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81화 (81/116)

00081  리라 센토(lyra Cento)  =========================================================================

수요일. 첫 강의시간에 맞춰서 강의실에 일찍 도착한 지혁은 그가 잠깐 음료수를 뽑으러 자리를 비운 사이 남선혁만 앉아있던 곳에 손현석이 다가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야. 혹시 리라 센토 해봤냐?”

움찔.

지혁은 익숙한 이름이 들려오는 것에 흠칫했지만, 이내 슬며시 캔을 남선혁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손현석이 좋아하는 것도 뽑아왔기 때문에, 그는 지혁에게 캔을 받아들고서는 꾸벅 인사를 했다. 지혁은 중앙의 자리에 앉았다.

“리라 센토?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이번에 나온 신작 게임이잖아. 몰라?”

“아~ 미니게임천국?”

남선혁이 그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손현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미니게임천국? 그게 뭔데?”

“야. 그것도 몰라? 조커 유의 2번째 소설이잖아. 현재 아이펜에서 웹툰으로 연재도 되고 있는데. 이 새끼 세상 헛살고 있네.”

“지는. 리라 센토가 이틀 전에 아이펜에서 처음으로 발매한 게임이라는 건 아냐?”

만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사이가 굉장히 좋다. 지혁은 양옆에서 치고박고 싸우는 그들을 말리지 않은 채 진지한 표정으로 핸드폰에 시선을 두고 깐 음료수 캔을 입에 가져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수요일자 웹툰을 쏵 몰아보는 중요한 의식을 하고있는 중이었다. 지혁이 하루 중에서 가장 집중을 많이하는 시간대가 바로 그날치 웹툰을 볼때였다.

“…….”

“…뭐야?”

어느 순간, 갑자기 소란이 종료되어서 고개를 들어올린 지혁은 그를 쳐다보고 있는 둘을 발견하고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캔을 입으로 가져갔다.

“형은 핸드폰을 보는 것도 화보같네요.”

“어우 씨.”

지혁은 진심으로 소름끼친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느끼하고 난리야.

그러자 그의 시선을 받은 남선혁이 억울하다는 듯 손바닥으로 주위를 가리켰다. 지혁은 그의 행동을 따라 시선을 사방으로 옮겼는데, 일사분란하게 고개를 돌리는 여성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지혁이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릴 때, 문이 열리고 교수님이라 생각되는 사람이 들어왔다. 지혁은 핸드폰을 끄고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첫 주라서 역시 수업은 금방 끝났다. 그런데 이번 교수님은 끝에 사족을 붙였다.

“그리고 오늘 5시에 특별강의가 있습니다. 오든 안오든 자유지만 오는 것이 좋을 겁니다. 여러분한테는 선배가 되겠네요. 저희가 특별한 사람을 한 분 모셨으니까,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참석하길 바랍니다. 아마 많은 도움이 될겁니다.”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이 그 말을 남기고 나갔다. 그저 의례적인 말일 수도 있으나, 받아들이는 느낌이 좀 다른 것 같았다. 그러나 지혁은 별로 가고싶지 않았다. 관심도 없었고.

헌데 분위기는 좀 미묘했다.

고작 3일차이기는 하지만 학과 분위기를 대강은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의 동기들은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방탕하게 놀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아보였다. 아닐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혁이 보기엔 그런 분위기였다. 수업에 빠진 사람도 굉장히 드물었으며 흔한 지각생도 거의 없고 수업 도중에 졸거나 딴짓하는 이들도 드물었다. 초반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계속 이런 분위기가 유지될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어떡할래?”

“뭘 어떡해, 가야지. 당연한 걸 묻고 있어.”

지혁의 뒷자리에 앉아있던 여자 동기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남선혁과 손현석도 가야한다는 생각이 당연하게 있는 듯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진짜 가기싫은데, 남선혁과 손현석 역시 가야한다는 인식이 강한 모양이었다.

공강시간에 밥도 먹고, 적당히 놀면서 시간을 보낸 셋은 두 번째 강의에 참석했다. 첫주차부터 심상치않은 기류를 풍겼던 교수는 두 번의 휴식시간을 제외하면 강의시간을 1분도 낭비하지 않고 굉장히 빡빡하게 채웠다.

“오늘 5시에 특별한 강의가 있을 겁니다. 저희 교수진도 모두 참석을 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자리이니만큼, 신입생들도 많이 참여해주었으면 하네요. 아예 대강당을 빌렸으니까 자리가 부족할 일은 없을 겁니다. 오지 않더라도 불이익은 없겠지만 여러분 선배들도 대부분 올테니까, 뒤처지고 싶지 않다면 오는 것을 권장합니다.”

대체 누가 오길래 이렇게 강조까지 하면서 오라고 하는 걸까?

지혁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듯, 첫 교수님때는 그저 다양한 기회를 경험시켜주려는 모양이다 정도로 인식하던 동기들의 표정도 사뭇 진지해져 있었다. 교수들도 전원 참석할 정도라면 보통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지혁은 잠깐 남는 시간에 남선혁과 손현석을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적당히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강의가 있는 5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긴 거 같은데요?”

아직 학교의 시설을 정확하게 알지는 몰라서 조금 헤맸던 일행은 겨우겨우 대강당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은 수백명을 수용할 수 있을만큼 컸다. 공연장과도 같은 느낌.

