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9 Joker U Manhwa Festival =========================================================================
쟁쟁한 만화가란 만화가는 다 참가한 것 같다.
일주일간의 심사과정동안 지혁이 내린 평은 딱 그랬다.
‘어?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체….’ 라는 생각을 가지고 보면 역시나 익숙한 네임이나 이름들이 있었다. 문제는 그런게 한두개가 아니라는 것. 절반 가까이는 기성만화가들이 뛰어들어 만들어낸 창작물이었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 거겠지….’
그림을 잘 그리거나, 좋은 만화를 그려낼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만화를 그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그것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뒤처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만화가들이 입상을 해버렸고, 지혁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지혁은 선입견을 갖고, 색안경을 끼고서 작품을 평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최소한 공정성만큼은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내리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았어.’
사실 지혁은 기준점 이상의 작품은 전부 통과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했는데 때문에 무려 5천개의 작품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전시장이 워낙 커서인지 그래도 오히려 자리는 남았다. 따라서 부스의 크기를 크게 만들어줄 수 있었을 정도. 어찌저찌 자리 배분은 대강 끝냈고, 이제는 마무리작업만을 진행중에 있었다.
지혁은 처음부터 성대하게 열 생각을 가지고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그러나 지혁은 전국적인 붐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작품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 만화시장이 얼마나 규모가 작은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아마 이웃동네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더라면 2천개가 아니라 2만개는 거뜬히 넘겼을 것이다. 그곳에는 이미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정규 행사도 자리를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
“너무 많이 뒤쳐졌어.”
따라가면 된다. 조커 유라는 불세출의 만화가가 한국인인 이상 한국의 만화산업은 앞으로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디보자….’
축제는 3일에 걸쳐서 진행되고, 모든 작품은 하루동안만 부스를 받게 된다. 실제로 운용되는 부스는 2천개도 되지 않는 셈. 물론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아쉽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
* * *
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하늘이 돕는 것처럼 날씨는 짱짱하기 그지없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아침부터 햇살을 맞으면서 일어난 지혁은 이른 오전부터 방문객들을 받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단한 건 아니고, 지혁을 변장시켜줄 사람들이었다.
물론 지혁이 조커 유라는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허나 챌린저 유도 나름대로 유명인. 괜히 갔다가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변장을 시도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변장이라고 보다는 분장이 더 어울리겠지만.
“괜찮네요.”
2시간 정도의 시간에 걸쳐 코디를 받은 결과 지혁은 짧은 은발에 사선으로 검을 착용하고 있는 제단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의상만은 특수제작을 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검은색 정장을 입었지만, 그래도 느낌은 풍겼다. 만화 축제니까 이런 코스프레 역시 빠질 수는 없으리라. 솔직히 지혁은 제단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대단히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현재 가장 인기있는 남자 캐릭터 중에 하나니까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가볼까.’
시찰의 느낌이었다.
‘축제네.’
사람이 많고 떠들썩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지혁이지만 지금 보이는 광경은 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행사장에 도착한 그는 이것저것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미 오전 11시를 넘겨가는 시점. 축제는 한창이었다.
입구부터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남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조금 과장하면 사람들 때문에 걸어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인파가 바글거렸다.
“사람이 너무 많아….”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걷던 지혁은 누군가의 사진요청을 받게 되었다. 정장을 입은 제단과 사진을 찍고 싶다는 것 같았다.
“너무 잘생기셨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구름떼같이 몰려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진요청을 한 여성과 포즈를 잡게된 지혁은 사진을 찍어주고서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순서를 지켜주세요!”
이곳에 존재하는 작품들은 지혁이 채점한 것들로만 구성이 되어있다. 따라서 내용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지혁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작품을 판매하는 구조라던가, 돌아가는 상황 등이었다.
입구를 벗어나서 한적한 섹션으로 들어섰다. 사람은 여전히 많았지만, 그들은 천개가 넘어가는 작품들 중에서 뭘 골라서 구매해야할지를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어? 형!”
“여.”
좀 걷다보니까 남선혁과 손현석의 부스가 있는 섹션에 이르게 되었다. 지혁은 손을 들어 가볍게 인사를 하고서는 판매대를 지키고 있는 손현석에게 다가갔다.
“형의 최애는 제단이었나요?”
“…응? 아. 아니. 그냥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어. 선혁이는?”
“화장실 갔어요. 긴장을 많이했는지 아까부터 계속 배가 아프다더니 결국….”
지혁은 말끝을 흐리는 손현석을 보며 웃음을 머금은 뒤 그들의 부스를 둘러보았다. 상자가 그득한 것이 꽤 많이 인쇄를 해온 모양이었다. 하루동안 팔기에는 부담될 양으로 보이는데.
“…이거 다 팔 수 있겠어?”
“해봐야죠. 입소문이 나면 가능할 거라고 보고 있어요.”
무명에 불과한 그들의 작품은 결국 지나가는 사람들이 읽어주고, 구입을 해야만 성적을 낼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 아니면 부스의 벽면에 걸어둔 그림 한 장으로 관심을 끌어 모으거나.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손현석이 그림체가 나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림만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라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확인한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몰려들 사람들의 1%만 이곳에 관심을 가져줘도 다 팔린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서, 많이 팔렸어?”
“그럼요. 벌써 250권정도 팔았어요. 점심시간이 돼서 살짝 한가해진 거죠. 아, 어서 오세요.”
찾아온 손님에게 인사하는 손현석을 보던 지혁은 슬쩍 물러나서 다른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알고보니 사람들이 원래 만화라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것인지 아니면 조커 유가 관련이 되어있다고 하니까 일단 와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행사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응?”
