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67화 (67/116)

00067  게임 제작을 결심하다  =========================================================================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지혁은 은서와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기지개를 폈다.

‘어디 한 번 각을 잡아볼까.’

게임. 그것은 애니메이션 영상을 제작하는 것만큼 고된 작업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일이다.

“시작하기에 앞서서….”

무엇이든 구상은 중요하다. 기획을 철저하게 하는 편이기도 한 지혁이니만큼 게임을 만들기로 했으면 확실한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룸은 가지말자.’

신은 지혁에게 룸에 의존하게 되는 삶에 대해서 경고를 한 적이 있었다. 지혁은 그것을 무시하고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위해서 룸에서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기에 지금 하는 선택은 신에 의해 좌우되는 결정은 결코 아니었다.

보기에는 바쁜 것 같아도 사실 차현진이 이것저것 다 처리를 해주기 때문에 지혁은 회사를 가는 날보다 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그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게임의 제작에 쏟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전제는 두 개 정도인가.”

지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메모장에 타자를 쳐내기 시작했다.

1. 프로텍트

2. 접속기

지혁은 자신이 게임을 제작함에 있어서 가장 중점으로 생각해야할 것은 이렇게 두 가지의 요소라고 판단했다. 다른 제작사들이 생각하는 관점 등은 다르겠지만, 최소한 지혁은 이렇게 두 가지는 절대 놓치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었다.

게임이라는 것은 결국 재미가 필요하다. 더불어 작품성이 높으면 더 좋다. 게임사가 공통으로 가지는 이상향은 바로 그것일 터였다. 잘 만들어진 게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 ‘돈’이 되는 게임.

하지만 지혁은 그들과 관점이 조금 달랐다. 돈이야 넘쳐나니까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다. 지혁 본인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게임이 잘 만들어지는 것이야 기본 전제로 깔고 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생일날의 너에게가 대흥행을 했기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기도 하다.

여하튼 지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게임의 완성도가 아니라 그 외적인 부분에 있었다. 운영적인 측면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핵, 버그 따위가 있어서는 안 돼.”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핵이 판치는 게임 따위는 하고 싶지도, 만들고 싶지도 않다. 지혁이 최근 렐이라는 게임에 대해서 시들해진 느낌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최상위권의 랭크게임에 헬퍼라 불리우는 핵유저들이 깽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혁은 일반 유저가 핵을 쓰든말든 이길 자신이 있었다. 다만 핵으로 인해서 게임에 대한 애착이 확 떨어져 버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혁이 그럴진대, 핵에 의해 고통받는 유저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얼마나 클 것인가.

혼자서 게임을 만드는 만큼 엄청난 공을 들일 것이다. 그러니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외부의 무언가에 의해서 평가절하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따라서 지혁은 애당초 핵이 생겨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길 원했다. 버그야 지혁이 알아서 해야할 일이다. 게임을 만든 제작자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의 문제이니까. 그러나 핵은 유저들이 만들어내는 게임 내 바이러스 같은 것이다. 애당초 여지를 주지 않아야만 한다.

“자체 게임 프로그램 같은 것도 하나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지혁은 자신이 만든 게임들이 아이펜에 접속해야만 플레이가 가능하길 바란다. ‘들’이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하나만 만들 생각은 조금도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 만들고 싶어하는 건 당연히 RPG게임이다. 레드 데저트 같은 모험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게임을 만들기를 원한다. 다만, 앞으로 어떤 게임을 만들지는 모를 일이다. 여러 가지 게임을 하다보면 지혁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분야는 분명 더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 하나씩 건들다 보면 숫자가 많아질텐데, 하나의 접속기로 그 많은 게임들을 바로 골라서 접속할 수 있도록 해볼 생각이었다.

‘좀 강제적인 방향이기는 하지만….’

또한 마지막으로, 지혁이 만들 3D MMOPRG 게임이 다른 온라인 게임과 차별화되는 특색이 하나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거래 불가’

지혁은 모든 아이템이 거래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현질’이라는 개념이 없어지도록 할 것이다. 이렇게 해도 ‘좋은 아이디’ 라던가 ‘유명 길드’ 등은 얼마든지 거래선상에 올라갈 수 있겠지만,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고 보았다.

“기본 틀은 이 정도면 될 것 같고….”

이제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어제 레드 데저트를 하면서 지혁은 느낀 바가 많았다. 처음으로 게임을 플레이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게임의 제작자로써 고찰해보니까 아쉽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게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

그렇게 타협하는 부분들이 있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지혁은 분명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수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왕지사 게임을 만들기로 했으면 다른 게임들의 장점을 취합하고 단점은 과감하게 도려낼 수 있는 결단력과 실천력이 밑바탕이 되어야한다. 그게 아니라면 지혁은 시작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어도 지혁은 자신만큼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가 가진 재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기에.

지혁은 이제 언제든 신에게서 받은 악마의 재능이, 자신이 생각하는 범주 이상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바로 시작해볼까.”

계획을 잡아놓고 안하기가 일쑤였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룸에서 몇 년의 세월을 보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지혁이라고 해서 마음먹은대로 항상 하는 것은 아니다. 그도 사람이고, 나태함은 항상 곁에 두고 있다.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했다면 바로 실천을 해야 일도 진행이 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게 아니다.

물론 지혁이 게임을 바로 만들 수는 없다. 지혁이 지금 하려는 것은 게임을 제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공부하는 것이다.

*                 *                 *

삐리릭.

“오빠 나왔어~”

집안은 고요했다. 유은서는 어둠과 침묵이 내려앉은 집안을 보며 그의 오빠가 나갔나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틱.

