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74화 (74/116)

00074  배틀 로얄(Battle Royale)  =========================================================================

차현진과 즐거운 밤을 보낸 지혁은 점심까지 같이 챙겨 먹고서는 출발했다. 5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 지혁은 그대로 늘어졌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게임이 하고싶었다.

“자, 오늘은 HaZ라는 게임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Human and Zombie. 아무래도 HaZ는 이것의 약자로 추정된다. 물론 개발사에서 공식적인 오피셜을 내놓지는 않았다. 새해가 밝고 1월 14일날 얼리 엑세스(Early Access)로써 처음 공개했고, 이제 겨우 일주일 된 게임이었다.

무엇보다 개발도중인 게임을 도중에 공개함으로써 부족한 부분도 많다. 통상적으로 얼리 엑세스의 유통을 결정한다는 것은 각종 버그, 오류, 최적화 등의 시스템적인 부분의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결정적인데, 얼리 엑세스로 세상에 게임을 내놓는 것은 높은 확률로 개발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지혁은 그렇게 생각한다. 어느 개발사, 개발자가 불안정한 게임을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싶겠는가. 추후에 그것은 흑역사로써 자리매김할수도 있는 일이다. 결국에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서 타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해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미완성의 게임을 선공개하면서 플레이하는 유저들과 함께 게임을 완성해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될법한 게임을 자금난으로 인해 중도에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개발비가 없이 게임의 제작을 계속해서 이어나갈수도 없으니 부득이하게 내리는 결정일 터였다.

[ 이게 무슨 게임임? ]

[ 엠드 어덜트 같은 건가? ]

[ 생존게임 비슷한 류인 듯 ]

HaZ는 서바이벌 형식의 게임이었다. 사실 지혁도 사전조사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다. 가기전에 FPS 장르의 게임을 접했었고, 그때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에 ‘엠드 어덜트 좀비 데이즈’ 같은 특이한 부류의 게임도 해보는 경험을 가졌던 것이다.

‘아쉽다.’

게임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완성도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딴애는 열심히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플레이하는 지혁의 입장에서는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 와 이거 재밌겠는데. ]

[ ㅋㅋㅋ 방금 뭐임 버그 오지네 ]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 공개한 게임이다보니 문제도 상당히 많았다. 재미는 있었으나 지혁은 결국 2시간 정도를 플레이하게 게임을 종료하고 말았다.

‘너무 아쉽다.’

만약 이쪽 분야에 제대로 된 게임이 있다면 어떨까? 수년간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렐을 위협할만한 신종 장르로 급부상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지혁은 실제로 총을 사용하는 게임이 1위 행진을 이어나가는 렐을 왕좌에서 끌어내릴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었다.

[ 지금 우리 회사 GN게임즈도 이쪽으로 생각을 해보는 분위기던데 얼마전에 홀 블랙에 인수되고나서ㅋㅋ ]

게임을 플레이하던 도중, 지혁은 그의 눈에 띄는 채팅 하나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지만 지혁은 한 번 확인은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심도깊게 따져보는 건 아니었다. 그냥 한 번 알아보기나 할까 정도의 인식이랄까.

*                 *                 *

“아, 들어오십시오.”

지혁은 차현진이 데리고 온 세 명의 사내를 안내했다. 그들은 집무실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지혁을 쳐다보기 바빴다. 지혁은 그것에서 차현진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정말 그 가격에 인수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GN게임즈. 사실 별 볼일 없는 회사였다. 그리 대단한 업적이랄 것도 없었고, 개발중인 게임도 비전이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혁은 이상한 촉이 가는 것을 느꼈다. 해서, 홀 블랙에 연락하여 인수한 비용에 50%를 얹어주겠다고 했고, 그들은 지혁의 제안을 덥썩 물어버린 것이다.