걷다가 뭔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김찬욱이 있었다.
‘…이게 김찬욱이 그린 거였나.’
그림 솜씨는 출중한 그다. 지혁은 전시되어있는 작품의 표지를 보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어…?”
“공부는 어쩌고 수험생이 여기 있나?”
“자… 아니 형님!”
김찬욱은 지혁의 등장에 진심으로 놀란 것 같았다. 그는 보조로 자신의 여자친구인 한지은을 데리고온 것 같았다.
지혁은 그와도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이곳에는 순수한 창작물만 있는 건 아니었다. 기존에 유명작들의 세계관을 차용해서 쓴 경우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혁의 작품을 패러디한 작품들이 굉장히 많았다. 페스티벌의 이름에 어쨌든 지혁의 이름이 들어간데다가 규정상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2차 창작물로 응모를 한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던 것이다. 물론 19금 만화는 직원들 선에서 걸렀다.
김찬욱 역시 웹툰으로 연재중인 후유가를 패러디한 그림으로써 합격한 케이스였다.
“너 정말 후유가 좋아하는구나.”
지혁은 그의 만화책을 슬쩍 들어올려 표지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쪽은 흥행성적이 상당해보였다. 지혁과의 이야기를 위해서 잠깐 짬을 냈던 김찬욱은 몰려오는 손님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그를 놔두고 응대를 하러 가버렸다. 부스 뒤켠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혁은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원작품들의 인기가 안 좋은건 어쩔 수 없다는 건가.’
지혁의 작품을 재구성한 것이나, 외전격으로 그려낸 이야기들이 자리한 부스들이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본편 이외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에서 팬심이 작용한 것 같았다. 심지어 개중에는 오전시간만에 인쇄본을 싹 다 팔아버려서 ‘판매완료’라고 적힌 팻말을 걸어둔 곳도 보였다.
“작가님!”
이나은의 부스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지나가던 지혁은 용케 제단의 모습을 하고있는 지혁을 알아보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를 부른 이나은에게 다가갔다.
“벌써 다 파셨어요?”
“네. 2천부나 뽑아왔는데 순식간에 없어졌어요. 30분도 안 걸렸는걸요.”
분명… 이나은의 작품은 미니게임천국을 패러디한 것이었던가?
“작가님이랑 홍창식, 이정욱 선배님들 드릴건 따로 빼놨습니다.”
“아… 네. 고맙습니다.”
지혁은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최근 후유가의 웹툰을 담당하게 된 이나은은 인기가 엄청났다. 게다가 미모도 굉장히 뛰어나질 않은가. 특별히 몇몇 부스에는 혼란을 방지하기위해서 경호원을 배치해야만 했는데, 그녀의 부스에는 무려 세 명의 경호원이 자리한 상태였다. 아마 이나은이 먼저 지혁에게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지혁은 그들에게 막혀서 그녀에게 접근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후에는 그냥 사인회를 하기로 했어요. 부스를 방치하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다른 선배님들처럼 과감하게 만부씩 인쇄를 하는건데… 신인이라서 그런지 제가 너무 겁을 먹었나봐요.”
“줄이 길게 늘어져있었을 것 같은데요. 저런데처럼.”
지혁이 홍창식의 부스라고 생각되는 지점에 줄이 아주 길게 늘어있는 것을 가리키며 말하자 이나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줄을 섰는데 사가지 못한 분들은 울먹이시더라고요. 그걸 보고있자니 너무 죄송해가지고 급하게 일정을 추가했어요. …혹시 문제가 될까요?”
“아니오. 잘하셨습니다.”
이나은은 쉬지 않고 떠들었다. 솔직히 지혁은 그녀와 별로 할만한 이야기가 없었기에 떠나려고 했는데, 그녀가 어찌나 화제를 잘 이어나가는지 시간가는줄 모르고 멈춰서선 이야기를 했다.
후유가의 작가 이나은이라는 것을 깨달은 팬들이 그녀의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보겠다고 근처를 서성이고 있다가 그런 지혁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저는 이만….”
“아, 잠시만요.”
이만 가려던 지혁은 그를 붙잡는 목소리에 돌아서던 몸을 멈췄다.
“저… 혹시 작가님께서는 따로 출품하신 작품이 없나요?”
여러모로 관심이 많이 모이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자신이 행사를 주체했다고 해서 작품을 내면 안되는 건 아니다. 조커 유는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이고, 굳이 이런 단편만화 축제를 열 이유가 없다는 근거를 들고서 조커 유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을 바라고 축제를 기획했다는 음모론이 나돌고 있었다.
물론 지혁이 작품을 내놓을 예정이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축제를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아. 있습니다.”
“저, 정말요?”
“네. 뭐… 조커 유의 작품인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를 알고 싶어져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건 거짓이지만. 저 역시 그린 작품이 있기는 합니다. 판매할 생각이고요.”
잠깐 지혁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아래로 내리면서 생각에 잠긴듯한 이나은은 다시 그를 올려다보았다.
“판매할 생각이시라는 건 오늘은 아니라는 거군요?!”
나 예리하지. 라고 말하는 듯한 우쭐대는 표정에 지혁은 피식 웃었다.
“네. 마지막날에 팔겁니다. 말했듯 평가를 원해서 작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서 알려져도 상관은 없습니다.”
“이틀뒤에 꼭 다시 와야겠네요.”
지혁은 잠깐 눈동자를 굴리다가, 싱긋 웃었다.
“그러는게 좋을 겁니다. 천 부 밖에 찍어내질 않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