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94화 (94/116)

00094  송하은  =========================================================================

[ 6월 4일 PC방 게임 순위 ]

[ 1위 리라 센토 51.35% ]

[ 2위 레전드 리그 19.66% ]

[ 3위 아르핀 랜덤 디펜스 14.89% ]

[ 리라 센토, 92일 연속 1위 유지 ]

대회가 끝나고 또 다시 한달이 흘렀다.

그 사이 지혁은 MT도 다녀오고, 작품활동도 꾸준히 이어나가는 등 바쁜 생활을 보내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피규어의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아직도 주문에 비하면 생산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지만, 이제 차근차근 밀렸던 주문량을 처리해나가는 중이다.

밀렸던 주문이 사라지는 것에 반비례하여 지혁의 재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생각보다 꾸준하네.’

지혁은 아직까지도 ARD가 3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로 ‘패치’를 꼽았다. 아르핀의 내용이 진행될때마다 신 캐릭터 등이 추가되고 게임의 메타가 바뀌다보니까 사람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고 ARD에 더욱더 깊이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리라 센토는 50% 점유율에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당분간은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한때는 렐과 점유율을 양분한다는 느낌마저 있었으나, 신흥 강자 ARD의 등장으로 이제 3강의 체제가 굳혀지게 되어버렸다. 게임 셋을 합쳐서 점유율이 85%에 달하는 미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어디에서든 리라 센토와 ARD의 이야기가 난무하는 현 상황에서도 20%에 가까운 점유율을 꾸준히 확보하는 렐의 위용에 찬사를 보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지혁이 노크 소리에 반응하자, 그의 운전기사인 유창현이 웬 여성 한명을 동반하고 작업실로 들어왔다. 그는 지혁의 저택 내에서는 집사의 느낌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실 얼마든지 사무실이나 새로운 회사를 차릴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지혁은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일까지 병행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집에서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는 편이었다. 시설이 잘 되어 있기도 하니까 문제는 없었다.

“아, 반갑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지혁은 한예리의 소개로 알게된 여성을 안내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지혁을 올려다보더니, 그의 손짓에 따라서 소파에 자리를 잡고 살포시 앉았다.

송하은.

굉장히 유명한 싱어송라이터였다. 작곡 솜씨도 훌륭하고, 고음도 쭉쭉 뽑아내는 가창력도 일품이다. 나이도 아직 어린데다가 연기력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했다. 한예리에 버금갈 정도의 인기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솔로가수로써 데뷔하고 지금까지 꾸준한 성장세와 음반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차는 뭘로 준비해 드릴까요?”

“아… 저는 녹차로.”

지혁이 눈짓하자, 유창현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지혁이야 손님이 오면 항상 유자차를 마신다.

“이렇게 제가 송하은 씨를 모시게 된건, 아르핀 27화에 새로이 삽입곡을 하나 추가할 생각을 가지고….”

“저… 근데.”

지혁은 소개를 하던 와중에 그녀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자 하던 말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네.”

“누구…세요?”

“…….”

당연히 이 만남을 주선한 한예리가 지혁의 정체를 밝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건가? 그걸 말하지 않고 어떻게 여기까지 얘기가 진행이 된 거지?

순간적으로 다양한 생각이 들었지만, 지혁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합니다. 당연히 알고 계실줄 알고….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조커 유로써 활동하고 있는 유지혁이라고 합니다.”

“…진짜요? 정말… 조커 유 작가님 맞으세요?”

반응을 보아하니 모르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지혁은 지혁의 얼굴과 조커 유라는 작가가 매칭이 안되서 생긴 괴리감으로 인한 상황이 아닐까 지레짐작하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한예리씨가 말… 안하던가요?”

“아니, 하기는 했는데… 좀 믿기지가 않아서….”

사실 지혁도 지금 상황이 어색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한예리를 처음 봤을 때처럼 신선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송하은도 굉장히 유명한 연예인이니까.

“저도 좀 신기합니다. 연예인이시잖아요.”

“네? 아… 연예인은… 조커 유 작가님이죠. 조커 유의 작품을 본 사람은 누구나 작가님을 보고 싶어할 걸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신 거죠.”

“…….”

아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지혁은 요즘 부쩍 그의 인기를 다시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조커 유라는 이름표를 걸고 뭐만 했다하면 대박을 치니까.

“저 진짜 팬이에요. 나온 작품은 당연히 다 봤고요. 결제도 전부 했어요. 매일매일 작가님의 작품을 기다렸다가 나오자마자 바로 본다니까요.”

지혁은 첫 인상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지혁이 본 이미지도 그렇고, 방송에서도 좀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내비춰지고 있는데 그렇지가 않은 듯 하다. 지혁은 신이 난 듯 재잘거리는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었다.

