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6 송하은 =========================================================================
[ 앙대ㅠㅠ ]
[ 치킨 시켰는데 1시간 연기라니;; ]
[ 새벽에 일어나야 되는데 지금 한 시간을 자둬야 할까? ]
아르핀을 기다리는 시청자들은 폭주하고 있었다. 아이펜에 갑작스럽게 공지사항이 떠버렸고, 1시간 연기된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특히 중요한 날이었으므로 이 순간만을 기다리던 시청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것은 조커 유가 평소 성실한 행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이펜 홈페이지의 캘린더에 나오는 일정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그가 이때 시작하겠다고 하면 정말 그때부터 바로 시작이 되었고, 늘 제시간에 맞춰서 칼같이 작품의 등록이 이루어졌다.
그런만큼 갑작스러운 연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자주 지각을 하던 사람이 지각하면 욕을 하겠지만 그는 지금까지 시간약속을 착실히 지켜왔던 것이다.
무엇보다 하루도 아니고 1시간인데, 기다릴만 한 일이었다.
그렇게 혼란속에서 시간은 흘러 마침내 방영시간이 되었다.
[ 결제 떴다! ]
[ 그렇게 끝나서 너무 궁금했다구 ]
영상은 저번화의 끝부분에서 이어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한곳으로 고정되고, 곧이어 동공이 지진난 것처럼 흔들리는 아렌의 얼굴이 떠올랐다. 늘어져있는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움찔한 순간, 그는 현실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웅웅거리듯 딴 세상의 것처럼 느껴지던 주위의 소음이 그제야 인식되기 시작하고, 옆에서 고함을 지르는 페이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 …입 닥쳐. ]
눈이 완전 돌았다. 늘 순둥순둥한 모습을 보여주던 아렌이 맞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발적이면서 살벌한 기세에 피와 살이 튀기는 전장에서 넋을 잃은 듯 한눈을 파는 그를 다그치던 페이아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아렌은 벌어지는 혼전 속에서, 시야가 흐릿해져 있었다. 그의 눈은 오로지 한 점만을 쫓았고, 그곳에는 회색의 갈기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늑대가 있었다. 특이하게도 놈의 눈동자는 오드 아이였다. 한쪽은 지독히도 하얬으며, 다른 한쪽은 그와 완전히 상반되는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르핀을 1화부터 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놈은, 1화에서 주인공의 가족들을 도륙하고 제단의 손에 죽은 테쿤세였다.
- 그럴 리가 없어… 놈은 분명… 내 눈앞에서…
제단이 녀석을 도륙내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정처없이 떠돌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웃고 울었다. 그 과정에서 아렌은 자신이 성장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 허상에 불과하다. 아렌은 복수의 대상인 테쿤세가 이미 죽어서 없기 때문에, 아직 살아있는 동생들을 위해서 그들을 살려낼 방법을 찾아내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도 아득하고,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조금의 희망조차도 발견하지 못하고 여러번 절망했었다.
[ ……. ]
그 순간, 테쿤세가 아렌을 쳐다보았고, 둘의 시선이 딱 맞았다.
슈아아아아악!
그 순간, 아렌은 세상의 모든 기운이 요동치는 격정적인 감각을 느꼈다. 휘몰아친 폭풍과도 같은 기세에, 전투를 벌이던 전장의 수많은 기척들이 일시에 움직임을 멈췄을 때.
팟!
“아렌!”
아렌은 페이아의 음성을 뒤로한 채 이미 튀어나가고 있었다.
- 집중해! 무조건 죽인다!
아렌은 자신이 약자인 것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가족의 원수를 자신의 손으로 지워버릴 수 있는 꿈에 고대하던 지금의 이 순간, 극한의 아드레날린의 방출을 느꼈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이 순간, 그는 더없이 집중했고 그것은 아르핀의 ‘공명’으로 이어졌다.
크롸아아아악!
테쿤세가 포효하고, 아렌은 녀석에게 달려 들어간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격렬한 전투는 다양한 시점으로 떠오르며 엄청난 연출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시점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이내 그들의 주위를 천천히 회전하며 전투하는 모습을 생동감있게 전개해나갔다.
그것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전투에 압도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제나 쥐어터지던 무기력한 아렌의 용맹함에, 아렌의 동료들도 입을 벌리고 멍하니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그들보다 떨어지거나, 엇비슷한 수준이지만 빌빌 기던 아렌의 면모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패도적이었다.
시청자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것은 지혁을 제외한 그 누구도 ‘아르핀’이라는 설정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아르핀의 세계관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기운 ‘아르핀’을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무력적인 측면에서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결국에는 자각을 하고 있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였다. 아렌이 일행들에 비해서 약한 모습으로써 비춰지는 것은 아렌은 ‘아르핀’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1부의 작중에서도 그 사실은 따로 설명하지도 않고, 가볍게 언급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르핀의 ‘서부’에 그 사실을 아는 존재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부, 중부, 동부로 이루어져 있는 아르핀의 세상에서 서부는 가장 약한 지역이다. 게다가 서부는 정보에도 취약하고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아르핀의 존재를 깨닫고 있는 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시아나가 동부에서 서쪽으로 넘어온 것은 이단을 넘어서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는 행보였던 것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동료들은 아렌을 제외하고 모두가 아르핀을 사용할 줄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까지는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존재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발현하거나 사용이 가능한 ‘자질’을 보유한 존재들. 그들만이 서부에서 중부로 넘어갈 수 있다.
[ 이게 말이 되냐? 아무리 원수를 만났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강해진다고? ]
그런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 어차피 지혁은 후반부에 간략한 설명은 첨가해두었다.
콰가가강!
