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73화 (73/116)

00073  배틀 로얄(Battle Royale)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1월 20일. 지혁의 생일이었다. 지혁은 불을 끄고 노래를 부르는 은서를 보면서 괜히 민망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노래가 끝나자 은서가 바람을 불어서 불을 끄라고 종용했고, 지혁은 3개의 초에 일렁이는 불길을 입바람으로 잠재웠다.

어찌보면 조촐하다고 생각되는 생일파티. 그러나 결코 가벼운 느낌은 아니었다.

[ 이거 이 정도면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야 하는 거 아님? ]

[ 뭔 소설가의 생일이 하루종일 검색어 1위를 하고 있음? ㅋㅋ ]

[ 조커 유 님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대체 지혁의 생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인터넷 게시판이 난리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아이펜의 자유게시판만 들썩이는 것이 아니었다. 실시간 검색어에 조커 유 생일이라고 올라온 것은 물론이고 다른 커뮤니티도 난리가 났다고 한다.

‘기념일은 무슨.’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심하다. 뭐 조커유탄신일 같은 거라도 만들겠다는 건가?

무조건적으로 지혁을 신봉하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지만 이건 뭐 선을 넘어도 너무 넘는다.

9시를 조금 넘긴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혁은 지금껏 그의 생애에선 겪어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전화를 받았다.

최근에 아르핀의 1기 녹음이 완전히 종료되었다. 그 후 뒷풀이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각 배역을 맡은 성우들과 번호교환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승현부터 그와 친분이 있는 성우들 수십명에게서 하루종일 연락이 왔다.

거기다 추가로 한예리, 리플라워 멤버들(서하린, 이나희, 문하얀), 홍창식, 이정욱, 김찬욱 등등 많은 사람들이 축하를 해주었다. 생각해보면 그들을 제외하면 지혁은 아무런 인연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다 이승현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작년에 알게된 인연들이니까 그동안 쌓아온 인맥적인 자산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혁의 지난 1년이 진짜 가치있는 것은 사람을 얻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을 정도로.

[ 생일 축하드립니다 작가님! ]

[ 글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

그리고 그를 축하해주는 팬들까지. 지혁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호화롭다싶은 생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화려하다 못해 요란했다. 온 나라가 들썩이는 기분이었다.

물론 팬들은 물론이고 지인들도 집에서 하는 생일 축하의 시간에 부르지는 않았다. 지혁은 조촐하게 생일파티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은서와 보내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사실 지혁은 초저녁에 은서와 시간을 보내고, 차현진과 밤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준비한 선물.”

지혁은 뜬금없이 은서가 건넨 포장된 상자를 받아들었다. 그녀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가 바로 포장을 뜯어보니까, 작은 팔찌 하나가 보였다.

“어때?”

보이는 건 마음에 들었다. 지혁은 곧장 껴보았다.

“비싼 건 아니야. 선물은 마음이 중요하니까. 그치?”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들어서 이리저리 뒤집으며 팔찌를 확인해보았다. 여러개의 네모가 붙어있는 느낌의 디자인에 눈에 띄는 무늬는 없었으나 이렇다할 장신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지혁으로써는 처음으로 갖게된 악세서리인 셈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막 덕지덕지 무언가가 붙어있는 것은 그다지 취향이 아니기도 했다.

무엇보다 은서가 생일선물을 챙겨준 것은 처음이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가난했기 때문에 서로의 생일을 챙기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냥 평범한 하루처럼 넘어가는 것이 암묵적인 룰처럼 굳혀졌을 정도. 그럴수록 더 서로를 챙겨주어야 하지만, 굳이 생일날이 아니더라도 둘은 서로를 향한 배려심이 넘쳐났다.

“노미네이션 팔찌라는 거야.”

“고마워. 맘에 든다.”

지혁의 말에 은서가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때였다.

딩-동-

“누구지?”

은서가 의문을 표하면서 고개를 갸웃하고선 이동했다. 지혁은 그녀가 현관에 확인하러 간 사이 케이크를 자르기 시작했다.

“꺅!”

“…?”

갑작스럽게 은서가 소리를 지르자 뒤를 돌아본 지혁은 그녀가 열어주었는지 현관을 통해 들어오는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예리였다.

“한예리 씨? 여기는 어쩐 일로….”

“아… 혹시 생일파티 끝나셨나요?”

“아, 네. 방금….”

그녀는 현관에 서서 지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현관에서 거실에 있는 탁자가 보이는데, 거기에 있는 케이크를 발견한 한예리가 생일파티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물어왔고, 지혁이 다소 어정쩡한 자세로 답했다. 그는 그러면서 옆을 힐끗 쳐다보았다.

은서가 양손을 입가로 가져간채로 한예리를 훔쳐보고 있었다.

한국에서 절대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고, 최근 창연화로 경이로울 정도의 주가를 가지고 있는 한예리를 보는 은서의 눈이 초롱초롱하다. 그야말로 절대적인 인지도를 가진 그녀인데다가 지혁의 작품이라서인지 은서는 공부도 제쳐놓고 창연화의 본방사수를 꾸준히 한다고 했었다.

“근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설마 제 생일…을….”

“네. 축하드리려고 왔습니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꼭 감사표시를 하고 싶어서요. 선물만 드리고 바로 가겠습니다.”

은서의 눈치를 보던 한예리가 그렇게 말하자 지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둘이서 보내기도 좀 적적했었거든요. 들어오세요. 이건 선물인가요?”

