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3 웹툰화 =========================================================================
8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일에 치여사는 시간까지는 아니었다. 벌여둔 일이 많았기에 소요되는 시간이 적지는 않았으나, 사실 따지고보면 창작활동에 있어서는 정체상태라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지혁은 리플라워 멤버들이 바삐 움직이며 3주 연속 1위를 달성하는 사이 한예리의 연기지도를 무사히 마쳤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연기력은 성숙해졌고 그녀는 의외로 연기에 재능이 있었던 것인지 지혁의 가르침을 빠르게 흡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감사했습니다.”
지혁의 연기지도가 끝나고, 창연화가 본격적으로 드라마로써의 제작단계를 밟아나가고 있었다. 대본리딩 등의 과정은 진작에 끝났고 지혁의 요청에 따라 한예리의 지도과정이 끝나자마자 바로 촬영 일정이 잡혔다.
지혁은 굳이 원작을 충실히 반영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창연화의 완성도가 뛰어나서인지 아니면 원작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의도가 있어서인지 창연화의 대본은 거의 소설의 전개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지혁은 받은 대본을 이미 읽은 상태였다.
‘…최근에 좀.’
소설가가 아니라 연예인이 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리플라워도 그렇고, 한예리도 그렇고 이래저래 연예계와 얽히는 일이 많아졌다.
물론 이쪽으로의 길이 거북하다는 것은 아니다. 지혁은 어느 분야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졌는데 한 분야만 파고들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지혁은 자신이 연예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유명인들과 얽히고 싶다는 생각도 그다지 강렬하지 않다. 성가신 일은 질색이었다.
첫 촬영이 있다는 날. 초청을 받아서 오게된 지혁은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사실 그가 이곳에 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한예리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연기를 봐달라고 했고, 지혁은 흔쾌히 수락했던 것이다. 지혁은 말로만 듣던 영상의 촬영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게되자 생경한 기분이 들면서도 호기심이 샘솟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가 배우로써의 입지를 다지고, 그쪽의 길이 자신의 적성과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며 걸어갈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의 작품은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제작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또한 영상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써 촬영현장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아하하하….”
촬영장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한예리의 매니저가 도와주었기에 지혁은 관계자로써 촬영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촬영을 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팔짱을 끼고 구경하던 지혁은 남자 주연배우로 발탁되었다던 송은혁을 실물로 볼 수 있었다.
인지도가 매우 뛰어난 배우라고 보기는 어렵다. 알려진 명성에 비해서 송은혁이라는 이름 세글자만으로 막상 떠올려보면 이거다 싶은 작품은 없다. 그저 외모적인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고, 연기력도 나쁘지 않지만 작품운이 좋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잘 어울리네.’
서로 반하지 않는게 이상하다 싶은 비주얼 깡패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지혁은 웃음이 났다. 부럽다기보다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 쉬겠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매니저가 후다닥 달려가서 한예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기색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가 손으로 가리킨 방향을 쳐다보았고, 지혁과 눈이 맞았다.
“…선생님!”
때마침 집근처에 촬영장이 잡혔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는 하다.
“잘 봤습니다. 좋던데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지혁은 그와 동행한 차현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예정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할 것 같습니다. 고생하십시오.”
“아, 벌써요? 알겠어요.”
저 사람이 누구길래 한예리가 저러는 걸까. 그런 시선이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상대배우인 송은혁은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지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한예리와 지혁은 말 그대로 일로만난사이일 뿐이었다. 다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기는 하나, 지금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지혁은 거북함을 뒤로하고 차로 이동했고, 차현진이 운전을 시작했다.
“리플라워는 몰려드는 제의를 솎아 내야할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차현진의 보고에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지혁이 그녀들을 신경써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들은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밀려드는 영입제의 중에서 괜찮다 싶은 것을 골라내도 될만큼의 입지를 다져가는 상황. 지혁이 그녀들을 겨냥하고 만들어낸 곡들은 남아있지만, 리플라워라는 그룹에 대단한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며 당장 넘겨주어야할 일도 아니니까 인연의 끈을 남기고 만족하기로 했다. 추후에 그것들로 새로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니게임천국은 어떻게 됐죠?”
지혁이 그린 것이 아니라, 유명 만화가들의 손을 거쳐서 재생산된 창작물이기 때문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지혁은 자신의 재능을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스토리가 좋다고 하더라도, 잘 풀어가지 못한다면 졸작으로 남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물론 지혁이 검수를 하고 있다지만,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확신은 서질 않았다.
“반응이 굉장히 좋습니다. 결제 비율도 높습니다. 현재 진행된 3화까지의 수익을 합산하면 5억을 조금 넘기는 정도입니다.”
소설은 1화당 100원. 웹툰은 1화당 300원. 수필은 2천원에, 애니메이션 영화인 생일날의 너에게 역시 2천원에 판매하고 있다. 아직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장편 애니메이션의 경우엔 화당 500원에 책정을 할 예정이었다.
‘150만을 넘겼다는 거군.’
연재된 것은 3화에 불과하니, 회당 결제수는 50만을 넘겼다는 뜻도 된다. 국내로 한정된 수치로 생각을 해보면 입이 떡 벌어질 일이지만, 해외의 유입이 본격화되기 시작하고 있기에 대단히 높다고는 볼 수 없었다. 물론 적다는 건 결코 아니다.
“괜찮네요.”
