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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재능-105화 (105/116)

00105  Joker U Manhwa Festival  =========================================================================

“안 돼.”

“예?”

짤막하게 대답한 지혁은 다시 시선을 내렸다.

물론 손현석은 은근히 자존심이 쌘 편이다. 아마 지혁의 실력에 업혀서 가자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 성과를 내는 것을 추구하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단지 그는 남선혁과 지혁이랑 친하게 지내는 동기의 느낌으로 제안을 한 것일 터였다. 지혁이라고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나는 혼자서 도전해보려고. 둘이 같이 해봐. 사실 이미 거의 다 그려놨거든.”

지혁은 독자적인 작품의 출품 이외에 누군가와 합작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미리 정해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번복할 생각은 없다.

지혁의 단호함을 느꼈는지 손현석은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하긴, 형은 워낙 빨리 그리시니까…. 형의 그림실력이면 입상은 따놓은 당상이겠네요.”

“글쎄….”

지혁은 만화가 그림체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림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몰입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얼굴이 찌그러져 있다거나, 색이 화려해서 난잡하게 여겨져 읽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드는 느낌 같은게 아니라면 선으로 인간을 표현한 다소 성의없게 느껴지는 만화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지혁은 주최자의 권력을 남용할 생각은 없었다. 지혁의 작품 역시 심사과정을 거쳐야한다.

물론 굳이 말해봤자 무엇하겠는가. 그는 세간에서 역사에 남을 위대한 창작가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조커 유다. 그의 만화가 부적합하다면 대부분의 만화가가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건 겸손이 아니라 자신감의 부족이니까. 이미 어마어마한 성과를 내고 있는 지혁은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다만, 지혁은 자신에게 좀 까다로운 조건을 두기로 했다.

만화의 선별은 지혁의 평가와 아이펜의 직원들의 전체적인 평가가 합쳐져서 이루어진다. 지혁은 거기서 직원들에게 최고점을 받지 않는다면 출품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기 작품을 자기 자신이 평가하면 언제나 100점을 주는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래 작자라는 건 그런 것이다. 따라서 그의 평가는 논외. 타인의 평가로써 공정하게 평가받을 생각이다.

물론, 떨어질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있다.

“그림이 전부는 아니니까.”

지혁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가볍게 웃었다.

“형. 그러면 저희 작품이 완성되면 평가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평가?”

지혁이 드물게 화면에서 시선을 떼면서 손현석을 쳐다보며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부분은 좋다. 어느 부분이 안 좋다. 이런 거요.”

“그거야 뭐….”

사실 지혁은 좀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점프의 작품 심사엔 지혁의 평가가 50%나 반영된다. 그리고 지혁은 자신의 주관적인 평가가 굉장히 객관적인 느낌으로 적용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좋은 평가를 내린 작품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좋게 인식할 거라는 확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제출 전에 지혁으로부터 의견을 듣고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큰 혜택일지 이들은 알까. 그러나 그 정도야 지혁이 직접적으로 작품의 창작에 개입했다고는 볼 수 없으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친하게 지내는 애들인데 이 정도의 도움은 괜찮지 않을까.

“고맙습니다 형.”

지혁은 1학기 때의 과제에서 그림 실력 이외의 부분에서 그렇게 큰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손현석은 대체 지혁의 뭘 믿고 있기에 이렇게 감사하는 걸까.

*                 *                 *

“어때요?”

지혁은 손현석과 남선혁이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지혁을 쳐다보고 있는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일주일. 그들은 굉장히 짧은 시간만에 완성된 작품을 가지고 왔다. 개강주라서 수업도 비교적 일찍 끝나는 기간동안 그들은 의기투합해서 작품활동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지혁은 굳이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집으로 귀가하는 생활을 했었다.

“밋밋해.”

얼마나 열심히 했을지 짐작이 가기에 쓴말을 해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호평을 내리기는 힘든 작품이었다.

단편이라는 것은 이래서는 안 된다. 별다른 사건사고없이 마무리된 이 느낌으로는 입상은 쉽지 않을 것이다. 친분이 있는 사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평을 내리고 있는 지혁이 이 정도로 말을 돌려말한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 재미없다는 소리였다. 따라서 지혁이 이 만화에 좋은 점수를 줄 리가 없을뿐더러, 아마 직원들에게서도 고득점은 기대하기 힘들 터였다.

“밋밋하다고요?”

스토리를 담당했다는 남선혁이 지혁의 말에 발끈하는 모습이었다.

“단편이니까 더 강렬해야 해. 분량이 한정적이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매순간순간에 담아야 한다고. 솔직히 이건 그냥… 좀 과장되게 말하면 그림들이 나열되어있는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아. 몰입감이 너무 떨어져.”

“어디가요?”

지혁은 진심으로 해준 충고였는데, 남선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지간히 자신이 었었던 것인지, 약간은 따지고 든다는 느낌이 드는 태도에 지혁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혁은 평을 내려달라기에 해준 뿐인데 왜 화를 내는지에 대해서 분노하기 보다는, 그의 모습에서 예전의 지혁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지혁이라고 지금의 실력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 순탄했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초창기의 그에게는 자신의 소설을 냉정하게 평가해줄 사람이 없었다. 잘 되고 있는 것인지, 잘 하고 있는 것인지를 평가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 그렇게 그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무조건 맞고, 내가 잘났다. 그런 느낌으로. 무엇보다 그런 생각이 굳혀지게 된 것은, 신이 지혁에게 최고가 될 수 있는 재능을 주겠다고 했던 말 때문이었다.

