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112화 (112/116)

00112  Joker U Manhwa Festival  =========================================================================

순간적으로 잡담을 나누고 있던 네 만화가의 시선이 이쪽으로 확 쏠렸다. 그들을 쳐다보면서 손을 들어서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한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역시!”

쉿!

지혁은 오른쪽 검지손가락을 입술쪽으로 가져가면서 바람소리를 내었다. 조용히 해달라는 의미였다.

어차피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지혁의 얼굴이 공개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조금 전에 보았듯 이나은의 출현만으로도 엄청난 혼란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 조커 유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그 파장이 얼마나 클지는 예상도 안 된다.

아무리 이나은이 현재 한국 최고의 만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고 하지만, 조커 유와는 비교선상에 오르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의 차이가 난다.

“아! 알겠습니다.”

주위를 관찰하듯 좌우를 한 번 살핀 지혁은 손바닥으로 무언가를 누르는 모션을 취했다. 목소리를 낮춰달라는 의미였다. 그 의미를 깨달았는지 남자 팬이 고개를 끄덕였고, 지혁은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작품을 보고 아셨나요?”

“아, 네. 네….”

지혁은 질문을 하며 악수나 하자는 의미에서 손을 건넸는데 그것을 쳐다본 그는 손바닥을 열심히 청바지에 비벼대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지혁의 손을 잡았다.

“…….”

손을 잡는 순간 알았다. 그는 지금 엄청나게 떨고 있었다. 악수하는 것만으로도 그게 느껴질 정도라면 그는 지금 사시나무 떨리듯이 몸을 떨고 있을게 분명하다.

“혹시 저 인건 어떻게 아셨을지 물어도 될까요?”

“아, 네. 저… 잠깐만요.”

그는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조커 유를 직접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숨소리마저 거칠어져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의 반응은 좀 지혁의 입장에서 당황스럽기는 하다. 그는 최근 많은 사람들의 열광적인 태도에 면역력이 생겼다고 생각했었는데, 골수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반응은 그보다 몇차원은 위에 있었다.

“이거 드세요.”

지혁은 배치되어있는 생수 패트병 하나를 까드득 까서 그에게 내밀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사람처럼 후들거리면서도 지혁이 내민 물을 받아서 병나발을 부는 그의 모습이 사뭇 신기했다. 어쩌면 그냥 탈수현상일지도.

홍창식을 비롯한 일행이 다가와서 지혁을 도와 그를 부축해 의자에 앉혀주었다. 그는 몇분은 있다가 겨우 진정한 듯 보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떨려가지고.”

“아… 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그는 다시 물통을 들어서 꿀떡꿀떡 물을 마셨다. 작은 패트병 한통을 다 마셔버린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서는 말했다.

“저도 만화가가 꿈이고, 현재 열심히 실력을 키우고 있거든요. 그래서 제 우상과도 같은 조커 유 작가님이 제 앞에 있다니까 몸이 말을 듣질 않았어요.”

“이해합니다. 저희도 만화를 20년 넘게 그렸지만, 선생님을 만났을 때는 엄청 긴장을 했었거든요.”

옆에서 홍창식이 거들자, 그의 말을 들은 남자가 잠깐 멈칫하는 것 같았다.

“혹시… 홍창식 작가님?”

“네. 맞습니다. 저도 아시네요? 그것도 목소리만 들으시고….”

“아, 이틀 전에 제가 하이 토크를 구입했거든요.”

“아. 그렇군요.”

홍창식이 깨달았다는 듯이 말하자, 그는 옆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욱 작가님이실 거 같네요.”

“네. 맞습니다.”

그 뒤 남자의 시선은 남과 손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남선혁과 손현석은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누군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첫 날에만 천개가 넘는 부스가 운용되었는데 아무리 만화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곳을 모두 둘러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두 분같은 분들을 보조로 쓰실 수 있는 분이라고 하면 역시 조커 유 작가님 뿐이겠죠.”

“…….”

남자는 제멋대로 그렇게 말하면서 지혁의 정체를 의심할 수 없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지혁은 살짝 말문이 막혔지만, 만화 업계에서 홍창식과 이정욱의 입지는 보통이 아닐 것이니 아예 틀린 말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지혁이 부려먹으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사실 저도 어제 제 작품을 부스에서 판매했었거든요. 디어 바론이라고….”

디어 바론(Dear Baron)?

“설마… 클렌 씨?”

“저를 아시나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공모작품의 심사의 절반은 제게 지분이 있으니까요. 1차적으로 직원분들이 걸러서 저한테 보내주었기 때문에 응모해준 모든 분들의 작품을 봤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 이번 페스티벌에 출범하게된 작품 5천개는 전부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5천개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지혁이 암기력이 좋아진 편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5천개의 작품의 작자와 작품명을 모두 연상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디어 바론은 지혁이 심사했던 5천개의 작품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재미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래서 부스도 좋은 것으로 지급했고, 작가의 네임도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 그렇군요.”

