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68화 (68/116)

00068  게임 제작을 결심하다  =========================================================================

“열심히 했으니까, 좋은 결과 있을 거야.”

수능시험이 있는 당일. 지혁은 은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룸에서 틈틈이 이것저것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잘 칠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다만, 최근 게임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을 은서에게 간접적으로 보여주다보니 그녀는 지혁이 열심히 준비했다고 굳게 믿는 것 같았다. 성적이 좋게 나왔을때의 변명거리가 생긴 것 같아 지혁도 기분이 좋았다.

“와… 개 잘생겼다.”

1년에 한번, 어떤 사람은 평생에 한 번 칠 수도 있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서도 지혁의 외모를 품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리에 앉아 샤프를 빙글빙글 돌려가면서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놀고있던 지혁은 들려오는 여자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려다 참았다.

시험이 시작되었다.

“휴우….”

시간은 훌쩍 흘러서,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 지혁은 다른 사람들이 끙끙거리면서 문제집을 부여잡고 있을 때 계속해서 게임에 대한 생각을 하기 바빴다.

10월 한 달 정도 게임에 대한 공부를 해나가다보니 11월 중순인 지금은 벌써 관련된 공부를 마치고 이미 게임의 제작에 들어가 있었다.

작업 속도는 빠른 듯 하면서도 느렸다. 혼자서 만들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었다.

‘애니메이션 저리가라할 작업량이야.’

이대로는 게임을 발매하기 위해서는 수년동안 개고생을 해야할 판이다. 이제 막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완전히 단정지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지혁은 이미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 쯤은 확실히 자각한 상태였다. 그가 겨냥한 게임이 RPG라서 더 문제였다. 렐이나 스타워 등의 전략시뮬레이션, AOS(MOBA) 게임이었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겠지….”

지혁은 시험지를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물론, 모르는 문제를 찍어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답은 이미 기입이 끝난 상태.

룸을 가서 게임을 만들어 올 것인가. 아니면 그냥 쉬엄쉬엄 작업을 해나갈 것인가. 지혁은 그 기로에 서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앞으로 학교도 다니게 될텐데 그럼 더욱 작업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그것까지 감안해서 생각해보면 10년을 바라보아야할지도 모를 일이다.

‘…음.’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계속 붙들고 있을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왕이면 빨리 결정하고 싶었다. 시험도 딱 끝났으니까, 이제부터는 정말 마음 놓고 놀아도 된다. 그는 남는 자유의 시간에 자신이 만든 게임을 하고싶다는 열망과 룸에서 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수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낼 생각을 하느냐는 타협이 맞붙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상당히 괴로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혁은 내려놓았던 샤프를 보며 눈을 빛냈다.

‘진짜 너무 잘생겼네.’

수능시험의 감독관을 하고 있는 여성은 창가쪽 가장 앞의 자리에 앉아있는 남자를 계속해서 힐끔거리고 있었다. 솔직히 일이 별로 내켰었던 건 아닌데 이런 감독관의 자리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남자의 외모는 출중했다. 연예계 쪽에 관심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필시 아이돌 뭐 그런 것일게 분명한 남자였다.

‘공부는 잘 못하는 것 같지만….’

남자는 못해도 10분이상의 시간이 남았을 때 샤프를 내려놓곤 했다. 모든 과목에서 그랬다. 노래나 춤 실력을 갈고닦는데(이미 그녀의 마음 속에서 남자는 연예인이었다) 시간을 다 쏟았을테니까 공부를 놓았을 터. 푸는 척 하다가 대강 찍고 딴짓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는 얼굴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겠지….”

‘…응?’

그녀는 본분을 잊고(물론 정말 감독관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남자를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의 이상행동에 민활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필기구를 내려놓고 딴생각에 잠겨있었는데, 갑자기 작게 중얼거리는 것 같더니 샤프를 들어 직각으로 세우고선 지탱하고 있던 검지손가락을 슬며시 떼어보였다.

타닥. 탁.

바닥으로 떨어져내린 샤프가 가벼운 소음을 내고, 방향을 확인하던 남자는 결심했다는 듯이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몇 번으로 찍을지를 결정하는 것 같았다.

‘…한 번 더 하면 주의를 줘볼까?’

사실 주의줄 행동까지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괜히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남자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를 힐끔거렸다.

