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59화 (59/116)

00059  리플라워  =========================================================================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실력을 보는 것 뿐이니까.”

지혁의 정체를 놓고 추측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았다.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질 않았으니 그것은 종식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지혁이 가지고 있는 신분이 다양하다 보니까 당연히 분야도 다양했다. 소설가로써의 Joker U에 대한 추측. 방송인으로써의 Challenger Yoo에 대한 추측. 그리고…

생일날의 너에게의 OST를 부른 가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추측.

물론 곡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OST를 작곡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완성도가 보통이 아니라며 극찬하는 이들도 수두룩했고, 생일날의 너에게의 OST는 아직도 각종 차트 등의 끝자락에나마 등재되어 있는 상황이다. 공개되고 3개월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얼마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넷상에서 그것보다 더 뜨거운 감자로써 작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노래를 부른 당사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추측글이다. 귀가 간질이는 듯한 중저음에서부터 작중 중반부에 등하는 고음곡의 포르타멘토 샤우팅에 이르기까지. 숙련된 가수가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하다는 평을 내리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고, 가수나 음악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지혁이 누구일 것이라고 얘기하고 다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많은 가수들이 OST의 커버에 도전했지만 난다긴다하는 연륜있는 기성가수들조차 원곡의 맛 이상을 내지 못한다는 말이 오고갈 정도로 지혁의 노래실력은 이미 가요계에서도 최정상급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 Call me. me. me. me. 오늘 밤 Call me now ]

[ let's party time. time. time. time. let's party time. ]

“…….”

리플라워.

그들은 3인조로 구성되어 있는 여자 아이돌 그룹은 은근히 색이 확실한 팀이었다.

메인보컬 서하린(블루).

래퍼 이나희(레드).

메인댄서 문하얀(화이트).

색상을 대놓고 예명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만큼 인지도가 없었다. 데뷔한지는 1년이나 그동안 이룩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내놓은 노래 역시 그 누구도 모르며, 싼값을 받으며 행사를 가끔씩 뛰기는 했지만 그 뿐. 그녀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팬을 자처하는 사람조차 단 한명이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TV에 출연했던 적도 없으며 음악방송의 무대에 오르는 것은 어불성설.

물론 인지도가 없다고 해서 실력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잘한다는 말은 못해줘도, 생각보다 괜찮은 수준인 것 같다는 평은 내려도 될 정도였다.

지혁은 그들을 위해서 후크송도 제작했다.

이야기를 끝낸 지혁은 이호준을 돌려보낸 뒤에 그녀들의 노래부터 들어보았다. 첫 스타트는 문하얀이, 두 번째를 이나희가 끊었다.

마지막으로 서하린의 노래까지 들은 지혁은 슬며시 헤드셋을 벗었다.

‘확실히 서하린은 좀 잘하네.’

그녀에게는 굳이 노래를 가르칠 필요는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른 둘과는 비교하는게 민망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왜 이런 이름없는 소속사에 들어갔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실력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외모 또한 뛰어나지 않은가.

“잘 들었습니다.”

지혁이 손짓하자 서하린이 문을 열고 나왔다.

“후….”

실력이 없는 건 아니나 앞길이 구만리다. 마치 벌을 받듯이 의자에 앉아있는 지혁의 앞에 나란히 선 여인들을 바라보던 지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문하얀 씨부터 다시 들어가 볼까요?”

“네.”

위치적인 부분이 있다보니, 저번에 반말을 한다던 문하얀이 존대를 해왔다. 지혁도 존대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이 걸리는 것은 아니었다. 동갑내기라고 해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철저히하고자 하는 분위기는 지혁이 추구하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곧장 작업이 시작되었다.

성우들의 일화로 얻은 교훈이 하나 있었다.

단호함만 가지고 있어서 될 일이 아니다. 지혁은 당근과 채찍을 적당히 활용하면서 그들을 몰아치고,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성과를 내기로 했다.

물론 냉정하게 보면 서하린에 대한 마음이 사라진 지금 시점에서 굳이 리플라워를 선택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유명 그룹들에게 팔아먹었다면 그들에게 받은 가격 이상을 받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혁에게 그런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보았으며, 무엇보다 이렇게 다져진 관계는 끈끈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 자산이 될 거라고 믿었다. 내 사람을 만들어가는 의미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연예인을 직접 키워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을 것 같았기에 그녀들을 선택했다.

“집중합시다. 가볼까요?”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유들유들하게 적당히 웃는 모습도 보여주던 지혁은 녹음이 시작되기만 하면 표정이 확 변하면서 한순간에 진지해졌다.

“일단 아직 목이 안풀린 것 같네요. 목부터 풉시다. 가성 한 번 내볼까요 가성?”

“좋아요. 이제 된 거 같네요.”

“다시.”

“다시.”

“다시.”

“아니, 아니에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은 지혁은 직접 안으로 들어간 다음 문하얀에게 부르지 말라고 지시하고서 옆에 서서 직접 손가락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말 그대로 속성강의였다.

“하나 둘 셋 넷. 렛츠 파리 타임. 타임. 타임. 타임. 렛츠 파리 타임.”

“파리 타임. 타임. 타임. 렛츠 파리 타임.”

지혁이라는 훌륭한 견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하얀은 따라하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국어책 읽는 느낌도 조금은 있었다.

“렛츠 파리 타임. 파리 타임.”

지혁은 무반주로 반복해서 천천히 불러주면서 그녀에게 느낌을 전달해주려고 애썼다.

