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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재능-108화 (108/116)

00108  Joker U Manhwa Festival  =========================================================================

이승현이 전역했다.

“형. 고생했어.”

“고맙다. 니가 와준 걸로 세상을 얻은 기분이구나.”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출을 나와 지혁과 같이 오디션의 준비를 했었던 이승현이었다. 헛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그를 쳐다보던 지혁은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무언가를 건넸다.

“이게 뭐야?”

“전역 선물. 파킷의 대사야. 형이 오디션을 봐야할 캐릭터의 이름이 파킷이고, 이건 2부에서 파킷이 겪게될… 정확히는 형이 연기해야할 대사와 상황 등을 내가 모아온 거야.”

전역 선물로는 이게 최고일 거라 생각했다. 일주일 정도 뒤에 오디션이 있으니까, 그때까지 이승현은 탄탄하게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지혁은 그가 아무리 요청해도 보여주질 않았었다. 공정함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그게 더 실력의 증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직 다른 지원자들은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만 대사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큰 메리트였다.

“고맙다. 지혁아. 진짜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승현이기 때문에 정말 감격한 것 같았다.

“미리 말하는데, 나는 실력대로 뽑아. 형이라고 예외는 없어. 더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형은 탈락하게 될거야.”

“알아. 설령 떨어지더라도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테니까 걱정하지마. 그리고 내 스승이 누구인데 설마 떨어지기야 하겠어?”

말은 잘하네.

“이정도까지 해줬는데 떨어지면 그땐 정말 각오해야지.”

지혁의 말에 자신감에 차있던 이승현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어쨌든 자신감이 있어 보이니까 나쁜 건 아니다. 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차에 타라는 의미였다.

“일정에 변경은 없어. 10월 7일부터 1차 오디션이 시작될 거야.”

*                 *                 *

오디션장.

의자에 앉아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대본을 뒤적이고 있던 지혁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연중에 그를 주시하고 있던 수많은 참가자들이 간단한 사담을 나누는 것을 대부분 멈췄다. 따로 통제를 하고 있지 않아서 다소 시끄러웠던 곳은 일시에 조용해졌다.

“잠시 주목해 주시겠습니까?”

기존에 있던 캐릭터들의 성우들은 바뀐 게 없이 그대로 간다. 그러나 2부가 되면서 새로이 추가되는 캐릭터들이 꽤 많았고, 그것 때문에 이번에도 대대적인 오디션을 치러야 했다. 1부의 오디션에서 떨어진 성우들은 절치부심해서 오디션장을 찾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기세는 한층 더 날카로웠다.

지혁이 그들의 앞에 섰음에도 그들은 이전처럼 설레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오디션 일정이나 진행방식을 듣는 것에 더 집중하려는 듯 자세부터 고쳐앉고 있었다.

이전에 오디션을 봤던 사람들은 그렇다는 얘기였다.

“……?”

새로이 오디션장에 참석한 뉴페이스들은 지혁이 나서자 얼떨떨한 것 같았다. 예전처럼 어린 사람이 갑자기 나와서 분위기를 잡자 당황한 듯한 느낌이 조금 있었다. 설마 지혁이 책임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지혁이 일어나서부터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에 그들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기색을 보이다가 지혁의 음성과 함께 작은 소음조차도 들리지 않게 되자 긴장을 하는 모습이었다.

아르핀은 엄청난 인기를 끄는 애니메이션이고, 성우가 얻어가는 페이도 억단위에 달한다. 그와 더불어 아르핀의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성우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커리어인 셈이었다. 명예를 떠나서 그것은 앞으로의 성우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대한 스펙이었다. 당연히 참가한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들을 잘 알고 있기에, 약간의 실수도 하지 않도록 설명을 제대로 들어야할 필요가 있다.

“반갑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정식으로 소개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아르핀의 원작자인 조커 유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지혁이 산뜻하게 인사하자, 성우들이 열광했다. SNS 팔로워 수가 1억을 넘은 셀럽. 조커 유가 그들의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것은 아니다.

지혁은 뒤늦게 헛바람을 들이키며 입을 틀어막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람들 몇몇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디션은 예전과 대체로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이 될겁니다. 총책임자는 저이며 참관해주시는 분들로는 임유선 씨와….”

지혁은 1부에서 핵심 주연 캐릭터들을 맡았던 성우들을 소개했다. 그들은 오디션을 볼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지혁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여 이 자리에 나왔다. 당연히 오디션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오디션이 시작되고, 장내엔 긴장감이 맴돌았다.

지혁은 이번에는 특이하게, 배역에 지원한 지원자들 모두를 모아놓고 심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주연부터 시작되었는데, 가장 처음은 파킷이었다.

파킷은 냉철한 인물로써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연기 난이도가 낮다고는 볼 수 없다.

‘…훌륭해.’

파킷의 지원자는 무려 18명. 그러나 지혁의 마음에 드는 건 이승현이었다.

“이분이 제일 괜찮은 것 같아요.”

승현과 친분이 있는 지혁이나 임유선을 제외한 다른 셋에게도 승현은 고득점을 받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첫째날의 오디션이 종료되고, 도움을 주었던 성우들은 지혁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 다음날부터 다시 시작된 오디션은 무난히 진행되었다. 별다른 사건사고는 없었다.