그러나 그는 그 뒤로 펜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                 *                 *

“오늘은 스타워라는 게임을 해보려고 합니다.”

지혁은 곧장 미리 깔아둔 스타워를 켰다.

“오늘은 이걸 하겠습니다.”

지혁은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바로 게임을 시작했다. 렐과는 다르게 1:1로 대전을 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자기가 잘해야만 이길 수 있다. 요행으로 승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셈.

지혁은 스타워를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컴퓨터와의 1:1 대전도 쉽지 않았다.

[ 진짜 처음 해보는가 본데? 너무 못한다 ]

[ 이 사람은 렐이 없으면 뭘 했을까? ]

렐이 없었다면, 아마도 조커 유로써 보다 왕성한 활동을 하지 않았을까.

스타워라는 게임은 렐과는 다르게 1:1 대전의 형식이었다. 물론 다수의 대결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혼자서 상대와 자웅을 겨루는 방식이 가장 인지도도 높고, 인기도 많다는 모양이었다.

일꾼을 나눠서 붙여야 하며, 일꾼을 꾸준히 생산해야 하며, 인구가 막히지 않아야 하고 유닛을 생산해서 상대의 유닛과 맞서 싸워야 한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일 수 있었지만, 유닛간에는 상성이라는 것도 존재했고 상대의 빌드나 움직임 등을 보고 맞춰서 플레이를 해야한다는 점,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야한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보건대 렐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게임이었다.

물론 렐 역시 사소한 움직임이나 스킬의 활용에서부터 라인관리, 운영적인 측면의 판단, 심리전 등이 가미되기 시작하면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손을 움직이면서도 침착하게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는 렐과는 다르게, 스타워는 굉장히 손을 바쁘게 움직여야 함은 물론이고 이곳저곳을 다 살피며 세심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더 까다롭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을 입밖으로 내는 일은 없었다. 지혁은 묵묵히 스타워의 시스템을 익혀나가는 것에 집중했다. 초반에 운영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유닛간의 상성은 어떠한지를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아 이제 대충 알겠네요.”

[ 스타워만큼 어려운 게임이 없는데 1시간 해보고 다 안다네 ㅋㅋ ]

[ 이론은 그리 어렵지 않지. 잘하기가 힘든 게임일 뿐 ]

[ 고건 맞지 ]

지혁은 곧장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공방의 세상으로 접속했다. 말했듯 스타워는 1:1 대전이기에 지혁은 곧장 상대편과 게임을 잡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처음하는 지혁이 상대를 이기는 경우는 없었다.

[ 렐의 신이 스타워에서는 그냥 공방인에게도 얻어 터지는 구나 ]

[ 그래서 더 신선한데? 난 당연히 스타워도 잘할 줄 알았음 ]

스타워는 오래된 게임이기 때문에 공방이라고 해서 실력이 그렇게 낮지가 않다. 최소한 유입된 초보자가 승리를 챙기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단언할 수 있다.

지혁은 방송을 키고, 그대로 10연패를 박아버렸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욕을 하기는커녕, 점점 더 지혁의 방송에 빠져들고 있었다.

[ 잘하면 이길수도 있겠는데? ]

[ 방금판은 좀 아깝지 않았음? ]

[ 전판이 더 아까웠음 몰래멀티만 아니었으면 진짜 이겼다 ]

많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년의 시간을 스타워에 투자한 것이 바로 공방의 유저들이다. 렐로 치면 흔한 일반게임인 것이지만 때문에 수준은 굉장히 높았다.

헌데 지혁은 지금, 그들의 긴 시간을 단숨에 잡아 삼켜가고 있었다.

[ 와 이건 좀 인정 여기서 그냥 달리는 판단을 하네 ]

[ 와! 1승! ]

그리고 지혁은 마침내 첫 승을 챙길 수가 있었다.

“나이스!”

환희에 찬 지혁의 목소리를 들은 채팅창에 ‘ㅋㅋㅋ’ 등의 채팅이 도배가 되는 것이 보였다. 캠을 키지 않았기에 그들은 볼 수 없었지만, 지혁은 주먹을 쥔채로 방방 뛰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 렐에서의 실력은 어디 안가는 건가? 진짜 압도적인 재능이다 ]

[ 실력이 뭐가 이렇게 빨리 늘어? ]

대략 3시간. 그 정도만에 지혁은 첫 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지혁은 거기서 방송을 종료하지 않았다. 그 뒤로 추가적으로 3시간을 더 플레이했고, 하루만에 승률을 50% 가까이 끌어올렸다. 이제 2판하면 1판 이기고 1판 지는 느낌으로 진행이 되고 있는 중이었다.

