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4 웹툰화 =========================================================================
“…이런 식입니다.”
회사 내부의 회의실. 지혁은 간단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지혁이 어떤 방식으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지를 들은 애니메이터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지혁이 요구하는 작품의 퀄리티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만 것이다. 물론 생일날의 너에게를 통해서 짐작을 하기는 했겠지만, 막상 들어보니까 제대로 갈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당장 성과를 내야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작품이 생일날의 너에게처럼 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세상에 나올 일도 없을 겁니다.”
지혁이 혼자 하는 것에 비하면 당연히 그들의 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질적인 면에서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지혁은 생일날의 너에게가 경이롭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기를 얻은 이유가 그저 작화에만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지혁과 동일한 퀄리티를 뽑아낼 생각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실로 오만한 말이겠지만, 전세계의 최고 권위자들을 다 끌어모아도 부족할 거라고 본다.
지혁이 새로이 쓴 애니메이션 영화 시나리오는 생일날의 너에게처럼 슬픈 내용은 아니더라도, 확실하게 대중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혁은 8월이 다 지나가는 현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새로운 애니메이션 영화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당장 급하게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여유롭게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길게는 몇 년을 보고 시작한 일이었다. 어차피 단기간에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추진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아이펜이라는 플랫폼이 가지는 힘과 영향력을 인정하는 중이었다.
아직까지도 아이펜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아이펜에서 어떤 작품을 내주기만을 고대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굉장히 많아졌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작품에 관한 공지가 올라오기만 해도 자유게시판이 난리가 날 지경이니 더할나위 없이 좋다고 볼 수 있다.
생일날의 너에게가 이런 쾌조의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던 것이 영상의 질에 있었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다. 소설도, 수필도, 웹툰도, 애니메이션도. 모든 것들이 최고 수준의 작품으로써 세상에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이펜에 존재하는 ‘작품’은 그 ‘분야’에 있어서 정상급이여먄 한다.
지혁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조커 유가 시대를 앞서가고 있다고 말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가지는 인식이나 생각 등이 변화하고, 유행이 돌고도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지혁은 그런 일련의 과정을 박살낼 정도로 강력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조커 유 자체가 유행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을 정도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의 미팅은 그저 앞으로 만들 작품에 대한 시제품을 제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지혁은 이미 시나리오를 모두 완성한 상태였고, 그것을 토대로 1분짜리 영상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선보였다. 지혁이 보인 것과 엇비슷한 정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춰라.
지혁이 그들에게 요구한 사항은 그것이었다.
“선생님. 만화가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응접실에 계십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집무실로 복귀하자마자 차현진이 말했다. 몇 주 전 홍창식이 이어준 인연들을 만나기 위해 지혁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물론 통화만 해보았을 뿐 직접 만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엇.”
긴장된 모습으로 앉아있던 그들은 지혁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모습이었다. 지혁은 손을 휘저어서 일어나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한 후에 뚜벅뚜벅 걸어서 상석에 앉았다. 차현진은 곧장 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응접실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지혁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오른편에는 20대 중후반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가 한 명. 왼편에는 2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앳된 외모의 여성이 두 명 있었다.
지혁은 본래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인물이 둘임을 깨닫고는 잠깐 멈칫했다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조커 유입니다.”
“안녕… 하세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도 여자들은 지혁을 훔쳐보기 바빴다. 하나뿐인 남성 역시 지혁의 얼굴에 구멍이 뚫릴 기세로 그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왠지 민망해진 지혁은 웃음을 터트리며 농담을 던졌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뇨…, 그… 정말 조커 유 작가님이 맞으십니까?”
“네. 반갑습니다. 저는 유지혁이라고 하고 이번에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지혁이 소개를 하자, 만화가들도 자신들의 소개를 시작했다.
각각 서른하나인 이형준, 스물넷인 이나은, 스물셋인 이상아 씨였다. 공교롭게도 셋 다 이씨였다.
“어디 볼까요?”
지혁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처음 만나서 어색하기도 하니까 괜한 사담이 분위기를 더 싸하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먼저 이형준의 작품부터 확인을 해보았다. 그는 본래 이번년도 안에 자신만의 작품을 가지고 만화가 데뷔를 할 예정이었다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실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홍창식과 이정욱이 각각 한명씩 곧 데뷔하게 될 만화가를 소개해주었는데, 이형준은 홍창식이 소개해준 사람이었다.
지혁은 그에게 후유가와 건 힐러. 두 가지 작품을 모두 요청했다. 물론 이정욱이 소개해준 이나은에게도 마찬가지로 두 작품을 그려오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이 정도로는.’
말했듯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좋지도 않다.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혁은 하나하나 완성도 높은 작품이기를 바랬다.
‘이쪽도 마찬가지네.’
지혁은 그들 둘에게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해주었다. 그들에게 자리를 주선해준 홍창식과 이정욱도 지혁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그럼 그렇게 정리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프로. 그들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라있다. 그렇기에 프로라 불린다.
여러 명의 사람을 접해가는 과정에서 지혁은 그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이형준과 이나은은 아직 데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당장 만화가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솜씨를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지혁의 기준이 높을 뿐이다.
그것이 재능으로 인한 결과물이든, 노력이든 경험이든. 지혁은 실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단서, 혹은 깨달음 등이 거대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상태였다. 굳이 지혁이 달라붙어서 일일이 고쳐줄 필요도 없을뿐더러 툭툭 던지는 말들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조언으로 작용해서 자체적으로 시너지를 내고, 효과를 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설프기는 했지만 리플라워가 그랬고, 한예리가 그랬다. 홍창식도, 이정욱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들 중 가장 수월했던 것은 당연히 오랜기간 활동해왔던 홍창식과 이정욱이었다. 그들은 실력도 있었기 때문에 가르치는데 시간이 그다지 걸리지 않았다.
