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75화 (75/116)

00075  배틀 로얄(Battle Royale)  =========================================================================

“한창 핫한 게임인 렐을 보면 주된 전장 이외에도 일자형 전장, 혹은 기존의 5대5의 방식을 탈피해서 여섯 명이서 대결을 펼친다거나, 스킬의 쿨타임을 줄여주는 이벤트 모드 같은 것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저는 배틀로얄도 분명히 하나의 메인장르로써 자리매김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배틀로얄에 대한 칭찬부터. 그러자 둘, 특히 이장일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마음놓고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겠습니다. 현재 인력이 50여명 정도라고 들었는데,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충원하셔도 됩니다.”

지혁의 제안에 본론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신이 잔뜩 나있던 그들의 표정이 슬며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대신, 제가 개발에 관여하는 부분은 크게 없을 겁니다. 어찌보면 장점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나… 사실 이건 제 기준에서는 단점입니다. 리라 센토는 거의 제가 독자적으로 만든 게임이니까, 저같은 인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아까운 일이겠죠.”

괜히 이것저것 참견하는 것이 불편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혁은 자신이 그들의 게임에 한 발 걸친다면 퀄리티가 월등히 높아질 거라는 일말의 확신마저 있었다. 물론, 지혁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마음껏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목적이었으므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개발에 필요한 시간은 월등히 앞당길 수 있을 겁니다. 말했듯 제가 상당한 부분을 이미 구축해두었고, 해결해둔 상태이기 때문이죠.”

배틀로얄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기위해 산재한 문제점들. 지혁이 만든 독자적인 게임계열 시스템 아이펜타노(Ipentano)는 그들의 골머리를 썩힐법한 굵직한 부분들을 해결해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엔진이자 서버로써 활용이 가능하면서도 유통까지 도맡아하는 플랫폼이니 홍보도 크게 필요하지 않다.

거기다 지혁의 손에서 만들어진 프로텍트는, 핵들이 판치는 일도 없도록 확실하게 관리를 해줄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당장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제 제안은 이상입니다. 물론 여러분은 거절할 권리가 없지만, 그래도 나쁜 계획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떻습니까?”

지혁의 물음에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는 기색이었다.

시큰둥한 느낌의 홀 블랙에 비하면, 지혁의 아이펜이 내거는 환경은 그들에게 있어 천국과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혁의 예상대로, 그들은 이 정도면 해볼만하다는 듯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솔직히 인지도 있는 곳에 인수가 되었기는 하나, 속으로는 불안감이 없었을 리가 없다.

“만에하나 생길지도 모를 표절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영입해야할 사람도 있을 것으로 압니다만, 이장일 씨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신 개발자는 제가 컨택을 통해서 영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혁의 말이 결정타였는지, 그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지혁은 웃으면서 말했다.

“대신, 개발 기한은 1년입니다.”

*                 *                 *

게임을 만들기는 했어도 관리할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GN게임즈를 인수한 것은 그러한 배경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혁은 3개의 게임을 만들었고, 그것들을 일시에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하나씩 내세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첫 주자는 당연히 리프여야만 했다. 지혁이 게임을 제작하고자 결심했던 계기가 되었던 장르, 3D MMORPG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

그러나 지혁은 고민 끝에, 리라 센토 먼저 발매를 하기로 했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리프는 많은 시간을 투자한 만큼 마지막 타자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4개월밖에 잡아먹지 않았던 리라 센토가 첫 번째였다. 뭐, ARD는 지금 당장 낼래야 낼 수도 없는 것이니까 시간만으로 따진 것은 아니지만.

지혁은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 부마스터 계정을 하나 만들어서 이장일에게 건넸다. 그는 이제 마음놓고 아이펜에서 발매할 게임의 운영과 그들만의 독자적인 게임의 개발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시점에서 부마스터 계정은 게재된 작품의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능을 조작, 사용할 수 있었다.

‘게임 쪽은 이 정도로 정리하기로 하고….’

물론 그냥 떠넘겨놓고 끝은 아니다.

리라 센토의 개봉일은 3월 1일로 정했다. 그것은 지혁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GN의 손길이 전혀 닫지 않은 것이니까 당연히 지혁의 손에 좌우되어야할 일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굵직한 사건은 관리를 할 수 있음을 어필한 것이었다. 정일우와 이장일은 지혁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그 뒤로 개발할 게임의 기획서를 가지고 와서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혁은 직접적으로 그들의 일에 끼어들 생각은 없지만, 진행 경과를 보고받을 생각은 있었다.

