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3 생일날의 너에게 =========================================================================
하늘이 되고 싶은 걸요
당신을 모시는 하늘이
당신 근처에 피어오르는
구름이, 구름이 되고 싶은 걸요
MR이고 뭐고 없는 무반주로 부른 몇 마디. 그러나 그 반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가수이자 작곡가이며 기획사 사장이기도 한데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도 했었던 박진형은 지혁의 첫 소절을 듣고 나선 슬며시 눈을 감는 모습을 보였었고 한예리는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나마 중년인은 갑자기 왜 노래를 부르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이미 지혁의 노래는 그들에게 녹아들고 있었다.
이 곡의 이름은 천풍운가(天風雲歌)로, 작중에서 죽은 여주인공 홍가인을 기리며 남자 주인공 김창현이 부르는 추모곡(追慕曲)이다. 몇 시간 전, 생일날의 너에게의 영상이 아이펜에 등재됨과 함께 동시에 출시된 음원이기도 하다. 김창현이 떠나버린 그녀를 잊지 못하고 하늘, 바람, 구름이 되고 싶다는 가사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듯 부르는 곡이었다.
잔잔하면서도 여운이 있는 곡이라서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편이고, 이런 자리에서 불러도 크게 부담되지 않기 때문에 선택했다. 지혁이 작사, 작곡한 곡이기 때문에 곡 자체의 가치도 증명할 수 있으며 그의 노래실력도 알릴 수 있다.
계속 중얼거리면
바람이 편지가 되어줄 것 같아서
언제나처럼 하늘을 보며
속삭여요
안부를 물어요
어디 아프진 않는지
그곳은 춥지 않고 따뜻한 건지
그곳에서는 행복한지
“…….”
이쯤하면 되었겠다 싶어, 지혁은 노래를 종료했다. 무반주라 그런지 좀 민망했다. 자신이 부르기는 했지만 이건 여성이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거란 생각을 부를때마다 한다.
얼이 빠져있는 일행을 돌아보며 헛기침을 한 번 한 그가 말했다.
“저는 작품을 위해서는 양보가 없습니다. 제가 수익이나 시청률이 아니라 작품의 완성도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만약 창연화가 뮤지컬로 제작이 되었고, 제가 남자주인공으로써 무대에 올랐더라면, 저와 합을 맞출 여배우는 최소한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어야 했을 겁니다.”
지혁은 열망이 있다. 그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고, 그것만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이라도 노력해서 성과를 내고, 잘해지는 것 자체를 즐기는 타입이다. 그런 성향을 가진 그이기에 1만 포인트를 과감하게 재능에 몰빵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 뛰어들어 노력할 것이고, 자신의 커리어에 오명이 남기를 원하지 않는다.
돈 따위는, 그것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아예 하지 않으면 몰라도, 하면 제대로 해야만 한다. 사실 이전에 성우들이 죽을 쑬 때 그만큼 참은게 용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런 스트레스가 없었으면 한다.
한예리가 다소 충격받은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다. 노래실력에 자신이 있었기에, 그녀에게 관심을 끌어보려는 목적으로 노래를 한 것도 없지는 않았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였다.
“저는 만약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판단이 든다면, 주저없이 엎을 거라는 뜻입니다.”
지혁은 그렇게 말을 마무리 지었다.
잠시 뒤, 정적 속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박진형이 슬며시 눈을 떴다. 그는 할 말은 많은데 할 수가 없다는 듯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슬쩍 벌린채 고개만 이리저리 돌리며 한예리와 중년남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박수를 짝짝짝짝 쳤다. 지혁의 노래에 심하게 감격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쑥스러웠다. 막상 부르고 나니 힘이 들어가서 오버를 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부르길 잘한 것 같다. 그가 대뜸 노래를 한 것은, 박진형이라는 사람이 음악적으로는 쉬이 타협을 하지 않는 성향의 인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아뇨. 너무 잘 들었습니다.”