“근데… 목소리가 좀 익숙한데요. 어디서 들어봤지?”

가수라서 그런걸까. 송하은은 예리했다. 고개를 살짝 갸웃하는 그녀를 보며 지혁은 순순히 인정하기로 했다.

“조커 유의 뮤즈라고 불리고 있는 Gee.H.”

“…아!”

Gee.H는 지혁이 내세운 가수로써의 예명이다. 생일날의 너에게와 아르핀의 OST를 도맡아서 담당하는 베일에 쌓인 가수. 사실 별로 밝히고 싶지 않은데 사람들의 궁금증이 하도 커지다 보니까 대충 지은 것이다. 당연히 이름인 지혁에서 따왔다. 그와 관련해서 사실 조커 유 본인일지도 모른다는 등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었다. 사실이지만.

“그 얘기가 사실이었던 거군요?!”

음악에 관련된 일이라서 그런 것인지 그녀는 지혁이 정체를 밝혔을 때보다 더 흥분한 기색이었다. 물론 짐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수도 있다.

“네…. 맞습니다. 이제 일 얘기를 해도 괜찮을까요?”

“아… 네.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그녀가 사과를 할 때, 때마침 문이 열리고 유창현이 차를 내왔다. 지혁은 곧장 찻잔을 들어올려 한모금 머금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을 까요?”

“아… 그, 너무 잘생기셨네요.”

“감사합니다.”

직설적으로 칭찬을 해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지혁은 당황하지 않았다. 말했듯, 이런 상황은 이제 이골이 났다.

딸깍.

“아르핀을 보고 있으시다면 얘기가 빠르겠네요. 곧 1부가 완결이 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화의 삽입곡을 만들었는데 불러줄만한 여자가수를 찾고 있었어요. 한예리 씨한테 상담을 해보니까 송하은 씨를 추천해주셔서 이렇게 모시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직 한 달 정도가 남았다. 27화의 방영 예정일은 7월 2일이니까. 다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이른 시기에 시작을 했을 뿐이었다. 지혁은 일을 미루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해야할 것이 있다면 신속하게. 그의 모토라고 볼 수 있다.

“아… 제가 그런 걸… 해도 될까요?”

지혁은 의아함이 생겼다.

송하은은 실력으로써 인정받는 편이었다. 노래를 잘 부르고 음색도 매력적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노래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다. 지혁 역시 마찬가지. 한예리가 추천해주기는 했지만, 지혁 역시 그녀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자신이… 없으신가요?”

“아뇨. 그건… 네, 사실… 아르핀이 워낙 인기가 많잖아요.”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피규어의 주문량으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설마 한국인들의 주문만으로 피규어 천만개씩이 채워졌겠는가. 그들 중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지혁은 그렇게 송하은을 안심시키고서는 그가 작사, 작곡한 곡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곡을 듣는 내내 송하은은 사랑에 빠진 여자아이처럼 황홀한듯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이 이 곡을 부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는 듯 했다.

음악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지혁은 그녀에게 언제부터 녹음이 가능할지 여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지금 당장이라도 된다고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녀의 노래 솜씨는 출중했다. 프로듀싱이 필요없는 건 아니었으나, 녹음은 말 그대로 금방 끝났다. 지혁은 타인과 무언가를 작업하면서 이토록 빠르고 순탄하게 작업이 끝난 것은 처음이었기에 얼떨떨한 기분마저 들었을 정도였다.

“저… 혹시 사인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녀는 처음에 등장할 때부터 무언가를 품에 소중하게 안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사인을 받을 물품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종이뿐만 아니라 마이크도 준비해왔다.

종이에 간단하게 사인을 해주었던 지혁은 그녀가 마이크를 내밀자 멈칫했다.

“…여기도요?”

“네. 집에서 노래 부를 때 쓰려고…. 안될까요?”

안될 건 없다. 지혁이 마이크에 사인을 슥슥 해주자 그녀는 준비해온 아크릴판에 마이크를 소중하게 보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혁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결국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정말 지혁의 팬이긴 한가보다.

“저도 사인을 좀 받았으면 하는데요.”

“네? 저, 정말요? 물론 해드리죠!”

그녀는 기쁜 기색으로 지혁이 내민 종이에 사인을 해주었다. 그것을 받아서 때마침 있는 액자에다가 잘 넣은 뒤에 작업실 벽에 걸고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 혹시 전화번호좀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사인을 교환하고 끝난 줄 알았는데, 송하은은 저택의 입구까지 배웅해준 지혁에게 이번엔 전화번호를 요구했다. 한예리와 번호교환을 했다는 사실을 들었다면서 겸연쩍게 웃는 그녀를 보며 지혁은 또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끝까지 말을 안한 것을 보니 주저했거나 지혁이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눈치가 없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혁은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녀와 번호를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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