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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재능-111화 (111/116)

00111  Joker U Manhwa Festival  =========================================================================

10초만에 1000개 중 3개를 팔아넘겼다. 이 속도라면 1시간이면 판매가 다 끝날 것 같았다.

“두권 주세요.”

“하나 사고 싶은데요.”

“얼마에요? 오천원? 하나 주세요.”

5천원이 비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냥 덜컥 소비할만한 액수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다른 부스의 운용방식은 전시용 책을 읽어보다가 초반부의 내용이 마음에 들면 구입하는 식으로 되어있었다. 지혁 역시 전시용으로 6권이나 배치를 해두었다. 그런데 전시용을 펼치기도 전에 사람들이 구입을 하기 시작했다. 지혁은 예상을 빗나가는 상황에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고객들을 응대해나가면서 책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5천원입니다.”

“아… 저희는 천 권밖에 없어서 한분에게 3권 이상을 판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네. 최대 2권까지 구입이 가능하십니다. 네, 만원 받았습니다.”

왜 이렇게 오는 사람들마다 족족 읽어보지도 않고 일단 사는 걸까.

지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홍창식이 말했다.

“아무래도 걸려있는 표지의 그림체가 너무 좋아서 그런가 봅니다.”

지혁은 그의 말에 뒤를 돌아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았다. 표지는 특별히 더 신경을 쓰기는 했지만… 이런 그림 한 장 때문에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게 맞을까?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는 잘 그린 것이기는 하지만.’

엄청 공을 들였다고는 볼 수 없는데.

지혁의 기준이 너무 높은 걸지도.

“안녕하세요. 한 권 주세요.”

지혁은 그에 관해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손님들이 밀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저도 두권 구입해도 될까요?”

“네. 만원입니다.”

지혁에게 만원을 건네도 책 두권을 챙긴 홍창식은 희희낙락하는 모습이었다. 곧이어 그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핫’하고 감탄사 비슷한 것을 내뱉더니,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기색이었다.

“응…. 그쪽으로 오면 돼. 서둘러. 천권밖에 인쇄를 하지 않으셨다나봐. 나? 나는 이미 두권이나 샀지. 뭐? 지랄하지마. 내가 왜 피같은 두권중 한권을 너한테 넘겨야 되는데. 하나는 비닐도 안뜯고 미리 준비해둔 아크릴 판에다가 전시해 둘거고, 하나는 보고 싶을 때마다 볼 거라고. 그건 안 돼. 선생님이 한사람당 두 개씩밖에 구입을 못한다고 하셔.”

뭔가 엄청난 얘기가 들려오는 것 같은데.

지혁이 몰려드는 손님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리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되는(가면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홍창식이 찔끔하는 기색이었다.

“야, 끊어. 나 지금 선생님 도와드려야 돼.”

아니, 도움은 필요없….

이정욱이라고 생각되는 상대의 전화를 매정하게 끊어버린 홍창식은 서둘러 지혁에게 다가와서는 보조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지혁의 배는 나이가 많은데다가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만화가인 홍창식이 이런 잡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 자체를 못한 듯, 만화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은 그에게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다.

“어서오… 교수님.”

“크흠. 흠. 안녕하십니까.”

한창 정신없는 와중에 신동훈이 와서는 두 개를 채갔다. 물론 돈은 지불했다. 사재기를 할 생각은 애당초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2개로 제한된다는 얘기를 앞에서 했고, 그걸 들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는 기색이었다.

“와아!”

“사인해주세요!”

“…오천원입니다.”

그때, 갑자기 소란이 일어났다. 지혁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판매를 하는 와중에도 고개를 쭉 빼서 소란의 근원지를 살펴보려고 했다.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점점… 다가오는 거 같은데.’

착각이겠지?

지혁이 손님들을 응대하면서 그런 생각을 할 때, 여성들 특유의 비명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파는 지혁의 부스에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서는 줄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중심으로 원형을 그리듯 형성이 되었다.

뭔가 본능적으로 사단이 났다는 생각이 강하게 났다. 지혁이 말해줘서 오늘 지혁의 작품이 이곳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유명인 누군가가 온 것이 틀림없었다.

‘일단 생각나는 건….’

이나은과 임유선, 이형준. 남선혁과 손현석도 지혁이 오늘 부스에서 판매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그들은 이런 인파를 몰고다닐 정도의 유명인은 아니었다.

“…어서오세요.”

“죄송해요.”

지혁은 주위를 시끌벅적하게 한 장본인이 이나은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가면을 썼지만, 그녀의 긴 생머리만으로도 짐작하기에는 충분했다. 임유선은 최근 성우 오디션에서 단발보다는 조금 긴 정도의 느낌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한 모습을 보였고, 이형준은 남자다.

지혁이야 그렇게 소거법으로 그녀임을 알 수 있었지만, 다른 팬들은 어떻게 이나은을 눈치챈 것일까.

‘하긴….’

잠깐 그녀의 차림새를 훑어보던 지혁은 납득했다. 이나은은 너무 튀는 사람이었다.

“다섯 권 살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한 사람당 두 개만 구입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고 있어서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혁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그녀는 화들짝 놀란 듯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아, 아니에요. 제가 죄송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럼 두 권 주세요.”

“만원입니다.”