그 뒤로 간단히 이야기가 오고갔다. 방금 공개를 하였다보니 이들은 역시 생일날의 너에게를 아직 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혁 역시 보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지는 모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작가님. 그 작품을 꼭 보고 다시 판단해서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박진형이 단단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중재를 하자, 중년남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래를 부르면서까지 그의 뜻을 관철한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다. 식사도 얼추 끝난 상황. 이제는 일어나야할 시간이었다.
“저… 혹시 사인 받을 수 있을까요?”
쑥스러운 듯 시선을 내리깔고 있다가 슬쩍 올려다보며 수줍게 말하는 것이 전형적인 팬의 모습이다. 지혁이 쳐다보니 민망한 듯 아하하 웃는다. 티 없이 맑은 미소였다.
‘…….’
도도하다 못해 까칠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던 처음과는 극과 극을 달리는 태도.
지혁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히 할 수 있었다.
빼어난 미인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혁의 외모가 그녀안에서 평가에 크게 작용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솔직히 지혁이 신을 만나고난 뒤로 그에게 아까처럼 쌀쌀맞게 군 여자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지혁이 조커 유이기 때문에, 노래를 잘하기 때문에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뭐, 이유따위야 아무래도 좋다. 일단 그녀가 관심을 가진 것으로 충분. 그녀가 자신을 직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만족감이 생겨난다.
지혁은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입니다.”
* * *
쏴아아아아….
새벽부터 내린 비는 점심때가 지나가기 시작하는 무렵인 현재까지도 그칠 줄을 모르고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지혁은 열린 창 사이로 들려오는 빗소리와 함께 내리는 비를 구경하며 침음성을 흘렸다.
“으으…!”
다시 시작된 안마타임.
지혁은 낮부터 집으로 들이닥쳐선 아침 겸 점심을 차려주고 청소, 설거지 등을 하고 나서 목욕재계를 한 뒤에 하얀 수건으로 주요부위만 겨우 가리고선 언제나처럼 등 뒤에 자리를 잡고서 그의 어깨를 주물럭거리는 차현진의 손길을 느끼며 보고를 받고 있었다.
비를 맞아서 샤워를 해도 되겠냐는 정중한 물음을 해왔기에 수락해줬더니, 이렇게 대담한 복장으로 나온 그녀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향긋한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방금 확인해본 결과 지금까지 판매된 수는 153만개 정도인 듯 합니다.”
“…그건 좀 놀랍네요.”
생일날의 너에게가 공개된지 고작 하루.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100만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실시간 검색어. 어제 오후부터 1위자리를 점령한 생일날의 너에게는 다음날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1등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었다. 지혁은 어제 방송을 켜고 하루종일 레전드 리그만 했기 때문에 정작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자세한 것까지는 몰랐었는데(물론 도중에 실검에 올라있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예상했었던 일이라서 그러려니 했던 것)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웠던 모양이었다.
“말씀드렸듯 인기에 비해서는 오히려 적은 숫자라고 생각됩니다.”
차현진은 150만도 적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생일날의 너에게의 가격을 비교적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2천원에 책정했다고는 하지만 그 돈도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할 것이다. 가족, 친구 등 지인 중 누군가가 구입을 했다면 아이디를 빌려서 그걸로 돌려보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이펜에 가입한 아이디로 구입을 하면 언제든 볼 수 있게 시스템화되어 있기 때문에 생긴 문제. 그러한 부분을 감안해서 생각해보면 150만은 엄청나게 많은 숫자였다.
숫자가 그렇게까지 불려진 데엔 외국의 공헌이 컸다. 국내에서 엄청난 화제몰이를 하고 있지만 구입된 숫자는 40만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110만이 모두 외국이라는 뜻이었다.
“30억 정도네요.”
“…그렇습니다.”
소설로 벌어들이는 돈보다도 적다. 과장 좀 보태서 나라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지혁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가 창작활동을 해나갈 시간은 많다. 앞으로 벌어들일 돈에 비하면 이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하루 수익이 30억이라는 건 빈말로라도 적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출판사에 각종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정상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없었고, 말씀하신대로 직원들에게는 전화선을 뽑도록 지시해 두었습니다.”
