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1 히트 =========================================================================
후우….
[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게 해주지. ]
“선생님.”
JHP 사옥 앞에서 연초를 피며 차를 타고 떠나가던 순간 강호산이 했던 말을 상기하고 있던 지혁은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누나.”
지혁은 그대로 걸어가 그녀를 안았다. 불쾌하던, 어지럽던 마음에 단번에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당황한 듯 그녀의 양손이 방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귀신이다. 귀신.
그녀는 지혁의 기분을 탐지하는 레이더라도 장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혁은 품에 안은 그녀를 놓아주면서 웃었다.
“걱정마세요. 레슨만 했으니까.”
물론 차현진이 그런 쪽으로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지만, 지혁은 그렇게 어물쩍 넘겨버렸다.
그렇게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지혁은 창밖을 쳐다보았다.
박진형은 지혁에게 사과했다. 갑자기 찾아온 강호산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 지혁은 납득했다. 어차피 그것에 관해 따지고 들 생각은 없었다. 보아하니 강호산은 그런 인간인 것 같았기에.
물론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박진형은 그에게 대항하지 못했을 것이다.
‘슬슬 규모를 키우기는 해야지.’
벌어들이는 돈이 있으니까 지금의 사무실로는 안 된다. 말은 안했지만 차현진은 요새 지혁을 만나러 올 틈도 없이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와 편하게 놀고먹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사업체를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 * *
강호산이 신호탄으로써 작용한 것일까.
딱히 세간에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지혁을 만나보려고 하는 움직임이 분주하다는 것은 그도 느끼고 있었다. 차현진이 당분간은 자택에 계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넌지시 말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NG의 회장이 움직일 정도라는 것은 다른 기업들도 안달이 나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조용한데.’
강호산이 으름장을 놓고 간지도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지혁의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가끔 차현진과 데이트를 하고, 소설을 쓰거나 게임을 한다. 시간이 빌때는 작곡을 하거나 새로운 스토리를 구상해보기도 한다. 더 늘어날만한 솜씨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무색하게, 할때마다 발전한다는 감각이 있어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평화속에서 시간은 유수(流水)와도 같이 흘렀다.
생일날의 너에게는 슬슬 대중에게 잊혀져가고 있었다. 출시가 된지 두 달이나 되었으니 아직까지도 화제인 것이 더 이상하다. 인기가 올라가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내려가는 순간도 있는 법. 하루판매량 340만이라는 정점을 찍고나서 생일날의 너에게의 일일판매량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십만 이하로 감소해 있었다. 어제가 7만 정도였던가.
현재까지 추산된 판매량은 4800만개 정도.
단순계산시 생일날의 너에게를 출시하여 벌어들인 이득은 960억이다.
그간 여러모로 화제가 된 것은 많았다. 예를 들어 지혁이 공개한 OST의 출처나 가수의 이름을 묻는 것. 많은 사람들의 요청이 있었으나 지혁이 차현진에게 별다른 언질을 내어주지 않다보니 아이펜 스튜디오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고, 그렇게 사람들의 궁금증은 해소되지 못한 채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었다.
영상미에 대한 이야기도 엄청 많았다. 지혁이 만들어낸 생일날의 너에게가 보이는 완성도는 애니메이션 업계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하는 이상향이라는 극찬을 하는 평론가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 글들을 보고 있자면 입꼬리가 씰룩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혹자는 역사에 남을 명작이 나왔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하기도 했다.
한글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도 생겼다.
아무리 자막이 나간다고는 하나, 목소리는 한국어로 작업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성우들과는 다르게 지혁은 최대한 한국어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 녹음 작업을 수없이 반복했고, 그가 가지고 있었던 예리한 감각을 고스란히 녹아내었다. 물론 성우들이 그가 원하는만큼 해주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수준이 낮다고는 그조차도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녹음은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한글’이라는 것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외국인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 희소식인 것 같았다. 그만큼 영화에 한국어가 잘 녹아들었다는 의미이리라. 한국어를 아는 사람들은 이 영화로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을까? 하는 식의 의견을 내놓는 이들도 많았을 정도였다.
그걸 놓고서 한국어 학원이 늘어가는 추세라느니,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다느니 말이 많았다. 사실 지혁은 별 관심이 없었고, 차현진이 보고를 해주어서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많이 있었던 요청은 무엇일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요구했고, 아쉬움을 나타냈던 것은 영화관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혁 역시 거대한 스크린으로 보는 것과, 모니터 화면으로 보는 것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음향장비의 차이도 크고.
어차피 생일날의 너에게 이후로 출시할 다른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짧은 단편이 아니라 긴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모험의 형식이었다. 그것들까지 영화로 상영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지혁은 그에 관한 생각은 잠깐 접어두기로 했다. 생일날의 너에게를 영화관에서 상영했어도 나쁘지는 않았겠지만, 지혁의 작품을 아이펜에서만 볼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게 하는 것이었기에 이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타다다다닥.
탁!
“끝났다….”
그리고, 방금 미니게임천국 3부의 집필이 종료되었다.
지혁은 추후에 독자들이 4부를 요청하는 요구가 없도록, 3부에서 완전한 스토리의 결말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이야기가 좀 길어졌고 부득이하게 지금까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끝났고, 지혁은 만족했다. 사실 다소 어거지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막상 쓰다보니까 나름대로 즐거웠던 것 같다.
똑똑.
“…….”
덜컥!
노크를 해도 답이 없길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만큼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 오빠 왜?”
이어폰을 낀 채로 책상에 앉아서 문제집을 풀고 있던 은서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툭툭 치고나서 그렇게 물어오는 그녀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그러자 그녀가 떨리는 눈빛으로 지혁을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서, 설마 이거….”
