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56화 (56/116)

00056  방송을 키워보자  =========================================================================

지혁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은근히 즐기는 편이기도 하기에 방송일이라는 것이 적성에 잘 맞는다고 보고 있다.

방송이라는 것은 결국 방송의 주체인 방송인이 이끌어나가는 것이었다. 외모적인 측면에서 눈을 정화시켜주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느낌이 계속해서 이어지지는 않는다. 결국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개인방송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지혁은 그동안 방송을 해오면서 정말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은채 그저 게임만 해왔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봐주니까 만족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방송의 규모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변화가 필요하다.

말. 결국엔 말이다. 지혁은 그의 외모를 공개할 수 없고 때문에 시청자들은 오로지 그의 목소리를 통해서만 그와 소통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 속 연예인에게 외모라는 것이 초기의 이미지, 잠깐 반짝이는 느낌으로써 적용할 수 있듯이 지혁의 우월한 실력이라는 것도 방송적인 측면에서 태생적인 한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계속 보다보면 적응이 되어버리는 것이고, 그럼 지혁의 방송을 찾지 않게 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초창기에 비하면 지금은 슈퍼플레이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큰 감흥이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지혁은 적극적인 입담과 행동을 통해 방송의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은 꽤 잘 먹혀들고 있었다.

[ 챌린저 유 부캐 육성기 - 1일차 ]

채널명 : Challenger Yoo

지혁은 방송제목부터 흥미를 유발할만한 것으로 바꾼다음 그가 며칠간 고심해서 생각해둔 컨텐츠를 진행해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부캐를 키우는 것. 물론 얼마전 상오와 플레이했던 부캐는 아니었다. 오늘 새로 만든 계정이었다.

“아니! 개오바지~”

지혁의 캐릭터가 죽고 화면이 회색으로 변하자 지혁이 격하게 외쳤다. 그가 생각해도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어서 어이없게 죽어버렸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 사과와식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카푸리썬 : ㅋㅋㅋㅋㅋㅋㅋ 줫나 웃기네 ]

[ 곱게빻은깨 : ㅋㅋㅋ 챌린저 유 원래 개그캐였냐 오늘 왜케 웃김 ]

부캐의 육성이 시작되고, 지혁은 생전 해본 적이 없는 챔프들을 연습해본다는 명목하에 실제로도 처음해보는 캐릭터를 무작정 픽해서 게임하기 시작했다. 물론 실제로 처음해보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클라스라는 것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게임하면서 봐온게 있으니 당연히 형편없는 실력은 아니다.

단지 그가 플레이하는 주력 캐릭터들에 비하면야 숙련도는 확실히 낮다.

지혁이 즐기는 레전드 리그는 팀게임이다. 지혁이 잘한다고 해서 모든 게임을 승리할 수 없다. 그가 100점 만점에 100점짜리 게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승패가 10분만에 결정이 나기도 한다. 심지어 그것은 상위권의 게임으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왜 그럴까? 레전드 리그의 매칭시스템은 은근히 촘촘하다. 비슷한 계급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도록 설계가 되어있고, 계급이 비슷하다는 것은 서로의 실력도 엇비슷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어째서 5분, 심할 경우 3분만에 게임의 승패가 벌써부터 정해져버린다는 말인가.

지혁은 그것이 약간은 운의 영역에 있다고 보고 있었다.

팀원을 잘 만났기 때문에 이긴다는 흔해빠진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계급의 승강이 달려있는 랭크게임과는 다르게 심지어 팀간의 실력차이가 다소 벌어지는 경우가 존재하는 일반 게임에서도 계급이 낮은 팀이 높은 팀을 압살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건 결코 그들이 실력이 더 좋아서가 아니다. 그저 흔히 말하는 ‘아다리’가 맞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레전드 리그라는 게임은 특히 게임의 승패유무를 결정하는 요소가 셀 수 없이 많고 곳곳에 산재해있기 때문에 10명이서 하는 게임임에도 한 명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쌓여서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른다. 심지어는 플레이어들의 정점이라고 불리우는 챌린저들조차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본다. 적어도 지혁이 보기에 그 사실을 직접 깨닫고 행동하며 게임의 판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적용하고 있는 것은 현시점에서 프로게이머들 중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테이커와 같은 네임드 선수들, 혹은 앱도와 같은 아마추어계의 절대강자들 뿐이었다.

지혁이 아무 생각없이 적이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수풀에 들어가는 행동을 했을 경우에, 적 정글과 그의 상대 라이너는 지혁이 그 부근에 와드를 박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 시점에서 지혁이 실제로 와드를 박았는지 안 박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안하면 그걸로 그만이지만, 하게 된다면 거기서 그들은 그것을 의식하면서 플레이를 하게 된다. 그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서 나비효과처럼 연쇄작용을 일으켜 게임의 판도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1킬, 2킬, 3킬으로 이어지고 오브젝트를 뺏기고 정글 몹을 카운터당하고 타워를 내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잠깐 캐릭터를 위로 움직였을 뿐인데도, 그로 인해 펼쳐지는 결과물은 게임 전체의 판도를 뒤집어버리는 수준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움직임 하나가 그럴진대, 상대와 라인에서 대결을 하는 라인전의 구도에서 무빙을 실수해서 치명적인 스킬을 허용하거나, 전투과정에서 컨트롤에 실수가 있었다면 어떨까.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설령 적에게 킬을 허용하지 않았어도 게임이 이미 산으로 가버린 경우가 있기도 하다.

