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0 Joker U Manhwa Festival =========================================================================
[ 두 달 전부터 세계인의 관심을 끌던 JUMF가 오늘 만화의 시대가 개막되는 첫 포문을 열었습니다. 침체되어있던 한국 만화 산업으로는 있을 수 없을 정도의 규모에 앞으로의…. ]
JUMF의 첫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행사를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후기도 굉장히 좋았다. 깔끔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했고, 막대한 돈을 쏟아 붓기도 했다. 완벽주의 성향을 담뿍 담아서 조금의 차질도 빚어지질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다. 덕분인지 결과는 굉장히 좋았다.
[ 역시 조커 유다. 만화 업계의 선두 주자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
[ 그가 얼마나 만화를 사랑하는지는 이번 행사로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
기자들도 호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음식도 괜찮았던 모양이군.’
자리가 비는 곳이 많아서 간이음식점의 느낌으로 점포들을 여러개 내주었고, 메인 푸드 스트리트도 따로 2개나 배정을 했을 정도였다. 음식의 질에도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에 방문객들은 대체로 만족했던 것 같았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어서,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거나 빵이 식어있었다는 등의 없지는 않았으나 극소수였고 대체로 잘 관리했다고 볼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이 기대되는 걸.”
지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내일 있을 녹음의 일정을 점검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이 되어 지혁은 스튜디오로 출근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루치 녹음이 끝났다. 오전, 오후에 걸쳐서 빡세게 진행한 터라 지혁도 다소 지쳤다. 성우들도 빡빡한 일정에 내심 약간은 불만은 있는 것 같았으나, 지혁이 절대갑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그의 앞에서 내색하지는 않았다. 사실 아르핀이 워낙 인지도가 뛰어나다보니까 없는 안정도 생겨야 정상이었다. 아르핀이라는 작품을 하면서 성우들이 얻을 무형적 가치가 대체 얼마인가.
오디션에 붙어 정식 성우로 발탁이 되었다고는 하나, 지혁과의 트러블이 발생하게 될 경우 여차하면 그대로 대체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성우들이었다. 워낙 지원자들이 많았고,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보존할 필요가 있었다. 불편함 같은 것을 직접적으로 말로 하는 것은 굉장한 부담일 것이다.
물론, 1부에서부터 함께하는 성우들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미 캐릭터의 목소리가 자신의 것으로 굳어졌다고 해도 여차하면 바꾸면 그만이다. 사소한 불만으로 대들기엔 지혁이 너무 커버렸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이런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일에 전념하는 모습 때문이라며 존경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기는 한 것 같았다.
문화의 힘이라는게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최근에 한국의 위상이 급속도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고 한다. 해외여행을 가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접받았다는 영상을 찾아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미 1부의 녹음을 담당했던 성우들은 해외에서 대스타의 반열에 올랐을 정도라고.
또한 지혁은 아르핀의 자막을 다양한 언어로 적용을 해두었고, 원하는 언어로 자막을 킬 수 있도록 시스템적인 측면에서도 완벽함을 보이고 있다지만 그래도 목소리는 한국어였다. 아르핀의 팬이라면 절로 한국어라는 언어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세계에 한국을 알린 많은 스포츠스타, 연예인 등이 존재하지만 조커 유라는 작가는 혼자서 그 이상을 해낼 정도의 위용을 뽐내는 중이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하나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으니 말이다. 이미 1부는 회당 결제가 2억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아이디 하나로 돌려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안해서 잠정적인 시청자 수치를 추산하면 10억은 될 것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각종 매체에서 아르핀을 패러디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고, 아이펜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들도 너무나도 많다. 일일이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로.
“…….”
지혁은 건물의 옥상에서 연초를 피우며 밤이 내려앉은 도시의 야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차들이 꼬리를 물듯이 이어져간다. 수십, 수백개의 차량이 도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
그리고 저들의 대부분이 그의 작품을 좋아하고, 보기 위해서 주저하지 않고 돈을 낸다.
‘꼭 뭐라도 된 기분이란 말이지.’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1원씩만 받아도 수십억을 챙길 수 있을텐데.
어렸을 때 숫자의 관념이 생겼을 때, 우습게도 지혁이 했던 생각들 중 하나였다.
지금 지혁의 상황이 딱 그랬다.
꼭 왕이라도 된 기분.
“흥….”
지혁은 코웃음을 치며 뒤돌아섰다. 그는 그런 직위에 오르기엔 그릇도 너무 작고, 야망도 없는 인간이었다.
* * *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은 화려했다.
사람들도 다른 날보다도 유난히 더 많이 몰려들었다.
물론 3일째되는 날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지혁은 지속적으로 축제를 이어나가려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한시적인 이벤트라고 여길수도 있었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은 하루를 투자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이게 말이 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걷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지혁은 질렸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파를 헤치며 꾸역꾸역 나아갔다.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몰린 것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날에 조커 유가 직접 그린 단편만화가 출범할 거라는 예고를 했기 때문이다. 사실이기도 하지만, 사실과는 관계없이 그 소식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지혁은 오늘 아침까지도 아이펜에 따로 등재가 될 것이라는 말을 해야하나 고민했을 정도였다.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휴우….”
어떤 부스든 소란스러웠지만, 그래도 지혁의 부스는 비교적 조용했다. 그가 도착을 해야 장사를 시작하든 할 것 아닌가.
괜한 부스럼이 생기지 않게 그는 가면을 쓰고 왔다. 예전에 홍창식을 처음 만났던 그곳에서 썼던 것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도 장사 준비를 한 번 해볼까?’
