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97화 (97/116)

00097  송하은  =========================================================================

[ 꼭 봐주셨으면 해요 ]

송하은의 문자메시지에 지혁은 알겠다고 답했다. 그것이 며칠 전의 일.

오늘은 예전에 송하은의 전화를 통해 지혁의 목소리를 담아낸 예능 프로그램이 오늘 방영을 하게 된다. 지난주 예고편에서 꽤 화려하게 선전을 하는 것 같던데, 어떤 식으로 비춰질지 사뭇 기대가 되었다.

가면을 쓰고 무대를 하는 형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기존의 MC들은 심사위원의 느낌으로 앉아서 무대를 감상한 뒤에, 누구인지 맞추면 되었다.

가요제라는 것을 하는데, 그들과 듀엣으로 나간다는 모양이다.

‘이 사람은….’

지혁은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생긴건 잘 모른다. TV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곡작업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음악을 다양하게 접했었기 때문에 목소리만큼은 잘 맞출 자신이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가수의 무대를 본 지혁은 10초도 되지 않아서 둘의 정체를 확신했고, 밝혀진 정체는 지혁의 예상과 일치했다.

세 번째 차례. 유일한 홍일점이라는 자막을 통해 지혁은 그녀가 송하은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시청자들과 촬영중인 연예인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한마디로 무대를 통해 확인해야만 한다.

- 송하은 같은데?

- 송하은 아니야?

- 몸매가 아니야.

심사단의 의견은 분분했다. 그러나 송하은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역시 그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노래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관심이 없다면 정체를 알아낼 수 없는 것이 정상이다. 물론 그녀 특유의 음색이 너무 짙다보니까 모르는게 더 이상한 일이다.

- 복면을 벗어주세요.

- 송하은!

그녀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싱어송라이터인 송하은의 유명 곡들이나 무대의 영상들을 짧게 비추는 것이 이어지고, 곧이어 화면이 전환된다.

최근, 조커유의 뮤즈 ‘Gee.H’ 다음으로 두 번째, 아이펜의 애니메이션의 OST 작업에 참가한 가수로써 7월 2일부터 이틀간 실시간검색어 순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는 식의 설명이었다. 지혁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서 몰랐는데, 그녀가 지혁과 작업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각종 캡처본이 연쇄작용을 일으키듯이 계속 나온다.

‘…….’

아무래도 지혁과의 통화장면이 있기 때문에 일부로 그의 존재를 부각한 느낌도 있다. 그는 계속해서 방송을 시청했다.

말 그대로 어영부영하다 보니까, 그녀의 차례에 누군가가 이러다가 ‘Gee.H’도 나오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얘길 했고, 그 과정에서 이런 곳에 나오실 리가 없다는 말을 송하은이 넌지시 흘리는 것이 발단이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당황한 것 같았고, 사람들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혹시 만나본 적 있냐는 물음을 던졌다. 그녀는 결국 질문공세에 못이겨 최근에 'Gee.H' 님을 만나서 아르핀의 곡작업을 하게 되었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 지혁은 그녀와 헤어질 때 언제든 그 사실을 밝혀도 된다고 했기 때문에 그녀는 거기까지는 표정이 그리 굳어있지 않았다.

그 중 누군가가 혹시 조커 유도 봤냐고 물었고, 송하은은 잠깐 고민하다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다들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때, 갑자기 녹화중 잠깐 쉬는시간을 가진다는 식의 전개가 되었다. 말 그대로 촬영 사이 잠깐 휴식시간. 앵글도 제대로된 느낌이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프리한 분위기였다.

그때, 송하은이 조심스럽게 녹화장을 이탈해서 한쪽에서 통화를 했다.

지혁은 거기서 그녀가 지혁에게 전화를 걸었음을 직감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통화를 하고 있는데 유재승이 송하은이 전화를 하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그녀에게 다가갔다. 다행히도 이 과정에서 지혁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묻지 않았음에도 송하은이 미리 양해를 좀 구해야할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때구만.’

지혁이 음료수를 뽑을 때까지 말이 없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이런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자막에선 실제상황이니 뭐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어댄다. 송하은이 조커 유와 통화를 하는 것에서 그들은 대어를 낚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지혁이 대외적인 활동을 한 적이 없으니까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아… 저기, 그러니까 작가님. 제가 지금 예능프로그램 촬영… 녹화중이거든요. 그래서… 그, 선생님이랑 작업했고… 만나뵌 적이 있다는 사실을 어쩌다가 말하게 되었는데….

“아, 네. 감사합니다. 아, 저… 혹시 잠깐 다른 분좀 바꿔드려도 될까요?

송하은이 유재승에게 핸드폰을 건네자,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때 통화할 때는 괜찮은 것 같이 느껴졌었는데, 긴장을 많이했었나 보다.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조커 유 작가님. 여기는 무리한도전의 녹화현장입니다.”

- 큼. 그렇습니까?

어느새 다가온 사람들은 유재석이 부여잡고 있는 휴대폰 쪽으로 바짝 붙어있는 상태였다. 지혁이 목을 가다듬는 것에서 이미지관리를 하는 것이라 여겼는지 그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목소리가 여기서부터 나갔구나.’

지혁은 안심했다.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저희가 어떻게 하다보니까 작가님 얘기까지 하게 되었어요.”

- 괜찮습니다.

“아, 그럼 혹시… 잠깐 전화통화 괜찮을까요?”

- 방송에 나가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 네. 괜찮습니다. 잠깐정도면.

“어? 정말요? 야. 빨리빨리 앉아!”

