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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재능-77화 (77/116)

00077  학교생활  =========================================================================

손현석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4구라는 것에 관한 룰이었다.

빨간 공이 2개, 흰색이랑 노란색 공이 1개씩 있는데, 흰색 공을 치게 된다면 흰색 공을 큐대라는 것으로 한번만 쳐서 빨간색 공 두 개를 맞추는 게임이었다. 2개를 다 맞춘다면 1점을 얻고 다시 한 번 더 칠 기회를 얻으며, 하나만 맞추면 0점에 상대편에게 기회가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만약 상대편의 공(내가 흰색일 경우 노란색)을 맞추면 -1점이 된다. 공을 하나도 못 맞춰도 마찬가지로 감점.

“우리는 좁밥이니까 감점없이 하는 걸로 하자.”

손현석은 그 사이 친해졌다고 생각이라도 하는 것인지, 본래의 험한 언어습관이 튀어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실 손현석도 그리 소심한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혁은 거기서 왠지 지혁의 외모 때문에 그가 주눅들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짧게 했다.

여하튼 지혁은 그가 욕설을 내뱉든 말든 아무래도 상관없었고 남선혁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러면 못 맞추거나 상대공을 맞추면 그냥 턴이 넘어가는 걸로?”

“응. 그렇게 안하면 오히려 점수 늘어나면서 겜 길어진다.”

“경험담이야?”

“그래.”

둘이 얘기하는 것을 들으며 당구공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던 지혁은 문뜩 의문이 생겨서 물었다.

“근데 너는 당구 좀 치는 거 아니야?”

“저도 쌉벌레에요. 물론 당연히 처음치는 사람들보단 잘치죠. 그러니까 두 사람의 점수를 합산하고, 저는 제 점수만으로 대결을 하는 식으로 하면 될 거 같아요.”

쌉벌레…. 지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일단 괜찮은 것 같다. 스타워에서 남선혁이 지혁에게 패널티를 주었듯, 실력에 따라서 조건이 달라야만 승부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원래 내기를 걸어야 재밌는데.”

“걸어 그럼. 뭐할까? 여기 당구장값 내기하면 되겠다.”

손현석의 중얼거림을 좋다구나 받은 남선혁의 모습에 지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숨을 쉬고 있는 동안에도, 초 단위로 당구장 값 정도야 벌고 있는 지혁이기 때문에 이기든지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저 뭔가가 걸려 있으면 느낌이 좀 다르니까 하는게 괜찮다고 생각할 뿐이다.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한다.”

“오게이.”

딱!

그렇게 손현석의 첫 발로 당구시합이 시작되었다.

딱. 따닥!

“아싸!”

손현석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첫 발에 득점을 낸 그는 폴짝폴짝 뛰면서 첫 점수의 달콤함을 마음껏 만끽했다.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말했잖아. 나도 못 친다고.”

남선혁의 말에 그렇게 대꾸한 손현석은 이어서 자세를 잡고 큐대를 움직였다.

틱.

방금 한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두 번째 공에서 삑사리를 내며 단 하나의 공도 맞추지 못했다. 빗맞은 공은 허우적대면서 느릿하게 굴러가 벽에 부딪힌 뒤 살짝 떨어져서 멈췄다. 민망한지 손현석이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 보였다.

이제 남선혁의 차례였다.

‘…그냥 각도를 계산해서 치면 끝인 건가?’

지혁은 단순하게 생각해보기로 하며, 남선혁의 1구를 보며 집중하기로 했다. 큐대를 한쪽에 걸쳐두고 팔짱을 낀 지혁은, 남선혁이 치는 과정을 세심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포켓볼처럼 그냥 치면 되는 거야?”

“좀 다른데… 일단 처음은 그냥 니 감대로 해봐.”

손현석에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남선혁이 그대로 큐대를 앞으로 휙 쳐냈다.

딱! 딱!

“…….”

“아, 아깝다.”

남선혁의 타구는 제대로 맞은 듯 소리도 경쾌했지만 당연히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벽에 한 번 부딪히더니 그의 예상경로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빗겨나가 각도가 살짝 덜한다는 느낌으로 공을 제쳐 지나치고 만 것이다. 원래 룰대로라면 하나는 맞췄으니 감점은 되지 않겠지만, 점수도 올리지 못한 셈이니 큰 의미는 없는 공이었던 셈.

딱!

뒤이어 손현석이 두 번째로 공을 쳤지만 그의 공은 단 하나의 공도 맞추지 못하고 강하게 벽과 세 번 마찰을 빚은 후 서서히 멈춰섰다. 이 경우 감점이다.

“아~”

아쉽다는 듯 탄성을 내지르는 손현석. 그러나 지혁이 보기에는 당연한 결과였다.

