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6 학교생활 =========================================================================
“저… 신입생이세요?”
“아, 네.”
지혁을 깨워주었던 옆자리의 남학생이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고, 그는 곧장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남선혁이라고 합니다. 스무살이고요.”
“유지혁입니다. 저는 스물하나네요.”
지혁이 소개하자, 그는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다행이네요. 혹시나 해서 말을 안 놓았는데. 아, 형님은 말 편하게 하십시오.”
“아… 천천히 할게요. 저는 존대가 좀 편한 스타일이라.”
“넵. 그러십쇼. 근데 그… 제가 확인을 해보니까 단톡방에 없으신 거 같은데.”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번호좀 주시겠습니까? 제가 초대해드리겠습니다.”
지혁은 그렇게 남선혁과 번호교환을 했다. 그는 곧장 신입생들의 단체 톡방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지혁을 초대해주었고, 지혁은 거기에 신입생 환영회 관련된 공지가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왠지 그가 자신을 챙겨준 것 같아서 고마웠던 지혁은 감사인사를 했고, 그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혹시… 두시간 동안 할 거 없으시면 저랑 같이 PC방이나 가실래요?”
남선혁은 생각보다 붙임성이 좋은 타입이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실을 나선 지혁은 남선혁과 함께 걸었다.
“뭐 하실래요? 스타워?”
지혁이 얼마전까지 한창 열을 올리던 스타워는 그 역사가 20년에 달할 정도로 오래된 게임이었다. 아직까지도 많은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렐 이전에 한국시장을 석권했던 게임이니 남선혁이 이렇게 제안을 해오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지혁과 그의 실력차이가 너무 클 것 같았다. 잠깐 고민하던 지혁은 남선혁에게 질문을 던졌다. 허나 남선혁은 렐을 할 줄 모른다고 한다. 점유율이 50%를 넘어가는 게임이라 PC방에 가자고 한 순간 당연히 렐을 연상했었는데, 그는 요즘애들(?) 답지않게 오래전 유행했던 게임인 스타워나 할 줄 알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남선혁 역시 한국대생인 것이다. 게임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가 한국대생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한국대는 딱지치기로 들어올 수 있을만큼 허술한 곳도 아니고, 그는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왔을 것이다. 대세 게임인 렐도 할줄 모른다는 것에서 그 사실은 명확하다.
“그래. 그럼 일단 한 판 해볼까?
지혁은 그의 끈질긴 권유에 못이겨서 말을 놓게 되었다. 지혁이 그렇게 말하자, 남선혁은 곧장 방을 팠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혁은 손쉽게 남선혁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의 실력은 공방유저 정도에 불과했다. 사실 대충 이 정도일 거라고 짐작하고 해본 것이기도 했다.
“한 판 더 할까요?”
“나 스타워 좀 잘해. 패널티가 있어야 될 거 같은데.”
“그럼… 어떻게 하죠?”
결국 지혁은 그와의 대화를 통해, 비전을 켜주고 플레이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비전을 켜준다는 말은 지혁의 시야를 그에게 공유해준다는 뜻으로, 그는 일종의 ‘맵핵’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일꾼을 하나 빼주는 것보다도 더 큰 패널티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전을 켜주어도 너무 쉬웠다. 결국 지혁은 그에게 비전도 켜주고 일꾼 두 개를 빼주고 나서야 겨우 밸런스를 맞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도 초반의 이야기지 후반으로 넘어가면 무조건 지혁이 이겼다.
‘다른 사람이랑 게임을 하는 것도 색다른 기분인걸.’
이전에 승현과 렐을 할때는 몰랐는데, 이건 또 미묘한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지혁은 남선혁과 스타워를 하면서 조금씩 친해져갔다.
그렇게 게임을 하다보니 다음 강의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지혁은 PC방을 나와 남선혁과 함께 다시 학교로 이동했다. 스타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순식간에 강의실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강의시작 10분 전에 와서인지, 자리에 사람들이 꽤 많이 들어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혁은 남선혁과 함께 중간쯤의 자리에 나란히 앉았고, 게임에 대한 이야기에 계속해서 열중했다.
“다음엔 내가 렐 가르쳐줄게.”
“렐요? 음… 네. 혹시 렐도 잘하세요?”
지혁은 말해줘야마나 고민하다가, 그냥 적당히 얼버무리기로 했다.
“그냥 그럭저럭 잘해.”
“그래요? 제가 그… 렐을 해본 적은 없어도 대충 알기는 하거든요. 막 티어 그런거 있지 않아요?”
“응. 있지. 스타워로 치면 레더 시스템 같은 거.”
“어, 그럼 형님 렐에서 티어 높으세요?”
지혁은 다시 얼버무렸다.
“뭐, 그냥.”
