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86화 (86/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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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냐는 말부터 시작해서 주제도 모르고 날뛴다는 등의 말이 이어졌다. 보통의 1학년이었다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선배고, 학과장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지혁은 그의 훈계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혁은 아쉬울 것이 없었다. 학교? 자퇴하면 그만이다. 대단히 큰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깟 졸업장이 없다고 해서 그가 밥벌이를 못하는 것 역시 아니다. 조커 유로써 쌓아온 지혁의 명성은 학교와 연관되지 않으면 단숨에 무너질 정도로 빈약하지도 않다. 오히려 지도교수조차도 벌벌 길 정도로 그의 힘은 대단하다.

지혁은 기본적으로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한 때 잘못된 길에 들어서려고 했었던 적이 있었으나, 그러지 않기로 마음을 다졌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가 좋다고 달라붙는 여자들을 마음껏 취할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혁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다. 그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지혁의 입장에 섰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모른다. 그저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고 본다. 지혁은 그게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누군가를 핍박하고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야 즐길 거 다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지혁은 굳이 그러지 않기로 했다.

말했듯 대단한 이유같은 건 없다. 그냥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실 신동훈과의 인맥을 이용해서 주점일 같은 것을 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혁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혁은 이용해먹으려고 신동훈과 친분을 쌓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엮여버리게 된다면야, 지혁도 어쩔 수 없다.

“야. 너 내 얘기 듣고 있냐?”

“안 듣고 있어.”

지혁은 막나가기로 했다.

문뜩 궁금해진 것이다. 지혁이 그에게 반말을 하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지금의 지혁이라면 그 이상을 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 학교로 치면 그가 지혁의 선배일 수 있으나, 사회에 나가게 되면 조커 유는 만애과의 학과장 따위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이 새끼가…!”

결국 참지 못했는지 손이 날아온다. 맞아줄 수도 있는 것이었으나 지혁은 이런 녀석에게 얻어맞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등을 벽에 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고개를 숙여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지혁은 그의 손바닥을 가볍게 회피하고서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쭈. 피해?”

학과장이 눈을 부라리며 손을 들어올리던 그 순간이었다.

“거기 뭐해!”

갑작스러운 고함소리에 지혁과 학과장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그리고 거기엔, 분노한 표정을 하고 있는 신동훈이 있었다.

“헉. 교, 교수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처럼 낭패감이 어린 표정을 하고 있는 학과장을 물끄러미 쳐다본 지혁은 그가 멱살을 잡았던 부분을 손으로 탁탁 털었다.

그 사이 신동훈은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다짜고짜 지혁을 보며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지혁은 이제 소매를 털어내는 중이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린채 대꾸한 지혁이 고개를 들어올리자, 그가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 처리 좀 해주십시오. 저는 1학년이라면 누구나 강제로 참가해야 하는 주점 일을 해야 해서.”

말에 뼈를 담아서 그런지 신동훈이 흠칫하는 기색이었다.

그 사이 지혁은 옆을 쳐다보았다. 학과장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 이라는 표정으로 지혁과 신동훈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전 이만.”

굳이 지혁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학과장은 신동훈에게 깨질 것이다. 지혁은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지혁은 한적한 장소를 빠져나와서 부지런히 걸어 주점에 도착했다.

“자자. 업무 분담해야 되나까 다들 모여봐.”

지혁은 주점에 도착하자마자 태연한 어조로 주점을 운영하기로 했던 여자애들과 남선혁, 손현석을 불렀다. 어색한 분위기를 최대한 무마하고자 함이었지만, 분담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서빙은 여자애들이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지혁은 일손을 거들 사람들을 미리 봐두었다. 재료준비를 할 때 잘했던 애들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파트를 맡아서 하게 되었고, 메인 요리사는 지혁이었다.

“생각보다 일이 바쁘지는 않네요?”

남선혁의 말에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한가했다.

애당초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본래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곳을 통째로 주점의 형식으로 개조한 거라서 다른 학과의 주점들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안그래도 적은 사람들이 주점에 이래저래 분산되다보니까, 한시간이 넘도록 손님은 2파티가 고작이었다.

“와 개맛있네. 한국대는 축제 수준도 다른가봐.”

주점의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은, 고등학생이라고 추측되는 교복입은 남자애들 셋이 떠드는 소리가 지혁에게 들려왔다. 그들은 학교 끝나고 잠깐 들른 인근 고등학교의 학생들인 모양이었다.

“아니야. 난 작년에도 왔었잖아. 그때는 존나 맛없었다니까.”

“여기는 냄새부터 좋다고 했잖아.”

“작년에 너무 데여가지고 그랬지.”

지혁은 이내 그들의 대화를 무시하고 손현석, 남선혁과 잡담을 나눴다. 같이 일하는 여자애들도 자기들도 끼워달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대체로 중간고사에 대한 것들이었다. 당장 다음주가 시험이니까 축제를 편히 즐기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들은 기본적으로 수재들. 애당초 할 말도 별로 없으니까 그걸 잡고 주구장창 얘기하는 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근데 너희 작품은 진짜 대단하더라. 어떻게 벌써 그만큼 완성했어? 그리고 그림 실력도 엄청나던데.”

“당연하지. 그림은 형이 그렸으니까.”

“아…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셔?”

슬쩍 지혁을 쳐다본 여자애 한명이 그렇게 묻자, 남선혁이 신나서 떠들어대었다.

“실력도 좋은데 속도도 빨라. 그냥 그림 그리는 기계야.”

말을 해도 꼭.

별로 듣고싶지 않은 대화였지만, 한가해서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잠시였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점점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선배들의 강요에 의해 강제로 쿠폰을 구입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주점을 찾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나가다가 냄새에 휩쓸려서 온 사람, 그냥 아무데나 잡고 들어온 것인데 하필 우리 주점인 사람 등등 손님은 아주 다양하게 몰렸다.