무엇보다 지혁에게는 나쁘지 않은 정도라는 인식일지라도, 홍창식과 이정욱에게는 얼떨떨할 정도의 흥행성적일 터였다. 지혁이 많은 양보를 해주어서 그들과의 수익배분은 5:5. 따라서 그들은 5억 중 절반인 2억 5천만원의 수익금을 거머쥐게 되었다. 한달이 조금 넘는 시간. 연재로 따지면 이제 겨우 2주차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도 나쁠건 없어.’
본래 지혁은 미니게임천국을 웹툰화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정확히는, 그가 직접 그리려고 들지 않았었다. 헌데 약간 검수만 해주는 것으로 억단위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데다가 이것으로 지혁의 다른 작품들의 수익도 상승하는 시너지효과가 발생하게 될테니까 결국 서로 윈윈하는 셈이었다.
“정산은 이미 한 번 했겠네요.”
“네. 저번주 금요일날 처리했습니다. 당시에 배분되는 수익은 1억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2화가 막 연재되기 시작한 시점이었을 것이다. 지혁은 홍창식과 이정욱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져서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 네 선생님. 홍창식입니다.
“안녕하세요. 별 일 없으시죠?”
- 물론입니다. 저희는 즐겁게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하… 소식은 전해 들었습니다. 요즘 잘되고 있는 것 같네요. 수익의 일부도 이미 정산을 받았다면서요?”
- 네….
뭔가 목소리가 가라앉은 기분이다. 그에 지혁은 의아해졌지만,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별 건 아니었다. 초심을 잃지 않고 퀄리티를 유지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간단한 요청들이었다. 사실 그들이 알아서 잘 할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가볍게 해보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
- 저… 작가님. 역시 수익배분에 대해서 다시 조정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네?”
갑작스러운 말에 지혁이 반문하자 홍창식이 말했다.
- 전화로 말씀드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언제 시간이 되십니까?
“아뇨. 그냥 말씀하세요. 괜찮습니다.”
그는 서울에 살고, 지혁은 부산에 산다. 한창 바쁠 시기에 마감시간에 쫓기면서까지 일정을 조정해서 지혁을 만나러 오는 건 그에게 상당한 부담일 터였다.
- 그… 이번에 저희가 받은 금액이 1억을 넘는 건 아시죠?
“네. 들었습니다.”
- 안 그래도 그게 저희가 하는 일에 비해서 과도하게 많은 액수라는 생각을 하던 참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지혁의 ‘미니게임천국’이 아니라 그냥 신작을 냈다고 한다면, 연재 시작 몇 주만에 억 단위의 이익을 챙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사실은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약속을 하기도 했고 지혁은 그들이 가져가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꼭 미니게임천국이 아니더라도 지혁이 버는 돈은 굉장히 많다.
“아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지혁이 구태여 전화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생각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막상 그들이 가져가는 수익이 많자 지혁이 마음을 바꿨다고 지레짐작을 한 듯하다. 이나희때도 그렇고, 지혁이 가지는 힘이 상당해서인지, 그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아니면 이번일로 ‘조커 유’라는 크리에이터가 가지는 영향력을 실감한 것일지도.
“수익배분에 변동은 없을 겁니다. 비율은 저와 두분이 가지는 수익이 5:5입니다. 절반을 두분이서 어떻게 나누는지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을 거고, 관여할 권한도 없지만요.”
- 하지만….
지혁은 그들에게 잘 설명을 해주었다.
어찌보면 우유부단하고, 제 몫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춰질수도 있다. 아니,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혁은 그런 사람이었다.
공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미니게임천국이 잘되면 그뿐이다. 수익을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막상 만화를 그리는 당사자인 그들이 반을 가져가는 것이 오히려 적다는 생각도 들 정도니까 지혁으로써는 굳이 그들의 양보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생일날의 너에게 이후로 소설독자들의 활동만이 주를 이루던 상태에서 벌어진 또 한번의 헤프닝이 달가웠던 참이다.
-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서로 잘되자고 하는 일이잖아요.”
지혁이 잘 설명을 해주자 그들은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정확히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느낌이 강했다. 지혁이 그들이 가지는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입장인데도 이렇게 양보를 해주는 것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내가 특이한가?’
어쩌면 욕심이 별로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없이 살았다보니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풍족해졌다고 해야하나.
- 아, 그리고 선생님께 한가지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 혹시, 다른 소설 작품을 웹툰화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지혁은 그의 말에 흠칫했다. 방금 전까지 수익의 일부를 양도하겠다고 선뜻 나섰던 그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현재 굉장히 바쁘게 작품을 작업하고 있는 홍창식과 이정욱의 고초를 감안하면 그의 말에 담긴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후유가나 건 힐러를 웹툰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동료가 있는 건가요?”
- …네 그렇습니다.
짭짤하다. 현재 미니게임천국 웹툰을 두고 지혁이 내리는 평가로써 이보다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싶다. 지혁은 그저 가만히 있으면서 그들의 작품을 보고 간단히 지적만 하면 되는데, 그로 인해 파생되는 파급효과와 이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한 번 맛을 제대로 보았기 때문일까. 지혁은 당연히 다른 작품들의 웹툰화도 염두는 해두고 있었다. 다만 현재 이것저것 하는 것이 좀 많다보니까 직접 나서서 추진해볼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뿐이다.
“누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