솔직히 말하면 조커 유라는 이름을 걸고서 뭐만 했다하면 미친 듯이 팔려나가니까 재미도 감동도 없었다. 항상 전교 1등을 하는 사람의 기분이 딱 그렇지 않을까. 1위라는 성적이 대단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늘상 받아온 것이니까 적응해서, 그런가보다 여기는 것처럼.
지혁 역시 작품을 누군가에게 선보이고서 성과를 확인하고서 기뻐하는 단계는 아득하게 초월해 있었다. 예전에는 소설을 올리고나서 반응을 꼬박꼬박 확인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 너무 빤하니까 도리어 확인을 안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간 기분인걸.’
이게 사람이 부족함, 그러니까 결핍이 있어야 뭔가 더 작은 것에도 소중함을 느끼고 행복할 수 있는 것 같다. 돈이 넘치는 지금보다도 빠듯하게 생활비걱정을 해야했던 예전의 삶에서 소소한 재미를 더 많이 찾아나갔던 것이 생각이 난다. 물론 아무리 추억보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때보다야 풍족한 지금의 삶이 당연히 더 낫다. 그러나 돈을 너무 많이 버니까 모든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 너는 나중에 이때의 선택을 후회하는 날을 맞이하게 될 거야. >
벌써 신과의 만남도 꽤 오래전의 일이다. 현대에서는 2년. 룸에서의 시간까지 치면 20년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다. 물론 얼마전에 만났었던 것처럼 그와의 대화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고 그의 조언도 생생하다.
‘후회는 하지 않아.’
그와의 만남 이후로도 지혁은 열심히 살았다. 매 순간에 충실했고, 그로 인해 얻어낸 삶이었다. 거대한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서 가끔 외로움을 느끼곤 하지만, 그가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재능이 많았다고 한들 이렇게 빠른 시간만에 성장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하자 일.”
고개를 저어서 잡생각을 떨쳐버린 지혁은 쌓여있는 상자를 까서 안의 내용물을 차곡차곡 진열하기 시작했다. 사실 원래는 대리인에게 맡겨놓고 지혁은 구경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이래저래 생각을 해보니 그냥 직접 파는 것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인력을 구하지 않고 혼자서 부스를 운용할 생각으로 이곳에 왔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근데 아직 오픈 전이라서….”
그렇게 말하면서 지혁은 미묘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상대는 지혁의 표정을 볼 수 없겠지만, 그가 뭔가 이상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챈 것 같았다. 상대 역시 지혁처럼 가면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페케도…?’
아르핀 1부에 등장하였고, 4부까지 계속해서 출연하는 다람쥐같은 캐릭터였다. 혹시 수제 제작 뭐 그런 걸까?
“선생님. 저 홍창식입니다.”
“…예? 아…?”
“그때의 그 가면이군요. 그것 때문에 혹시나 해서 와본건데 역시나네요.”
아무래도 지혁이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처럼, 그도 역시 지혁의 목소리를 듣고 지혁의 정체를 알아챈 것 같았다.
그가 홍창식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혁은 찝찝했던 마음이 해소되자 곧장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판매는 조금 있다가 할 예정입니다. 아직 준비가 다 되지 않아서요.”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아, 제가 도와드릴게 있을까요?”
“아뇨… 괜찮….”
고작 천부일 뿐이었다. 양도 얼마 되지 않아서 지혁 혼자 하기에 충분했다. 지혁이 사양하려는데 그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는 지혁을 따라서 상자를 옮기고, 까서 진열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잠깐 멈칫하던 지혁은 그냥 하게 놔두기로 하고 자신의 일에 열중했다.
전부 까놓는게 아니다. 팔릴 때마다 상자를 개봉하는 형식으로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열작업은 끝났다.
지혁은 부스마다 지급되는 팻말을 ‘Closed’에서 ‘Open’으로 바꿨다.
“그러고 보니 작가님은 많이 파셨습니까? 제목이… 하이 토크 였나요?”
“기억해주셨습니까? 이거 영광이네요. 물론 하이 토크는 인기가 꽤 많았습니다. 이래저래 밀어주시기도 하셨으니까 당연히 성과를 내야하는 것이겠지요.”
유명한 작가들. 홍창식이나 이정욱, 이형준, 이나은과 더불어 이름난 만화가들에게는 대형부스를 제공했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판매량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2만부를 찍었는데, 하루만에 싹다 팔았습니다.”
2만부?
지혁의 20배나 되는 양인데 그걸 하루만에 다 팔아먹었단 말인가?
“그건… 대단하네요.”
“대단하지 않습니다. 네임밸류를 활용한 것이죠. 아마 선생님의 이름이라면 2억부도 노려볼 수 있을 겁니다.”
과장이 심해도 정도가 있다. 2억은 무슨.
설령 인터넷 판매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2억은 힘들 것이다. 애니메이션으로 큰 흥행성적을 누리었던 생일날의 너에게 웹툰버전조차도 아이펜에서의 결제 수치도 1억도 되지 않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한 작품이 억단위를 찍을 리가. 지혁은 대꾸할 필요도 없는 황당무계한 발언이라고 생각해서 입을 닫았다.
때마침 손님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부스를 기웃거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 방금 여는거 같았는데, 판매를 시작하나요?”
“네. 서서 읽….”
“하나 주세요.”
서서 읽어보시다가 마음에 드시면 구매하셔도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던 지혁은 다짜고짜 구매의사를 표명하는 여성을 보며 잠깐 멈칫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5천원입니다.”
그녀가 만원을 내밀자 지혁은 미리 많이 준비해둔 오천원권으로 거슬러주었다. 구입을 끝낸 그녀는 빠르게 사라졌고,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사람이 나왔다.
“두개 주세요.”
“아… 네. 만원입니다.”
원래 이렇게 일사천리로 판매가 되나? 지혁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