10분 전이라서 그런지 내부는 굉장히 복잡했다. 사람이 엄청 많았다. 그리고 학생뿐만 아니라 누가 봐도 교수라고 생각되는 이들은 대부분 앞자리를 점거하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한두명이 아니었다. 족히 4~50명은 되는 것 같다.

‘…뭐냐 이거.’

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내해주는 선배를 따라 이동, 신입생들의 자리라고 생각되는 측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규모가 장난이 아닌데요?”

남선혁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지혁은 웅성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특별강의를 해줄 인물이 누군지에 대한 궁금증을 부풀려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시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주위의 소음이 뚝 멎었다. 지혁이 고개를 들자, 훤칠한 남자가 정장차림으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

“안녕하십니까.”

와아아아. 짝짝짝짝.

열렬한 환호 속에서 간단한 인사말을 끝낸 그는 자기의 소개를 시작했다.

“저는 아이펜의 애니메이션 2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이진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다시 한 번 터져나오는 환호성. 그리고 지혁은 침묵했다.

특별강사라는 사람이 당신이었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어제, 지혁에게 옴팡지게 얻어터질 각오를 하고서 찾아와선 쩔쩔매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답지 않게 강당에 서있는 그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 차이가 너무나도 커서 실로 당황스러웠다.

“그럼 간단한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이진우는 이런 강의를 수없이 경험한 사람처럼 연륜마저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태도로 강의를 해나갔고, 사람들은 금방 몰입했다.

“조커 유 선생님께서는 대단하신 분입니다. 이번 아르핀 프로젝트 역시 주도하셨으며, 거의 대부분에 선생님의 손길이 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5일에 걸쳐 진행되었던 아르핀의 성우 오디션의 책임자로써 자리해 주셨는데, 대역을 직접 연기해주셨습니다. 오디션에 참가했던 쟁쟁한 성우들이 깜짝 놀랐을 정도로 솜씨가 뛰어나셨….”

그렇게 지혁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던 이진우는 그 순간 지혁과 눈이 딱 마주치고서는 멈칫했다.

잠깐의 정적 끝에 옅은 미소를 짓고 있던 표정을 싹 굳혔다. 곧이어 격하게 흔들리는 그의 동공을 바라보던 지혁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고, 이진우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서는 말을 시작했다.

“…습니다. 그….”

“…?”

갑작스럽게 태도가 확 변한 이진우의 모습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그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서 강의를 해 나갔다.

하지만 방금 전과는 다르게 목소리가 급격히 떨려오고 있었다.

“와. 조커 유를 직접 봤대요. 대박 아니에요?”

옆에서 남선혁이 말을 걸어왔으나 지혁은 강의에 집중하는 척 무시했다.

편하게 내려보는 시선의 느낌으로 강의를 진행하던 이진우의 언행이 확 달라졌다. 지혁과 눈이 맞은 시점부터 갑자기 상급자에게 보고를 하는 듯한 자리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지혁은 한숨이 나왔지만, 강의도 막바지에 치닫고 있으니까 그냥 듣기로 했다.

“여러분들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이펜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 언제든 도전하십시오.”

대강 동기부여를 해주는 말을 끝으로 강의가 끝났다.

“가자.”

지혁은 가방을 챙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걸어가는 지혁의 등 뒤로 이진우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혁은 모른 척 했다.

“혹시 오늘도 일찍 가시나요?”

지혁은 남선혁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딱히 일정이 있지는 않았다.

“그럼 PC방 가실래요?”

남선혁의 말에 난색을 표한 것은 지혁이 아니라 손현석이었다.

“나 게임 잘 못해.”

“아까 내가 말했잖아. 아이펜에서 게임이 하나 나왔다고. 이제 이틀됐어. 나도 잘 못해.”

“나는 게임을 해본적이 없다니까.”

“그럼 나는 뭐 저번에 4구 해봐서 니랑 같이 쳤냐?”

또 시작이군.

지혁은 다시 맞붙은 둘을 쳐다보다가 적당히 중재를 해서 그들과 함께 PC방으로 가게 되었다. 딴지를 걸기는 했어도, 손현석 역시 아이펜에서 발매했다는 게임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다들 아이펜에 계정은 있죠? 그걸로 바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어요. 근데 9900원을 결제해서 게임을 구입해야만 할 수 있어요. PC에서도 게임을 구입한 자기 계정 아니면 할 수 없으니까 참고하세요.”

지혁은 무엇이든 가능한 마스터 계정이 아닌, 그의 명의로 되어있는 평범한 계정에 접속했다. 하나 만들어두기는 했는데, 들어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슬쩍 보니 손현석은 지혁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말을 증명하듯,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충전액이 10만원이 넘었다. 그걸 사용해서 게임을 구입할 수 있었고 지혁 역시 돈을 충전해 두었기 때문에 게임의 구입은 금방 이루어졌다.

이틀 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음에도, 전 좌석에 리라 센토가 깔려 있어서 곧장 접속을 할 수 있었다.

“…….”

지혁이 일어나서 슬쩍 둘러보니, 렐을 플레이 하는 사람보다 리라 센토의 화면을 띄우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았다.

“형 여기로 들어오시면 되요.”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