[ 와.. 얘는 그냥 게임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

50%의 승률은 그냥 운이 좋아서 아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지혁의 실력은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해 있었다. 처음에는 조롱의 글을 써내려가던 시청자도, 훈수두기 바빴던 사람들도 지혁이 내세우는 악마의 재능에 입을 다물어가는 기색이었다.

[ 근데 왜 계속 자그전에서 111을 하는 거지? ]

[ 예전에 그 박호산인가 하는 애가 잘 쓴다고 하던 빌드 아님? ]

[ 근데 왠지 좋아보이네 공방이라 그런가? 상대하기 까다로울 것 같음 ]

지혁은 그렇게 스타워를 하다가 이내 게임을 방송을 종료했다.

그리고 이틀 뒤.

[ 어떻게 이렇게 실력이 빨리 늘지? 벌써 레더 C인데? ]

[ 첫 날 컴퓨터한테도 빌빌기던 챌린저 유가 맞냐? 챌린저 유는 진짜 신이다. ]

방송 3일 차.

지혁의 실력은 일취월장의 수준을 넘어서선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날때마다 바뀌는 지혁의 실력에 시청자들이 감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시작할때만 하더라도 컴퓨터한테조차 얻어터지던 지혁은 그날 방송을 끝낼때쯤엔 일반 유저와 비빌 수 있게 되었고, 3일이 지난 지금은 스타워의 랭크게임 시스템인 ‘레더’에서 중상위권의 등급이라고 할 수 있는 C를 얻어내는 쾌거를 달성했다.

[ ㅇㅅㄸㅅ ]

[ ㅇㅅㄸㅅ ]

갑자기 채팅창에 초성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방금 레더게임을 승리하고 1700점의 고지에 올라서 기분이 좋은 상황이었다. 스타워는 렐처럼 체계적인 것이 아니라 레더라는 등급제가 있는데 1700점부터 C등급이었다.

“어… 이게 뭐죠?”

지혁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그 초성이 딱신이라는 스타워 프로게이머의 등장을 알리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지혁은 시청자들의 말에 따라서 다른 플랫폼으로 접속을 했고, 한 때 4명의 정점 프로게이머 중 하나였다는 딱신의 방송에 들어서게 되었다.

“와 시청자 너무 많아. 4만 명?!”

그는 호들갑을 떨면서 놀라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최근 지혁이 스타워를 시작하면서, 스타워의 전설 중 한명인 그의 방송에도 그 사실이 유입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개 미쳤다리….”

그는 지혁의 방송을 켜놓고 있었다. 지혁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딱신님. 반갑습니다.”

“오…! 네 안녕하세요. 조커 유님 정말 팬입니다.”

사실 지혁은 스타워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를 모른다. 그러나 그는 스타워라는 게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들어보았을 법한 유명인이라는 모양이었다. 물론, 실력 역시 현시점에서는 1위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그와 쌍벽을 이루던 또 다른 신. 딱신과 같은 종족의 사단장이라 불리는 사람까지 모두 스타워1을 하고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 셋과 딱신까지 총 4명이서 스타워의 리그를 사분화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었는데, 딱신을 제외한 셋이 스타워2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사실 딱신 역시 스타워2를 잠깐 접하기는 했었으나, 그는 스타워1때와는 다르게 전율할만한 포스를 보여주지 못하고 적응에 실패, 빠르게 은퇴를 해버리고 스타워1를 꾸준히 해나가고 있었다.

“…현재 그의 폼은 스타워1의 최정점. 그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의 글을 읽어나가는 지혁의 모습을 보며 딱신이 ‘악’ ‘아’ 등의 다양한 비명소리를 질러대었다. 지혁은 딱신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을만큼 자세히 풀어놓은 글을 읽어나가고서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과거에 엄청난 영광을 누렸었고, 현재는 스타워1의 최강자라고 할 수 있는 존재.

지혁은 호승심이 생겼다.

“혹시 가르침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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