아무리 지혁이 독보적으로 랭킹 1등을 찍은 챌린저 오브 챌린저이고 솔로랭크 픽창에서 그의 아이디가 보이는 것만으로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포스를 자랑하는 규격 외의 플레이어라고는 하지만, 처음하는 캐릭터만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100%의 승률을 자랑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잘 풀리는 게임에서조차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광경이 나오는 경우는 허다한 수준.

지혁의 기준으로 레전드 리그를 잘한다는 것은, 실수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적게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었다. 비단 오늘뿐만 아니라 그간 방송을 진행해오는 과정에서 지혁은 판마다 실수를 해왔다.

똑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처리하는 방식이 달랐다. 지혁은 그러한 상황때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사실에 대해서 어필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청자들에게 왜 이런 식의 상황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거나, 아니면 과도하게 아쉬워하면서 그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방송은 월등히 재미있어졌다. 그것은 당사자인 지혁이 가장 잘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플레이하는 그도 재밌었고, 보고있는 시청자들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이게 방송이지.’

무엇보다 챌린저 2위와의 점수차이가 거의 200점 가까이 벌어져있는 지혁이 부캐를 키우면서 그 구간에서 일반 유저들과 격렬하게 치고박고 싸운다는 점 또한 부가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랭크게임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그와 게임 한 판 해보겠다고 그를 저격하는 시청자들도 굉장히 많아서, 게임이 잡히면 10명중 절반 정도는 시청자일 정도였다.

[ 당근주스 : 챌하. ]

[ 무선헤드셋 : 팬이에요. ]

[ 철관음 :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게임 내 채팅창이 활발해지는 것이 그 증거.

[ 쓰레기를나무로 : ? 누구 방송중임? ]

[ 무선헤드셋 : 님네팀 야사오 챌린저 유임 ]

[ 쓰레기를나무로 : 야사오가 챌린저임? 와 대박이네 ]

[ 무선헤드셋 : 그냥 챌린저가 아니라 랭킹 1등임 ]

[ 쓰레기를나무로 : ;; ]

[ 쓰레기를나무로 : 미친새끼 한 명 있네 팀에 ]

“아니….”

지혁은 헛바람을 들이키면서 말했다.

“사람보고 미친새끼라니, 말이 너무 심하시네.”

[ 고블린의후예 : ㅋㅋㅋㅋㅋ ]

[ 카페테리아 : 오늘 방송 진짜 레전드네 ]

[ 국간장과진간장 : 방송 안본애들 인생 100%퍼 손해 ]

채팅창의 반응을 보며 흡족한 웃음을 짓고 있는 와중에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지막 판이라서 지혁은 플레이해본 경험이 많은 야사오를 픽했고 당연히 게임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 Precious : 전판엔 좀 역겹더니 이판은 잘하시네여 ]

[ 전동면도기 : ㅋㅋㅋㅋ ]

물론 지혁이 전판에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팀원 전체가 다 밀리는 상황이었기에 그의 캐리력으로 한계가 있었을 뿐, KDA(킬, 데스, 어시스트)는 4/1/1로 나쁘지 않았었다.

[ Megoory : 랭킹 1위한테 역겹다는 님 티어 ㅇㄷ? ]

그리고 방송이 점차 재밌어지자 시청자들도 알아서 분위기를 만들어가 주고 있었다. 지혁은 적당히 그들의 싸움을 말리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게임이 15분도 채우지 못하고 끝났다.

[ 오렌지킹 : 근데 방금판은 그냥 무난하게 라인전이 흘러가는 것 같았는데 어디서 게임이 이렇게 터진 거지? 보고 있었는데도 이해가 안되네. 그냥 자연스럽게 이기고 있는 느낌 ]

그때, 지혁의 눈에 들어온 채팅이 하나 있었다.

“오렌지킹. 근데 방금판은 그냥 무난하게 라인전이 흘러가는 것 같았는데 어디서 게임이 이렇게 터진 거지? 보고 있었는데도 이해가 안되네 그냥 자연스럽게 이기고 있는 느낌.”

그의 채팅을 지혁이 그대로 읽자 업계포상이라느니 이제 소통을 하는 거냐느니 말들이 많다. 지혁은 일부로 읽은 것이기에 그것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궁금해하시는 분이 있는 것 같으니까 그럼 잠깐 리플레이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혁은 그의 실력을 적극 살려서 컨텐츠를 하나 구상해둔 것이 있었다. 바로 ‘강의’ 영상을 찍는 것. 그가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면서 장면이 도출되는 원인을 추론해나가는 과정을 방송을 통해 송출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물꼬를 틀까에 대해서 고민하던 찰나에 저런 채팅이 보였기 때문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나갈 수 있었다.

