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5 방송을 키워보자 =========================================================================
- 와 진짜 너무 슬프더라 형들. 개인적으로 내가 본 영화 중에서 최강인 것 같아.
“…….”
여기는 그가 방송을 진행하는 PD팟은 아니었다.
턱을 괴고서 인터넷 방송을 보고 있던 지혁은 한 시청자의 말에 호응하는 방송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레전드 리그의 최상위권 랭커중 한명이었다. 그는 전시즌에 단 50명밖에 되지않았던 챌린저를 달성했던 인물로써, 실력뿐만 아니라 입담도 좋다.
지혁은 최근 마치 스포츠 경기를 챙겨보는 팬의 마음으로, 저녁시간 하루를 마무리할때 게임도 하지 않고서 치킨에 맥주 한잔을 걸치며 그의 방송을 보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하루 중 이 시간이 가장 자유롭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 사람의 방송을 보기 시작한 것도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지혁은 ‘탤론장인상오’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그와 솔로랭크에서 만난 경험도 있었다. 근데 같이 게임을 하는 것과 그의 방송을 보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지혁은 자신이 방송을 킬 때 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들어와서 게임하는 것 따위를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상오’를 통해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거기다 지혁과는 다르게 그에게는 입담이라는 것이 있었다. 다양한 컨텐츠를 진행하며 게임이 주가 아니라 방송이 주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방송인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저 어떻게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궁금해서 배우자는 자세로 들어간 것이지만, 지금은 방송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그만큼 그는 매력있는 방송인이었다.
또한 그는 그런 노력을 하는 만큼 아메리카TV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를 끌어 모으는 유명방송인 중 한명이기도 했다.
헌데 오늘따라 시도 때도 없이 시청자들이 생일날의 너에게는 봤냐? 안 봤으면 빨리 봐라, 이 새끼 생안찐(생일날의 너에게도 안 본 찐따)임? 등의 다양한 문구로 어그로를 끌어대었고, 결국 그가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생일날의 너에게에 관한 소재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가 아무 말도 못했던 것 때문에 그가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챈 시청자들이 놀리기 시작한 것도 벌써 일주일이 넘어간다. 그간 많이 참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각해보면 대단하기는 하다. 개봉한지 거의 3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까지도 생일날의 너에게가 이곳저곳에서 꾸준히 언급되고 있었다. 그만큼 생일날의 너에게가 가진 영향력이 막강했다는 뜻이리라.
어쨌든 계속되는 상황에 참다못해 터져버린 그는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다시는 그의 방송에 들어올 수 없도록 설정하는 블랙리스트 자리에 시청자들을 때려 넣기 시작했다. 그는 10명이상을 숙청하는 피의 바람을 일으키고 나서야 조금 진정한 것 같았다.
- 아니, 오늘 봤다고. 이미 다 봤다고. 보고 질질 짰다고. 그만 좀 얘기해!
“…….”
방송화면에 집중한 채로 맥주를 홀짝이던 지혁은 그가 자신의 작품을 봤다고 하니 왠지 좀 기분이 애매모호했다. 지혁은 상오의 방송을 보고, 그는 지혁이 제작한 영상을 본다. 마치 예전에 축제에 가서 만났던 두 명의 만화가가 떠오른다고 해야할까. 이 미묘한 관계는 당분간 적응이 안될듯 하다.
그렇게 화를 낸 그는 갑자기 생일날의 너에게를 극찬하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 생너(생일날의 너에게) 안 보신 분들은 꼭 보세요. 그리고 2천원으로 결재하면 소장하고 평생 볼 수 있다니까 돈 아까워하지 마시고 그냥 결재해서 보세요. 그래야 조커 유 님이 또 다른 명작을 내줄거 아닙니까. 복돌이짓 좀 그만하시고 정품 씁시다 우리.
그러고 보니 지혁의 영상을 멋대로 유출해대는 사람들에 대한 법적 대응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기는 하다.
플랫폼이 뚫린 것은 아니다. 프로텍트는 완벽하게 작동되고 있다. 문제는 핸드폰이나 카메라 등으로 영상이 재생되는 것을 찍은 것을 유출하는 악랄한 녀석들이 있다는 것. 지혁은 불법적인 공유 등에 대한 행위를 할 경우 법으로 대응하겠다는 식의 경고문구를 확실하게 기재해두기 때문에 명분은 차고 넘친다. 그들에게는 인생이 실전임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 근데 소설도 그렇게 재밌다던데 어때요? 진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볼 정도에요? 코봉이 형이 계속 소설도 챙겨보라고 난리를 치던데.