모여있던 십수명의 사람들이 후다다닥 자기자리에 가서 앉고, ‘급하게 녹화 재개’라는 말과 함께 검은화면이 떠올랐다가 이내 침착하게 자리에 앉은 그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그 뒤로는 지혁이랑 했던 통화의 내용이 그대로 방영되었다. 잠깐도 잘라내지않고 고스란히 내보낸 것에서 그들이 이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베일에 쌓여있는 신비주의 작가의 첫 공식 나들이가 아니던가.

“언제 저희 프로에 한 번… 출연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 네 뭐… 언제가 되었든 기회가 되면 한 번 출연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

경악한 듯한 사람들의 반응과, 그 뒤로 간략한 이야기 후 통화는 종료되었다.

그 뒤로는 그냥 정상적인 진행이었다. 지혁은 마지막까지 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방금 방송에 관한 이야기로 인터넷이 굉장히 뜨거웠다. 지혁의 목소리가 좋다는 반응도 있고, 언제나처럼 정체를 추측해보는 기사들도 더러 보였다.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조커 유에 대해서 기사를 쏟아는 기자들이 어찌나 많은지 갱신이 계속 되는 느낌이다.

아이펜 홈페이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냥 난리가 났다. 잠깐 둘러보던 지혁은 관찰하는 것을 관두기로 했다. 어찌나 반응이 격정적인지 당혹감을 감출수가 없었다.

우웅-

[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해서 작가님을 곤란하게 했습니다 ]

[ 정말 죄송합니다 ]

지혁은 언제고 밝혀질 정체라는 생각을 늘상 가지고 있다.

그다지 정체를 숨기는 것에 극성이었던 것도 아니다. 어찌보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될 정도. 근데 자신의 경솔한 언행으로 인해서 사태가 이런 식으로 번지는 것에 송하은은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녀의 문자에서 심각함을 느낀 지혁은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죄송합니다….

“아니, 송하은 씨. 저 진짜 괜찮아요. 얼굴이 공개된 것도 아니고, 목소리만 나간 거잖아요. 딱히 제가 뭐 숨기고 그런….”

아니나다를까, 송하은은 울고 있었다. 지혁은 쩔쩔매며 겨우 그녀를 달랠 수 있었다. 지혁의 노력으로 인해 울음은 그쳤지만, 그녀는 여전히 시무룩한 것 같았다.

“그럼 쉬세요. 너무… 신경쓰지는 마시고요.”

지혁은 그녀와의 통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커 유가 워낙 몸집이 커졌다보니까, 어디서든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을 하려는 것이 느껴진다. 심지어 아르핀 1부의 녹음과정에서 한국에서 유명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법한 성우들은 지혁에게 말 한마디 걸어오질 않았다. 내켜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어려워하는 기색이었다.

예전의 일도 있고 해서 그런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여 처음에는 그저 사무적으로 대했지만, 나중에는 그들에게 좋지않은 인상으로 남을 것 같아서 약간 두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지혁이 먼저 다가가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고, 때문에 작업을 진행했던 수십여명의 성우들과도 어느 정도는 친분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개중에는 첫인상, 이미지와는 다르게 소탈하신 편이시라 놀랐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송하은이면 굴지의 솔로 여가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쁘기도 하니 남자 연예인들에게 대시도 많이 받았을 것이고, 떠받들어지는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래도 되는 위치에 있었고, 그게 자연스러운 사람. 그만큼 대단한 인물인데도 자신의 실수를 이렇게 과도하게 자책하는 것으로 보아 지혁은 자신의 위치가 너무 커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행이네.’

그래도 혹시 지혁의 목소리로 챌린저 유와 연관짓는 사람이 있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맞다고 확신하고서 들어도 같은 사람이라고는 짐작하기 힘들거라는 생각은 있지만, 그래도 예리한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 아니겠는가.

“이 정도면 뭐.”

그냥 잠깐 세상에 목소리를 들려준 것에 지나지 않는, 작은 헤프닝이다. 송하은이 그런 모습을 보여줄 이유도 없고, 지혁이 껄끄럽게 생각할 부분도 없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마음의 짐을 떨쳐버린 지혁은 곧장 방송을 켜서 게임을 했다. 렐을 했다가 리라 센토도 즐겼다가 ARD로 마무리하는 3부작이었다. 학교는 이미 종강했고, 내일 이렇다할 스케쥴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밤 늦게까지 방송을 해도 무리는 없었다.

그렇게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방송을 종료한 지혁은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풀고선 샤워를 한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똑똑똑.

‘…뭐야.’

침실에서 잠을 자던 지혁은 그의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잠에서 깼다. 물론 비몽사몽이라서 정신은 없었다. 덮고있던 이불을 스윽 걷은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하품을 늘어지게 한 뒤에 머리를 긁으면서 방문을 향해 다가갔다.

“네….”

오늘은 일요일. 가정부 아주머니는 평일에만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말에 지혁의 방문을 두들길 사람이라곤 차현진, 유창현 뿐이다.

유창현이 왔을 리는 없을테니 당연히 차현진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을 연 지혁은 검은 양복을 입은 유창현과 마주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에요?”

이제껏 유창현이 지혁의 집에 들어온 경우는 없었다. 그렇기에 짜증을 내기보다는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렇겠거니 생각해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휴대폰이 꺼져계셔서…. 큰일 났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지혁에게 내밀었다. 지혁은 무슨 일인가 싶어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았다.

( 송하은-조커 유, 열애설? “사실 확인 중”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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