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1 얼굴이 공개되다 =========================================================================
“정말 팬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너무 잘생겼어요 오빠!”
“아… 고맙습니다.”
커피 주문을 하는 것도 일이었다. 지혁은 꺅꺅거리며 그에게 악수를 청하거나, 사인을 부탁하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벗어나서 승현이 앉아있는 구석진 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푸하하하…!”
“웃지마.”
지혁은 카페에 앉아서 박장대소를 터트린 이승현에게 버럭 화를 내었다. 그럼에도 이승현은 웃음을 그치기는커녕, 계속 끅끅댔다.
휴가 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3주 정도만에 또 휴가를 튀어나온 이승현은 그간 아껴둔 휴가가 많다면서 이죽대었다. 지혁은 그를 만나주면서도 밖에 나오는 것이 조금 껄끄러웠는데 그건 바로 지혁이 챌린저 유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방송하는 사람의 얼굴이 알려지는 것 정도야 괜찮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허나 막상 까놓고 보니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까지 처하게 된 것은 ARDWC의 중계를 챌린저 유의 이름으로 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르핀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애니메이션이고, 아랜디를 하지는 않아도 대회의 영상을 나중에라도 본 사람은 꽤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챌린저 유의 얼굴이 공개된 순간 크게 화제가 되었었던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이펜의 이름으로 개최된 최초의 대회이기도 했었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겨라. 어쩌겠냐.”
웃음기를 머금은 채로 빨대로 커피를 쪽 빨아먹으면서 말하는 이승현이 왜 이렇게 얄미울까. 지혁은 그를 쳐다보다 다소 신경질적으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그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여서 황급히 고개를 다시 돌렸다.
“그렇게 싫냐?”
“정확히는 불편한 거지.”
지혁이 그렇게 말하자 이승현이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야, 나도 니가 한 그 해명방송같은거 봤거든. 투컴으로 캐릭터 두 개 다루는 건 진짜 대박이었다. 솔직히 아직도 안 믿긴다. 그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맞냐?”
지혁도 처음에는 힘들었다. 계속 하다보니까 적응이 되었을 뿐.
“이제 다시는 안할려고.”
다른 사람들을 농락하는 느낌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것을 지혁은 처음 알았다. 그저 가능해서 했을 뿐인데 은근히 논란이 되었었다. 물론 크게 번졌던 것은 아니다.
지혁과 승현이 앉은 테이블을 두고 묘하게 벽같은 것이 생긴 느낌이었다. 서서 지혁을 관찰하듯 쳐다보는 사람들은 양반. 멋대로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었다.
지혁이 계속 불편한 표정이자, 이승현이 달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도 다른 정체는 안 밝혀져서 그래도 다행이잖냐.”
다른 정체라 함은 지혁이 조커 유라는 사실일 터였다.
지혁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을 위로랍시고 내뱉는 이승현의 말을 무시했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혹시 사인좀 가능할까요?”
“네네.”
지혁은 슥슥 사인을 해주었다. 최근에 챌린저 유 전용 사인을 따로 만들었다. 사인을 할때마다 조커 유라는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지혁은 승현과 수다를 떨었다. 1시간 정도. 처음에는 접근해오던 사람들도, 그의 시간을 방해하기가 어려웠던 것인지 아니면 이미 사인을 다 받았기 때문인지 다가오는 일이 없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지혁이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거리를 살짝 두자 소란은 어느정도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지혁은 마음 편하게 승현과 이런저런 잡담을 할 수 있었다.
승현의 화제는 당연히 군대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의외로 화술이 좋은 편이여서 군대에서의 일화를 기가 막히게 표현해내는 능력이 있었다.
“…라니까. 진짜 어이없지 않냐?”
군대를 가지 않은 지혁으로써는 그의 말을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강 알아들어도 재미는 있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지혁은 미리 알아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예약을 해두었고, 방을 잡았기 때문에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 좀 개운하네.”
“큭큭.”
뭐가 웃긴지 이승현은 계속 실실 웃으면서 지혁의 심기를 거슬렀다. 지혁의 눈가가 꿈틀대자 움찔한 그가 급히 화제를 돌렸다.
“야, 그보다 너 대체 돈을 얼마나 번거야?”
갑작스러운 이승현의 물음에 지혁은 잠깐 멈칫했다.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한다고?”
“궁금하잖아.”
적어도 승현이 이런 걸 물어볼 줄은 몰랐다.
“갑자기 궁금하다고?”
“뭘 계속 갑자기야. 너의 재산을 놓고 하루가 멀다하고 인터넷에서 토론회가 벌어지고 있는데. 오피셜을 날려달라 이말이야.”
지혁도 그러한 사실을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갑자기 급부상하면서 돈을 쓸어담고 있으니까 조커 유의 재산에 대해서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내가 요즘 싸지방에서 그거 구경하면서 재미를 좀 봤거든. 들어봐봐. 어떤 사람은 니 재산이 이미 10조를 넘었대. 완전 웃기지 않냐?”
…….
지혁이 마지막으로 재산을 확인해본 것이 대략 2주 정도 전인데 그때는 7조 4천억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물론 10조를 넘기지는 않았지만, 지금쯤이면 8조에 가까워지고 있을 것이고, 그럼 10억이라는 숫자가 아예 얼토당토없는 금액은 아니었다.
“…….”
“그걸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야, 아무리 니가 인기가 엄청날 정도로 많다지만 10조는 진짜 너무 허황된 숫자잖아.”
