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4 방송을 키워보자 =========================================================================
“네. 그렇게 하시죠.”
지혁은 전화를 끊고서 기지개를 폈다.
홍창식, 이정욱과의 만남을 가지고 오후엔 차현진과 데이트를 즐겼다. 한강 둔지에 누워서 평화로이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었다. 그리고 호텔에 들어와선 그들과 전화로 간단한 내용을 협약한 것이다.
사실 그들에게 오후중에 자세한 것을 결정하고나서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해두었는데 차현진과 시간을 보내다가 잊어먹고 있었다. 그래서 급히 연락을 통해서 조건 등을 제시하고 그들과 조율을 한 것이었다.
지혁은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로 했다. 연출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캐릭터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여차하면 그림에 관한 실력적인 부분의 보완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들은 지혁이 이렇게까지 파격적으로 나올 줄 몰랐다는 듯이 당황하는 기색이었지만 지혁은 하려면 확실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크게 따지자면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지혁이 기여하는 부분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되고, 그는 원작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페이는 5:5. 열심히 마감을 치는 것은 그들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욕심이 아니었다. 지혁이 6이나 7, 아니 9를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별 말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리는 만화는 미니게임천국이기 때문이다.
미니게임천국의 인기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만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전달되기만 하더라도 한바탕 뒤집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만화를 그리는 장본인인 그들이 쥐게 되는 돈은 20년간 만화를 그리면서 벌어온 돈보다 많을 수도 있다. 개인으로 따지자면 반의 반을 가지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런 부분을 감안해서 생각해보면 50%나 제공하는 건 지혁이 정말 많은 사정을 봐준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냥 방치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만큼 지혁이 가지는 권한도 막강했다.
연재의 경우엔 지혁의 검수를 절대조건으로 하기로 했다.
요컨대, 당장 내일 연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지혁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올릴 수 없다. 시한내에 맞추지 못할 경우 휴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질이 낮은 작품은 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표명한 셈이었다. 그들은 납득하는 기색이었고, 동시에 지혁의 조건이 까다로울 거란 확신을 가졌는지 마감지옥을 두려워하는 모습도 보였다.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
일단 당장 내일부터 진행될 일은 아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작품들이 있기 때문에 그게 마무리 되고 나서야 만화화가 진행될 것이다. 지혁은 그때까지 틈틈이 그들과 만나서 미리 비축분도 만들고, 실력도 키우는 과정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한예리에게 연기지도를 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일 것이라고 본다.
‘드라마도 순조롭고.’
창연화는 벌써 제작되는 중이었다. 촬영이 시작되고 한예리의 연기력에 놀란 사람들의 평이 있었다는 말을 박진형에게서 전달받았던 지혁은 이제 그녀에 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를 키워서 창연화가 대흥행을 하게 될 경우 지혁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짭짤할 것이다.
그녀가 창연화의 창소이로 발탁되었다는 사실이 기사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목소리가 있었다. 최근들어서는 평범한 수준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는데 고정관념이라는 게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드라마가 상영되기 시작되면 잠잠해질 것이라고 본다. 지혁이 생각해도 지금의 한예리는 어지간한 연기자 못지않은 연기력을 보유한 탄탄한 연기파 배우였다.
‘남은 건 다섯 가지 정도인가.’
가운을 입은 채 와인잔을 들고 호텔 최상층에서 유리창 너머 지상을 내려다보던 지혁은 소음이 멎는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것을 끝낸 차현진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와인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지혁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침대로 이끌어 나란히 누웠다.
“보고해주세요.”
지혁이 그렇게 말하자 차현진의 보고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방금 지혁이 떠올린 다섯 가지의 쟁점 중 2가지가 해결되었다.
하나는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생긴 여러 가지 제반사항에 대한 처리결과였다. 일단 첫 번째로 사무실을 옮기는 것이 있었다. 400억이 넘는 돈을 들여서 빌딩을 하나 사들였고, 그곳을 통째로 회사 거점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다. 은근히 처리할 것이 많은데도 차현진은 꽤 잘 진행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어려움도 많은 것 같았다. 지혁은 급한 일이 아니라며 그녀를 천천히 다독이는 중이었다.
벌어들인, 그리고 앞으로 벌 돈에 비하면 430억 정도의 금액은 그다지 크다고 볼 수도 없었기에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다.