여하튼 1부의 마지막 화에서 주인공이 극에 이른 분노와 집중으로 무의식적으로 아르핀을 끌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아렌은 기존의 모습과 전혀 상반되는 전투력을 선보일 수 있는 셈이었다. 폭음이 연달아 진동하고, 모래먼지가 피어오르며 땅이 움푹 패이는 격한 전투 속에서 아렌의 눈빛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러나 테쿤세는 강했다. 지난 시간동안 아렌이 성장하였듯 제단에게 당하던 그때보다도 월등히 강해진 것 같았다. 아렌과 테쿤세의 격차는 극한의 분노로 역량 이상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좁혀지지 않았다.
투지가 느껴지는 전투.
아렌은 분전했지만, 패색이 짙었다.
그렇게 맞이한 절체절명의 순간. 아렌의 뒤에서 거대한 맹수의 형상이 설핏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움찔한 테쿤세가 빠르게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아렌은 그 뒤를 쫓았고, 동료들은 그것을 발견했지만 밀려드는 적을 상대하느라 아렌의 뒤를 쫓지 못했다.
그리고 테쿤세의 흔적을 따라간 아렌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남자와 마주보게 되었다.
제단이었다.
[ 꺄아아악. 단아! ]
그가 등장하자 제단의 팬들이 실시간 채팅창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아렌은 제단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방금 전에 보였던 테쿤세의 모습은 제단이 변신한 것에 불과했으며, 녀석이 죽었던 기억은 환상이 아니었다는 설명.
테쿤세로 변한 제단은 설명을 이어나간다.
[ 이 녀석은 그저 하얀색과 검은색의 오드 아이를 가지고 있는 존재의 화신에 지나지 않는다. 녀석에게 화신을 만드는 것은 그저 장난질에 불과하지. ]
그리고 제단은 자신의 부모님 역시 다른 화신의 손에 생명을 잃었고, 녀석의 자취를 쫓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설명을 했다.
그날 제단이 아렌을 구해준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라 화신을 쫓고 있었기에 가능했었다는 것이다.
[ 40년. 내가 그 시간동안 알아낸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왼쪽 눈이 하얗고, 오른쪽 눈이 검다는 것이 녀석의 상징과도 같다는 것. 녀석의 화신들 역시 그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 녀석의 이름이 키에삭 베슈트펠이라는 것. ‘동쪽’의 성좌단을 지배하는 절대자이자, 위대한 일곱 존재 중 하나라는 것. ]
[ 이제 그만 환상에서 깨어나라. ]
[ 살아남은 동생같은 건 없다는 걸 너 자신은 알고 있지 않은가? ]
[ 내가 너를 찾아온 이유는 너에게 확실한 동기를 부여해주고 너와 한편이 되어 키에삭 베슈트펠을 소멸시키기 위함이다. ]
[ 나랑 같이 가자. 너는 아르핀을 사용할 수 있으니, 중부로 넘어갈 자격은 갖췄어. 남은 건 내가 처리하마. ]
제단은 저항군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그의 말을 듣고있던 아렌은 그를 따라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 키에삭 베슈트펠….
아렌이 진정한 원수의 이름을 곱씹으며, 제단을 따라서 뒷모습을 보이며 멀어져가는 것을 끝으로 영상은 끝났다.
그리고 그것은, 1기의 27화가 끝났다는 것이며 아르핀 1기가 끝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 아아아아아아아앙 빨리 2기 주세요. ]
[ 이제 시작인데 여기서 끊기네 ]
[ 27화 퀄리티 진짜 미쳤다. 작화진을 얼마나 갈아넣은거냐? ]
[ 아렌 불쌍해…. ]
[ 지금 나오는 브금 머임? 목소리가 송하은인데 ]
“…후.”
지혁은 숨을 내쉬었다.
물론 아직 완전히 1부가 끝난 것은 아니다. 외전인 28화가 남아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규 스토리는 여기서 끝난 것이나 다름없으니 사실상 완전한 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7월 2일. 마침내 아르핀의 1부가 종료되었다. 1월부터 시작하여 7월 초반에 이르기까지, 상반기를 뒤집어놓았던 아르핀이 현재까지 보여준 성적은 22억뷰.
화당 평균 결제수가 8천만 정도에 이른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1화당 가격은 500원이므로 벌어들인 돈은 1조원을 조금 넘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애니메이션의 결제로 인한 수익이고, 부가적인 수입까지 합치면 그보다 몇배는 뛰게 된다.
“다음은 언제로 하지.”
굳이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태우지 않아도 아르핀 2부작은 날개달린 돛처럼 나아갈 것이다.
사실 본래 아르핀을 만들때만 하더라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세상에 선보인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워낙 정성을 들여서 만들었다보니까 그게 맞다고 보았다. 오랫동안 해먹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쓸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세상은 아르핀을 ‘누가 만들었는가’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지혁은 그 부분이 의아했지만, 지금과도 같은 분위기라면 2부를 빠르게 낸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랜디의 업데이트도 신경을 써야하니까.’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만 하더라도, ARD라는 아르핀과 관련된 게임의 제작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때의 계획과는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르핀의 내용이 진행되지 않으면 ARD의 업데이트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아르핀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이 추가되는 형식이기 때문.
ARD는 금방 질릴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업데이트가 있어야만 지금의 성적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다고 본다. 물론 ARD를 위해서 2부를 방영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지만, 그저 시기를 조정하는 것 정도야 충분히 투자해줄 수 있을법한 일이다.
“머리 아프다.”
지혁은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이제 막 1부를 마쳤다. 물론 지혁 역시 성우녹음을 빼면 제작해둔 것을 등재한 것에 불과할지 모르나, 그가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쉬지않고 달려왔다. 지혁은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