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92화 (92/116)

00092  아르핀 랜덤 디펜스  =========================================================================

“왔냐? 골딱.”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고있던 지혁은 그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선혁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손현석이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남선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골딱 손골딱 신나는 노래. 나도 한 번 불러본다~”

리라 센토의 랭킹전이라는 랭크 게임 시스템. 손현석은 골드 등급이고, 남선혁은 그보다 한 단계 높은 플래티넘 등급이었다. 골딱이라는 것은 흔히 골드 등급을 놀릴 때 쓰는 단어였다. 남선혁이 계급이 높다고 손현석을 놀려대고 있는 것이었다.

‘…에휴.’

하는 짓거리가 애새끼가 따로 없네. 지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참고로, 그는 어제 방송에서 리라 센토 랭킹 1위를 달성했다.

“…….”

“…?”

그들의 대화를 듣던 지혁은 손현석이 왠지 좀 반응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고 옆을 쳐다보았다. 지금쯤이면 서로 싸워야 정상인데, 그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옆을 쳐다본 지혁은 손현석과 눈이 맞았다. 손현석이 슬며시 시선을 피했고, 그 순간 지혁은 미간을 좁혔다.

그때 교수님이 들어오고, 잠깐의 자리조정 시간을 가진 후에 시험이 시작되었다. 몇 개 안되는 필기시험 중 하나가 바로 오늘이었다.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배경지식이 있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지혁은 신경써서 문제를 풀었다.

나오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 어땠어요?”

남선혁은 금메달을 땄다. 처음으로 시험장을 나섰다는 뜻이다. 손현석은 아직 시험을 치고 있는 것인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지혁도 꽤 빠르게 나온 편이었다.

“그냥 뭐. 너는?”

“문제가 너무 쉬웠잖아요.”

그랬나? 하긴, 변별력이 있을만한 난이도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덜컥.

지혁이 휴게실에서 남선혁과 캔음료를 뽑아먹으면서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가 남선혁이 잠깐 화장실 갔다오겠다며 자리를 비웠을 때 저 멀리 강의실 문이 열리고 손현석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래 걸렸네? 어려웠어?”

지혁이 가볍게 묻자, 손현석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야, 아까부터. 할 말 있으면 해.”

“…형. 혹시 챌린저 유라고 아세요?”

“…….”

모를 리가 없다. 본인이니까.

딱히 뜨끔하는 기분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손현석은 확신을 가지고 물어본 것 같았다. 어쩐지 아까부터 이상하더라니, 지혁의 방송을 보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알지.”

“형 맞죠? 목소리가 너무 똑같은데.”

“맞아.”

지혁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가 태연하게 인정하자, 손현석은 잠깐 이해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처럼 움직임을 멈췄다가 이내 격한 반응을 쏟아내었다.

“아니 형.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숨길 수가 있어요.”

딱히 숨기려고 한 적은 없었다. 그저 나서서 말을 하지 않았을 뿐. 그리고 챌린저 유가 사실은 지혁이라는 것은, 조커 유가 지혁의 필명이라는 사실과 빗대어 생각해보면 태양과 반딧불만큼의 차이가 존재했다. 지혁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숨긴 적은 없었는데.”

“…그런 거 같네요. 순순히 시인하시는 것을 보면.”

무슨 취조하는 형사도 아니고.

지혁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손현석이 말했다.

“제가 어제 방송을 보고 있었는데, 형 리센(리라 센토) 완전 잘하시던데요? 1등 축하드려요. 형 렐도 엄청 잘한다면서요?”

“…뭐, 괜찮게 하는 편이지.”

손현석은 물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때까지 컴퓨터 게임과는 담을 쌓았던 삶을 살아온 그는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는 듯 게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증거로, 그는 최근에 대세게임 중 하나인 렐을 건드리게 되었는데 렐의 강의 영상을 찾다가 하나같이 챌린저 유 시절에 찍었던 강의 영상을 추천해대길래 뭔가 궁금해서 찾아가보는 과정에서 지혁의 예전 영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 같다. 보는데 뭔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인 것 같아서 고심하던 그는 지혁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되었고, 때마침 생방송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 지혁의 생방송으로 유입되었다.

그리고 그는 방송을 진행하는 지혁의 최신 목소리와 어투를 듣고서는 지혁이라는 확신을 가진 것 같았다.

그렇게 손현석이 지혁의 정체를 알게된 경위에 대해서 대강 다 말했을 무렵 남선혁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잘 쳤냐? 시험도 끝났는데 리센이나 하러 가자.”

그의 말에 지혁과 손현석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                 *                 *

“뭐? 진짜?”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식당. 지혁은 핸드폰으로 아까 다 보지 못했던 웹툰을 마저 보고 있는 중이었고, 손현석과 남선혁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손현석이 지혁의 정체를 까발리자, 남선혁은 깜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인터넷 방송이라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지, 챌린저 유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잘 몰랐다. 하긴, 그는 렐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모르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남선혁은 지혁이 최근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 리라 센토를 잘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더 정확히는, 지혁이 어제 실시간으로 랭킹 1등을 달성하는 것을 보았다는 손현석의 말에 놀란 기색이었다.

