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7 축제 =========================================================================
“새우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계란도 없어요!”
“진간장도 다 썼습니다!”
장사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잘되니까 재료가 동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예정되어있던 종료시간은 10시. 그러나 재료는 9시도 되지 않아서 모두 동났다. 심지어 도중에 급히 마트로 가서 재료를 대강 보충해왔음에도 그랬다. 결국 다시 식재료를 일괄적으로 채울 때까지 주점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재료를 보충할 때까지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디선가 폭주하는 주점의 상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달려온 총학생회의 누군가가 사정을 전해듣고 대기하는 손님들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주점이 이렇게 바쁠 거라고는 그들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 그런대로 이해해주는 분위기였다.
“빨리 갑시다.”
지혁은 마음이 급했다.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었다. 딱히 지혁이 대단한 의무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서 저렇게 줄까지 서가면서 기다리는데 그들에게 대접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혁은 새로이 장을 보기 위해서 급히 차출된 팀원들을 독촉했다. 특별히 어딘가에서 차량도 빌려주었기에, 그들은 단숨에 차를 타고 마트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필요한 재료들을 흩어져서 구매하기로 했다. 그렇게 폭풍처럼 구입이 끝나서 다시 돌아오니, 그새 줄은 거의 2배 가까이 길어져 있었다.
“와… 이게 뭐야.”
“진짜 미쳤네.”
지혁도 어이가 없었다.
“환장하겠네….”
이미 열 몇 명으로 어떻게 해볼만한 규모가 아니었다. 그들이 전문인력인 것도 아니고 초보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누군가가 불러낸 학과의 인물들이 추가인원으로 급히 파견되었다.
“21번 테이블 볶음밥 5개요!”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기존에 7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테이블은 이미 20개가 넘게 불어나 있었다. 헌데 그 모든 테이블이 만석일뿐더러,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들면 그것의 절반은 거뜬히 메울 수 있을 정도였다.
지혁은 미친 듯이 요리에만 집중했다. 급히 옆부스에서 끌어온 가스레인지까지 동원해서 한번에 너덧개의 요리를 해나갔다. 종류가 두 개뿐이니 한번에 두 개 이상을 요리해야할 정도로 주문량이 엄청난 것이다.
“…끝났다.”
재료를 박스채로 구매를 해왔는데도 거의 전멸 수준이었다. 다른 주점이 부러움과 시기의 눈빛을 보내는 것을 의식하는 것도 잊었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지혁이 한숨을 내쉬면서 의자에 주저앉아 근처에 놓여있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자, 존경한다는 눈빛으로 그를 보고있던 학과의 선배, 동기들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이 하면 똑같은 레시피인데도 제대로 맛이 나질 않았다. 때문에 지혁은 혼자서 메인 요리들을 모두 해내야만 했다. 헌데 지혁은 나중에는 6개의 불로 두 가지 종류의 요리를 각각 3개씩 해대면서도 단 한번의 실수없이 완벽하게 요리들을 완성시켜냈던 것이다.
이건 한 평생을 요리에만 전념한 장인도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실력이었다.
‘1년동안 할 요리를 하루만에 다 해치운 것 같아.’
시간은 이미 1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사실 다른 주점들은 아직 문을 닫지 않았으나, 만애과의 주점은 재료소진으로 인해 메인요리는 이제 끝났다는 문구를 붙이고, 기존의 주전부리 등으로 간단한 술집의 구성을 하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혁의 메인요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방금전의 폭풍이 무색하게, 지금 보이는 광경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고요한 편이었다.
“형. 사람 맞아요?”
“시끄럽담마. 말할 힘도 없다.”
사실 그 정도는 아니다. 그저 조금 지쳤을 뿐. 지혁은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고개를 좌우로 꺾고, 기지개도 펴며 몸을 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 모든 사단이 지혁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혁의 요리솜씨는 그만큼 훌륭했고, 한꺼번에 많은 요리들을 귀신같이 해내는 광경에는 모두가 넋을 잃었을 정도였다. 지혁은 자기도 모르게 존댓말을 하는 선배에게 그 사실을 지적하려다 관뒀다.
“…저, 오늘 매출액이 680만원 정도인데….”
한 사람의 1년 등록금 이상의 금액이었지만 지혁에게는 푼돈에 불과하기도 했다. 물론 그게 순수익은 아니라지만 어쨌든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큰 금액인 것도 사실이다.
지혁은 갑작스럽게 다가와서 슬며시 지혁에게 귓속말을 하는 그의 의중이 궁금했다.
“지금 차가 끊겨가지고… 집에 못가는 애들도 많을 거 같은데 전원 택시비를 지원해주거나, 아니면 모텔을 잡아드리겠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이미 지하철이나 버스도 끊겼을 시간이다.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그 사실도 잊고 있었다.
“어…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어보니 반은 집에 가고 싶어하고, 반은 그냥 근처 숙박시설에서 자고 내일 수업을 받고자 한다. 지혁이 그 의사를 전달하니, 담당 선배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지혁에게 봉투를 슥 내밀었다.
“어떻게 쓰시든 자유입니다.”