지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핸드폰으로 전적검색사이트에 접속했다. 거기다 곧장 그의 본캐 아이디를 써놓자 'Challenger Yoo‘의 화려한 전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가 바뀌고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고부터 지혁은 날잡고 렐을 플레이해서 최초챌린저를 달성했고, 그 이후로 단 한번도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중이었다. 현재 그의 점수는 1720점으로, 2등인 1460점과는 260점 가량의 점수차이가 벌어져있는 상태다. 3등이 1440점인 것을 감안하면, 격차가 커도 너무나도 큰 것이다.
지혁이 다른 게임에 빠져들어서 한눈을 팔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기존에 유저들과의 실력차이가 너무 확연했으므로 생긴 결과물이었다.
총 전적 109승 11패. 승률은 90%를 넘기고 있다. 10판 하면 1판 질까말까 하다는 뜻이다.
지혁이 핸드폰을 쳐다보기 시작하자 남선혁도 핸드폰을 꺼내서 이것저것 조작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교수님이 들어왔다.
“신동훈이라고 합니다. 강의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두 번째 강의이자 마지막 강의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한국대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이 교수님이 유별난 걸까. 그는 다짜고짜 자신의 과목을 비롯해서 학과와 관련된 전반적인 설명을 시작했고, 교재는커녕 뭣도 없는 학생들은 허둥대면서 연습장 등을 꺼내서 필기를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다행히 세시간짜리 강의를 꽉채울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1시간 정도 빡빡하게 진행을 하던 40대 중후반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교수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들고온 것들을 챙겨서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이 사람은 딱 봐도 빡세겠네.’
첫날부터 이 정도면 월요일 3시간 연강은 쉴틈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물론 전혀 긴장은 되지 않는다. 지혁은 자신이 있었다.
“형님 환영회 가실거죠?”
“어…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 않아?”
남선혁은 지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시 겜방 가실래요?”
“아니. 다른 거 하러가자.”
지혁의 말에 남선혁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사실 지혁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PC방 말고 다른게 뭐가 있을까? 노래방?
“일단 나가자.”
멈칫하던 둘은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형님 혹시 당구 칠 줄 아세요?”
“아니. 한 번도 안 쳐봤는데.”
지혁의 말에 남선혁의 표정이 확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저도 포켓볼만 한 두 번 정도 쳐봤거든요. 당구나 치러 가실래요?”
“어… 그럴까? 근데 난 룰도 몰라.”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근데 사실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그렇다면야.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함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저기 혹시 저도 끼워주실 수 있나요?”
지혁과 남선혁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자, 뿔테 안경을 쓴 남자애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지혁은 티를 안냈을 뿐이지 내심 아까부터 계속 혼자 앉아있던 그가 은근히 신경이 쓰였었다. 마치 예전의 그가 투영되었다고 해야할까.
소심한 성격같아 보이는데 용기를 낸 모양이었다. 남선혁이 지혁을 쳐다보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뭐에요?”
“저… 손현석이라고 합니다.”
“스무살?”
“네.”
“말 편하게 할게. 나는 유지혁이고 스물하나야. 고등학교는 못가고, 검정고시 치고난 다음 수능봐서 들어왔어.”
지혁은 남선혁과의 대화를 통해 왠지 편안함을 느꼈기에 손현석에게 순순히 말을 놓았다. 더불어 그의 사정을 간단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정을 털어놓는 것이 아주 간단한 건 아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와 진짜요? 전 형님 재수하신 줄 알았는데.”
“아, 넵. 잘 부탁드립니다.”
남선혁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손현석도 마찬가지인지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살짝 숙여왔다.
“니 소개도 해줘.”
“아. 나는 남선혁이고 너랑 같은 스무 살이야.”
그렇게 통성명이 끝났을 때쯤, 우리는 강의건물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너 혹시 스타워 잘해?”
“아니. 그냥 몇 번 해본 정도야.”
방금 만나서 어색해야 정상인데, 남선혁이 붙임성이 좋아서인가 그런 느낌은 별로 없었다. 셋이서 번갈아 말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덧 학교를 빠져나와 번화가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 당구를 한 번 쳐보려고 하는데 괜찮아?”
“응. 아까 들었어. 당구 잘 못 친다는 것도.”
“…너 당구 잘 쳐?”
남선혁의 물음에 손현석이 손가락으로 안경을 치켜올렸다.
“잘 치는 건 아니고. 100정도?”
“100이 뭔데?”
지혁도 모르는 표정이자, 손현석은 예상했다는 듯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지혁은 생애 처음으로 당구장에 진입하게 되었다.
손현석은 익숙하게 구멍이 뚫려있지 않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남선혁이 포켓볼은 저기서 친다느니 등의 말을 했다. 그리고 이어서 손현석이 포켓볼 말고 4구나 한 번 쳐보자고 말했고 룰도 자기가 가르쳐주겠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지혁은 그 사이 덤덤하게 당구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재능.’
지혁이 지금껏 건드려본 모든 것에서 그는 두각을 드러내었다. 아마 당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봉 같은 것을 들고 끝부분에 무언가를 촉촉 바르고 있는 손현석을 쳐다본 지혁은 그를 따라서 벽쪽에 걸려있는 당구큐대를 집어 들었다.
“설명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