“완결이야.”
은서는 방금 전까지 다소 전투적으로 공부하던 모습을 완전히 탈피하고 곧장 지혁의 핸드폰을 받아 들어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혁의 동생이라는 특권을 제대로 누리고 있었다. 미니게임천국 3부는 아직 30%도 연재가 되지 않았는데, 그녀는 지혁이 주는 분량을 받아서 계속해서 읽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저번에는 기다리는 맛도 있다느니 뭐니 하더니만 3부로 진입했을 때는 또 생각이 달라지기라도 한 것인지 지혁에게 끈질기게 요구한 탓에 그는 1권 분량을 집필할 때마다 은서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고마워 오빠. 오빠가 내 오빠라서 다행이야.”
잠깐 소설의 초입부분을 보는 것 같던 그녀는 곧장 자기 핸드폰을 들어 올리는 것 같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00치킨이죠? 네. 늘 먹던 걸로. 네~”
그녀는 치킨을 주문하더니 곧장 목욕재계도 하고서는 경건한 마음으로 배달온 치킨을 받아든 후에 닭다리를 뜯으며 소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 그녀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깐 TV채널을 돌려가면서 볼만한 것이 없나 탐색하던 지혁은 TV를 꺼버리고 무릎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시판이나 가볼까.’
그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지혁은 아이펜에 소통의 창구가 없다는 불만이 많다는 차현진의 의견을 수렴해서 자유게시판을 하나 만들었다.
[ ICC 2085 : 두근두근 ]
[ ICC 18591 : 김지훈 보고있나? ]
[ ICC 42011 : 빨리 12시가 됐으면 좋겠다 ]
[ ICC 15385 : 님들 머 기다리는 거임? 난 왕 ]
[ ICC 8172 : 창연화 기다리는 중 ]
[ ICC 26638 : 난 다 볼거임 ]
자유게시판에 접속할 때는 임시아이디를 받게 된다. 지혁이 연재하고 있는 소설들은 12시에 최신화가 갱신되고, 11시가 넘어갈때쯤이면 최신화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자유게시판에 모여선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기다리고 있다 등의 말을 하면서 잡담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찌나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지 12시가 임박할 때면 글이 올라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제목만 겨우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지혁 역시 종종 그것을 구경하면서 즐기는 중이었다. 왠지 간질거리는 마음이라고 해야할까. 아마,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들은 지혁이 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를 것이다.
그리고 지혁이 만든 것은 또 있었다.
‘괜히 만들었나?’
다름아닌 ‘작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 등의 공간도 만들어서 지혁에게 이것저것 문의할 수 있도록 해둔 것. 문제는 이것을 이용하는 수가 너무 많다는 것에 있었다.
따로 이메일이 공개되어 있지 않은데다가 SNS 같은 것도 하지 않는 지혁이기 때문에 지혁과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펜(차현진)을 통하거나, 이곳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하루마다 만 단위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을 전부 확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순조롭네.”
생일날의 너에게의 인기는 점점 수그러들고 있지만 소설의 인기는 여전했다. 한 순간에 팍 하고 정상을 거머쥔 생일날의 너에게와는 다르게 소설은 꾸준하게 인지도를 쌓아가고, 입지를 다지는 중이었다.
“아, 웹툰.”
지혁 역시 12시가 임박할 때면 항상 일과처럼 해오는 것이 있었다. 오늘의 웹툰을 보는 소소한 일상은 지혁에게 있어서 달콤하기 짝이 없었다. 지혁은 최신화가 올라온 것을 확인하고서는 서둘러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한 홈페이지에 국한되지 않고, 웹툰이 올라오는 다양한 플랫폼들을 두루두루 활용하는 편이었다. 한 마디로, 보는게 많다는 뜻이다.
‘만화축제?’
한창 보고 있는데, 한 홈페이지에서 곧 있을 만화축제에 대한 공지글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지혁은 호기심이 생겨서 들어가 보았다.
대충 요약하자면, 8월에 있는 국제만화축제에 관한 알림글이었다. 찬찬히 읽어보던 지혁은 웹툰 작가들의 사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서 눈을 빛냈다.
‘심심하기도 한데 한번 가볼까?’
솔직히 말하면 그냥 지금까지 읽어왔던 거니까 읽는다는 관성의 느낌이 드는 만화들도 많다. 그림체도 그렇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생기는 작품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지혁의 기준이 높은 것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만화를 보고 있으면 가끔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크게 들지 않는, 독자로써 재미있게 즐기고 있는 만화들도 많다.
‘일단 보류.’
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웹툰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가 보는 웹툰의 정독이 끝나자 그는 다시 문의글로 들어가서 사람들의 문의를 확인해보았다.
대체로 지혁의 정체를 궁금해하거나 인터뷰를 요청하는 글, 사인을 받을 수 있는 방법, 생일날의 너에게를 제작한 스탭진을 취재할 수 있냐는 물음 등이었다.
거의 다가 들어줄 수 없는 요청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고, 지혁은 가볍게 넘겼다.
[ 저는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이범이라고 합니다. 혹시…. ]
그리고 하나의 글을 클릭한 지혁은, OST를 작곡한 작곡가와 연락할 방법이 없겠냐는 글의 내용을 확인하고서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물음이라서가 아니라, 그 순간 무언가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서하린.
차현진과 사귀게 되고, 그는 그녀에 대한 욕심이 없어졌다. 딱히 그녀에게 무언가를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역시 아니다. 다만…. 그냥 이대로 넘어가기엔 리플라워를 위해 작곡해둔 곡들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다.
‘…….’
지혁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가, 이내 다시 마우스를 쥔 오른손을 움직여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