‘…….’

일단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지혁은 자세를 잡았다.

딱! 딱! 턱. 딱!

“…어?”

“형. 나이스!”

지혁이 쳐낸 공은 붉은 공을 가격하고서 벽에 한 번 부딪힌 뒤, 그 뒤에 자리하던 공을 때려냈다. 생애 처음으로 때려본 공에서 바로 득점을 해낸 것이다.

‘…….’

그러나 지혁은 오히려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결과는 좋았지만, 과정은 그의 예상대로 흘러간 것이 아니었다. 지혁은 공을 맞추고 벽에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다음 공에 맞도록 설계하고 공을 쳐냈던 것이다. 헌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은 벽에 한 번 부딪힌 다음 움직였다. 한 마디로, 지혁이 쏘아낸 공은 그의 의도대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는 셈이다. 이건 그저 요행에 불과했다.

‘뭐가 문제지?’

지혁은 금새 당구에 몰입하고 있었다.

큐대를 쥔채로 팔짱을 낀 지혁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뜩, 그가 쳐냈던 공이 끝부분에 이르기까지 미묘하게 회전을 하고 있었던 사실을 인지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쳐낸 공은 회전도 하고, 그 회전이라는 것은 당연히 공의 어느 부위를 가격하느냐에 따라서 방향도 달라진다. 시계 방향의 회전과 반시계 방향의 회전은 물론이고, 대각선도 가능하다. 그리고 회전의 세기는 공을 강하게 치느냐, 약하게 치느냐의 영향도 분명히 받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쳐낸 공이 다른 공이나 벽에 부딪힐 경우 생기는 손실 등을 감안한다면….

“…….”

“형 왜 안치….”

남선혁이 지혁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할 때, 지혁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움직였다. 큐대를 잡아서 자세를 잡은 지혁은 두 번 정도 앞뒤로 왔다갔다하다가 공을 강하게 쳐냈다.

딱! 딱! 턱. 턱. 턱. 턱. 딱!

지혁이 쳐낸 공은 빨간색 공 하나를 맞추고 벽에 부딪혔다. 그 뒤로 두 번 더 벽에 부딪힌 다음, 다른 빨간색 공을 쳐내고 옆으로 휜다. 벽에 총 3번을 부딪힌 다음 목표한 공을 맞춘 것이다.

“오오…. 개쩔었다!”

남선혁은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지혁에게 그의 반응은 들려오지 않았다. 당연히 우연이 아니었지만 그런 사실을 말해줄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지혁은 집중하고 있었다.

“…….”

딱! 딱! 턱. 턱. 턱. 턱. 딱!

이번엔 네 번. 흰공이 첫 공을 맞추고 벽에 네 번을 박은 뒤에 두 번째 붉은 공에 아슬아슬하게 부딪혔다.

“어, 엉?”

“…?”

그때쯤 남선혁과 손현석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인지 표정을 굳혀가는 것이 보였다. 두 번도 아니고 세 번 연속이다. 우연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그러거나 말거나 지혁은 이미 옆으로 이동중이었다.

딱. 따닥.

나란히 붙어있는 공 두 개를 맞추는 것은 이전에 비하면 굉장히 쉬웠다. 지혁이 적당히 힘을 조절해서 흰공을 쳐내자, 녀석은 곧장 앞으로 뻗어나가 붉은공 두 개를 나란히 맞춰냈다. 이로써 한 번에 4개의 득점을 하게된 셈이었다.

‘그리 어렵진 않네.’

지혁은 금방 흥미가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본래 지혁이 당구에 재능이 특출나기라도 했었던 것인지, 당구는 유난히 쉬웠다.

물론 당구가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다. 할만은 하다.

한 번 쳐보고 판단할만큼 당구가 매력이 없는 종목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결국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 다른 법이다. 누구나 좋아하고 재밌게 즐기는 놀이가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당사자인 지혁이 재미없으면 끝인 것이다. 만약 재미를 찾았다면 향상심이라는 것도 느끼고 열의가 생겼을 수도 있는데 시작부터 이러니까 별 감흥이 없었다.

‘최근에는 이런 느낌이 점점 강해지고 있기는 하지.’

여러 가지의 분야를 익히는 과정에서 지혁은 기존의 지식이나 경험들이 새로이 익히는 분야와 상호작용을 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가 알고있는 많은 것들이 습득의 가속화로 이어진다는 개념인 것이다. 더불어, 하나의 무언가를 극한으로 익히게 되니 다른 모든 흐름들을 달통하게 된다는 느낌도 있다. 만류귀종(萬流歸宗). 지혁은 이미 재능이라는 것을 개안(開眼) 해버린 것이다. 당구도 이러한 관념에 의해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말도 안되는 속도로 익혀버리는 것처럼 비춰지는 셈이었다.