뽑을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결국 예정대로 잘 마쳤다. 순탄하다못해 잔잔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부적인 분위기였다.

외부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나 있었다.

지혁은 아이펜을 통해 공식적인 오피셜을 날리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면, 11월 1일부터 아르핀의 2부의 상영이 시작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수뇌부인 지혁을 비롯하여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오디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조차도 정확한 방영일자는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실이 외부로 세어나갈 일은 없었다.

하지만 오디션이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 정확히는, 오디션을 위해 지원자를 받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사실이 탄로가 나 버렸다. 그 사실은 처음에는 한국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갔으며, 채 몇시간이 되지도 않아 전세계를 달굴 정도의 대사건으로 번져버렸다.

반응은 다양했다. 벌써 2부의 상영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더러 존재하였으며 그들은 극단적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짧은 준비기간이 작품에 영향이 갔을 것이라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아르핀은 작화진을 갈아넣어도 만들기 힘들 정도의 예술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하는 말이었고, 그만한 분량을 고작 몇 달만에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 네. 오디션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가 되었어요. ]

임유선이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진행경과를 청취자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사전에 지혁에게 그 사실을 말해도 되는가에 대한 여부를 물어왔다. 조심스러운 태도에 지혁은 시원하게 괜찮다고 답변을 해주었고, 그래서 그녀는 지혁의 허가가 떨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당당하게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 아, 녹음은 조커 유 선생님께서 11일부터 25일까지 2주에 걸쳐서 진행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쉬는 날은 18일 딱 하루라고 하셨고요. ]

[ 아 그렇군요. 18일이 휴무일인건 혹시 이번 페스티벌과 관계가 있는 걸까요? ]

[ 아…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

[ 근데 아르핀 2부도 1부와 비슷한 화로 구성이 되어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

[ 네. 제가 살짝 여쭤봤는데, 1부와 동일하게 28화라고 하셨어요 ]

[ 아 그렇군요. 근데 2주만에 28화에 달하는 분량의 녹음이 가능한가요? 하루에 2화씩 녹음을 마쳐야 하는 셈인데요. ]

[ 네. 조금 촘촘한 일정이긴 한데, 선생님은 그런 느낌을 선호하시는 것 같아요. 1부 때에도 시간이 많지는 않았었습니다. ]

이야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라디오 진행자는 청취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녀는 아르핀 2부에 초점을 맞춰서 임유선에게 다양한 질문을 날렸고, 임유선은 모르는 것은 잘 모르겠다고 답하고, 아는 것들은 최대한 성실하게 답변해주는 모습을 보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이끌어냈다. 서로에게 윈윈인 셈이었다.

‘뭐, 나도 나쁠 건 없지.’

아무리 아르핀이 홍보가 필요없을 정도의 인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홍보를 안하는 것보다야 하는게 더 나은 법이었다. 게다가 지혁의 대리인 느낌으로 사람들의 궁금증을 다소 해소해주는 것도 그의 입장에서는 괜찮았다. 어차피 임유선이 알고 있는 정보는 제한된 편이고, 그녀가 알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공개해도 상관없는 것이니까 필터를 거칠 필요가 없다.

[ 그건 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1부 당시에도 녹음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상영이 시작되었으니까 올해가 가기 전엔 방영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 네 감사합니다. ]

거기까지 들은 지혁은 라디오를 종료했다. 호기심에 들어보았는데 나쁘지 않았다. 할 말은 대충 다 한 것 같기도 하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최소한 하루는 즐겨봐야 하지 않겠어?’

지혁은 페스티벌의 첫날인 16일에는 오전만 시간을 잠깐 빼서 구경하고 오후에는 녹음작업을 진행할 생각이고, 18일은 아예 통으로 빼서 만화 페스티벌을 관람하는 것에 일과의 초점을 맞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성우들 역시 그날 쉬는 것이 다행이라는 모양이었다. 이번에 열리는 페스티벌에 그들도 참가하고 싶다는 듯.

‘너무 바쁘구만.’

녹음기간에는 학교를 빼먹어야했다. 어쩔 수 없는 일. 물론 신동훈에게 사정을 설명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 사실 성적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일단 말은 해볼까 하는 생각에 찾아간 거였는데 그는 아주 잘 처리를 해주었다.

“진짜 꼭 쉬어야지.”

일에 치여사는 삶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는 지혁도 충분히 만끽하고 있기에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는 살짝 지쳤다.

지혁은 페스티벌도 끝나고, 아르핀 2부의 녹음작업이 끝나고나서 2학기 과정도 잘 마무리되기만 하면 겨울동안은 작업활동을 비롯한 모든 일들을 이것저것 정리를 좀 해놓고서 푹 쉴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예전부터 계속 쉬어야지, 쉬어야지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실천하지는 못했었다. 무엇보다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챌린저 유는 나름대로 좀 유명한 편이지만, 국내도 아니고 해외를 여행하는데 무리가 갈 정도의 인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 그의 진짜 정체, 조커 유라는 사실이 밝혀질지를 모르는 상황이니까 마음대로 관람할 수 있을 때 즐겨둘 필요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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