지혁이 슬쩍 보니까 5만원권이 다발로 들어 있었다. 추측컨대 대략 20장 정도이니 100만원을 맞춰서 챙겨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혁 때문에 많은 돈을 벌었으니까 이 정도는 선뜻 내어주는 것 같았다. 자유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지혁이 꿀꺽해도 문제가 없을 돈이다. 하지만 고작 100만원에 지혁이 그럴 이유가 없다. 그는 100만원이 아니라 100억을 거저 준다고 하더라도 낼름 삼키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공짜를 싫어하는 편이다. 사실, 이 100만원은 순전히 지혁의 공이라고 생각해서 얻어낸 성과이기는 하지만.
‘정당한 돈이라는 거지.’
어쨌든 이건 받아도 되는 것. 지혁은 알겠다고 하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지혁은 그냥 마음 편하게 10만원씩 10개로 나눴다. 그리고 한 명 당 10만원씩 나눠주었다.
“일당이라 쳐. 각자 하고싶은대로 하자고. 난 집에 간다.”
9명을 모아놓고 그렇게 말한 지혁은 때마침 길가에서 다가오고있는 택시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한바탕 큰 일을 치른 지혁은 무사히 집에 도착해서 곧장 골아떨어졌다.
* * *
“형. 오셨어요?”
“어. 후아암~”
잠을 별로 자질 못해서 그런지 피곤했다. 강의실로 들어서다 남선혁의 인사를 받은 지혁은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어제 진짜 대박이었어요.”
어제 같이 일을 했던 여자애들이 다가와서 말을 걸어왔다. 지혁이 적당히 대꾸해주자, 그들은 신나게 떠들어대었다. 그간 남선혁, 손현석이랑만 어울리면서 약간 겉도는 느낌이 있었던 지혁은 어제의 일을 계기로 과에 보다 자연스럽게 녹아든 기분이었다.
“어쨌든 일도 끝났으니까 오늘은 축제 구경할 수 있겠네요.”
“어… 난 오늘 약속이 있어서 안 돼.”
지혁의 말에 남선혁과 손현석 뿐만 아니라, 여자애들도 눈에 띄게 실망했다는 기색을 띄었다. 그러나 지혁은 오늘 해야할 일이 있었다.
리플라워가 초대가수로 오는 날이 오늘이다.
그때, 시선을 돌리던 지혁은 순간 보이는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도 이름은 모르는, 학과장이었다.
그는 입구쪽에서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 어제와는 지극히 상반된 모습. 잠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죄송합니다. 제가….”
지혁은 그와 말을 섞고싶지 않았다.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찾아오지 마십시오. 그 일을 책잡아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지혁은 그렇게 할 말만 하고 돌아서려고 했다. 그때, 그의 눈에 강의실로 들어오는 교수님이 보였다. 지혁은 입을 다물었고, 학과장은 그런 지혁의 시선을 따라 뒤를 쳐다보았다.
“거기. 권혁진. 뭐야?”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학과장, 아니 권혁진은 횡설수설 답하고는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는 기색이었다. 학과장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이 교수님이 유별나게 학과 학생들을 잘 기억하는 사람인지 교수님은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사이 지혁은 서둘러 강의실 내부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서 턱을 괸채 창가에 시선을 두던 지혁은 후다다닥 달려가는 권혁진의 뒷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이 간사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지혁이 아니었다면 그의 횡포에 놀아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다잡을 필요가 있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막상 나서서 뭔가를 하기에는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신동훈을 들쑤셔놓기는 했는데, 그라고 할지라도 학과 내에 잔존하고 있는 악습을 단기간에 철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혼자서 강의실을 빠져나간 지혁은 회사로 향했다.
업무를 보면서 시간을 죽치다가, 공연시간에 맞춰서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그러자 타이밍 좋게도 리플라워의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
지혁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밤이 시작되려고 하는 초저녁.
주위는 시끄러웠고, 불빛은 반짝인다. 축제. 젊음이 넘치고, 술잔이 부딪힌다. 음악과 춤이 자리한다.
축제.
‘…좋네.’
딱히 누가 있지 않아도, 그냥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것 자체로도 기분이 꽤 괜찮았다.
언제일까. 꼭, 지혁의 어린 시절의 공상과도 같은 세상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는 자유롭고도 평화로운 풍경을 이상향으로써 꿈꿔왔던 순간은 언제부터였을까.
지혁의 이러한 감성은 작품에도 자주 반영된다. 주인공 일행이 거대한 위기를 극복하고 연회를 여는 것이나, 당초에 새드엔딩으로 결정을 지은 생일날의 너에게 같은 작품이 아닌 경우 이런 축제와도 같은 현장을 끝으로 작품을 마무리 지은게 꽤 많았다.
후유가나 창연화, 왕 등은 물론이고 최근에 쓴 소설인 미니게임천국조차도 그랬으니까.
‘맥주 마시고 싶네.’
어릴 때는 대체 왜 하루의 마지막을 술으로 장식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생각 자체가 없었던 걸지도. 그리고 술을 먹어보았을 때는 더 이해가 안됐다. 영영 술이라는 것과는 인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의 마무리를 술로 시작하는 것에서 일말의 개운함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시간이 쌓여가고, 사람은 변화한다.
“좋네.”
“…그래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던 지혁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