그저 무작정 글을 쓰기에 바빴던 지혁이 거기서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다름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을 보기 시작했을 때였다. 인기작들을 섭렵해 나가는 과정에선 지혁의 머리를 망치로 두들기는 느낌으로 강렬한 충격을 주었던 작품들도 더러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말을 여기서 써야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지혁은 다른 사람들의 작품들에게서 평가를 받았던 셈이었다. 그저 창작물로써 존재하는 그들이, 지혁의 작품을 평가해주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하나.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가 중심일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세상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 뒤로 지혁은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든 배울 점은 존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매 순간에 충실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

남선혁은 딱 예전의 지혁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지혁은 저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때의 지혁은 자기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파악하기도 전에,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남선혁의 모습으로 보아하니 아직 그 단계조차 오지 못한 것 같았다.

갈길이 구만리였다.

지혁의 경우엔 신에 의해 자신감을 얻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남선혁의 경우엔 이전 조별과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최고수준의 대학인 한국대에 입학한 것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거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혁은 그가 왜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경위조차도 모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결과. 솔직히 말하면 좀 귀찮았고, 내키지도 않았다. 그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없었다. 그를 착각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줄 자신이. 지혁은 다른 누군가의 오류를 수정하는 것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경우가 없었으니까. 성우들이나 한예리, 리플라워 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었던 것과 지금의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였다.

“뭐, 내 의견은 그렇다고.”

그래서 지혁은 그냥 물러서기로 했다.

그렇게 둘의 작품에 대해서 박한 평가를 내놓은 지혁은 수업이 끝나고 집에 들어와서 작업실 소파에 털푸덕 드러누웠다.

‘아이씨….’

너무 귀찮은데, 그래도 남선혁은 지혁과 같이 지내는 몇 안되는 지인이다. 짜증이 왈칵 밀려왔지만, 나중에 단단히 댓가를 치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혁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학교에서 하루종일 그들의 만화에 대한 생각만 했다보니까, 괜찮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던 탓이다.

‘3시간은 날리겠네.’

지혁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남선혁과 손현석이 그려낸 만화의 스토리를 떠올렸다.

그냥 흔한 이야기였다.

남자는 직장에 다니는 직장인. 능력이 좋고 돈도 많이 벌어오는 편이다. 집이 못사는 것도 아니었어서 그들 부부는 꽤 형편이 좋았다. 여자는 그냥 평범한 주부. 그녀는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외동딸을 돌보고 그러고 산다.

화목한 가정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자는 워커홀릭이었다. 집안의 일에 대체로 관심이 없고, 나몰라라한다. 돈만 벌어다 주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부류. 그는 외도를 하는 것도, 도박이나 술, 담배 등의 유흥에도 크게 관심이 없을 정도로 자기관리가 깨끗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어린 나이에도 높은 직급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

그의 모든 사고회로는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가족은 안중에도 없다. 아내와 딸에게 할애하는 시간은 거의 없는 수준. 아내는 그것을 견디다 못해 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남자는 자기가 뭘 잘못했냐고 따지고 드는 식의 그런 흔하디 흔한 내용이었다.

남자는 도리어 화를 내며 결국 이혼을 감행한다. 그리고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후회한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에이 씨발….’

내키지 않는 일이라서 그런지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지혁은 이를 갈면서 손을 놀렸다. 빠른 속도로 그림이 그려지고, 만화가 완성되어 간다. 초저녁쯤에 도착해서 저녁도 거르고 작업에 열중하던 지혁은 정확히 1시간 반 정도가 흘렀을 무렵 작업을 끝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생으로 날렸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순전히 남선혁을 위해서 투자한 시간이었다. 지혁은 작품을 휙휙 넘겨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형이 그리셨다고요?”

“그래. 받아.”

지혁은 신경질적으로 프린트해온 종이가 담긴 파일철을 남선혁에게 내밀었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고서는 지혁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반신반의한 기색으로 펼쳐보는 모습이었다. 손현석 역시 지혁의 말을 듣고서는 다가와서 확인을 해보는 기색이었다.

“…….”

한 손으로 턱을 괴고서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고 있던 지혁은 그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힐끗 옆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다소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남선혁이 보였다.

지혁은 그저 약간의 조정을 했을 뿐이다.

이야기는 남선혁의 것과 대체로 비슷하다. 단지 지혁은 시점을 달리했다.

부인의 시점에서 그림을 그린 것. 시설 좋은 아파트에서 하루종일 혼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것이라던가, 운동회에서 딸아이가 아빠는 왜 안 오냐고 하는 장면이라던가. 부인은 남편이 잘못했다고 계속해서 얘기하고, 남편의 잘못이 부각된다.

부인은 남편에게 따지지만 남편은 오히려 내가 뭘 잘못했냐고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다.

그러던 중, 잠에서 깬듯한 연출과 함께 침실의 천장이 모습을 비추게 된다.

방금까지 꿈에서 부인의 시점을 체험했던 남편은, 타인의 시선으로 본 자신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깨닫고 충격에 빠진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혼관련 서류가 있다.

지혁의 만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일부러 그림을 대충 그렸다. 오히려 손현석보다도 더 날려서 그린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내용의 몰입도면에서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만화가는 화가가 아니다. 그림실력으로 모든 것을 평가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화속에서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남편과 남선혁은 은근히 닮아있다. 그렇기에 지혁은 이것으로 남선혁의 닫힌 사고를 깨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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