“볶음밥 2개요!”

그리고, 그건 곧 지혁이 굉장히 바빠졌음을 의미한다. 지혁은 쉬지않고 웍질을 해대야 했으며, 그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일 때마다 불쇼가 일어나고, 볶음밥이 원형을 그리며 허공을 날아다녔다.

“와… 여기는 전문 요리사 고용했어요?”

“아뇨. 저희 학과 1학년이에요. 알고 보니까 요리를 좀 잘하더라고요.”

머지않아 주점 일을 관리하러 온 선배들도 서빙을 해야할 정도로 주점은 굉장히 바빠졌다. 손님이 북적이기 시작하고 30분이 채 되지 않아서, 대기열까지 생겨버렸을 정도였다.

‘너무 설쳤나?’

불맛을 제대로 내야 볶음밥이 더 맛있어지니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는데, 그게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끈 모양이었다. 밤이라서 그런지 불은 더 잘 보였을 것이다.

‘바쁘면 바쁜대로.’

어차피 일하는 시간은 10시까지다. 그 뒤는 알바도 아니고 지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릴 생각이었다. 솔직히, 요리를 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의 요리를 먹어준다는 건 은근히 재미있었다. 나중에 음식점을 한 번 차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짜 맛있다. 근데 이건 안주가 아니라 식사 아니야?”

간간히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볶음밥을 주점에서 한다는 건 좀 이상하다. 하지만 지혁은 아까 과대가 고른 메뉴 두 가지만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볶음밥과 닭볶음탕을 메인으로 내놓고 있었다. 술이 고픈 사람들은 볶음밥이 아니라 닭볶음탕을 시켜야 할텐데, 지혁의 솜씨에 매료되기라도 한 것인지 볶음밥을 시키지 않는 테이블이 없었다. 맛이라도 보자는 의미인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라 요 몇 년 사이 먹어본 것중에 가장 맛있는 거 같다.”

“살면서 먹어본 것중에 손에 꼽을 정도야.”

손님들의 극찬은 청각이 발달한 지혁의 귀에 쏙쏙 들려왔다. 지혁은 기분이 좋아 웃으면서 요리를 해 나갔다.

그때였다.

[ 메뉴는 이거 두 개 뿐인가요? ]

지혁은 갑작스럽게 스페인어가 들려오자 흠칫했다. 웍질을 하는 와중에도 고개를 돌리니, 한 외국인이 신입생 10명으로는 일손이 부족해서 감독을 하러 왔다가 졸지에 서빙을 하고있는 선배에게 스페인어로 무언가를 질문하고 있었다. 한국대에 외국인이 없는 것도 아니니 그다지 이상한 일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어쨌든 그녀는 당황하고 있었다. 영어로 영어 가능하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이런 말하기는 뭣하지만, 지혁은 언어가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찾아와서는 이것저것을 따지는 저런 부류는 진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선혁아 이것좀 담아서 내줘.”

그러나 어쨌든 손님은 손님. 잠깐 고민하던 지혁은 마침 완성된 볶음밥이 담긴 웍을 남선혁에게 건네주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 메뉴는 한국식 새우가 들어간 한국식 계란볶음밥이랑 닭과 양념을 버무린 닭볶음탕뿐입니다. 그 이외에는 마른 안주나 땅콩 류의 견과류, 번데기 등이 있습니다. ]

지혁이 능숙하게 스페인어로 말하자 그는 반색하는 기색이었다.

[ 오, 스페인어를 할 줄 아시네요? ]

[ 어깨 너머로 배웠습니다. ]

[ 지나가다가 냄새가 너무 좋아가지고 저도 모르게 와버렸네요. 스페인어를 할 줄 아시는 분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

[ 하하. 제가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

지혁이 유창하게 스페인어를 구사하기 시작하자, 서빙하던 여자 선배가 지혁과 외국인 손님을 번갈아보는 기색이었다. 지혁은 시선을 가볍게 받아넘기며 그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무리 한국대생이라고 하더라도, 영어도 아니고 스페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터였다.

[ 일행이 두 명 더 있는데요. 메인 요리 두 개의 양이 어느 정도죠? ]

[ 볶음밥은 1인분이고 닭볶음탕은…. ]

그는 본래 성격이 그런지 꽤 꼼꼼하게 주문을 점검해나갔고, 지혁은 최대한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결국 그는 볶음밥 하나와 닭볶음탕 하나를 시켰다.

“볶음밥이랑 닭볶음탕 하나 주문한다고 합니다.”

“아 그, 그래? 알았어.”

선배가 대답하는 것을 본 지혁은 다시 요리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돌아왔다.

“여기 테이블 지원 필요합니다!”

그 사이 선배들은 무전을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까 정신이 없는 것이다.

입소문이라도 난 것인지, 줄이 긴대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주점의 테이블은 한정적인데 수요가 너무 많으니까 지혁이 빠르게 요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따라가질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음식이 나오는 속도 자체가 느린 편은 아니었으나, 손님들이 먹는 속도는 새로운 손님이 오는 속도보다 현저히 더뎠다.

결국 주위의 주점들에 남아도는 테이블을 끌어다가 써야하는 지경까지 몰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부족해서 여분의 테이블과 의자를 어디선가 받아왔을정도.

대학교의 주점은 가격이 싸지 않다. 오히려 바가지라는 느낌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지혁은 애당초 장사가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격을 그리 높게 책정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아깝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요리를 막 시켜댔다.

‘보람차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바쁘긴 하지만 지혁은 즐거웠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매출이 역대급의 기록을 달성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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