“디어 바론, 재밌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어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디어 바론은 장편으로 이어나갈 수 있을법한 그런 스토리가 아니었다. 단편에 맞춰서 그려낸 듯이 깔끔하게 결말이 난 작품이었다.

“정말요? 정말 영광입니다.”

감격했다는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사인을 요청해서 해주었다.

“최대한 숨기시려고 한 것 같은 이미지는 있었습니다. 기존의 그림체는 거의 생각이 안날 정도로 화법을 바꾸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왠지 그냥 느낌이 좀 그래가지고… 사실 확신은 없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와본 것인데, 정말 맞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대단한 눈썰미가 아닐 수 없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혁의 작품을 사간 사람들 중에서 조커 유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고 찾아와서 물어보는 이조차도 단 한 명이 없었다.

감각이 극도로 발달한 사람이 아닌 이상 찾아내기 쉽지 않고, 솔직히 지혁 본인이 봐도 이제껏 그가 그려온 그림과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알면서 봐도 잘 모르겠는데,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그냥 다른 사람이라고 여겨야 당연할 정도로 차이가 심했다.

클렌, 아니 김현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봤다.

‘대단하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이었다.

“제가 생각하기에 디어 바론은 이어서 그릴 수 있을만한 이야기가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그렇지 않나요?”

“네. 물론 저는… 그 5천개를 넘게 팔았지만, 뒷내용을 쓰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연재 혜택은 과감하게 포기를 해볼까 합니다.”

작가로써의 소신. 지혁은 질질 늘여쓰는 것보다는 확실하다 싶을 때 끊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은 그가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였다.

“그렇군요. 그럼 저랑 합작이나 하나 하실래요?”

“하하… 네. 뭐 아쉽죠. 네… 네…?”

고개를 휙 돌리는 그를 보며 지혁은 가볍게 웃었다.

“여기 두 분은 원작자인 저의 허가를 받아서 미니게임천국을 웹툰으로 그려나가고 계십니다.”

지혁이 홍창식과 이정욱을 가리키자 김현우는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제가 연재중인 소설은 왕 하나뿐이고, 완결을 내버린 4개의 소설은 모두 웹툰화되었거나 드라마로 제작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서요. 그리고 저는 조만간 아르핀 2부의 애니메이션 영상을 세상에 선보이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소설 하나를 발표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심지어 은서도 모른다.

“참고로 현재 연재중에 있는 왕은 2차 창작에 관한 협의가 오고가고 있습니다. 제 소설은 모두 어떤 방식이든 재창조가 되는 것이 당연한 느낌이죠. 저는 새로이 하나의 소설을 시작하려고 준비중이고, 이제 연재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지혁이 소설을 발표하지 않은 것도 꽤 오래되었다.

생일날의 너에게, 아르핀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지혁의 수중에는 아직 소설들이 많이 남아있고, 지혁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그것들을 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쯤되니 김현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지혁이 하려는 말을 눈치챈 것 같았다.

“어떻게, 해보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아… 저.”

뭐 잠깐 본 것일 뿐이지만 김현우는 꽤 소심한 성격인 것 같았다.

지혁은 그가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보았다. 조커 유의 인기는 너무 크고, 거기에 편승해서 업혀가는 것조차 실력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지혁이 욕을 먹을 리는 없다. 아마도 원작을 해쳤다는 의미에서 작화를 담당한 김현우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게 될 것이다.

‘이미 그런 상태이지만.’

이형준과 이나은은 지혁의 작품을 꽤 잘 그려주고 있었다. 지혁이 확인도 해주고 있기 때문에 퀄리티가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관한 지적을 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적절한 비판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이것은 홍창식과 이정욱도 예외는 될 수 없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겠지.’

그런 상황을 알게된 지혁은 누군가에게 제의를 할 때 강제성을 띄지 않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조커 유의 소설을 웹툰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은 큰 기회일지도 모르지만, 리스크도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버린 것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김현우 같은 성격이면 그런 도박같은 것이 내키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커 유라는 인물의 체급이 워낙 커졌기 때문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는 분명 만화가로써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불과 어제 처음으로 자신의 만화를 통해 수익을 내본 작가에 불과하고, 조커 유는 전세계를 뒤흔드는 유명인이었다.

“그… 저는.”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지혁은 결국 유예시간을 주기로 했다.

“당장 결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을 드리죠.”

지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와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다. 조커 유의 번호를 얻은게 믿기지 않는 것인지 그는 입을 벌리고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말이다.

“기한은 다음주 일요일까지입니다. 잘 생각해보시고, 결정을 내리시면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