그녀가 만원을 건넸고, 지혁은 받아서 책 두권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더니, 딱 봐도 명품가방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열어서 두 권을 굉장히 소중하게 집어넣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을 남기고서는 후닥닥 사라져버렸다.

‘뭔가 폭풍이 지나간 듯한 느낌이네.’

우루루 몰려가는 인파를 허망하게 쳐다보던 지혁은 다시 다가온 손님에게로 신경을 돌렸다.

“형. 저희 왔어요.”

“한 사람당 두권씩만 살 수 있다.”

인사 대신 단호하게 한 지혁의 말에 그들은 흠칫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두 권씩 살게요.”

“이만원입니다.”

4개를 받은 그들은 바로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부스의 뒤에 남았다.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인 것 같지만, 지혁은 괜히 사람이 많으면 거추장스럽기만 할 것 같아서 그들을 내보냈다.

“네, 네? 사인이요? 저요?”

지혁에게 쫓기듯이 부스에서 나가게된 둘은 갑작스럽게 팬이 다가가서 사인을 해달라는 말에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여성팬은 첫째날에 책을 샀으며, 재밌게 읽었다면서 둘에게 사인을 재차 요청했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남선혁이 얼떨결에 답하고 사인을 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난리다.’

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정신없이 장사를 이어나갔다.

“선생님. 마지막 상자입니다.”

물건이 빠져나갈 때마다 상자를 까서 진열장에 그대로 보충해주던 홍창식에 말에 지혁은 ‘벌써?’ 라는 느낌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쌓여있던 박스들은 이미 납작하게 접혀서 한쪽에 잘 보관되어 있고, 홍창식은 상자에서 뜯어낸 테이프따위를 쓰레기봉투에 잘 정리하는 중이었다.

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이정욱이 나타났다. 홍창식이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이정욱은 두 권을 구입하면서 울먹이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정말 다행이다. 늦지 않아서….”

“…만원입니다.”

지혁의 말에 그는 돈을 지불하고 받은 책 두권을 품안에 꼬옥 안았다. 떨떠름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지혁은 다음 손님을 보고서는 말했다.

“마지막 손님이시네요. 한 권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살게요.”

그렇게 남아있던 한권까지 판매를 마치자 천 권이 모두 동나버렸다.

[ 판매완료 ]

팻말을 걸어둔 지혁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쉰 뒤에 패트병을 들어 물을 마셨다.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다 파는데 한 시간도 안걸렸다.

“저… 정말 죄송한데요.”

그때, 웬 남자가 다가와서 지혁에게 말을 걸었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던 그는 급히 기울였던 패트병을 내리고 머금고 있던 물을 꿀꺽 삼켰다.

“…네. 커험. 무슨 일이시죠?”

“혹시 이 전시용 책이라도 구입할 수 없을까요?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데.”

아.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읽어보라고 걸어두었던 여섯 권이 있었다.

“이건… 비닐이 까져 있는 거고, 몇몇분의 손을 타기도 한건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습니다. 사게 해주세요.”

“아, 네.”

“저도 사고 싶어요!”

“저도!”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든 사람들이 있어서 확인을 해보니 묘하게도 정확하게 여섯 명이었다. 지혁은 한 사람에 하나씩 팔아서 완전히 판매를 끝내버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거… 일당이라도 챙겨드려야 될 거 같은데.”

“아니요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홍창식은 극구 사양하는 모습이었다. 지혁 덕분에 매주 억단위의 돈을 버는 그이니까 받기도 민망하겠지만, 어쨌든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싶었다. 지혁은 공짜 싫어한다.

“어… 돈 말고 드릴만한 마땅한게 없네요.”

지혁이 그렇게 말할 때, 홍창식이 사인을 받을 수 있겠냐고 해서 지혁은 보수로 적절하다 싶어서 흔쾌히 수락했다. 그의 입장에서 사인 하나 해주는건 그리 큰 일도 아니다. 그러자 이정욱이나 남선혁, 손현석도 몰려들어가지고선 지혁에게 사인을 받아갔다.

“정말요?!”

“아, 그러시군요. 저희는 형의 대학교 동기입니다. 이번 페스티벌에도 참가를 해서….”

지혁이 부스에 배정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쉬고 있을 때, 넷은 사인을 받은 것에 기쁨을 감추지 않다가 서로 의기투합해서 통성명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기색이었다. 손현석과 남선혁은 지혁을 돕던 두 가면인의 정체가 홍창식과 이정욱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지 깜짝 놀란 기색이었다.

‘뭔가 보람찬데.’

변을 누다 만 느낌이 이런게 아닐까? 지혁은 괜히 천부만 찍어냈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장사를 해보았으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저….”

지혁이 앉아있다가 다시 손에 들고있던 패트병 뚜껑을 까서 물을 마시려던 찰나, 옆에서 조심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웬 남성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네.”

“조금 전에 여기서 만화를 샀던 사람인데요.”

뭔가 문제가 생긴 걸까? 지혁은 순간 심장이 철렁하는 기분이었다.

작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면서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이건 책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회수할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신경을 썼다.

“네. 혹시 뭔가 문제가 있었나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요….”

그는 손에 들고있는 지혁의 책과 지혁을 번갈아 보는 것 같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조커 유 님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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