지혁은 지금 중계방이라는 곳에 있었다. 본방에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중계방은 본방과는 다르게 방송인인 상오가 직접 채팅을 볼 수 없는 곳인데도 열심히 채팅을 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 완전 재밌음. 영상을 워낙 잘 뽑아서 영상보다 낫다고는 못하겠지만 소설도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잘 쓰는 사람이라. ]
[ 한국에서 역사에 남을 소설가가 탄생했다는 말이 돌고 있잖음. ]
[ 소설이 진짜배기임. 걍 조커 유 소설은 다 봐야됨. ]
[ 지금 수필도 책으로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아님? 20살이 되어 바라보는 세상이었나? ]
[ 맞음. 그냥 씹깡패임. 앞으로도 혼자 다 씹어먹을 듯. ]
이런 반응을 보고 있자니 좀 신기하다. 지혁의 독자들이 다는 댓글에는 차분한 어조 등으로 찬양하는 것밖에 없는데 일반인의 시점에서 그의 평가를 들은 기분이었다. 아이펜의 자유게시판에는 대부분 그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사람들밖에 없으므로 그간 이러한 객관적인 평가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근데 게임은 언제해.’
상오는 이렇게 토크방송을 하는 것도 재밌긴 하지만, 게임을 할 때 진가가 나타나는 법이었다. 지혁은 그가 게임하는 것을 보는 재미로 방송을 보는데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최근 그의 이야기로 말이 많은 것 때문에 안 그래도 좀 불편했었다.
하지만 상오는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생일날의 너에게에 관한 이야기를 끝낼 생각이 없는지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 생너에 나오는 노래들도 완전 좋지 않아요?
[ ㅇㅇ 개좋음 두 달이 다 되가는데도 길거리 걸어다니면 생너 OST만 들림 ]
[ 근데 왜 성우는 공개했으면서 노래부른 사람이 누군지는 예명조차 알려주지 않을까 ]
[ 성우들이 불렀다는 말이 있던데 ]
지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헛소문을 믿는다고?’
하기사 정보가 없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혁으로써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출처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 이런 식의 오류를 생산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천풍운가가 최고 인 거 같아요
그가 그렇게 말하자, 상오가 보고있는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 그걸 누가 모름? 니 방송에서 맨날 그거만 틀어대는데 ㅋㅋ ]
[ 상오 주제곡이 되어버렸자너 ㅋㅋ ]
[ 본인 아직 생너 안봤는데도 천풍운가 가사 다 외웠음 ]
[ 얘도 생너 보기 전부터 노래는 미친 듯이 듣더라 ]
[ 송하은이 부른 버전 들어봄? 원곡만큼은 아니어도 꽤 좋던데 ]
[ 나 그거 들어봄 근데 애당초 홍가인이 부른다는 느낌이니까 남자목소리가 몰입이 안되는 것일 뿐임. 그냥 원곡 부른 남자가 노래 존나 잘하는 거 ]
게임이나 해.
상오는 그 뒤로도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계속해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한 게임만 더 보고 자려고 했는데, 게임을 돌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계속 그의 작품의 품평회가 이어지자 민망해진 지혁은 고민 끝에 손을 움직였다.
‘뭐, 괜찮겠지?’
로그인을 한 후 바로 결제를 시작한다.
[ Joker U 님께서 하트 1000개를 후원하셨습니다. ]
: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알겠으니 게임이나 해주세요.
- 아, 조커 유님께서 중계방에서~ 무려 하트 1000개를! 감사합니다 형님. 게임이나 하라고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큐 돌리겠습니다. 돌렸습니다.
[ 와 아이디 완전 레어네 ]
[ 저거 어케 먹었대? ]
[ 잠만 근데 진짜인거 아님? ]
아무 생각없이 아이디를 읽었던 상오는 그제서야 이상함을 느꼈는지 지혁에게 관리가 가능한 매니저직을 주었다.
- 설마 진짜 조커 유님은 아니시죠? 하하하.
해맑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뜩 궁금해졌다.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과연 지혁이 조커 유라는 사실을 밝히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 Joker U : 안녕하세요. 조커 유입니다. 저도 상오님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
- 아… 어…. 지, 진짜? 에이~ 사칭하시면 안돼요.