거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최근 아르핀의 상승세로 돈을 다발로 쓸어 모으고 있는 지혁은 50%의 비용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고, 홀 블랙 역시 구입한지 일주일도 안된 산하의 자회사를 추가비용을 얻고서 매각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자기 딴 애는 빅 딜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대표격으로 온 사내는 지혁과 악수를 나누며 만족한듯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지혁이 이래저래 알아본 결과, 그들 역시 GN게임즈에 대한 신뢰가 그리 두터운 편은 아니었다. 계륵(鷄肋) 정도는 아니더라도, 믿음직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거래는 최소한 GN의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는 것이었다. 아직 대화를 나누질 않았기에 그들은 알지 못하겠지만, 지혁은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생각이 충만한 상태였으니까.

‘승리자가 누구일지는 까봐야 아는 것이고.’

그렇게 홀 블랙 측의 인물이 돌아가자, 지혁은 GN게임즈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두명과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들는 실시간으로 자신과 휘하 직원들이 매매되는 장면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색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그런 것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지혁을 관찰하기 바쁜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두 분 다 제 정체는 아시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만.”

“예… 언질은 받았습니다.”

그래도 정식으로 소개할 필요는 있으리라 생각한 지혁이 말했다.

“저는 세상에 조커 유라고 알려진 창작가 유지혁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일우라고 합니다.”

“이장일입니다.”

지혁은 그들과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서, 자신의 집으로 가도 되냐는 물음을 던졌다. 그들은 괜찮다고 했고, 지혁은 차현진을 호출하여 차를 준비시켜 달라고 했다.

“최근에….”

이동하는 길. 집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니까 도착해서 얼굴을 맞대고 천천히 대화를 나누어도 되는 부분이었으나 인내하지 못하고, 인내할 생각도 없었던 지혁은 그들과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최근 게임에 관하여 관심이 부쩍 높아진 지혁은 따로 공부까지 해갈 정도로 게임산업에 대한 흥미도가 지대하게 높았다. 그저 게임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계에 대한 지식도 나름대로 갖추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죠. 렐의 대항마가 나올 장르로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하는 건 저 역시 FPS라고….”

“모바일 시장이 커짐에 따라서 PC쪽은 자연스럽게 투자가 적어지는 현실이 안타까운 건 사실입니다. 벡스타에 시연되는 게임들도 모바일 쪽이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죠. 이번에 열린 벡스타에서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부스가 모바일로 차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물론 그것이 두 분의 GN을 인수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만, 어쨌든 국내의 게임이 해외로 수출이 되기 위해서는 자국 내에서 어느정도의 성과를 내야만….”

어린 나이에 크리에이터로써 성공한 지혁이 게임에 대해 이렇게 게임시장에 대해서 많은 관점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을 못한 것일까. 정일우와 이장일은 지혁과 대화를 나누면서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차는 어느덧 한적한 동네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지혁의 집이 있는 곳은 나름대로 부자동네라고 알려진 곳이었다. 이내 차량이 지혁의 차고로 들어서고, 그들은 지혁의 집을 보면서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조커 유가 이번에 스물 한 살이 되었다는 사실은 생일 때 꽤 널리 퍼트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그들도 십중팔구는 지혁의 나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정원이 보이는 넓직한 작업실에 들어서서, 지혁은 그들과 대화를 마저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고용인 아주머니가 과일을 깎아서 들고왔다.

“제 꿈은 배틀로얄 장르를 만들어내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게 접시에 담겨있던 각양각색의 과일들이 반쯤 사라져가고, 대화가 무르익어갈 때쯤 이장일이 자신의 포부를 밝혀왔다. 지혁은 이미 지레짐작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로 확인이 되자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가요? 그거 잘됐네요.”

지혁은 굳이 반색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뭐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좀 뭐합니다만, 저는 게임에 관하여 보여준 성과라는 것이 없습니다. 아이펜이라는 플랫폼은 독자적인 위치에 있다고 자부합니다. 사람들이 보이는 관심도 크고, 영향력도 어마어마하죠. 실제로 수익도 천억 단위로 내고 있으니까 그 파급력이라는 것이 적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혁의 말에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서 두 분도 느끼신 것 같은데, 저는 게임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평균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편입니다.”