지혁은 속으로 오렌지킹에게 감사하며 리플레이 영상을 틀었다.

“제가 왜 이렇게 된 건지 강의를 해드릴게요. 자, 문제의 장면은 여깁니다.”

지혁은 게임을 5분 20초로 돌렸다. 세팅을 시작한 그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적 케직스가 탑갱을 시도한 것이 보이죠. 저도 이걸 보고 있었습니다. 밑에서 나왔고, 와드가 박혀 있었어요. 삼거리에서 케직스가 등장하는 것까지 확인을 했고, 저희팀 데리우스가 유체화를 써가면서 갱을 잘 흘렸습니다. 그리고 스펠을 빼는데 성공한 케직스가 여기서 이쪽으로 이렇게 이동을 하죠. 여기가 5분 33초입니다.”

지혁은 그 순간 리플레이 영상을 멈췄다.

“자 그럼 여기서. 케직스가 삼거리 수풀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작골쪽으로 움직이는 모션을 취하고 실제로 그 뒤로 그쪽으로 이동을 해요. 이 순간 저는 케직스가 언제 미드로 갱을 올지에 대해서 이미 계산을 하고 있었어요.”

[ 의료기기 : ? ㅈㄹ ㄴ ]

[ Ablack : 이게 뭔 개소리임? ]

시청자들은 당연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언뜻보면 말이 안되는 일이기는 했다. 지혁은 부연설명을 이어나갔다.

“근거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먼저 저희 팀 에블린이 적 칼부쪽에 와드를 박아뒀죠. 그리고 거기에는 칼부가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서포터도 적 블루쪽 너머로 여기. 와드를 박아뒀고, 독두꺼비가 없어요.”

지혁은 맵을 이동해서 보이는 것들을 일일이 짚어주면서 설명을 해나갔다. 그러자 채팅창의 시청자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의 강의를 경청하는 기색이었다.

“여기서 케직스가 선택할 수 있는 동선은 4가지밖에 없어요. 바로 집을 가거나, 작골을 먹고 집을 가거나, 칼부를 먹으러 오거나. 탑갱을 가거나. 근데 탑은 이미 데리우스가 라인을 박아놓고 여기 뒤로 물러나있어서 적 입장에서는 모습이 안보이기 때문에 갱을 갈만한 상황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도 이쪽 와드에 칼날부리를 먹는 케직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케직스가 할 수 있는 동선은 바로 집에 가는 것, 혹은 작골을 먹고 집을 가는 것 두 가지 뿐입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격하다. 지혁은 그 중 하나를 읽으며 소통했다.

“작골 먹고 칼부 생략하고 바로 밑으로 뛸수도 있는거 아니냐고 하시는 분이 있네요. 그런 경우는 없다고 봐도 됩니다. 그냥.”

그의 강의가 계속되었다.

“5분 35초쯤에 작골을 먹기 시작했다면 50초쯤에 다 먹었겠죠. 집에 귀환하면 대략 6분. 템사고 바로 뛰어서 이쪽의 블루쪽까지 도착하면 시간은 6분 10초에서 20초쯤 될겁니다. 만약 작골을 생략했다면 5분 55초에서 6분 5초 사이겠죠. 저희 서포터가 블루쪽에 박은 와드는 5분 50초쯤에 지워지고요.”

지혁은 그 시간대로 화면을 전환했다. 과연, 정글 몹을 챙기고 귀환한 케직스가 블루쪽 캠프로 이동했을때의 시간은 정확히 6분 17초였다.

“근데 여기서 6분 23초쯤에 라인을 박아넣고 있던 저희 바텀과 적 바텀이 격렬한 딜교환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저희팀 바텀의 체력이 많이 빠지게 되요. 그래서 당연히 케직스가 갱을 생각해볼만 하죠. 저희팀 리쿠신도 정글 먹다말고 달려가는 것이 보이죠. 지금 영상을 멈춰둬서 확인을 하지는 못하지만 아마 케직스는 이미 바텀으로 달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영상의 정지를 푸니 진짜로 가고 있었다.

그 뒤로 지혁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나갔다. 그리고 그는 말을 하고나서 검증을 해보자는 의미로 영상을 재생하는 식으로 진행을 했고, 할때마다 그의 말은 100% 들어맞는 놀라운 적중률을 보였다. 그러자 시청자들의 경악한 듯한 반응이 터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게 된겁니다.”

[ 이어폰고장남 : 이게 무슨;; ]

[ 핑크색스톱워치 : 이건 진짜 충격적이다. 내가 본 롤 강의를 통틀어도 방금의 설명 하나만도 못한 것 같다. ]

[ gfkw : 이 정도는 해야 1등을 찍는 거냐? 레알 도라이네 ]

강의를 끝낸 지혁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씨익 웃었다.

이미, 시청자수는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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