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61화 (61/116)

00061  8월  =========================================================================

8월 중순이 되었다.

“공부 잘 돼?”

밥을 먹는 와중, 은서가 물어왔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공부따위는 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 그에겐 입시가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수능을 볼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룸에서 이미 다 해두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혁의 관심사는 대학생활이 아니라 작품활동이었다.

급하게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은서는 계속해서 지혁을 케어해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지혁은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애당초 공부를 하고 있지 않으니까 보살핌을 받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은서는 식사도 자기가 직접 차리는 등, 열과 성을 다해서 지혁을 보필하려 들고 있었다.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도, 이미 공부를 다해놓았다는 말 자체를 할 수 없는 이상 의미가 없다.

“아, 오빠. 그리고 혹시 오빠가 리플라워라는 걸그룹한테 곡 줬어?”

아이펜을 통해서 세상에 그 사실을 알리기도 했으니까 은서가 아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친해?”

“그냥 뭐….”

친하다고 해야될지, 아니면 어렵다고 해야될지 애매하다. 첫 만남과 두 번째 만남의 상황이 너무나도 괴리감이 커서 지혁과 리플라워 3인은 이번에 같이 작업을 하면서도 내심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이다.

대강 얼버무린 지혁은 문뜩 궁금해져서 고개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근데 왜?”

“사인을 좀 받아달라고 하던데. 가능해?”

“아… 찬욱이랬나?”

“아니. 걔는 오빠 소설 말고는 거의 관심이 없어.”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 것 같기는 한데, 지혁은 별로 감흥이 없었다. 시커먼 사내놈이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이 싫은 건 아니다. 팬은 팬이니까. 그는 팬을 성별에 따라 차별하는 부류는 결코 아니었다.

다만, 일전에 그가 보여준 사생팬같은 태도는 지혁을 떨떠름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지은이가 리플라워 팬이 되었대.”

“…음.”

아무래도 예전에 지혁의 집에 놀러왔던 여자애의 이름인 것 같다. 지혁은 그새 잊어버린 자신을 자책했다. 그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는데, 그만큼 그녀의 인상이 옅었다는 뜻일 터였다. 조금만 인상적이었다면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분명 기억하고 있었으리라.

“알았어. 받아줄게.”

솔직히 지혁에게 리플라워의 사인을 받아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도리어 너무 쉬워서 부탁같다는 생각도 안들 정도. 지혁에게서 곡을 받고, 홍보효과도 톡톡히 누린 리플라워는 현재 눈에 띄게 상승세를 타고 있는 중이다.

“고마워. 그럼 나 간다.”

그렇게 은서가 학교에 가고나서 뒷정리를 하던 지혁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타난 차현진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리플라워는 어떻게 되고 있답니까?”

“반응이 굉장히 좋다고 합니다. 빠르면 다음주 중으로 음원차트 1위도 노려볼 수 있다는 것 같습니다.”

신생그룹치고는 확실히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는 성과다. 그들의 기획사가 이름난 것도 아니고, 그저 지혁의 존재만으로 낸 결과물이기 때문에 지혁의 입장으로써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                 *                 *

[ 디지털 음원 점수. 시청자 선호도 점수. 방송 점수. 음반 점수. 그렇다면 과연 1위의 주인공은? ]

[ 축하드립니다 ]

[ 축하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지혁은 소파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음악방송을 보고 있었다.

리플라워의 데뷔는 결국 대성공을 거두었다. 저번주에 9위. 그리고 이번주에 1위. 마침내 그들은 정상에 올랐다. 지혁의 곡으로 음반을 내고서 활동을 시작한지 10일 정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혁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울먹거리는 이나희를 보며, 이내 TV를 꺼버렸다.

지혁의 소설들은 더욱 더 많은 인기를 낳으며 파죽지세의 기세로 나아가고 있었다. 미니게임천국 1부의 경우 회당 조회수가 80만을 돌파하면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는 중이었다. 2부, 3부로 갈수록 판매량이 저조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허나 당장 3부의 1화만 하더라도 조회수는 40만을 넘기고 있으니 결코 적다고는 볼 수 없었다.

생일날의 너에게도 하루 만 단위의 판매량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아직도 인기를 누려나가고 있다. 뒤늦게 접한 사람들이 보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판매량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만화나 소설 역시 마찬가지. 특히 만화의 경우엔 공을 많이 들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혁이 공개한 최초의 웹툰이기 때문인지 상당한 인기를 누리는 중이었다.

1위발표를 끝으로 음악프로가 끝이 났기 때문에 지혁은 TV의 채널을 돌리면서 다른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있었다.

우웅-

그때 옆에 놔두었던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슬쩍 이름을 확인해 보니 이나희였다.

‘…….’

지혁은 잠깐 고민하다가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선생님. 보셨어요? 저희가 1등 했어요!

“봤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녀의 음성에는 기쁨이 듬뿍 묻어나오고 있었다.

- 선생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굉장히 인상깊은 하루였을 것 같은데, 마무리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축하해요.”

- 네! 감사합니다!