2월이 되고, 아이펜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게임시스템에 관한 글귀가 올라왔다. 캘린더에는 3월 1일에 리라 센토가 출시된다는 문구가 떠올라서 확인사살을 해버렸다.

사람들은 뜬금없이 게임산업으로 뛰어든 아이펜의 행보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다. 1월부터 상영을 시작한 아르핀이 거대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인기몰이를 해나가고 있는 이 시점에 굳이 이런 무리수를 둘 필요가 있었냐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지혁은 그러한 의견이 팽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지혁이 만든 게임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직접 눈으로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긴 것이다. 더불어 지혁은 거기서 많은 사람들의 걱정을 잠재울 필요성을 느꼈다. 해서 다소 급하게 베타 테스트 모집에 관한 공고를 올림으로써 예정보다 다소 이른 시기에 게임의 공개를 해버리게 되었다.

2월 11일. 사전에 신청한 테스터들 중에서 선별한 5천명을 대상으로 리라 센토의 베타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딱 하루, 그것도 오후 8시부터 12시까지 고작 4시간만을 플레이할 수 있었기 때문에 테스트들은 8시 땡하는 순간 4천명이 넘어가는 인원이 접속을 시도했고, 순식간에 방이 만들어지면서 게임이 활성화되었다.

그 중에는 개인방송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어서, 덕분에 리라 센토가 어떤 게임인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릴 수 있었다.

[ 와. 개 재밌어 보인다. 나도 테스터 해보고 싶었는데 ]

[ 무슨 그래픽이 이렇게 깔끔함? ]

[ 근데 그래서 컴퓨터가 좋아야 할 듯 ]

[ 아님 공식입장 표명 있었잖아 사양을 최저로 하면 그래픽적인 측면에서의 효과를 누리질 못할 뿐이지 게임을 플레이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

[ 리라 센토면 미니게임천국의 그 리라 센토 아님? ]

[ 맞아 미니게임천국의 리라 센토가 이런 느낌일까? ]

[ 거기서는 직접 캐릭터가 되어 움직이는 가상현실이지만, 현실의 리라 센토는 FPS 형식의 컴퓨터 게임이라는 차이점이 존재하지 ]

[ 솔직히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게임의 출시냐는 생각을 했었는데, 게임 진짜 너무 재밌어보인다 ]

[ 정식 발매일이 3월 1일이라고 했나? 가격도 9900원이라던데 무조건 바로 산다 진짜 ]

[ 3월 1일 딱대 ]

[ 다 뒤졌다 ㄹㅇ로 ]

그리고 방송을 통해서 리라 센토의 플레이화면이 공개되는 순간, 여론은 급격하게 뒤바뀌었다. 그 와중에 ‘조커 유는 다 계획이 있다’라는 말은 희대의 명언이 되기도 했다.

[ 근데 FPS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는 핵 아니겠음? 리라 센토도 결국 핵이 판치는 게임이 될 듯 ]

모든 사람들이 호평만 내는 것은 아니었다.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니라, 이렇듯 현실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핵은 없을 거지만.’

*                 *                 *

3월 2일.

지혁은 재수생의 개념으로 21살에 한국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합격을 했을 때 지혁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으나, 은서가 오히려 더 난리를 떨었던 기억이 있다.

신입생 오티라는게 있었던 것 같은데, 뒤늦게 그 소식을 접했던 지혁은 못갔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 지혁은 집을 나서서 인근의 지하철 역으로 이동했다.

[ 문이 열립니다. ]

지하철에서 내린 지혁은 북적거리는 지하철 내부의 공간을 흡족하게 바라보면서 이동을 시작했다.

‘떨린다.’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그 이전의 의무교육 당시에도 지혁은 그리 행복한 학교생활을 보내지 못했다. 준비물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애들이랑도 어디 놀러다닐 수 없었다. 게다가 지혁은 어릴 때 굉장히 소심한 편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때는 자신감도 없었고.

물론 지금은 다르다. 하지만 다르다고 해서 잘 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또래와 같이 학교를 다니는 것 자체가 어색한 지혁은 겉돌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래도 상관없었다.

‘내년이면 은서가 올테니까.’

은서의 성적은 학교에 편입한 당시에도 그리 나쁘지 않았으나, 1년간의 시간을 거치면서 전교권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한손에 꼽히는 등수를 보유 중인 그녀라면 어렵지 않게 한국의 최고 대학교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한국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 것이다.