그리고 직원들을 뽑는 과정에 대한 보고도 이어졌다. 사람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사업적인 측면에서 좀 더 활동이 활발해질 것 같아서 증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생각해보면 적절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홍창식, 이정욱의 사례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기저기 발을 걸치게 되는 것이니까 이전의 초라한 사무실 규모로는 감당이 될 리가 없었다.
“잘 하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그 다음 보고가 이어졌다.
만화축제에 가기 전에 차현진에게 지시했던 사항이었다. 지혁은 리플라워라는 그룹을 키워보고 싶다는 말을 했고, 차현진에게 그녀들을 겨냥한 곡 몇 개를 건네주면서 교섭을 해보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그에 관한 보고를 했는데 일이 잘 풀렸다는 것 같다. 당장은 아니고, 곧 있을 사무실 이전 과정이 끝나면 그때 일정을 잡아보겠다 말해두었다고 한다.
“…이상입니다.”
지혁은 차현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다시 한 번 칭찬했다.
“좋아요. 그럼 이제 집중할까요?”
* * *
팔베개를 하고 누운 상태로 지혁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차현진에게 보고받은 내용으로 2가지는 해결되었다. 그러나 아직 3가지의 요소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차현진이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지혁이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었다.
첫 번째는 개인방송이었다.
지혁은 개인방송을 키워보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해보니까 꽤나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지혁은 그저 방송을 키고 게임을 하며, 그의 개인화면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시청자들은 많이 들어왔다. 지혁이 그만큼 실력적인 측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인데 지혁은 그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을 원했다. 실력만이 아니라 재미가 있기에 보는 방송이 되기를 희망한 것이다. 그러려면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슬슬 새 녹음도 시작을 해야할텐데.’
지혁이 임유선을 통해서 전달받은 성우들의 근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매우 바쁘다.
생일날의 너에게로 얻은 인기의 달콤함에 취한 그들이니 지혁이 새로운 작품의 녹음을 하겠냐는 제안을 한다면 그들은 필시 버선발로 달려올 것이다. 그들의 캐스팅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시기적인 측면의 문제가 있었다. 애니메이션은 ‘영상’이기 때문에 소설이나 만화처럼 뚝딱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즉, 고작 2~3달 정도만에 또 다시 새로운 작품을 들고 나타나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지금도 의문이 많겠지만 거기에 한층 확신을 심어주는 계기로써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이번에 시작할 작품, ‘아르핀(Arpin)’은 생일날의 너에게와는 다르게 장편이기도 하다. 총 화수 115화에 빛나는. 물론 다음 작품에 비하면 많은 양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생일날의 너에게는 아르핀의 4화 정도의 분량밖에 되지 않으니 그렇게 따져보면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시기상조(時機尙早)다.
장고(長考) 끝에 지혁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룸에서 오랜시간에 걸쳐 작업해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공들인 것을 생각하면 공개하는 것이 조금 늦춰지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살짝 안달이 나기는 하지만.
‘마지막은….’
새로운 작품.
지혁에게 있어 창조는 그를 가장 흥분시키는 행위라고 생각된다. 추후에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창조라는 분야가 그에게 있어서는 중심이고, 핵심이다. 당연히 그는 현대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창작활동을 멈추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얼마전까지 미니게임천국 3부를 집필해왔으니까 잠깐 휴식기간을 가지자는 의미로 쉬어가고 있었는데, 홍창식과 이정욱의 열정이 그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소설이 원작이 아니라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작품을 하나 제작해보고 싶다.
지혁은 그런 열망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룸을 이용한다면야 작품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지혁은 이번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일전에 신이 그에게 해준 경고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혁은 규모 자체가 커지는 것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이 만들 애니메이션은 생일날의 너에게처럼 영화의 형식으로 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지혁 혼자가 아니라 새로이 이전된 사무실에 뽑히는 실무진과 진행이 될 것이다.
거의 사장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에 잔류해있는 인재들. 지혁은 궁극적으로 그들을 대거 끌어모아서 전체적인 수준을 높인 뒤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구성팀, 인적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에 있었다.
굳이 사무실의 규모를 한번에 확 키워버린 것은, 그러한 배경이 바탕이 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강국이라 불리우는 옆나라를 뛰어넘을만한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 지혁이 선구자로써 길을 개척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일단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방송.
지혁은 어떻게 하면 방송을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껏 그가 제대로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일 중에서 잘 안 풀린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아마 방송 역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가장 무난한 선택지는 모방이겠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방송을 진행하는지를 살펴본다.
일단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