그러나 거실의 불을 킨 순간 유지혁의 신발이 있는 것을 확인한 은서는 잠깐 눈동자를 깜빡거리다가 그의 침실로 향해보았다.

슬며시 문을 열었지만, 깔끔한 성격을 대변하듯 잘 정돈된 침상만이 있을 뿐이었다.

집에서 유지혁이 있는 장소라고 해봤자 침실 혹은 작업실. 침실이 아니니까 작업실에 있을 것이다. 은서는 슬며시 방문을 열어보았다.

끼익….

역시 예상대로, 그녀의 오빠는 작업실에서 무언가에 열중해 있었다. 허나 은서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무언가 작업을 하거나, 게임을 하는게 보통의 유지혁인데 오늘은 책상에 책을 펼쳐두고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철컥.

이어폰을 끼고 있는 것도 아닌데 자기가 온지도 모르고 열중하고 있는 것에서 은서는 슬며시 방문을 닫았다. 그녀의 오빠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고, 가끔 무언가를 행함에 있어서 경이로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여주곤 한다.

유은서는 샤워를 한 뒤에 야참으로 간단히 계란볶음밥을 해서 먹고, 거실에서 TV를 잠깐 시청하다가 방에 들어가서 오늘치의 공부량을 적당히 복습하는 시간을 가진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착실한 한국 수험생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녀는 아직 고2이기는 하지만.

“…으음….”

병아리 인형을 끌어안고 대략 5시간 정도를 취침하고 일어난 그녀는 눈을 감은채로 이래저래 기지개를 펴다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방을 나섰다. 막 동이 터오는 새벽. 냉장고로 향해서 과일 상자에 담겨있는 사과를 꺼내들곤 과도로 껍질을 깎아냈다. 그 모습은 굉장히 익숙해서, 하나의 사과의 속살을 파헤치는데 껍질이 단 한 번도 끊기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최근 그녀의 오빠가 요리솜씨가 지나치게 좋아서 할 일이 없을 뿐이지, 은서 역시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었다.

사과 반쪽을 먹어치운 그녀는 화장실로 들어가서 세안을 했다. 이를 닦고, 샴푸까지 완료하고 나서 상쾌함을 느끼며 욕실을 나선 유은서는 아직도 그녀의 오빠 유지혁이 거실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살짝 당황했다. 유지혁은 게으름을 피우는 척을 하지만 그녀보다도 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요리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고나서, 아침밥을 그녀가 한 적이 손꼽을 정도로 씻고 나오면 항상 유지혁이 앞치마를 둘러멘채 아침밥을 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일단 깨우기는 해야할 것 같아 유은서는 서둘러 침실의 문을 열었다.

끼익….

“…?”

근데 침실은 어제 저녁에 보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침상과 어두운 방안의 모습을 확인한 유은서는 문을 닫고서는 유지혁의 작업실로 걸음을 옮겼다.

사각사각.

“…!”

그리고 유은서는, 어젯밤과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서는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오빠를 보고서는 눈을 부릅떴다. 설마, 10시간이 넘게 계속 이러고 있었다는 걸까? 심지어 그 이상일수도 있었다. 유지혁이 언제부터 공부를 시작했는지는 그녀도 모르는 것이다.

사각사각사각사각.

유지혁의 손에 쥐어져있는 샤프가 글을 적어 내려가는 소리만 울려왔다. 그는 여전히 유은서가 방문을 대놓고 소리내며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 ……. ……. …….”

만약 밤사이 계속해서 이런 집중력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면?

거기에 생각이 미친 유은서는, 자신의 오빠가 가진 ‘재능’의 원동력이 어쩌면 ‘노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언가에 꽂혔을 때 유지혁이 보여주는 집요함을 넘어선 어떤 독기의 일면을 엿본 기분이라고나 할까.

“오빠. 오빠. 오빠!”

“…어, 어?”

유지혁은 유은서가 세 번을 부르고 나서야 겨우 등지고 있던 자세에서 몸을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유은서를 바라본 유지혁은 잠옷차림인 그녀를 보고 상황을 파악한 것 같았다.

“벌써 아침이야?”

최소한 시간이 가는 것을 모르고 빠져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지혁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편 후에 방을 나왔다.

“아침은 그냥 간단하게 볶음밥 해먹을까?”

저녁에 계란볶음밥을 해먹기는 했으나, 그녀의 오빠가 만들어주는 볶음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잘 알기에 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타타탕. 촤악. 촤악.

순식간에 김치와 야채, 고기 등을 먹기좋게 잘라서 팬을 굴려가며 볶아내고 있는 그녀의 오빠를 빤히 쳐다보던 유은서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오빠 설마 밤 샜어?”

“응? 음. 뭐…. 인서울 하려면 열심히 해야지.”

솔직히 말하면 유은서는 이번 시험에서 유지혁이 그렇게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쯤은 확신이기도 했다. 그의 오빠는 굉장히 바쁜 사람이었고, 벌어들이는 돈도 많았다. 당연히 본업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을 것이고 공부는 소홀히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사정이 있기 때문에 성적이 저조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하루사이 그녀는 생각이 확 바뀌었다. 어쩌면, 그의 오빠는 그녀의 생각 이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아낼 지도 모른다.

“나 갔다올게.”

그리고 최근 공부하는 것에 조금씩 지쳐가던 자신의 마음도 다잡게 되었다. 열심히 일을 하는 와중에도 이렇게 공부에 열성적인 그녀의 오빠의 모습이 계기가 된 셈이다.

“이거 생각보다 빨리 게임을 만들어볼 수 있겠는데.”

정작 그녀의 오빠는 수험공부가 아니라 게임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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