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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재능-60화 (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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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에 불과한 그녀들을 굳이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차현진이 이러한 의문을 가졌기 때문에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추론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추측컨대 그녀는 한예리 때처럼 지혁이 재능을 댓가로 리플라워의 멤버들 자체를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지은 죄가 있으니까 그 부분에 관해서 할 말은 없었다. 다만, 그녀가 지혁과 차현진이라는 인간을 동급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주 잘 알겠다. 물론 그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렇게 편하게 마음먹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관계를 원하는 지혁의 입장으로써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막연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차현진을 향한 지혁의 감정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처음으로 알아가게 된 상대를 사랑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겁다는 이 감정은 지혁의 삶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매 순간이 달콤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차현진은 지혁에게 있어 처음 알게된 ‘여성’이었던 것이다.

지혁은 차현진과의 데이트를 즐겼다.

즐거웠다.

솔직히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 녹여야될지 잘 모르겠다. 지혁만 즐겁고, 그녀는 그저 지혁이 좋아해주니까 같이 다닌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알게 모르게 벽이 있는 기분이랄까.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기엔 차현진의 내부에서 지혁과 그녀의 서열이 확실하게 각인이 되어있다는 느낌이 크게 든다. 아마 이대로 가다간 그녀는 절대 지혁과 평등한 입장에서 사귀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다른 여자들을 만나도 상관없다고 등을 떠미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자존감이 낮은 것인지 애당초 자신은 지혁을 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이건 그저 추측에 불과하다.

“그래요. 들어가서 쉬세요.”

지혁은 운전하느라 고생한 차현진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들어갔다. 그것으로 미루어 추측하자면 그녀가 지혁에게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 그녀는 가면서도 계속 뒤를 쳐다보았고, 지혁은 손을 흔들어주었다.

차현진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야 뒤를 돈 지혁은 집으로 향했다. 5분 거리 정도밖에 안되는지라 도착은 순식간이었다.

“늦었네.”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하다보니 시간은 어느덧 10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야자를 마치고 돌아온 은서가 달려나와 지혁을 맞이해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밥은?”

“소녀, 오라버니가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답니다.”

“지랄도 병이랬다.”

“우씨.”

지혁은 성질을 내는 은서를 보며 피식 웃고서는 신발을 벗으며 물었다.

“할 말이 뭔데.”

은서는 요구조건도 없이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넘겨짚는 것도 아니고, 지혁은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뭔가 부탁할 것이 있기에 이러는 것일 터였다.

“치킨 시켜줘.”

“시켜~”

시키면 되는 것을 왜 이런단 말인가? 지혁은 진심으로 의문이 생겼다.

“용돈이 다 떨어졌걸랑.”

“…? 내가 카드 줬지 않아?”

“뭔 소리야.”

이게 뭔 소리야. 지혁은 오히려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시켜줘. 치킨 먹고 싶어.”

“정말 내가 카드 안 줬었어?”

지혁의 물음에 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동안 돈 쓸데 있으면 어떻게 했는데?”

“아껴서 쓰거나, 아예 안썼지. 그리고 예전에 오빠가 쓰라고 10만원 챙겨준 적 있었잖아.”

기억은 난다. 하지만 상당히 과거의 일이다. 두 달은 된 것 같다.

은서는 자신이 게임을 해서 벌어들인 돈을 지혁에게 전부 주었다. 그냥 쓰라고 했는데 고집불통이었다. 자기도 이 집을 사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나 뭐라나. 결국 동생의 성화에 져주었고 그녀의 돈은 지혁의 수중에 있었다. 물론 벌어들이는 돈이 많다보니 그것을 땡겨서 쓸 일 따위는 없었다.

“……. ……. …….”

1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천억이 넘는 돈을 벌었는데, 동생은 치킨 한 마리를 시키는 것도 신중하게 결정하고 있는 꼴이라니. 지혁은 근래 들어서 가장 황당하여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니지….’

딱히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지혁은 정말 카드를 준 걸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확실히 줬던 기억은 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진짜 카드를 못 받았다고? 내가 저번에 쓰라고 줬던거 같은데.”

“아. 그건 교통카드잖아.”

지혁은 순간 얼빠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거 결제도 되는 거야.”

“아, 진짜?”

몰랐다는 표정에 지혁은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은서를 제쳐두고 다른 일에만 집중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러면 그건 그냥 교통카드로 써. 내가 다른 카드 줄게.”

지혁은 때마침 최근에 차현진으로부터 카드 하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가 신청을 했는데 발급이 되었다는 것 같았다.

지혁은 지갑을 꺼내서 넣어두었던 검은색 카드 하나를 꺼냈다.

“와… 뭔가 멋있는데.”

“카드가 다 똑같은 카드지 뭐. 자. 앞으로 이게 용돈이야.”

지혁이 카드를 주자 은서는 희희낙락해서 곧장 치킨집에 전화를 하려는 것 같았다. 치킨 하나에 그렇게 좋아할거면 그냥 자기 돈 쓰면 될 것을 가지고.

‘이상한 고집이 있다니까.’