그는 지금 그녀들의 노래실력을 키워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녹음을 높은 수준으로 잘해내고 싶을 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당연히 실력이야 늘기는 하겠지만 전문적인 트레이닝에 비하면 효과가 좋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만약 그들의 실력 자체를 키워줄 거라면 이와같이 무작정 녹음부터 하고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무 급해요.”

“파티를 좀 더 질러보죠.”

“긴장을 너무 많이 했어요. 어깨에 힘 빼시고.”

한 구절 녹음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우때와 비교하면 이건 굉장히 진도가 빠른 것이었다. 지혁은 가장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문하얀조차도 나름대로 잘 따라오는 것 같자 기분이 좋았다. 예상보다 더 빨리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파와 리 사이를 약간 텀을 두세요. 파~리 타임. 파~리 타임.”

“렛츠 파~리 타임. 타임. 타임.”

오. 좋다.

“오, 방금 좋았어요. 다시 한 번 더.”

“렛츠 파리 타임. 타임. 타임.”

바로 안 좋아졌다.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라고 한 지혁은 다시 느낌을 살려서 해보자는 식으로 프로듀싱을 해나갔다.

작업은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저녁때였고 그는 오늘 점심도 안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혁은 꾸르륵거리는 배를 부여잡았다. 못 들었겠지?

“어… 수고하셨습니다.”

지혁은 일부로 서하린을 마지막에 프로듀싱했다. 당연히 그녀는 짧은 시간만에 그럭저럭 합격점이라고 생각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지혁은 그 이상을 원했기에 그녀도 예외없이 몰아쳤다. 무엇보다 메인보컬인 그녀에겐 다른 둘과는 차별화되게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교육이 가미되었다. 그러니 그녀도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가성 쓸 때 된발음을 사용하는게 좀… 습관처럼 굳혀지신 거 같은데. 아~! 하고 넘기면 더 좋을 거 같아요. 신경써서 연습을 한 번 해보세요.”

그래서 녹음이 끝났음에도 지혁은 그녀의 문제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지적했다.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웠기 때문인지, 그녀는 지혁의 말을 대강은 이해한 듯하다.

“알겠어요.”

“자. 그럼 진짜 끝. 다짜고짜 녹음을 시작해서 당황스러우신 것 같은데, 저는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거든요. 열심히 일하고 푹 쉬는게 낫잖아요? 아… 여러분은 녹음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되실 거지만.”

지혁이 마무리 멘트를 하고나서 작업의 종료를 알리자 문하얀이 슬쩍 물어왔다.

“이제 말 편하게 해도 돼?”

“음? 어… 뭐. 그렇게 해요. 근데 전 존대가 편해서 그냥 존대할게요.”

지혁이 약간 선을 긋듯이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말한다.

“그럼 저도 그냥 존대 쓸게요. 그나저나 그때 말했던게 이거군요?”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뭐… 그렇죠. 음악적인 검증이 있어야 신뢰가 갈거라고 생각해서 접촉이 좀 늦었습니다.”

생일날의 너에게의 OST를 지혁이 직접 불렀다는 점이 있어야 그들이 잘 따라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소설가로써 명성을 날리는 조커 유가 아니라, 그러한 커리어가 있어야만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 뒤로 상당한 시일이 지나고 나서야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도중에 회사에 대한 일을 처리하는 과정 때문에 지연된 것도 있었다.

“근데 나랑 동갑… 맞죠? 대체 잘하는게 몇 개에요? 소설 쓰는 거, 작사, 작곡, 노래까지.”

“생각하는 것만이 다는 아닐 겁니다.”

유하게 대꾸한 지혁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먹하게 서 있던 두 여인을 돌아보았다.

“작업은 그리 오래걸리지 않겠네요.”

지혁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그들에게 앞으로 해야할 일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녹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뮤직비디오의 촬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이전에, 걸그룹이기 때문에 안무도 구상을 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 룸에 갔다온 것이기도 하니까 지혁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적극 활용할 생각이었다. 본래라면 그것은 리플라워의 소속사 FTR가 알아서 해결해야할 일이지만, 지혁은 확실히 지원해주고 하는 것이다.

할 거면 확실하게.

그는 이번에도 그의 모토대로 움직일 예정이었다.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입니다. 저도 쉬어야 하니까요. 내일은 10시까지 여기로 출근하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지만, 은근히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은 있었다. 지혁은 그 사실을 눈치챘으나, 그녀가 손을 들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없군요. 그럼 이만 나가죠.”

지혁은 녹음실을 벗어났다. 그러자 차현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슬슬 끝날 때 쯤이라고 생각해서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모셔다 드려야 할까요?”

“아뇨. 그건 저희가 해야할 일은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차현진이 리플라워의 운전기사가 되는 꼴은 볼 수 없다. 그녀들이 움직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들이 소속되어있는 회사에서 해주어야 하는 일이었다. 아니면 자신들이 알아서 하거나. 거기까지 지혁이 신경써줘야 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할 수 없는 일도 아닌데 그 정도의 대접을 해줄만큼 이쪽이 아쉬운 입장은 아니다.

“…….”

차현진이라고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 잠깐 그녀를 쳐다보던 지혁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선 말했다.

“일은? 끝났습니까?”

“급한 일은 처리가 끝났습니다.”

“잘 됐네요. 최근에 개봉한 해적영화가 재밌다던데. 그거나 보러 갈까요?”

“네? 아….”

지혁은 당황한 듯한 차현진을 데리고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등 뒤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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