게임을 잘해버려서 혼자 하기보다는 누군가와 같이 게임을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었다. 게임 동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기에 지혁의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죠~ 제가 가르치는 건 굉장히 잘하거든요. 이쪽으로 오세요.”
보기 드문 적극적인 지혁의 모습에 놀란 것인지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왜요?”
“아니… 이렇게 신나신 모습은 처음 보는 거라서요. 혹시 게임 좋아하는 여자가 이상형이신가요?”
지혁은 잠깐 고민했다. 이상형이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은 딱히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지혁의 이상형은 지금 눈앞에 있는 한예리였다. 그녀와 차현진을 두고서 차현진을 선택한 지혁이 할말은 아니지만, 한예리는 그냥 지혁의 능력에 탄복했을 뿐이고, 차현진은 지혁을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한다는 점이 컸다. 무엇보다 차현진은 지혁에게 있어 첫 여성이었고, 그녀와 같이 지낸 시간도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깊어졌었다.
단지, 그 당시 깨닫지를 못했었을 뿐.
차현진과 어영부영 헤어진 지금에 있어서 지혁에게 가장 이상형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하면 한예리일 것이다. 꼭 지혁만 그런 것은 아닐 터였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보는 그런 거 아니겠는가. 연예인이랑 사귀면 어떤 기분일까 뭐 이런. 그런 상상의 대상으로 가장 많이 꼽혔던 인물이 바로 한예리일 터였다.
“어… 취미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긴 하겠죠?”
이상형이 너라고는 말할 수 없었던 지혁이 대충 돌려서 두루뭉술하게 말하자 그녀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게임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