“글쎄….”
지혁은 얼버무리며 찻잔에 담긴 물을 마셨다.
군대라는 곳이 얼마나 폐쇄적인 집단인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만약 바깥세상에서 지혁의 인기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었다면 승현이 이런 생각을 가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뭐, 말하기 싫으면 됐고. 어쨌든 몇천억은 될거아냐. 너 돈을 쓰긴 하냐?”
“아니.”
지혁은 돈을 버는 방법은 알게되었어도, 돈을 쓰는 방법은 모르고 있었다. 기껏해야 좋은 집. 회사로 쓰기위한 건물을 위해 지출한 비용 정도. 그나마 최근에 그럴듯하게 소비활동을 한 것은 ARDWC를 열면서 쓴 돈이었다.
하루에 수백억 단위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음에도 지혁은 그 돈을 어떻게 써야할지는 생각도 안해봤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면?”
“그냥 갖고 있지.”
“으휴. 좀 써라, 어디든.”
“대회 열었잖아.”
“그 정도로 되겠냐? 리센 대회는 왜 안 여는데. 그 이외에도 많잖아. 유명한 스포츠 구단을 사버린다던가. 아니면 섬을 하나 사서 별장을 짓는다던가. 전용기도 사고 돈 들여서 건물도 하나 세워도 되고. 아, 나는 야구단이 좋은거 같다.”
잠깐 핸드폰을 보고 있던 지혁은 그대로 고개만 들어 올려 속사포처럼 말을 늘어놓는 승현을 쳐다보았다. 군대에서 지혁이 어떤 방식으로 돈을 써야하는지 조언해줄 생각만 하다가 왔는지 그는 참 다양한 소비경로를 제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면 게임단을 만드는 것도 괜찮겠네. 니 게임에 관심도 많잖아. 직접 게임산업에 뛰어들기도 했으면서 왜 프로게이머들에게는 관심도 없는 것처럼 구냐.”
지혁은 그의 많은 제안중에서 방금 것이 가장 솔깃했다.
“게임단이라….”
“돈을 좀 써라. 묵혀둬서 뭐할건데. 어차피 니 돈 별로 필요도 없잖아. 그럼 이리저리 재지 말고 하고싶은거에 투자를 하란 말이야. 니가 몰라서 그렇지 세상에는 돈쓸데가 넘쳐난단다. 새겨들어.”
그때 장지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리고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음식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둘의 대화도 잠시 끊겼다. 지혁은 음식을 내려놓는 모습을 차분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여종업원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 혹시 챌린저 유 님 맞으신가요?”
“아, 네… 맞습니다.”
“혹시 사인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가게에 전시를 해두고 싶은데요.”
“네. 해드릴게요.”
다음 음식 가지고 올 때, 사인용지와 펜을 가져오겠다는 말과 함께 정갈하게 차린 음식을 완전히 다 내려놓은 그녀가 물러갔다.
이승현은 코스요리가 나오는 고급 레스토랑에 처음 와본다는 말과 함께 음식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지혁은 생각에 잠겼다.
‘게임단이라….’
사실 작품활동이나 여러 가지 벌려놓는 일들 때문에 그것들을 수습하느라 돈을 쓸 겨를이 없었을 뿐, 어디에 쓸까 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혁은 명품에 욕심이 있는 편도 아니었고, 차에도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는 면허조차 아직 따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각종 스포츠를 즐기는 것도 아니며,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지나치게 크다고 생각할 정도로 주거환경에도 흥미가 별로 없었다.
‘나 진짜 욕심이 별로 없구나.’
어쩌면 그건 어린 시절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린 지혁은 그저 평범한 집에서 돈 걱정 하지 않으면서 먹고 싶은걸 먹고, 게임이나 실컷 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곤 했다. 지금 지혁의 환경은 그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지혁이 하지 않아도 가정부 아주머니가 집을 청소해주었고, 먹을 것도 요청하면 챙겨주었다. 언제든 하고싶은대로 게임을 할 수 있으며 이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어도 엄청난 수익이 들어오는 체계가 확립되었다.
꿈을 이루고 나니 재산에 대해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 지혁의 관점은 더 많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생각을 좀 해볼 필요는 있겠네.’
그냥 방치해두기에는 너무 많은 돈을 벌었다.
“11월 1일부터 아르핀 2부가 시작될거야.”
지혁의 말에 승현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이건 어디까지나 승현에게 맞춰준 것이었다. 승현은 1년 9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9월 29일날 전역을 한다.
물론 성우 오디션은 당연히 녹음일정에 맞춰서, 10월 초쯤에 진행이 될 터였다. 지혁은 그 일정을 승현에게 맞춰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10월 7일 때 1차 오디션이 있을 거야.”
승현은 간간히 휴가를 나올때마다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지혁과 만났다. 당연히 지혁에게서 성우 과외를 받는 것은 필수코스였다. 오늘도 아마 밥을 먹고나서 그동안 군대에서 어떻게든 갈고닦았을 실력을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아마 전역을 하고 나서도 지혁에게서 집중교습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녹음 일정은 10월 11일부터 25일까지 2주.”
전역하자마자 바삐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나, 승현은 당연히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 것이다. 군인의 신분이라 아르핀의 인기를 그냥 막연하게만 실감하고 있어도 1부가 대단한 흥행성적을 거뒀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
“알고 있으라고.”
지혁은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승현에게 짧게 말한 뒤에 음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