‘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어.’
지혁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자신이 교육자로써의 재능이 특출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일전에 성우들은 임유선을 제외하고는 답도 없었다. 아마 지혁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성우의 길을 포기했을지도 모를 정도다. 게으름을 피우던 심성의 여부와는 별개로 그들은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혁은 촉박한 시간에 맞춰서 그들을 통해 결과물을 이끌어냈다.
그때가 처음으로 지혁이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순간이었음을 감안해서 생각해보면 지혁은 이쪽으로의 재능이 특출났던 것이다. 그 사실은 당시에 깨달았었고, 지혁은 그래서 다른 사람을 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재능이 있고없고의 여부를 떠나서, 보통 이상의 위치까지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확신의 영역을 넘어서, 자만에 가까울 정도로 커져있었다.
“혹시 저도 배워도 될까요?”
지혁의 일정을 들은 이상아가 그렇게 말했다. 지혁은 잠깐 멈칫했다.
그녀는 이미 만화가로써 데뷔했고, 그녀의 첫 작은 유명 플랫폼의 요일별 랭킹에서 하나의 요일에 1위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아직 데뷔한지 1년도 되지 않았음에도 많은 팬층을 보유하게 되었을 정도로 만화가로써 성공한 케이스.
이제껏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특출나면서도 개성있고, 간결한 그림체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으며,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거의 대부분이 고등학생이고 그들의 생태를 굉장히 섬세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받아도 마땅하다. 아마도 표현하나도 고심하고, 상당한 자료조사를 해나가고 있을 것이다.
각종 플랫폼에 존재하는 만화를 다방면으로 훑어보는 과정에서 지혁의 마음에 든, 몇 안되는 작품을 그려내는 그녀이기 때문에 지혁이 움찔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상아 씨는 지금 연애의 재발견을 그리고 계시지 않나요?”
“네 맞아요!”
지혁은 조커 유가 자신의 작품을 안다는 사실이 기분 좋은지 활짝 웃으며 대답하는 그녀를 슬쩍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만화가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잘생기고, 예쁘장하단 말인가. 이형준은 상당히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상아 역시 충분히 예쁜 편이지만 특히 이나은은 서하린에 버금갈 정도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저는 현재로도 충분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인기도 많고, 작품도 깔끔하지 않나요? 괜히 저한테 배웠다가 작풍이 변화하는 것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연재 도중에 갑자기 바뀌면 말도 많을 것 같은데요.”
지혁의 말에 그녀는 슬쩍 지혁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안될까요?”
“그런 것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고 하신다면 상관은 없습니다만….”
지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다시 굳혔던 표정을 펴며 웃었다.
“저는 상관없어요!”
되게 발랄한 성격인 것 같다. 그때, 지혁은 이형준이 이상아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다들 내일 봅시다.”
* *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혁이 들어서자,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던 세 명의 만화가가 일시에 그를 쳐다보았다. 지혁은 이상아가 밝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 것에 간단히 답하고나서 자리에 앉았다.
곧장 교육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봤을 때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그림체가 생긴대로의 느낌이야.’
흔히 말하는 ‘인싸’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형준은 남자를 굉장히 멋지게, 여성은 굉장히 예쁘게 그려냈다. 이나은 역시 마찬가지. 특히 그녀는 여성 캐릭터들을 그리는 솜씨가 발군이었다. 후유가를 맡아서 하는 그녀는 필연적으로 최고 인기를 자랑했던 공손영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검후. 그녀가 웹툰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비상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솔직히 검후 공손영은 지혁이 처음으로 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후유가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이니만큼 알게 모르게 애착이 있었다.
‘이건 또 색다르네.’
지혁은 예전에 김찬욱이 그려준 일러스트 뿐만 아니라 공손영을 그린 팬아트를 꽤 여러번에 걸쳐서 받아보았다. 그들 중에서는 뛰어난 솜씨를 가진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했고, 그 중 최고는 김찬욱이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나은이 그려낸 공손영만큼 특이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은 없었다. 청순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가진 공손영이 그녀의 손을 거치니 은근한 섹시함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그게 싫지 않았다. 이것은 이나은만이 가지는 특색이라고 본다.
“우와!”
“이거 홍가인이죠?”
직접 보이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지혁은 교육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의 그림 실력을 직접 보여주었다. 홍창식과 이정욱이 감탄했듯, 이제 막 만화가로써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 그들은 탄성을 내뱉었다.
“……. ……. ……. …….”
아마도 자신의 그림 실력에 대해서 가장 자부심이 큰 것은 이나은이 아니었을까 한다. 적어도 지혁의 평가로는 이형준이나 이상아보다는 이나은의 솜씨가 한두단계 정도는 뛰어났다.
그렇기에 그녀는 받은 충격이 더욱 큰 모양이었다. 다른 두 명이 감탄하는 사이, 이나은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림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그렇게 교육이 시작되었다.
뭐, 지혁의 예견대로 그는 좋은 선생이었고 이들은 프로였다. 몇 시간. 그 정도만에 실력이 늘었다는 것은 누가봐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할만한 것이지만 실제로 전과 후가 달랐다.
“와….”
그건 당사자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일 것이다. 이형준과 이나은은 탄성을 내지르며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감상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저… 질문이 있는데요.”
그 사이 지혁의 지시대로 그림을 그리던 이상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지혁이 해보라는 의미에서 그녀를 쳐다보자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이상아가 물어왔다.
“혹시 여자친구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