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5 웹툰화 =========================================================================
그 뒤로 3주의 시간이 흘렀다.
지혁에게 차현진이라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상아는 마음을 접는 모습을 보였다. 그저 지혁의 외모에 현혹되어 생긴 단순한 호감 정도였는지 그녀가 보이는 태도의 전환은 굉장히 빨라서 지혁은 안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단지 그녀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지혁을 노리고 달려드는 여성이 많다는 것은 피부로 느껴진다. 길거리를 지나갈 때 그의 번호를 요청하는 여성들도 그렇지만, 누군가와 연관만 되면 어떻게든 지혁에게 달라붙지 못해서 안달인 여자들이 꽤 많았다. 그 한예리조차도 미묘한 느낌이 있었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서하린도 마찬가지로 지혁에게 묘한 호감의 언행을 보이곤 했다.
가치관의 차이가 조금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혁은 이렇게 잘난 인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선뜻 다가가는 것은 조심스러웠다. 특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예쁜 여자면 괜스레 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머뭇거리는 감이 있다. 그런데 여자들은 지혁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 지레 겁먹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변하곤 했다. 그게 지혁의 성향으로 인해 발생하는 차이라고 생각되기에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너무 예쁘면 오히려 남자들이 달라붙지 않는다더니.’
그 말이 틀리질 않는 것 같다.
“감사합니다.”
“하하….”
지혁은 교육이 끝나고, 이형준과 따로 술자리를 가졌다. 그가 요청했기 때문에 특별히 수락해준 것인데 그는 지혁보다 열 살이 넘게 많은 형답지않게 꽤 소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이상아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지혁이 눈치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사실이기도 하고.
“저는 할만큼 했다고 생각하는데. 어찌 보십니까?”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이제는 제 몫이겠죠.”
이상아가 자신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는 것을 알게된 후로, 지혁은 은근하게 이형준과 이상아의 관계를 서포트해주었다. 이형준은 상당히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은 꽤 순탄하게 흘러갔다. 이미 임자가 있는 지혁보다는 나름대로 잘난 남자인 이형준과 엮이는 것이 더 낫다는 계산이라도 선 모양인지, 이상아도 싫진 않은 눈치였다. 외모만으로 따지고 본다면 이나은이 이상아보다 두단계 정도는 위에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평인데 둘 다 그 자리에서 처음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형준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상아였던 모양이다.
그걸 보면 사람의 마음에 외모가 무조건적으로 작용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들어가세요.”
이형준과의 술자리를 마친 지혁은 데리러온 차현진이 몰고 가는 차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창밖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모든 일은, 너무나도 순조롭게 풀려나가고 있다.
소설은 잘되고 있으며 웹툰화도 절반 이상이 진행중에 있다. 창연화는 이미 드라마 제작이 절반 가량 진행되었고 머지않아 1화가 방영될 것이다.
그리고 보고받기로 하나뿐인 수필 20살이 되어 바라보는 세상의 흥행성적도 좋다고 한다. 지혁의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책으로 편찬된 그것은 이미 스터디 셀러로써의 위치를 견고하게 다졌다고 봐도 된다.
삐리릭.
“오빠. 요새 너무 바쁜 거 아니야? 공부해야 되잖아.”
“이제 해야지.”
지혁은 공부를 이미 다 마쳐두었지만, 은서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 갭에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지혁은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온 그를 걱정하는 은서의 머리를 헝클어버린 뒤에 방안으로 들어갔다.
‘좀 쉬자.’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이 없고 진행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제 지혁이 그간 해놓았던 것들을 연재하거나 세상이 공표하는 과정만 거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지혁은 침실에 자리한 침대에 털썩 누우면서 생각했다.
‘슬슬 이사를 해야할 것 같은데.’
* * *
집도 부산이며, 회사도 부산에 세웠다. 그러나 지혁은 부산에서 계속 생활할 수가 없는 입장에 있었다.
그것은 지혁이 입학할 과와도 연관이 되어있다. 서울에 있는 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고, 이미 그렇게 정했기 때문에 번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주객전도의 느낌은 아니었다. 지혁은 학교 때문에 부득이하게 서울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를 하기위한 명목으로 학교를 핑계거리 삼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은서’의 존재 때문이었다.
지혁은 은서와 같이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또한 알게 모르게 그녀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도 있었다. 차현진이 계속 지혁의 집에 들락거리는 것도 은서는 미묘하게 불편해하는 눈치였다. 때문에 지혁은 마음놓고 그녀와의 교재를 위해서라도 은서와 따로 떨어져서 생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은서는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하니까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어차피 1년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1년 뒤엔, 은서도 지혁과 마찬가지로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게될 테니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지혁은 그러한 사실을 은서에게 설명해주었다. 사실 지혁은 그렇게 계획을 잡고 있기는 하나, 만약 은서가 원치 않는다면 학기중에만 생활하는 것 정도로 타협을 볼 생각이었다.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거 아니야? 공부도 제대로 못했는데 인서울 할 수 있겠어?”