“형님. 솔직하게 몇 다마에요?”

연속해서 4번이나 득점을 한 순간, 손현석이 표정을 굳히며 지혁에게 물어왔다. 지혁은 그에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마가 뭔데?”

“…….”

손현석은 방금 전까지 그의 설명을 유심히 듣고있던 지혁의 모습을 떠올린 것인지 금방이라도 격렬하게 항의할 것 같던 기색을 보이다 주춤했다.

“정말 처음 치는 거에요?”

“어. 당구장도 처음 와보는데?”

손현석은 지혁의 실력과 보였던 모습 사이에서 갭을 느끼는지 혼란스러워했다.

“어쨌든 이건 불공평해요. 게임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냥 해. 돈은 내가 내줄게.”

지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큐대를 잡아갔다. 돈 굳었다는 생각이 들은 건지 남선혁과 손현석이 표정이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며 지혁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평범하게 치게 되면 그들과 수준차이가 너무 나게 된다. 어이없는 말이지만, 방금 당구를 시작했으나 이미 그들과 지혁의 격차는 확연한 수준이었다.

‘일부러 좀 어려운 길로 쳐보자.’

그럼 지혁도 실수하지 않을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공을 과감하게 쳐냈다.

굉장히 복잡한 길로 쳐냈기 때문에 예상대로 지혁의 공은 불발이 되었다.

“그냥 셋이서 번갈아가면서 치는 걸로 하자. 점수랑은 관계없이.”

“그럴까요?”

팀전일때는 손현석이 두 번 칠 때 지혁과 남선혁이 각각 한 번씩 치는 개념이었는데, 지금은 그런게 무의미했다. 그래서 지혁이 제안한 것이고, 남선혁과 손현석도 받아들인 것이다.

승패는 의미없이 재미만 있으면 된다. 그런 생각으로 셋은 열성적으로 당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혁은 그들과 당구를 치는 과정에서 기존에 존재하는 당구의 기술을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흔한 영상도 없이 혼자서 독자적으로 익혀나기기 시작하고 있었다.

“…….”

지혁이 쳐야하는 하얀공은 중간에 위치해 있었고, 빨간 공 두 개는 각각 정 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었다. 빨간색 공 두 개를 끝으로 선을 연결하면 그 중앙에 하얀공이 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잠깐 고민하던 지혁은, 이내 공을 과감하게 쳐냈다.

탁! 딱! 탁.

지혁이 친 공은 앞에 있는 붉은색 공을 맞춘 뒤에 앞으로 나아가거나 옆으로 꺾이는 것이 아닌, 마치 되감기를 하는 것처럼 그대로 스르르륵 움직여 뒤로 이동, 멈춰있던 붉은색의 공을 정확하게 맞춰냈다.

“와….”

“아니….”

탄성을 내지르는 남선혁과,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리는 손현석을 본 지혁은 피식 웃었다. 왠지 인정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로, 이건 끌어치기라고 불린다는 모양이었다. 물론 당구를 한다는 사람이면 대부분이 알 정도로 그렇게까지 고급기술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혁은 그 사실을 몰랐고, 당구를 배워본 적도 누가 하는 것을 본적도 없다는 점에 있었다.

‘악마의 재능.’

지혁은 새삼 신에게 얻은 재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실감하며 다시 큐대를 잡아갔다.

그렇게 1시간이 조금 넘게 당구를 치던 그들은 당구장을 빠져나왔다. 신입생 환영회라는 것에 가기 위해서였다.

“여기에요.”

평범한 고깃집이라고 생각되는 장소. 지혁은 둘과 함께 내부로 들어섰다.

“어? 안녕.”

“…누구세요?”

지혁은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아는 척을 해오는 여성에게 그렇게 물었다. 처음보는 사이였다. 다짜고짜 반말을 하니 직감적으로 선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까 교수님이 수석이라고 하실 때 봤었어. 저쪽 가서 편한데 앉으면 돼.”

“아, 예….”

그때는 좀 민망했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되나 싶다. 어쨌든 지혁은 선배라고 생각되는 그 사람이 가리킨 곳으로 가서 구석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6인용 테이블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형 수석이라면서요?”

“어. 그렇다고 하더라고.”

사실 지혁은 한국대에 붙었다는 사실도 은서를 통해 알았다. 당연히 그의 성적따위는 별로 관심도 없었다. 왜냐하면 지혁은 은서랑 같이 입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험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능력자시네요 진짜. 겜도 잘하시고.”

남선혁이 감탄한 어조로 그렇게 말하자 지혁은 피식 웃었다.

만약 지혁의 정체가 조커 유라는 것을 알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다른 곳도 아닌, 지혁과 같은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 입학한 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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