“형. 진짜에요?”

“…어어~”

웹툰에 푹 빠져있는 상태였던 지혁은 건성으로 대답해주고는 물컵을 들어 물을 홀짝였다.

“아니, 그 중요한 걸 왜 이제 말해요 형.”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티격대면서도 한 달 간 같이 지냈기 때문인지 어째 손현석과 반응이 엇비슷한 것 같다.

“그게 뭐가 중요해.”

“중요하죠. 랭겜 버스를 탈 수 있는데.”

“너 나랑 겜 같이 못 돌린다.”

하도 서로 티어로 싸워대니까 별 관심없는 지혁도 남선혁이 플래티넘이고, 손현석이 골드라는 사실은 잘 안다. 지혁은 최고 등급인 하이 마스터(High Master)다. 남선혁보다도 3단계나 높은 등급인 셈이었다. 당연히 차이가 있어서 같이 랭크게임은 돌릴 수 없다.

“그런가? 그럼 일겜이나 하죠. 밥 먹고 1위 실력 구경이나 해봅시다.”

“뭐… 그러던지.”

지혁은 다시 웹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저기…. 저기요.”

귓전에 들려오는 여성의 음성에 종업원이겠거니 여기며 웹툰에 집중하던 지혁은, 왠지 기류가 좀 이상한 것 같아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무릎을 살짝 굽힌채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빼어난 미모의 여성이 보였다.

“…저요?”

“네. 너무 제 스타일이셔서 그런데, 혹시 번호좀 주실 수 있어요?”

“아… 저 여자친구 있어요.”

지혁이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두 번 정도 더 그냥 친구로 지내도 괜찮다는 등 질척거렸다. 그러나 지혁은 최대한 좋게 웃으면서 연달아 거절했고 그녀는 결국 알겠다면서 물러갔다.

그리고 그 즉시 지혁은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리려다 그를 쳐다보고 있는 남선혁과 눈이 맞았다.

“왜. 뭐."

“형님 부럽습니다. 키크고, 잘생기고, 그림도 잘 그리고, 당구도 잘치고, 게임도 잘하고. 여자친구도 있고요.”

“시끄러. 너네 때매 계속 보다가 끊기잖아. 만화 다 볼때까지 말 시키지말고 둘이 오붓하게 놀아.”

“아니, 방금은 저희가 한게 아닌….”

지혁은 약간 신경질을 내고서는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의 남선혁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당황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이런 경험을 워낙 많이 하다보니까 이제는 별 감흥도 없이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지혁이 웹툰을 다 본 것은 음식이 나왔을 때였다.

“다 보셨어요?”

“어. 아우 재밌네.”

“대체 하루에 웹툰을 몇 개를 보는 거에요?”

보는 속도가 빠름에도 워낙 보는게 많다보니까 시간이 오래걸린다. 지혁은 남선혁의 물음에 고민하다가 말했다.

“한 20개쯤?”

“으엑. 전 보라고 해도 못볼듯요.”

그러던 와중 손현석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형 그 소식 들었어요? 이번에 아이펜에서 피규어를 낸다고 하던데요.”

“나는 피규어보다는 게임이 더 궁금하다. 리라 센토가 지금 1위 독주를 하고 있잖아.”

리라 센토는 출시된지 한 달이 넘은 지금도 1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아니,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시장을 박살내는 중이었다. 저번주 리라 센토의 PC방 점유율은 무려 48%에 달했던 것이다.

이 와중에도 렐은 22%가량의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분전하고 있었지만, 그 아래는 거의 전멸 수준이었다.

‘핵.’

지혁은 렐조차도 리라 센토의 파괴력에 휘청이는 현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 핵에 있다고 보았다.

렐은 현재 각종 핵이 난무하면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나마 낮은 티어는 좀 괜찮은 듯 하지만 상위티어의 유저들은 핵 때문에 고생을 좀 하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리라 센토는 이례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깨끗한 모습이었다. FPS게임이 핵이 더 판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었다. 심지어 게임성까지 좋고 재미도 있는데다가 기존의 FPS와는 다르게 신선함을 갖췄고, 그래픽도 타 게임보다 월등히 뛰어나니 인기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유저들도 이제는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아이펜에서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리라 센토에는 핵이 없다는 사실을. 절대 핵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혁의 전략은 굉장히 유효하게 작용한 것이다. 물론 핵을 잡고자 하는건 어느 게임사든 항상 품고있을 소망이겠지만.

국내에서도 그렇지만, 해외에서도 엄청난 반응이라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다양한 언어를 적용시켜 두었기 때문에 해외 유저들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 같았다.

‘빨리 아랜디가 나왔으면 좋겠다.’

솔직히 리라 센토도 어제 1위를 찍었을 뿐, 이미 실력은 최정상급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그래서인가,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시시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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