그것을 알기에 지혁은 그녀의 카드를 돌려준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의 카드를 준 것이다. 지혁의 카드는 또 거리낌없이 받는다는 것은 참 황당하다. 기준을 잘 모르겠다.

‘근데….’

차현진의 말로는 저 카드는 일부에게만 사용이 허락되는 부의 상징이라는 것 같던데. 이렇게 막 양도해줘도 되는 걸까?

‘…괜찮겠지.’

*                 *                 *

리플라워가 데뷔 초읽기를 시작했다. 물론 실제로는 1년된 그룹이지만 사실상 이번이 첫 스타트라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뮤직비디오는 성공리에 촬영이 끝났다. 녹음은 당연히 그 전에 끝났고, 안무 역시 뮤직비디오 촬영 전에 만들어서 보여주었고, 숙지시켰다. 그 일련의 과정에 걸린 시간은 2주. 사실상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진행한 셈이었다.

지혁은 뮤직비디오를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물론 그와 관련된 인력들도 대거 뽑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준비된 신설팀으로 촬영을 시작했고, 자잘한 문제들은 알아서 해결했다. 편집도 직접했으므로 사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두고두고 쓸 일이 있을거라고 판단되기에 일회성으로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끌고갈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지혁은 그들에게 정직원의 자리를 제안했고, 대부분이 받아들였다.

‘규모가 상당히 커져가고 있군.’

차현진의 주도하에 회사의 구색맞추기도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느리기는 하지만 최소한 일처리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그녀는 유능했다. 경리 등의 필요한 분야에 갖춰야할 사람들은 물론이고 출판사 직원들 이외에도 실력있는 애니메이터들도 많이 뽑았다. 당장은 그들이 붕 뜨는 느낌이 있으나, 리플라워에 대한 일이 끝나면 지혁은 본격적으로 그들을 대동하여 애니메이션 작업을 진행할 예정에 있었다.

“수고했습니다.”

규모가 커지는 만큼 문제점도 분명히 있었다.

일단 언제까지고 차현진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겨두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지혁이 직접 운영하기도 좀 그렇다. 믿고 맡길만한 전문경영인을 한 명 뽑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일 것 같기는 한데, 생판 남에게 무작정 떠넘기기도 조금 그렇다. 지혁의 성격상 그 경우 결국 계속해서 신경을 쓰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하고나서 잠깐 커피를 마시며 티타임을 가질 때 차현진이 일상처럼 보고를 위해 들어왔다. 그녀는 리플라워의 데뷔에 대한 안건을 주로 다루었고 지혁은 대체로 잘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으며 묵묵히 들었다. 보고를 끝낸 차현진이 나가자, 지혁은 집무실에 앉아서 잠깐 생각에 잠겨있다가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주었다.

리플라워에게 사전에 공지한대로 지혁은 생일날의 너에게의 OST와 각종 BGM을 작곡, 작사한 것이 조커 유라는 사실을 밝히고 그녀들의 데뷔곡들 모두를 그가 직접 작사, 작곡했다는 것을 넌지시 흘렸다. 그것만으로도 큰 화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예상대로 실시간 검색어에 리플라워라는 네 글자가 떡하니 올라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공입니다!”

차현진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지혁은 피식 웃었다.

천년.

인간에게는 있을 수도 없고, 주어져서도 안 되는 시간이다.

지혁은 세 번째로 룸을 찾았을 때 보냈던 10년이 넘는 시간이 다른 범인의 기준으로는 천년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룸에서 돌아왔을 때만 하더라도 정말 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구나 정도의 인식만 있었다.

허나 최근 들어 그 느낌은 더욱 짙어진다. 생일날의 너에게의 흥행이 너무나도 압도적인 결과를 내고 있었고, 통장의 잔고는 하루가 멀다하고 숫자를 달리하는 중이었다.

지혁은 생일날의 너에게를 유포하는 과정에서 그 어떠한 홍보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펜의 홈페이지에 그와 간략한 일정을 짤막하게 남겼을 뿐이다.

그래서 더 대단하다고 본다.

홍보? 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혁은 자신의 작품이 ‘명품’이기를 바랬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조커 유’의 작품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애가 닳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명품은 구태여 자기PR을 하지 않아도 원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법.

지혁은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더 많은 작품을 내주기를 바라고, 더 많은 것을 느끼기를 원하길 바랬다. 그는 그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 자신의 이름이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기위한 첫걸음. 그것을 생일날의 너에게는 아주 잘 떼어 주었다.

“이제 시작이야.”

개인이 이루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큰 성과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지혁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뗐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무사히 60화의 연재를 성공해서 안심이 됩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꼭 지키겠다는 다짐하에 때로는 졸면서까지 글을 썼던지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계약은 오늘 무사히 마쳤습니다. 연재는 프리미엄이 아닌, 노블레스의 형태를 유지하고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연재에 관한 것인데, 일단 최소 1일 1화 이상을 기준점으로 잡으려고 합니다.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연재되는 편수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많은 날은 3~4편씩 올라올지도 모르죠.

즐겁게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저는 내일도 똑같이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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