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88화 (88/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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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혁과 손현석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뭐야?”

“그건 저희가 할 말이에요. 뭐에요 형?”

“아… 갔다가 다시 온거야.”

지혁이 그렇게 말하자 손현석이 슬며시 맥주캔 하나를 내밀었다. 안 그래도 맥주가 고팠던 지혁은 반색하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러고 보니 가방은 없네요.”

“갔다가 다시 왔다니까.”

“리플라워 팬이에요? 하긴, 요새 대세긴 하죠.”

졸지에 리플라워의 팬이 되었으나, 지혁은 귀찮았기에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이 뒤로는 프리해요?”

“그럼. 이거 보고 놀자.”

“콜!”

남선혁이 호기롭게 외치며 맥주병을 들이밀자, 지혁은 맞대었다. 손현석까지 껴서 맥주병으로 건배를 한 뒤에 한모금 다시 마셨다.

“안주는 이거 뿐이에요.”

비닐에 담겨있는 육포. 지혁은 남선혁이 건네는 말린 고기 한점을 받아서 입안에 쏙 집어넣고 열심히 씹었다.

그렇게 가볍게 술을 마시면서 잠깐 그들과 잡담을 나누다보니, 공연시간이 되었다.

와아아아아아!

[ let's party time. time. time. time. ]

“신기하네요.”

“뭐가?”

“제가 연예인을 보는건 처음이거든요.”

남선혁의 말에 지혁은 피식 웃었다. 사실 지혁이 리플라워나 한예리와 관련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역시 연예인을 보면 생소한 기분 먼저 든다. 신기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혁은 리플라워 멤버들이 공연을 하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지혁이 그들에게 프로듀싱을 해주었고, 안무조차도 짜주었다지만 연습하는 과정만 보았을 뿐 정식 무대를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TV로야 봤었지만 직관해본 경험이 없다.

지혁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지, 감상하는 사람이 아니다. 지혁이 만들어낸 창조물, 결과물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대중.

지혁은 그저 창작자로써, 만들 뿐이다.

좀 신기하기는 하다. 지혁의 손에서 많은 것이 생겨난다는 이 감정이. 춤을 추며 노래하는 리플라워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팬들의 모습도 생경하고.

그건 작품을 통해 얻는 느낌과는 또 사뭇 달랐다. 지혁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게임 역시 이런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분야마다 느껴지는 감상이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지혁이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공연은 무사히 끝났다. 지혁은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리플라워 멤버들이 두리번거리면서 누군가를 찾는듯한 모습을 보이자 피식 웃었다. 그 순간, 서하린이 그를 발견했는지 지혁쪽을 쳐다보다가 두 멤버들을 툭툭 치고서는 지혁의 위치를 가르쳐주는 모습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혁과 아이 컨택을 한 세명이 당당하게 걸어 무대를 내려가고, 사회자가 진행을 한다.

무대에 내려가서도 주위를 둘러보며 인사하는 사람들의 리플라워의 모습을 보던 지혁은 잔존해있는 맥주를 입안으로 탈탈 털어넣었다.

*                 *                 *

‘오늘로 마지막인가.’

금요일. 축제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아르핀의 기세는 학교의 축제로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지혁은 축제 마지막 날임에도 불구하고 학과의 동기들이 어제 있었던 아르핀 13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 물론 이것은 수일에 걸친 축제로 인해 열기가 사그라들기 때문도 있겟지만.

여하튼 잘 될 거라고 예상은 했으나, 이건 좀 일이 커지고 있다는 기분도 든다.

거대한 센세이션. 스토리와 완벽한 제작이 맞물려서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어가고 있는 중이고, 유명 영화들의 수익을 바짝 쫓아가고 있었다.

13화가 방영된 현시점을 기준으로 한 화당 평균 결제는 2700만 정도. 총 결제 수는 3억 5천만을 돌파했다. 연재가 시작되면서 최신화뿐만 아니라 이전화까지도 빠르게 결제 비율이 증가하고 있으니 1기가 종영될 시점에는 화당 결제 1억도 꿈은 아닐지도 모른다.

1억이면 화당 순수익은 500억이고, 28화니까 총 1조 4천억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솔직히 좀 꿈같은 이야기지만, 그보다 더 잘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점차 인기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1조 가량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화 되어있다고 봐도 된다. 지혁은 자신이 있었다.

“…지금요?”

강의가 끝나고 강의실을 막 나서려던 지혁은 전화가 와 있길래 확인해보았다. 한예리였다. 지혁이 의아함에 미간을 미묘하게 찌푸리며 전화를 걸자, 그녀는 반갑게 전화를 받으며 이미 학교에 도착해있다는 말을 해왔다.

그녀의 공연은 밤에 예정되어 있고, 현재 시간은 오후 2시.

일러도 너무 이르다.

“…어, 일단 제가 가겠습니다. 지금 어디십니까?”

“아. 선생님 보이네요.”

