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9 게임 제작을 결심하다 =========================================================================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첫판은 일종의 호선(互先)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동일한 조건에서 맞붙는 경기.
당연한 말이지만, 지혁은 그냥 지고 말았다. 그 뒤로 두 판을 더 했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승기를 잡았던 순간은 없었다. 지혁이 못했다기보다는, 딱신이 너무 잘했다.
지혁은 새삼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절감했다.
여러 가지 일이 겹쳐서 스타워1의 리그는 종료되었다. 그로 인해 프로게이머들은 게임을 접거나 다른 게임의 프로가 되기 위해 떠났고, 스타워1 프로게이머 중에서 아직까지 남아서 게임을 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딱신은 스타워2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온지 1년이 넘었기 때문에 당연히 폼을 끌어올린 상태고, 그래서 강자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수년간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은 프로게이머라고 할지라도, 지혁이 이길수는 없을 것이다. 지혁 역시 아마추어 중의 최고수라 불리우는 사람들과도 대결을 해보고 있는 중이지만, 프로게이머 중에서 실력이 그다지 좋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아마추어에게 쉽게 지지는 않는 것이다.
“일꾼을 하나 빼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럴게요.”
따라서 막강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프로게이머의 정점 중 하나였던 딱신을 스타워를 시작한지 3일차인 지혁이 정면승부로 이긴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를 깨닫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거대한 벽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지혁은 결국 그에게 패널티를 요구했고, 딱신은 실력차이가 크기 때문인지 순순히 응했다.
그렇게 일꾼을 하나 빼주고 나서 다시 경기가 진행되었다.
스타워에서 초반에 일꾼 한 마리를 빼준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수준이 높을수록 체감은 더욱 심하게 된다. 엄청난 차이를 쥐고 시작을 하는 셈이었다.
[ gg ]
[ GG ]
[ gg ]
그럼에도 불구하고 10판 가량을 진행하는 동안 한 판을 못 이겼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살면서 수만, 수십만판의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정점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다. 이제 백여판 정도를 플레이한 지혁과는 경험치 차이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만이 알고 있는 잡기술이나 빌드 등도 그렇지만, 정교한 컨트롤과 이제껏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쌓아왔던 눈치와 센스, 판단 등은 단기간에 어떻게 커버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난다.
‘신세계다….’
그와 게임을 하면서 지혁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한 분야를 이렇게 심도깊게 파고든 사람과의 만남은 지혁에게 굉장한 신선함을 안겨주고 있었다.
“재밌었습니다. 너무 잘하시네요.”
“저도 정말 재밌게 했습니다.”
플랫폼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혁과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그로가 엄청나게 끌려 딱신은 무려 3만에 가까운 시청자를 찍어버리는 기염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는 그것으로 지혁이라는 사람이 가지는 파급력을 제대로 실감한 듯,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렐에서 뜨거운 감자라는 챌린저 유와 같이 스타워를 플레이한다면 여러모로 이슈몰이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했겠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 같다.
그렇게 3일차의 게임방송을 종료한 지혁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지혁의 재능은 놀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와 게임을 진행하는 17판동안 지혁은 1승도 챙기지 못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17개의 게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게임에 문외한인 사람들의 눈에도 선명하게 인식될 정도로 그 차이는 좁혀져가기 시작했다. 게임을 하는 당사자인 지혁과 딱신만이 아니라 그저 보고 있을 뿐인 시청자들도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던 실력의 격차가 현저히 줄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불과 3시간. 딱신과 17게임을 연달아 하는 과정에서 지혁은 족히 3개월 이상의 경험치를 쌓아버린 셈이었다.
“와… 내가 게임하면서 이렇게 무섭다고 생각되는 경우는 없었는데.”
방송을 들어가보니 딱신은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스타워에 존재하는 3가지의 종족. 딱신은 그 중 하나, ‘토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그’와 ‘태란’을 대표하는 두 명의 신. 그 중 자그의 신의 개인화면을 보며 딱신은 감탄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테란의 신은 이제껏 존재했던 수백의 스타워 프로게이머중에서 최고의 정점이라고도 불리는 완전무결한 강인함을 가진 스타워의 결정체였다.
딱신이라는 사람은 현역시절 그들에게도 비볐을 정도의 강자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지혁의 성장세가 말이 안 된다는 뜻일 터였다.
끝에서 세 번째 게임. 지혁은 요행이 아니라 순수한 운영에서 딱신과 동등함을 이뤄냈다. 물론 졌지만, 지혁은 거기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다음판에서는 이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딱신이 일꾼을 한 마리 빼주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다시 호선의 격돌을 하게되면 원래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기에 지혁은 마지막 두 판을 일꾼을 빼지 않고 동등한 상황에서 대결했다.
당연히 승기는 다시 딱신에게 확연하게 기울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꾼을 빼주고 처음 상대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지혁은 15게임을 진행하면서, 일꾼을 빼주고 안 빼주고의 차이만큼을 따라잡아버린 것이다.
[ 이게 말이 되냐? 사람이 이렇게까지 빨리 성장할 수가 있냐? ]
[ 챌린저 유는 그냥 게임의 천재같다. ]
[ 솔직히 그간 내 주제에 챌린저 유의 실력에 거품이 좀 껴있다고 저평가하고 있었는데 오늘 방송보고 챌린저 유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지 알게 되었다. 살면서 천재천재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그저 TV속에서, 혹은 위인전 등에서 볼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챌린저 유는 현존하는 모든 게이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천재임이 분명하다. ]
방송이 끝나고 그 후. 지혁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만족했다.
