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90화 (90/116)

00090  과제  =========================================================================

교수는 지혁의 조에게 극찬을 내놓았다.

“감사합니다 형님.”

편집을 담당했던 손현석은 상영회가 끝나고 지혁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는 교수님에게서 그렇게까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지혁의 그림솜씨에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성공적으로 상영회를 마친 지혁은 다음 날에 있을 다른 시험을 위해서 일찍 집으로 귀가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험공부같은건 하지 않는다.

- 뭔 소리야. 무조건 제단이지. 이 형님 안 되겠네? 자, 사상검증 들어갑니다.

지혁은 작업실에 앉아서 거대한 스크린으로 다른 사람의 개인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손에 부스러기가 묻는 것이 싫어 젓가락으로 과자를 집어먹던 와중 들려온 갑작스러운 말에 화면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 이 질문 하나만 하면 확인이 가능하거든요? 제단 vs 로페네 누가 이깁니까 형님?

“…….”

무조건 제단이지.

지혁은 과자 한조각을 입으로 가져가며 저도 모르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로페네는 1기의 악역 대빵의 느낌이다. 제단은 2기부터 시작되는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 있는 중요한 인물이고, 로페네는 1기의 마지막에 죽게되는 여성 악마일 뿐이었다. 섹시한 언니라는 둥 인기가 굉장히 많다고 하지만, 1화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제단의 팬덤 역시 두터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 뒤로 10화가 넘어가도록 출연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단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인기가 있느냐가 아니다.

[ 당연히 로페네가 이기지 ]

- 아, 검증 끝. 끝. 끝! 로페네가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제방에서 다 나가주세요. 너무 불편하네여 진짜로.

아직 주인공 일행은 서부지역에 있을 뿐이다. 로페네는 서부에서 이름을 날리는 잡것(?)에 불과. 중부로 진입조차 하지 못했는데 동부에서도 활약하는 제단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로페네의 경우 일부로 중부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따로 작중에 나오는 설정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원작자인 지혁이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세부설정일 뿐), 어쨌든 로페네가 3명이 달라붙어도 제단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4기까지의 내용을 전부 알고있는 지혁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기는 하다. 지금 당장 표면적으로 보면 오히려 로페네가 더 강해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제단이 처치한 테쿤세는 주인공의 복수 대상인 7성좌 키에삭 베슈트펠의 화신이기는 하나, 엄밀히 따지면 그렇게 강한 녀석이라고는 볼 수 없고 제단 역시 화려한 검무(劍舞)로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기는 하지만 본연의 힘의 10분의 1도 발휘하지 않았다.

- 농담입니다 큰손 형님. 돌아오십쇼!

지혁이 들어가있는 ‘아르핀 대기방’의 목적은 아르핀을 보기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서 잡담을 나누는 곳이지만, 반대로 지혁은 대기방의 분위기만을 즐기고 막상 사람들이 영상에 집중할때는 슬며시 빠져나오는 편이었다. 왠지 낯간지스럽다고 해야할까. 혹평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항상 극찬만이 이어지니까 채팅을 보고 있으면 은근히 민망하다.

‘나왔다.’

동부의 지배자이자 이 세계관의 절대자인 일곱(七)개의 성좌(星座). 그 중 말단의 자리에 위치해 있는 칠성좌 키에삭 베슈트펠이 바로 테쿤세의 본신(本身)이며 주인공이 최종적으로 쓰러트려야할 흑막이다. 굳이 따지자면 녀석은 칠성좌 중에서도 두 번째로 꼽힐 무력을 가지고 있으나 말단의 자리에 있을 뿐인 것이고, 녀석은 자신의 화신을 여러개 만들어서 세상을 농락하는 것을 즐기는 악질이다.

당연히, 서부에도 테쿤세 이외에 키에삭 베슈트펠의 화신은 여럿 존재한다.

지금 등장한 페루이 역시 그 중 하나.

[ …! ]

키에삭 베슈트펠의 화신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오드아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왼쪽 눈이 하얗고, 오른쪽 눈이 검은 것이 상징인데 테쿤세 역시 그랬다.

주인공 아렌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새 페루이가 갑작스럽게 활강하는 것을 급히 피하던 그 순간, 녀석의 두 눈이 번뜩이고 상반된 색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스치듯 테쿤세의 두 눈이 떠오르는 연출이 이어지고 아렌이 눈을 부릅떴다.

잊고 있었던 숙적에 대한 번뜩임. 아렌은 곧이어 제단이 테쿤세를 완전히 죽여버리는 장면을 떠올린다. 녀석은 분명 죽었다.

[ …하지만 뭔가에 소속되어 있었던 걸지도 몰라 ]

그렇게 중얼거린 아렌은 이내 검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천천히 손잡이를 모아쥐고, 강한 힘에 의해 손바닥이 하얗게 물들어가는 것까지 선명하게 떠오른다.

[ 생포해야만 해. ]

그 생각을 끝으로, 아렌은 벼락같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가족의 원수에 대한 단서가 조금도 없었던 상황에 답답함을 느꼈던 것이 얼마 전의 일. 이미 복수의 대상은 제단의 손에 죽었다는 것을 알기에 허망함만을 느껴왔던 시간들. 좋은 동료들과 만났고 그들과 웃고 떠들고 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때의 비극이 계속해서 주인공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

[ 최대한 사로잡아야 합니다! ]

그리고 시작된 공중전에서 아렌은 여전히 쭉정이였다. 그는 전투에 큰 도움도 되지 않는 허접한 검사에 불과했다. 말만 사로잡아야한다고 악바리를 쓰는.