“와. 진짜 잘생겼다.”

“그러게.”

핸드폰을 보고 있던 지혁은 갑작스럽게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상아색 가디건을 입은 단정한 복장의 여대생(이라고 추정되는 여자애)이 지혁과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봄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가벼우면서도 화사한 복장이었다.

‘…….’

지혁은 이내 관심을 끄고 다시 핸드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혁은 그와 기사를 읽고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거장이라 불리우는 타카오카 토키오가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드물게 조커 유를 언급한 것이 화제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애당초 외국의 문물에 무관심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타국의 인물이 그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로 특이한 일이라는 것 같다.

지혁 역시 20세기 중후반을 휩쓸었던 그의 작품 중 상당수를 보았기 때문에 그가 이런 말을 해온 것이 신기하기도 하면서도 생소하고,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 생일날의 너에게는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이상향과도 같습니다. 죽기 전에 이 작품을 만들어낸 조커 유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

한창 아르핀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으로, 뒤늦게 생일날의 너에게를 접하게 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아무래도 그도 그러한 부류에 속해있는 인물인 것 같다.

‘…….’

그렇게 생경한 기분을 느끼며 기사를 읽어 나가다보니, 어느새 한국대역에 도착해 있었다. 지혁은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꾹 눌러쓴 뒤에 이동을 시작했다.

지리를 잘 모르고 무작정 온 거여서 그런지 학교가 쓸데없이 넓다는 생각만 든다.

“실례합니다.”

지혁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홍빈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물이었다. C동이라고도 한다는 듯하다.

‘여긴가…?’

401호 강의실. 분명 강의계획서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지혁은 대화소리가 들려오는 열린 문 사이를 빼꼼 확인해보았다가, 슬며시 내부로 들어섰다.

“그러니까 참….”

“…왜 그래?”

앉아서 대화를 나누던 여인들이 지혁을 보고서 입을 다무는 것이 보였다. 지혁은 최대한 조용히 걸어가서는 창가쪽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젯밤 잠을 자지 않아서 그런지 좀 졸렸다. 잠깐 손을 들어 올려 도수 없는 안경을 빼내고서 눈을 비비던 그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본 뒤, 아직 30분 정도나 남아있음을 깨닫고선 안경을 곱게 접어서 핸드폰의 위에 올리고선 슬며시 책상에 엎드렸다.

“…저기.”

그때, 갑작스럽게 지혁을 부르는 목소리에 잠에서 깨자, 아까와는 다르게 강의실이 바글바글 거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았는데 시간이 꽤 지난 모양이었다. 교수님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출석을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깨워준 모양이었다.

“깨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지혁은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난 뒤에 뒷목을 잡고 목을 좌우로 꺾으며 아래를 쳐다본 상태로 슬며시 하품했다. 그 뒤에 안경을 다시 끼고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니, 정확히 9시 정각이었다.

“유지혁.”

“네.”

“너가 수석이구나?”

“…네.”

교수의 말에 순간적으로 지혁에게 시선이 쏠렸다. 왠지 민망해진 그는 대답하고서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가 창가쪽에 시선을 두자 머지않아 시선은 거둬진 것 같았다. 날이 좋아서 그런지 우뚝 솟아있는 상태로 따스한 햇살을 양껏 받아먹고 있는 나무만 보아도 눈이 정화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이름을 다 부른 교수가 첫날이라서 앞으로의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등에 대한 간략한 설명만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금방 끝났어야 하는 것인데, 안 좋은 시국으로 인해 수업이 다소 지연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를 다잡아야해서 설명이 조금 길어졌다.

뭐,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수업시간이 좀 줄어들었고, 방학기간도 좀 줄였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그 대목에서 야유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대생들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긴, 3,4월을 날로 쉬었는데 방학 좀 줄어든다고 인상을 찌푸리는 것도 좀 그렇다.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는 것이 아니라 그간 실컷 쉬었지 않겠는가.

‘…응?’

그때, 지혁은 저 멀리 앞쪽자리에 아까 보았던 여성들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지하철에서 지혁과 눈이 맞았던 사람들이었다. 설마 같은 학교에 같은 학과일 줄이야.

“이상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덜컹. 덜컹.

교수가 강의의 끝을 알리는 순간, 곳곳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혁 역시 베개 대용으로 사용했던 가방을 둘러메곤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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