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6 Joker U Manhwa Festival =========================================================================
“형. 너무 재밌어요!”
손현석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지혁은 그러냐며 대강 대답해주며 휴게실 자판기 앞에서 검지 손가락으로 무엇을 뽑아먹을지 고르고 있었다. 사실 지혁에게 손현석의 반응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혁이 굳이 번거롭게 그들의 스토리를 각색해가면서 만화를 그려낸 것은 순전히 남선혁을 위해서였다.
“근데 그림을 왜 이렇게 대충 그리셨어요? 시간이 없어서 그런가?”
“…조금 귀찮았거든.”
지혁은 그렇게 말하며 남선혁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그저 전형적인 전개를 따르고 있던 그의 스토리와 지혁이 보여준 만화의 내용이 같은 소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전혀 다른 연출을 해내고 있다는 것에 놀란 것 같았다.
덜커덩.
이온음료를 뽑아든 지혁은 캔을 들고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 앉았다.
“남선혁.”
“네, 네?”
“어때.”
지혁의 말에 그는 잠깐 멈칫하는 기색이었다.
“내가 난데 하고 남의 의견을 들어먹지 않을 정도로 잘났냐?”
“…형.”
어제의 일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 남선혁은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나도 아직 스토리적인 측면에서 내가 완성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매일매일 생각하고, 학습하려고 하며 배우려고 하고 있다고.”
“그거야 당연….”
이제 막 대학생이 된 그들에게 완숙한 실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당연히 무리다. 남선혁은 지혁을 그저 그림 좀 잘그리는 형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테니 지혁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을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지혁은 그의 실력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태도가 문제였다.
지혁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남선혁의 말을 끊으면서 말했다.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지금껏 내가 해왔던 것들은 그대로 쌓여가, 지금 너랑 대화를 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수십, 수백만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겠지.”
“네? 그게 무슨….”
허업,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손현석의 것.
‘역시나.’
손현석은 막연하게, 어쩌면 지혁이 조커 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예전의 태도로 그런 느낌을 받았던 적은 있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눈치가 빠른 편이었고, 그림에도 관심이 많았다. 지혁이 최대한 숨기려고 해보았지만 조별과제에서 그는 지혁의 솜씨가 범상치 않은 것과 더불어 은근히 조커 유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남선혁과 다르게 그는 예리하다.
“나는 조커 유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만들어냈지만, 지금도 매일매일 수십여개의 웹툰을 보고 늘 새로운 이야기를 생각하며 현재의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애쓰고 있어. 단 한 번의 실패도 겪어보지 않은 나도 말이야.”
지혁이 직접적으로 정체를 밝히자 이번에는 남선혁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너한테 그런 노력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는 건 니가 가장 잘 알겠지. 니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매도하려는 것도 아니고.”
지혁은 다소 가라앉은 눈으로 남선혁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단지… 너는 최소한 남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을 자세는 갖춰두었어야 했어.”
지혁은 캔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실력이 없으면 의지라도 있어야 할 거 아냐.”
이전의 조별과제의 스토리를 담당했던 남선혁은 어쩌면, 교수의 극찬을 받았던 것에 자신의 스토리도 큰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재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 특출난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 평범한 작품. 흔한 전개.
그게 남선혁이라는 인물이었다.
“…….”
지혁이 질책하듯 남선혁을 쳐다보다가, 일어나선 캔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캔이 요란한 소리를 내었고, 손현석에게 다가간 지혁은 가방을 들어올려 메면서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나 오늘 먼저 집에 가야겠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자.”
“아… 네, 네 형.”
수업이 하나 남아있었지만, 지혁은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물론 지혁은 정말 남선혁에게 실망한 것이 아니다. 딱히 그의 태도에 기분이 나빴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어제 작업을 하는 것이 하기 싫었을 뿐, 별다른 악감정은 없었다.
그저, 충격요법으로 남선혁을 성장시켜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는 할만큼 했어.’
이래도 안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지혁은 코너에서 꺾으면서, 옆을 힐끔 쳐다보고서는 둘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지혁이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남선혁은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 * *
지혁은 솔직히 정체를 밝히는 것에는 좀 회의적이었다.
딱히 그의 정체를 숨기고 싶었다는 생각까지는 아니다. 다만, 지혁이 ‘조커 유’이기 때문에 억지로 납득한다는 식의 전개가 이루어질수도 있다고 판단했었다.
“죄송합니다 형.”
그러나 남선혁은 다행히 자기가 무엇이 잘못되어있는지를 생각해본 것 같았다. 심성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굳혀진 버릇, 인식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기 때문에 자각만 한다면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부류의 것이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지만, 반대로 말하면 변하긴 한다는 뜻이었다.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바뀌는 법이다.
재능이 있고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살아서는 안 된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가 우물 안의 개구리여서 되겠는가. 지혁은 그 사실을 깨우쳐주려고 했었던 것이다.
“알면 됐다. 화는 안 났으니까 너무 미안해하지는 말고.”
“…고맙습니다.”