아무리 조커 유라는 인물의 명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과 ‘음악’은 달라도 너무 다른 분야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곡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내심 반신반의하는 기색이 있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지혁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결국은 결과가 증명해주는 법. 빠른 시간만에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위치에 오르게 된 순간 이나희는 지혁에 대한 존경심이 제대로 터져버린 모양이었다. 이전에도 공손한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깍듯함을 넘어서 생명의 은인처럼 여긴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살짝 부담되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라서 지혁은 좋게 이야기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으그그극!”

게임이나 해볼까.

기지개를 펴면서 일어난 지혁은 방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딩- 동-

방송을 키고 막 첫 번째 게임이 시작되었을 무렵, 지혁은 갑작스럽게 울리는 벨소리에 캐릭터를 잠깐 타워 옆에 멈춰두고 현관으로 나가보았다.

- 계세요?

- 선생님! 문좀 열어주세요.

뭐, 뭐야.

지혁은 진심으로 당황했지만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세 여인이 앞다투어 들어서선 얼른 문을 닫는 모습을 보였다. 마스크나 선글라스 등으로 얼굴을 가리기는 했지만, 집에 찾아올 사람들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당연히 그녀들은 현재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라있으면서, 음악프로의 1위 자리를 차지하여 대세 걸그룹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리플라워의 멤버 전원이었다.

무대 의상을 그대로 입고 와서인지, 그녀들은 매끈한 다리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핫팬츠에 차림들을 하고 있었다.

“여, 여러분이 여긴 어쩐 일로?”

“그야 당연히 선생님이랑 같이 자축하고 싶어서요. 저희가 1등 한 건 선생님 때문이잖아요.”

그러면서 이나희가 개구쟁이같은 미소를 지으며 샴페인이라고 생각되는 병을 들어 볼에 가져다대는 모습을 보였다.

“잠깐!”

지혁은 신발을 벗고 들어오려는 그녀들에게 손을 뻗어서 제지했다. 그러자 그녀들은 얼어버린 것처럼 하던 행동을 멈추고 굳어버렸다.

“호, 혹시 여자친구분이랑 같이 있으셨나요? 저희가 방해를….”

문하얀의 말에 서하린의 표정이 살짝 굳고, 이나희가 낭패어린 얼굴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차현진은 지금 지혁의 집에 없었다.

“아뇨아뇨…. 제가 지금… 그러니까…. 개인방송 중이여서요. 아, 들어오셔도 되는데….”

지혁은 횡설수설하다가 그녀들에게 소파에 앉아있으라고 지시했다. 개인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소리를 내면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자 그녀들은 알겠다는 듯 나란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해야할 듯합니다. 내일은 길게 할테니까요.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원성이 자자한 시청자들의 반응을 애써 넘기면서 방송을 종료한 지혁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게임은 이겼다.

거실로 나선 지혁은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다소곳이 앉아있는 세 여인의 앞으로 다가갔다.

“갑작스럽게 찾아오셔서 당황했네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깜짝 놀래켜 드리려고 그랬던 건데….”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는 이나희를 따라서 두 여인들도 사과해왔다.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오는 것은 지혁과 그들 사이에 상하관계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아뇨. 괜찮아요. 그런 의미로 한 건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며 지혁은 그녀들이 사온 것들을 확인해보았다. 케이크에 샴페인, 치킨과 피자까지 착실히도 준비했다.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잘됐네요.”

배가 고픈건 사실이었다. 그러자 그녀들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전 오늘을 잊지 못할 거에요.”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써, 혹은 가수로써 처음으로 1위를 한 날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으로 기억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샴페인을 홀짝이며 이나희가 한 말에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강 호응해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혁은 정말 그녀들에게 거창한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녀들이 내는 수익의 일부를 지급받기로 약속되어있기도 하고, 유사시에 그녀들을 차출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해두었다. 지혁이 바라는 것은 딱 그정도. 그저 예전의 인연이 만들어낸 관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리플라워에게 지혁은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 모양이었다. 지혁으로 인해 그들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것이다.

지혁은 그녀들이 이런 중요한 날에 그의 집에 들이닥칠 거라고는 예상도 못했다.

띡.

흠. 칫.

띡띡띡띡. 삐리릭-

누군가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약간은 풀어진 모습으로 앉아있던 여인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그러나 지혁은 시간을 확인하는 것으로, 은서가 올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아내고서는 덤덤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왔어~”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익숙하게 가방을 벗어 지혁에게 건네주던 은서는 신발을 벗다말고 왼쪽에 시선을 둔 채로 굳어버렸다.

“…….”

“아,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리플라워?”

예전에 사인도 받아갔고, 은서도 리플라워가 누군지는 아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가방을 방에 던지듯이 내려놓은 지혁은 곧장 입을 열었다.

“아, 이쪽은 제 여동생입니다.”

퍽. 퍽.

“아. 아. 왜 이래?”

“오빠. 손님이 오면 온다고 말을 해야지!”

지혁은 억울했다. 불과 몇십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도 리플라워의 깜짝방문 때문에 크게 당황했었던 것이다.

“아니… 내가 부른게 아니라 이분들이 온….”

“됐고. 내 친구도 불러도 되는거지?”

리플라워의 팬이라던 은서의 친구… 그러니까 한지은이라고 했던가?

“그래 뭐…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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