[ 아렌아. 추하다. ]

[ 페이아 존나 쌔네? 머임? 오칸 > 마쿠민 > 페이아 순 아니었음? ]

[ 페이아가 쌘게 아니라 부유술이 있으니까 효율적인 대처가 가능했었던 거고 활약할 수 있었던 거지. 지상전이었으면 오칸이 캐리했을거임 ]

[ 응 아님 페이아가 젤 쌤 ]

결국 아렌의 동료인 페이아가 주로 상대하고, 오칸과 마쿠민, 이셀이 돕는 형식으로 전투가 끝났다. 그들은 접전 끝에 페루이를 죽이는데 성공했고, 아렌은 그들에게 달려들며 생포해야 한다고 말했잖아 등의 주제도 파악 못하고 과한 성과만 바라는 짓거리를 했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오칸이 주인공의 뺨을 때리고 입술을 꽉 깨물며 삐진 아렌이 어디론가 달려가버리자, 넷 중에서 셋이 페이아를 쳐다보았다. 페이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갔다온다는 말과 함께 아렌을 달래기위해 뛰어가고, 셋이 남아서 전장을 정리한다.

[ 아렌 너무 구른다 리얼로 ]

[ 얜 걍 철이 없음 겨우 이겼구만 사로잡아야 한다느니 너무 지만 생각함 도움도 안되는게 어이가 없네 페이아는 대체 쟬 왜 좋아하는 거지? ]

[ 죽을 뻔한거 아렌이 살려줬잖음 ]

[ 아 아린이 진짜 죽빵 때리고 싶네 ㅋㅋ ]

[ 우리 렌이는 언제쯤 강해질까? ]

아렌의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렌은 1기가 끝날때까지 강해질 일이 없을 것이다. 아린이(아렌+어린이)라는 혼종 단어가 생길 정도로 아렌은 짐덩이 취급을 받고 있다. 실드를 쳐주는 아렌맘 vs 아렌을 까고 보는 아렌까 의 경합이 벌어질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기에 추후에 아렌이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했을 경우 팬들은 더욱 더 강렬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길게볼 것도 없이 당장 2기의 초입부분에서만 하더라도 아렌은 이제까지의 찌질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로 탈바꿈을 하게 된다.

- 진짜 제단 피규어 나오면 바로 산다 내가

대기방을 담당하는 방송인이 그렇게 말하자, 지혁은 음료를 마시다 말고 멈칫했다.

그는 얼마전에 게시판에 베스트를 차지하고 있는 글을 본적이 있었다.

[ 제발 뭐든 만들어주세요. 다 사겠습니다. ]

아르핀과 관련된 상품을 무엇이든 만들어달라는 요구. 사실 아르핀만이 아니라, 웹툰으로 제작되어 연재되고 있는 미니게임천국, 후유가와 건 힐러 역시 특정한 캐릭터에 애착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안 그래도 지혁은 그와 관련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2차 판권.

캐릭터 라이센스와 판권은 안 그래도 돈을 다발로 쓸어가는 지혁에게 거대한 날개로써 작용할 것이다. 지금이야 그저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작품의 결제를 통해서 얻는 수익보다도, 이쪽에서 얻어내는 것이 더 클지도 모른다. 아니 십중팔구는 더 클 것이다.

차현진을 통해서 이미 일을 진행중이기도 했다.

‘내일 보고를 받아봐야겠군.’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는 그도 조금 궁금했다.

*                 *                 *

“이건가요?”

지혁은 시제품이랍시고 피규어를 여러개 가지고 온 차현진을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지혁의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음.”

그녀가 가지고온 것은 3개. 그 중 하나가 주인공 아렌임은 당연하다. 헌데 그 옆에는 주인공의 동료들은 온데간데도 없고, 제단과 로페네가 있었다. 심지어 그 두 개는 아렌의 것보다도 더 공을 들여서 만든 것처럼 분위기가 남달랐다.

지혁이 그 부분에 관해서 묻자, 그녀는 곧장 답했다.

“아무래도 제단과 로페네가 가장 인기가 많다보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셋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최대한 세 피규어의 품질이 균등해보이도록 노력했습니다.”

사실 지혁 역시 가장 아르핀의 가장 큰 팬덤이 3개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무조건적으로 주인공을 지지하는 아렌파와 제단, 로페네를 지지하는 제단파, 로페네파였다. 그들은 3개의 부류로 나뉘어서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고 들었다.

‘이것들만은 아니지만.’

가장 먼저 시도해본 것이라서 차현진도 비중이 큰 캐릭터 세 개를 제작의뢰한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생산은 어느 정도 가능할까요?”

“현재 한 달에 10만개까지 생산할 수 있도록 시설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아직 부족하군요.”

10만. 적지 않은 숫자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아르핀에 몰린 관심은 엄청나다.

결제를 한 사람의 숫자가 5천만 정도일 뿐이지, 실제로 아르핀을 보고있을 사람들은 억 단위일 것으로 추정된다. 결제만 하면 다른 사람들과 아이디를 공유할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쏟아내고 있는데, 한달에 30만개를 낸다고 해서 성이 찰까? 오히려 이 경우 한정판의 느낌마저 들어서 주문이 폭주할 가능성이 높다. 시청자들 중 1%만 구매에 관심이 있어도 100만 단위의 고객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은 차현진이니 이 정도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10만이면 적지않은 숫자다. 의외로 피규어가 잘 팔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생산은 언제부터 가능하죠?”

“다음주부터 바로 발주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른시간, 회사를 나와서 집으로 돌아온 지혁은 작업실로 향한 뒤에 가방을 소파에 던지면서 중얼거렸다.

“아랜디가 등장할 시점인가.”

지혁이 만든 3개의 게임 중 하나인 ARD.

그것은 아르핀 랜덤 디펜스(Arpin Random Defence)를 줄인 말이었다.

1기의 절반이 진행된 지금, 슬슬 아랜디의 출범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