그 말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지혁은 총바지에 흰 티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기가 맞다는 듯 손을 위로 들어 올려 흔드는 모습까지. 정체를 들키기 싫다는 듯 꾹 눌러쓴 검은색 모자 사이로 언뜻 보이는 하얀색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같이 걷고있던 남선혁, 손현석과 떨어지기에 그녀는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그렇게 조금 걸으니 마주보게 되었다. 그녀를 발견하고 벙쪘다가 전화를 끊었을 때 가까이에 다가와있을 정도였다.

한예리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에 찰랑거렸다.

“안녕하세요.”

“…왜, 이렇게 일찍….”

“아~ 오늘 제가 너무 한가해가지고…. 말로만 들어보았던 한국대학교도 한 번 구경해보고 싶고요. 혹시 불편하실까요?”

학교를 구경시켜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지혁 역시 신입생인지라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와 같이 다니는 것 자체가 좀 부담이었다.

어찌해야할지 고민하면서 옆으로 고개를 돌린 지혁은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둘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한예리를 지혁의 여자친구로 오인한 것 같았다.

눈빛으로 누구냐고 묻는 그들의 질문에 지혁은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둘은 오늘 한예리가 온다는 것에 상당히 호들갑을 떨었었다. 그것만으로 팬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최소한 그들이 알아보질 못하는 걸 보니, 그녀의 변장이 제대로이긴 한 모양이었다.

“나 먼저 가봐야겠다. 나중에 보자.”

“어… 네 형. 가보세요.”

그렇게 둘과 헤어진 지혁은 좀 어색한 느낌을 받으면서, 한예리와 함께 마지막 축제의 날을 불태우는 거리를 쏘다녔다.

“저희 저거 먹어요!”

한예리의 말에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갑을 꺼냈다. 길거리에서 팔던 닭꼬치를 하나씩 구입한 지혁은 그녀와 나란히 걸으면서 고기를 뜯었다.

점심을 안 먹어서 출출하던 찰나에 들어간 닭꼬치는 굉장히 맛있었다.

“그럼 영화 촬영은 완전히 끝난 겁니까?”

“네. 이틀 전에요. 어찌저찌 잘 끝냈어요.”

간단한 근황대화. 지혁은 문뜩 창연화에서 한복을 입고있던 한예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창연화는 지혁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다른 나라로의 수출도 왕성하다고 들었다. 때문에 그녀는 외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창연화는 지난달, 2월 26일. 38화의 여정을 끝맺었다. 마지막화의 시청률은 무려 43%. 최소한 최근 5년간의 드라마 중에서 창연화 이상의 시청률을 보였던 작품은 없었다.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고 볼 수 있었다.

지혁이 근황을 전해듣기로, 그녀는 창연화의 촬영이 끝났을 때부터 바로 작품활동을 추가로 이어나갔다고 했다. 그때부터 시작한 영화촬영은 거의 1달 반에 걸쳐서 진행되어, 얼마전에 끝났다는 것이다.

“저것도 괜찮은데요?”

지혁은 신나게 놀았다. 정체를 안 들킨게 신기할 정도로 열심히 싸돌아다녔다. 학교 전체를 한바퀴 돈 것 같았다. 어린시절 소풍갔을 때의 진이 다 빠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잔디밭에 주저앉게 되었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요즘 바쁘지 않나요? 영화촬영 말고도 스케줄 많을 거 같은데.”

“CF가 좀 많이 들어오기는 하죠.”

사뒀던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태연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지혁의 옆에 앉아있는 이 여인이 한예리라는 것을 알게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녀는 저 멀리 산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처리를 하다가 갑자기 지혁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저도 궁금한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요?”

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예리가 말했다.

“그때 그분은 여자친구 분이신가요?”

“…아.”

아무래도 차현진을 말하는 것 같았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으음~”

뭔가 미묘한 반응에 지혁이 그녀를 쳐다보자, 한예리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미소를 지은 것 같았다.

“와 존나 잘생겼다. 연예인인가?”

“어디? 우와 미쳤다. 대박대박.”

지나가던 여대생 둘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혁은 이제 일상과도 같은 일이라서 그런지 면역력이라는 게 생겨버렸다. 누군가가 그의 외모를 품평해도 그냥 넘겨버리는 경지에 이르러버린 것이다.

“저 이제 슬슬 가봐야할 것 같아요.”

슬슬 공연시간이 임박하고 있었다. 그녀도 준비를 하기는 해야할 테니까,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지혁은 이동해서, 부스에 그녀를 데려다주었다.

사실 한예리는 에이퀸이라는 그룹에 소속되어있는 걸그룹의 멤버다. 때문에 그런 그녀가 이런 축제의 자리에 혼자서 온 것은 좀 이상하기는 하다.

…조금 많이.

지혁이 남선혁에게 듣기로, 홍보문구에는 에이퀸이 아닌, 한예리라는 이름만이 강조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솔로곡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아마 그것을 부를 것 같다는 모양. 외모적인 부분으로 인하여 그녀는 엄청난 인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녀의 곡은 대중들에게 다소 생소한 느낌이 있다.

“…….”

잠깐 공연준비로 분주한 무대 뒤의 광경을 관찰하듯 쳐다보던 지혁은 이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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