아직 확실히 믿는 건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지혁은 어떻게 인증을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아이펜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공지사항에 ‘진짜입니다’라고 적어두었다. 공지사항은 아이펜의 메인 페이지에 올라있는 것으로 홈페이지로 접속을 하던 어플로 접속을 하던 메인 화면에 띄워진다는 특징이 있었다.
지혁이 채팅으로 그 사실을 말해주자 상오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들어가보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공지사항을 그가 확인하고 그것이 방송에 나가자 지혁은 실시간으로 공지사항의 내용을 바꿨다.
[ 그래서 게임은 언제 하실거죠? ]
상오는 입을 떡 벌리고 홈페이지를 보고 있다가, 지혁이 그렇게 적어넣자마자 실시간으로 갱신된 공지사항의 메시지를 확인하고서는 얼빠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때 때마침 게임이 잡히고, 그는 정신을 차리고서는 잡힌 게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지혁은 공지사항의 내용을 지워버리곤 슬며시 로그아웃을 했다.
상오는 게임을 하는 것 같아보이기는 했지만, 마음은 딴 데 가있는 모습이었다. 게임 내내 집중을 하지 못하던 그는 그대로 게임을 말아먹으면서 패배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는 게임의 승패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게임이 끝나자마자 채팅창부터 확인하는 기색이었다.
- 아… 로그아웃하셨네.
- 저 작가님. 혹시 아직도 보고 계신가요?
채팅창은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 결국 상오는 게임 도중에 채팅을 치지 못하도록 중지설정을 해버렸고 지혁은 괜히 나서서 그의 방송을 방해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졌다.
그런 그가 지혁을 찾자 치킨을 뜯으며 고민하던 지혁은 결국 로그인을 했다.
[ Joker U : 네 보고 있습니다. ]
- 와…. 제 방송을 왜 보세요?
그 뒤로 그가 질문하면 지혁이 간단하게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별 것 없었다. 방송을 언제부터 봤느냐, 소설의 소재는 갑자기 팍 하고 머릿속에 샘솟냐 등의 유치하면서도 은근히 답하기 까다로운 것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지혁은 적당히 대답해주었다.
졸지에 팔자에도 없는 인터뷰를 하게된 셈이었다. 그러나 최근 지혁을 재밌게 해주었던 방송인인 상오의 부탁이니만큼 지혁은 꽤 친절하게 답을 해주었다.
- 혹시 롤도 하세요?
대충 이야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나온 질문. 지혁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가 같이 한 판 하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잠깐 고민하던 지혁이 말했다.
[ Joker U : 제가 아직 언랭이라서요. ]
- 아 일반게임하면 되죠. 아이디 불러주십쇼! 제가 캐리하겠습니다!
못 말리겠군.
말했듯 지혁은 그와 2~3판정도 게임을 해본 전적이 있었다. 그러나 챌린저 유와 조커 유가 동일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그는 부득이하게 최근에 키우고 있는 아이디를 꺼내들었다.
지혁이 게임에 접속한 뒤에 만렙도 찍지못한 부캐의 아이디를 알려주자 몸이 달아올라있던 상오가 재빠르게 초대를 해왔다. 지혁이 받고, 그가 곧장 게임을 돌리기 시작한다.
게임이 잡히고, 지혁은 서포터를 자처한 그와 함께 하단라인에 가게 되었다. 그가 원거리 딜러, 상오가 서포터로 게임을 시작했다.
22/0/6
둘은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중반부터는 2:5 전투조차 압살하면서 단숨에 승리를 챙겼다. 딱히 게임 실력을 숨기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음으로 지혁이 전력을 다했기에 생긴 결과였다. 지혁은 20분이 되기도 전에 22킬을 기록하며 게임을 휩쓸었다.
- 와 너무 잘하시는데요?
결코 아부가 아닐 것이다. 그가 최고 등급이라는 챌린저를 딱지치기로 달아놓은 것이 아니라면 지혁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굳이 긴 시간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게임을 시작하고 3분이면 지혁이 부캐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터였다. 고수는 안목도 다른 법이니.
[ Joker U : 저는 이만 자러 가보겠습니다. 오늘 재밌었습니다. ]
- 아, 벌써요? 알겠습니다. 들어가십쇼 형님!
당신 나보다 4살이나 많잖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혁은 방송을 껐다.
‘흠….’
지난 3주 정도 다른 사람들의 방송을 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 방송에 대한 공부는 얼추 끝났다고 생각한다. 이제 남은 것은 선택을 하는 일 뿐.
정도(正道)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지름길을 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