* * *
[ gg ]
“이겼다!”
스타워를 플레이한지 5일 째가 되는 날. 지혁은 자신과 수십, 어쩌면 수백판을 플레이하면서도 단 한번의 패배도 용납하지 않았던 딱신의 막강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무너질 철옹성이기도 했다. 지혁은 마침내 패널티 없이 순수한 1:1 대결에서 딱신에게 1승을 챙겨낼 수 있었다. 잠까지 줄여가면서 스타워에 몰두한 결과, 결국 해내고 만 것이다.
[ ㅁㅊㄷㅁㅊㅇ ]
[ 이새끼는 그냥 미친놈이다 스타워를 시작한지 5일만에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딱신한테 이기다니 ]
[ 심지어 날빌로 쇼부친 것도 아니고 운영으로 이겼음 ]
[ ㅋㅋㅋㅋㅋㅋㅋㅋ 와 말이 안 나온다 ]
사람들이 지혁이 가진 재능에 탄성을 내지르고 있을 때, 지혁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스타워에서 처음으로 이겼을 때의 그 격정적인 환희보다도, 3일에 걸쳐 지혁을 고생시킨 딱신에게서 승리하고 느껴지는 고양감이 월등히 컸다. 계속해서 패배를 경험하며 지혁은 약이 바짝 올랐던 것이다.
[ Challenger_Yoo : 계속 하시나요? ]
[ Onlystar : 아뇨 폐관수련을 해서 더 강해져 오겠습니다 ]
지혁은 헛웃음이 나왔다.
어쩌다 한 판일 뿐이다. 아마 10판하면 지혁이 이기는 건 많아야 한두판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혁은 아직 딱신의 실력을 완전히 뛰어넘지 못했다.
그건 지혁보다도 그가 더 잘 아는 부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의 패배가 그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사, 이런 승부사의 기질이 있으니까 정점의 자리에도 오를 수 있었던 것이리라.
[ Challenger_Yoo :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
지혁은 딱신과 헤어지고 나서 한숨을 내쉬었다.
5일간 미친 듯이 1:1 대전만 반복해서 했더니 솔직히 살짝 질리는 감이 없지않아 있다. 지혁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유즈맵’이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대전만 했으니까 잠깐 쉬어가는 의미에서 유즈맵을 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방이 여러개 있었는데, 지혁은 눈에 띄는 것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인기가 많은 게임인 것인지 맵이 다운되기도 전에 방이 꽉 찼고, 게임이 곧장 시작되었다.
‘아하….’
랜덤해서 유닛이 나오는데, 그것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해서 나오는 적 유닛을 죽이는 게임이었다. 지혁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신선함을 느꼈다.
[ 이거보다 워3 유즈맵이 더 재밌는데 ]
지혁이 게임을 해나가면서 채팅창을 훑었을 때, 그런 말이 보였다. 워3는 스타워를 개발한 제작사에서 만든 다른 게임이다. 스타워와 비슷한 형식이지만 조금 다른.
그래서 다음날, 지혁은 워3를 깔아서 유즈맵들을 해보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11월 한달. 지혁은 방송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게임들을 접해보았다. 지혁이 이제껏 현실에만 충실하며 살아온 과정에서 놓치고 있었던 게임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졌으며, 지혁은 렐이 아닌 다른 게임들을 많이 해보면서 각각의 게임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이나 재미 등을 솜이 물을 머금듯 쭉쭉 흡수해나갔다.
‘이제 슬슬 되었나.’
시험을 치며 게임을 제작하자고 결정을 내렸을 때, 지혁은 동시에 바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많이 알아야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도 빠삭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그쪽은 접해본 경험이라도 있었다. 허나 게임의 경우 지혁은 렐 이외에 다른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없었으므로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이것저것 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갔다오면 또 바빠지겠지.’
지혁의 계획대로라면 12월은 상당히 분주하게 움직여야할 것이다. 사실 얼마든지 일정을 유하게 늘어트릴 수도 있는 부분이었지만, 빨리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촉박한 기간을 잡은 것이기도 하다. 성적도 통상적으로는 12월 초반쯤에 나온다고 하니까 나온 성적을 토대로 학교를 지원하고, 이사도 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혁은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격을 지닌 편이기도 하다. 부지런히 무언가를 하는 것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타입. 바쁘다는 것은 오히려 그를 더 기쁘게 하는 것이다.
다가오는 새해를 준비하는 기간. 12월.
‘거의 1년이네.’
지혁이 신과의 만남을 가졌던 것도 1월 초반의 일이었다.
“이번년도의 마지막이 되겠군.”
그렇게 중얼거린 지혁은 편안한 복장을 한 채로 슬며시 거실로 나섰다. 방문을 열어 확인해보니, 은서는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의식처럼 행하는 일이었다. 떠나기 전에 은서를 슬쩍 보고가는 것.
갔다올게.
지혁은 슬며시 문을 닫고서는 속으로 외쳤다.
‘룸.’
스아아아악.
세상은 다시, 백색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