지혁은 항상에 가까울 정도로 대부분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는 남선혁이 시무룩해져 있자 괜히 농담을 던졌다.
“내가 그거 그리는데 1시간 반이나 걸렸다. 내가 시급 수십억인 사람이야. 평생에 걸쳐서 갚아라. 알겠냐.”
“네, 형.”
“농담이야.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냐.”
지혁이 그렇게 남선혁과 대화를 나누니, 분위기가 다소 풀렸다는 것을 깨달은 손현석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형. 진짜 조커 유 맞는… 거죠?”
“그래. 아, 증명을 해야 되나?”
그냥 나 조커 유요 라고 말하면 덥썩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건 신용과는 다른 문제다. 조커 유가 너무 커버린 것이다. 당연히 결과를 보여줘야하는 것이 맞고.
“자.”
지혁은 최근 SNS에 가입한 것이 이런 식으로도 쓰이네 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면서 인별의 계정에 접속해서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얼마전에 그들이 지혁의 계정을 팔로우했다느니 하는 말을 떠들어대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확실한 증명법이라고 여긴 것이다.
“진짜…네요.”
지혁의 인별은 이미 팔로우 수가 1억을 넘겼다. 듣기로는 이례적인 성장세라는 것 같다. 물론 관심은 없었다. 지혁은 예전에 은서가 왔을 때 이후로 추가적인 게시물을 게재한 적이 없다.
지혁은 손현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넌 대충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아니…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죠. 나이도 같은데다가… 1학기때 과제할 때 너무 작풍이 생일날의 너에게 웹툰버전이랑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현재까지 지혁이 그린 유일한 만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비교적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홍창식, 이정욱의 미니게임천국보다도 결제율이 훨씬 높기도 하다. 물론 만화의 분량이 많지 않으니까 총수익으로 치면 생너가 뒤처지겠지만, 화당 평균 결제율은 생너가 미니게임천국의 배 이상이었다.
“넌? …전혀 몰랐나보네.”
“전 진짜 생각도 못했어요.”
남선혁은 지혁의 예상대로 아예 염두조차 안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됐다. 저번처럼 어떻게 그런걸 숨길수가 있어요! 라고 안하는걸로 봐서는 조커 유라는 이름값이 챌린저 유랑은 격이 다르다는건 잘 알겠네.”
“그러고 보니… 챌린저 유랑 조커 유랑 동일인이라는 게 알려지면 난리가 나겠는데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지게 되면 방송이 터질지도 모르지.”
“이 사실, 무덤까지 갖고 가겠습니다.”
결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엄숙한 선서를 하듯 말하는 손현석을 보며 지혁은 피식 웃었다.
“개뿔. 나는 딱히 내 정체를 감추는 것에 크게 공을 들이고 있지는 않아. 그냥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일 뿐이야.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게 되겠지. 물론, 너희들이 원인이 돼서 알려지기를 바라지는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대충 이야기를 마치고 비밀엄수의 서약을 받아낸 지혁은 화제를 전환했다.
“어쨌든 잘해봐. 아는 애들이라고, 친하다고 심사를 대충하지는 않을 거야. 예전의 그 작품 그대로 가지고 오면 바로 퇴짜 맞을 테니까 그리 알고. 적어도 심사할 때는 조커 유로써 제대로 해준 거였어.”
“혹시 형의 스토리를 써도 되나요?”
지혁은 움찔했다.
이 제안을 남선혁이 했기 때문이었다.
“제 이야기로는 안될 거 같아서요…. 안될까요?”
일단, 지혁의 의도는 제대로 먹혀든 것 같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지혁은 기분이 좋아졌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아니, 돼. 근데 너희가 새로 다시 그려야 돼. 완전히 똑같은 내용이어서도 안 되고.”
“그거야 당연하죠.”
지혁은 그 다음, 잠깐 말하기를 주저했다.
“그리고… 만약 입상을 하게 된다면 이야기를 이어그려내야 할텐데. 그때는 내가 이번처럼 도와주진 않을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바탕은 남선혁의 것이라지만, 결국엔 지혁이 재구성한 전개였다. 앞으로도 계속 그러한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에요.”
지혁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뭐, 그럼 잘 해봐. 아, 검수 정도는 해줄 수 있어.”
“정말요? 감사합니다 형!”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경직된 모습에서 얼굴을 활짝 피는 남선혁을 보면서 웃은 지혁은 손현석을 쳐다보았다.
“다만 내 이름을 넣는 건 안 돼. 그냥 너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든 걸로 가. 왜 그런지는 알지?”
“네. 형의 정체가 탄로날수도 있으니까….”
완벽하게 이해한 것 같군.
지혁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치즈 돈가스는 어떤 분이세요?”
그때 때마침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다. 지혁은 손을 들어올리며 남선혁을 쳐다보았다.
“계산은 니가 해라. 내 한 시간 반은 이걸로 퉁쳐줄테니까.”
“10억짜리 돈가스네요.”
손현석의 말에 음식을 가져온 아주머니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손현석이 가장 먼저 웃고, 지혁도 따라 웃었다. 남선혁 역시 뒤늦게 웃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