그들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배틀로얄을 겨냥하고 있으시다는 것을 짐작했기에 GN의 인수를 결정했습니다. 네. 저 역시 배틀로얄 장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죠.”

그들은 그저 구상단계에 있을지 모르나, 지혁은 최근 룸에 들어가서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그쪽으로도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구체적인 발전 가능성이나 당장에 직면하게 될 문제점 등을 꿰뚫고 있는 상태였다.

“선구자로써 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건 아닙니다. 저 역시 아이펜이라는 개인의 작품을 독자적으로 유통하는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길이 순탄하지는 않았죠. 외국에서는 점점 주가를 올리고 있다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배틀로얄 쪽을 섣불리 건드리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계실 것으로 판단됩니다만.”

정일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장일은 지혁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것 같았다.

“이제 여기서,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지혁이 이번에 룸으로 가서 개발한 게임은 크게 3가지 종류였다.

하나는 ‘리프’라는 이름의 MMORPG 게임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서 개발을 했고, 그렇기에 완성도적인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

다른 하나는 ARD라는 게임이었다. 이건 특이하게 디펜스(Defence)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FPS장르의 게임인 리라 센토(lyra Cento)였다.

리라 센토는 지금껏 국내의 많은 게임들이 차용했던 FPS의 형식을 채택하기는 했지만, 그것들과는 분명하게 차별되는 점이 존재한다. 바로 ‘초능력’이라는 형태를 캐릭터에 집어넣어서 시작부터 차별화가 시작된다는 것에 있었다.

총의 종류로써 역할군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이동이 가능한 캐릭터, 상대편의 위치를 순간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캐릭터 등 다양한 ‘능력’을 보유한 캐릭터들을 셀렉(Select)함으로써 다양한 전투와 방식이 일어나도록 유도한 것이다.

“아직 정식으로 출시되지는 않았지만, 곧 세상에 나올 게임입니다. 이름은… 리라 센토.”

별 뜻이 있는 작명은 아니었다. 아무거나 생각나는 것을 붙였을 뿐이었다. 정확히는 리라 센토는 지혁의 소설 ‘미니게임천국’에 등장하는 많은 게임 중 하나였다. 실제로 거기서 표현하고 있는 게임과 굉장히 흡사했기에 지은 이름이었으나, 사실 이것에 대단한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한 번 두 분이서 플레이를 해보시죠.”

한 명은 노트북으로, 한명은 컴퓨터로 게임을 접속해서 플레이하기 시작한다. 아직 홈페이지에도 게시되어 있지 않은 숨겨진 기능이기 때문에 마스터 계정으로 접속을 해야만 플레이가 가능했다.

그들은 게임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다는 사실에 1차적으로 놀란 것 같았다. 독자적인 체계를 만들어둘 정도로 본격적일 것이라고는 생각 자체를 안했던 것 같다.

“와… 그래픽이.”

그리고, 리라 센토의 깔끔한 그래픽에 다시 놀란 것 같았다.

리라 센토는 최대 10vs10까지 대전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팀 대전 FPS의 형식임과 동시에 하이퍼(Hyper) FPS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당연히 이 둘이 추구하는 이상향 배틀로얄 게임과는 거리가 먼 정통 FPS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스킬이 존재한다는 것이 굉장히 신선한데요?”

그러나 차별화되는 캐릭터를 플레이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둘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애들마냥 달뜬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혁은 그 모습에서 게임에 투자한 시간에 보람을 느꼈다.

“자자, 그만하시고요.”

지혁이 말리지 않으면 하루종일 앉아서 게임을 하고 있을 기세였다. 그래서 지혁은 그들의 플레이를 말리고서는 다시 이야기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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