“그니까, 만약 인서울을 하게 된다면 말이야.”
자취를 하게 될 것이라는 말. 사실 은서니까 별로 걱정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가족이고 아직 어리니까 떨어져 있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었다.
“난 괜찮아. 오빠가 하고싶은대로 해. 근데 그럼 그 경우엔 내가 이 집에서 사는 거야?”
“그렇지. 오빠는 서울에서 새집을 구해야지.”
지혁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은서의 반응에 내심 하고 있던 긴장을 풀었다. 은서는 어찌보면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헤어지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괜찮은데, 나는 오빠랑 같은 학교 다니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은서는 지혁이 재수라도 해서 함께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랬던 것 같았다. 지금까지 해온 공부가 아까워서라도 하향지원을 할 생각은 없다는 뜻을 피력하는 그녀의 말에 지혁은 슬며시 웃었다.
‘어차피 목표는 한국대겠지.’
한국대 입학? 지혁에게는 껌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수능만점도 받아낼 자신이 있으니까.
“어쨌든 그럼 그렇게 알고 있어. 최소한 한 달은 더 지내야 할거야. 아직 수능은 좀 남았으니까.”
“알았어.”
그렇게 은서와의 이야기를 끝낸 지혁은 이제 정말로 남은 고민거리는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NG….’
지혁에게 으름장을 놓았던 강호산은 의외로 잠잠했다. 소설과 웹툰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을 해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접촉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나도 준비를 할 필요는 있겠지.’
지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아침식사를 마쳤다.
“저 가요~”
“응.”
지혁은 실탄을 점검해보기로 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판단하에 거액을 들여 경호업체도 고용했다. 자산이 많아지니까 당연히 해야할 일이기는 했다.
“회사에 가기전에 은행에 좀 들러야겠습니다.”
지혁은 은서가 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집으로 들어선 차현진을 보며 말했다. 그는 이미 말끔한 검은 정장을 입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은행… 말인가요?”
“네. 제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고 싶어서요.”
“알겠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차에 탑승하자, 차현진이 곧장 입을 열었다.
“다들 선생님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보유하신 재산도 포함됩니다.”
“그런가요?”
지혁이 지나가는 어투로 아무렇지 않게 묻자 차를 부드럽게 몰아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며 차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십, 몇백만원을 가지고 있는 고객보다 억단위의 재산을 유치할 수 있는 자산가를 우대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선생님의 경우 천억단위에 달하니 당연히 바짝 긴장을 하고 있겠죠. 그와 관련된 연락이 회사로 온 경우도 많았습니다. 선생님과 연락이 안되서 그런 거라 판단해서, 제가 자체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몰랐다. 차현진이 유능하다고는 생각해왔지만,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지혁의 지시도 없이 알아서 챙기고 있을 줄이야.
‘…….’
새삼, 그녀와의 나이차이가 10살이 넘어간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사회경험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굳이 선생님께서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재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면 제가 은행의 직원을 회사로 호출하겠습니다.”
“그거 괜찮네요.”
솔직히 은행에 가서 번호표도 뽑고,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기는 싫었는데 잘됐다. 지혁의 허가가 떨어지자, 차현진은 걸어둔 핸드폰을 조작하는 것 같더니 이어폰을 끼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언제쯤 찾아뵈면 되는지를 묻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차는 부드럽게 달려 회사에 도착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금방이었다.
그리고, 은행직원이 지혁에게 달려온 것도 금방이었다.
“안녕하세요”
“네. 앉으시죠.”
자리에 앉고, 차현진이 타준 커피를 한모금 마시면서 아이펜에 들어가서 간단히 이것저것 확인을 하는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차현진이 은행직원이 도착했다는 말을 전해왔고, 지혁은 당황하면서도 서둘러 앞쪽의 소파에 그녀를 안내했다.
“KC은행 VIP실 고객담당 민유나입니다.”
그녀는 어려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벌써 부장직을 맡고 있었다. 지혁이 명함을 빤히 쳐다보자 그녀가 슬며시 웃어보였다.
“이상하신가요?”
“조금 그렇습니다.”
“저는 작가님이 더 신기해요. 저야 회장님의 손녀딸이니까 낙하산으로 이런 자리도 맡지만… 선생님은 자수성가시잖아요.”
지혁은 흠칫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은행의 회장의 직계손녀딸인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런 어린 나이에 주요직책까지 올라선 것이리라.
‘강호산이 찾아왔었으니….’
지혁의 자산과 밀접한 관련이 되어있는 KC은행이 지혁에 대한 정보를 조사해두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제 제 볼일도 좀 보았으면 합니다만.”
“아, 죄송합니다.”
지혁이 부러 단호하게 말했음에도 민유나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지혁은 거기서 예쁜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자신감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녀는 너무 노골적으로 지혁을 유혹하고 있었다.
물론, 어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