뭐, 시간문제라고 본다. 아직 공개한지 하루밖에 안되었는데 수익이 적다고 징징대는 건 이상한 일이다.
말이 나왔으니까 지혁은 궁금한 점을 묻기로 한다.
“근데 팀장님이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요?”
“선생님을 모시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왠지 그녀 휘하의 출판사 직원들이 불쌍한 걸. 이제는 출판사 직원이라고 해야 되는지도 좀 의문이기는 하지만.
다시 차현진의 보고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생일날의 너에게 원작 소설이 대흥행하고 있습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차현진의 설명이 이어졌다.
판매량이 권당 10만을 넘겼다고 한다. 고작 2권짜리니 권당이라는 말이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조커 유라는 작가를 좋아한 팬들이라면 거의 대부분을 구매한 것 같았다. 총 판매량은 집계된 것으로 25만 정도. 소설 역시 권당 2천원의 가격을 책정해두었기 때문에 소설의 판매가만 해도 5억은 될 것 같았다.
돈 빨아먹는 하마가 따로 없군.
그러나 이건 예정된 수순과도 같다. 생일날의 너에게는 룸에서 썼던 소설들 중에서 뒤에서 세 번째의 순서때 쓴 글이다. 당시의 지혁은 글솜씨가 완숙한 경지에 올라있었기 때문에 다른 소설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박한 평가를 받을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 자신한다.
우웅…!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고, 차현진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아 그러실 필요 없….”
지혁은 엎드려 누워있었기 때문에 등뒤로 손을 뻗었다. 일어나려는 그녀를 제지할 생각으로였다. 근데 팔을 잡으려고 했는데 팔 치고는 너무 두껍다.
“알…겠습니다.”
“…….”
저도 모르게 움켜쥔 그녀의 매끈한 허벅지에서 슬며시 손을 뗀 지혁은 차현진이 다시 안마를 시작했다. 그녀의 몸을 함부로 터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쾌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지혁은 손에서 느껴졌던 부드러운 감촉을 생각하다 이내 진동하는 전화기를 쳐다보았다.
은서가 이런 시간에 전화를 할 일은 없다. 오늘은 월요일이고 지금 학교에 가 있었다. 한창 수업을 받고 있으리라.
당연히 승현이 평일 낮에 전화를 해온 적도 없었다. 물론 그럴 수야 있기는 하겠지만,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현진은 지금 그에게 안마를 해주는 중이니 당연히 전화를 할 수 있을리 없다.
결국 남는건….
박진형.
어제 지혁과 번호를 교환한 그가 아니라면 지금 전화를 해올 사람은 없다. 그저 스팸전화일지도 모르지만, 지혁은 왠지 보지 않아도 그의 이름이 떠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은 필요할 줄 알았는데.’
지혁은 분명히 경고했다. 어설픈 실력으로 지혁에게 접근하려하지 말라고. 빙빙 돌려 말하기는 했으나, 최소한 그 자리에서는 납득한 모습을 보였었다.
사실 그때 지혁이 노래를 불러주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생일날의 너에게가 뛰어난 작품이라고 재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지혁이 제작했다는 점에서 무시를 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다재다능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면 그게 맞기도 하다.
이건 순전히 그의 생각인데, 박진형은 그저 순순히 지혁의 의견을 따라주는 것으로 그를 존중하고 있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인 듯하다. 만약 생일날의 너에게가 시원찮았다면 그는 이런저런 압박을 가해왔을지도 모른다. 아니, 큰 기대를 안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 경우 자신들에게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여겼을 확률이 높다.
철저한 계산하에 이루어진 일. 그저 지혁의 노래에 찬사를 보내던 가수로써의 박진형과, 기업인으로써의 박진형은 그렇게 다르다.
‘몇 번만 좀 씹어볼까.’
지혁은 방바닥에 놓여있는 채로 그 뒤로 몇 번을 더 울리다가 잠잠해진 핸드폰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그들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30분 안에 꼭 다음편을 올리겠습니다.