왔는데 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혁은 그녀에게 들어올 것을 종용하면서, 태연하게 그녀의 손에 쥐어져있는 쇼핑백을 받아들었다. 지혁에게 반쯤 뺏기듯 선물을 건네준 한예리는 그럼 실례하겠다는 말과 함께 조심스럽게 내부로 들어섰다.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이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기 앉으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은서가 답지않게 굉장히 공손한 어조로 한쪽을 가리켰고, 정신없이 집을 구경하기 바쁘던 한예리는 그제서야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코트를 벗어서 손에 걸치면서 접음과 동시에 은서가 손바닥으로 가리킨 자리에 살며시 앉는 모습을 보였다.

“아, 코트는 제가 걸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은서가 그런 한예리의 코트를 살며시 받아서는 한쪽에 잘 걸어두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극진하게 누군가를 대우해주는 모습은 지혁의 입장에서는 조금 생소한 일이었다. 그래서 지혁이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자니, 은서가 앉으라고 눈치를 주었다.

“이틀 전에 촬영이 끝났다고 했던가요?”

“네.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인기가 워낙 많아서인지 혹시 분량을 조금만 더 써줄 수 없겠냐는 요청이 있었었다. 이미 아이펜에서 창연화의 소설버전을 완결내었던 지혁은 단호하게 거절했고, 그것 때문에 어쩌다보니 촬영실황도 전해들을 수 있게 되었다.

딩-동-

그렇게 한예리와 간단한 안부인사를 주고받는데, 갑작스럽게 벨이 또 울렸다.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확인을 해보았다.

“…….”

문을 열어주자, 세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예전에도 지혁의 집을 한 번 온적이 있었던 리플라워 멤버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어서와요 언니들.”

이나희가 대표로 나서선 그렇게 인사를 했다. 은서는 예전에 친해진 뒤로도 종종 연락을 한 적이 있었다는 말이 정말이었는지 다소 능숙하게 셋을 집으로 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들어오던 리플라워와 한예리의 눈이 맞았다.

“어? 선배님!”

“안녕하세요.”

문하얀이 한예리를 발견하고서 외치자, 한예리가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러고 보니 한예리는 4인조 그룹 에이퀸의 멤버이고, 어찌보면 걸그룹 선배인 셈이었다.

그들이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사이 지혁은 리플라워 멤버들이 사온 물건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선물로 보이는 상자가 셋에, 큼지막한 케이크가 하나.

“고맙습니다.”

지혁은 가볍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서는 곧장 선물을 뜯어보았다.

그들의 선물은 다양했다. 고급진 헤드셋에 타블렛, 스피커에 이어폰. 음향장비라고 생각되는 것 위주였고 전부 전자기기였다. 남자에게 전자기기를 선물하면 평타이상은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한 모양이었다. 지혁이 사용하는 것보다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의 마음이 고마웠기에 지혁은 감사의 의사를 표시했다.

[ 저 좀 늦을 것 같습니다. ]

어쩌다보니 생일파티의 분위기가 연출되어 지혁은 그들과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원래 차현진과 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했었는데, 늦는다는 문자가 와서 부득이하게 이렇게 되었다. 사실 이미 밥상은 차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건 선생님이 만드신 건가요?”

문하얀이 물어왔다. 지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오늘 밥은 제 동생이 했습니다.”

“아….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세계관 최강자시라는….”

세계관 최강자? 이게 무슨 소리지? 지혁이 고개를 갸웃할 때 은서가 작게 말했다.

“아… 그거요.”

지혁은 전혀 모르는데 은서는 아는 눈치였다. 지혁이 눈치를 주자 그녀가 젓가락을 든 상태에서 설명을 시작했다.

“미니게임천국 3부를 시작한게 나 때문이라는 공지로 인해서 사람들이 오빠가 내 말에 껌뻑 죽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래서 한국의 문화를 지배하는 왕은 조커 유고, 조커 유를 조종하는 것은 조커 유의 동생인 나라는 말이….”

“그래서 세계관 최강자?”

“응. 그렇다고 하더라고. 나도 얼마 전에 찬욱이한테 들은 거야.”

이야기를 다 들은 지혁은 실소를 머금었다. 실로 어이가 없다. 아무리 은서가 그때 지혁에게 떼를 써대기는 했어도 지혁이 마음이 없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일이다.

물론 은서가 부탁한 것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것이기는 하다.

‘…맞기도 한가?’

아마 은서가 뭔가 만들어달라고 하면 정말 싫은 경우가 아니라면 들어줄 것도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아예 틀린 말이라고 보기는 좀 그렇다.

“아하하하.”

리플라워와 한예리는 그간 상당히 친해진 것인지 거실의 소파에 자리를 잡고선 웃으면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물론 저녁식사는 끝났다. 은서는 어느새 그들의 사이에 끼어 있었고, 지혁은 그들의 중앙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참고로 설거지는 은서와 지혁이 아닌 나머지 넷이 힘을 합쳐서 했다. 은서가 자기가 하겠다고 하는 걸 그들이 만류한 것이다.

TV에서는 수목드라마인 창연화의 27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한예리는 자신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는 것이 조금 민망한지 담요로 눈아래까지를 완전히 가린채 부끄럼을 타고 있었다. 지혁은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발전된 그녀의 연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그녀의 연기력에 감탄하는 사람들만 늘어나서인가, 그녀는 이제 완숙한 배우로써 인정을 받아가는 분위기였다.

우웅-

“저는 먼저 가봐야할 것 같습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차현진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온 순간 지혁은 미련없이 그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순간적으로 그를 바라보는 여인들의 표정이 살짝 미묘해진 것 같았으나, 지혁은 곧장 옷을 챙겨입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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